매년 브랜드마다 창립 및 출시를 기념하며 특별한 시계를 출시한다. 켜켜이 쌓인 산업의 역사 만큼이나 다양한 제품이 발표되고 성대한 행사가 열린다. 2026년에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정리해봤다.
지난해 창립 250주년을 성대하게 치룬 브레게(Breguet)는 올해 투르비용 225주년을 기념할 예정이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수많은 발명 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투르비용은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와 메종의 명성을 드높이는데 기여했다.
투르비용은 극한의 정밀함을 추구했던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염원을 물리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투르비용을 개발한 것은 당대의 기술로는 온도 변화에 의한 금속의 변형과 팽창, 윤활유의 안정성을 극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력은 지구에 종속된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 진리다. 그리하여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기술적 한계와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 대신 순응하고 보정하는 방향으로 방향키를 돌렸다. 1801년 6월 26일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투르비용에 대한 특허를 취득했지만 첫 투르비용 시계를 판매하기까지 6년이나 걸렸다. 그만큼 투르비용은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에게도 만만치 않은 과제였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완벽히 작동하는 투르비용을 개발하고 완성하기까지 무려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1796년부터 1829년까지 40개의 투르비용 시계를 제작했다. 이외에도 미완성된 채 폐기되거나 분실된 9개의 투르비용 시계가 있었다. 40개의 투르비용 시계 중 1/4은 마린 크로노미터용으로 제작됐다.
손목시계의 시대에 투르비용은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 특히, 판매용으로 제작된 투르비용은 극히 적었다. 투르비용은 원래 회중 시계를 위해 고안한 장치였던 데다가 손목시계에 맞는 크기로 줄이면서 정밀함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랬던 투르비용은 198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손목시계에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오늘날 기계식 시계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컴플리케이션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우뚝 서 있다. 브레게의 CEO 그레고리 키슬링이 올해가 투르비용 225주년임을 이미 강조한 만큼 어떤 시계가 나올지 지켜볼 일이다.
1996년에 탄생한 까르띠에(Cartier)의 탱크 프랑세즈(Tank Française)는 일체형 브레이슬릿을 장착한 최초의 탱크였다. 탱크 프랑세즈는 브레이슬릿으로 인해 다른 탱크보다 인상이 강하고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탱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이 운용했던 르노 FT 탱크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시계다. 무한궤도를 연상시키는 탱크 프랑세즈의 브레이슬릿은 아이콘의 기원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까르띠에는 2023년에 탱크 프랑세즈의 디자인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전체적인 외관은 그대로 유지한 채 디테일을 쇄신했다. 메종의 다른 아이콘을 성공적으로 재해석한 방법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엔드 링크는 디자인의 조화와 일체감을 강화하는 형태로 바뀌었고, 크라운은 케이스 안으로 깊숙하게 파고 들었다.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은 전체 새틴 브러시드 가공해 광택을 최대한 억제했다. 덕분에 더욱 현대적이고 스포티한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었다. 다이얼도 보다 입체적이면서 전체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다듬었다.
탱크 프랑세즈는 현재 모델이 많지 않다. 다시 말해, 다른 탱크 컬렉션과 비교했을 때 다양성이 다소 부족하다. 2년 전 리뉴얼을 거치며 기반을 다진 탱크 프랑세즈가 30주년을 맞아 기계식 무브먼트를 활용해 화려한 변신을 보여줄지 기대해본다.
주얼리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워치메이커로서의 집념. 쇼파드(Chopard) 매뉴팩처가 설립 30주년을 맞았다. 지금이야 많은 브랜드가 인하우스, 매뉴팩처를 외치지만 30년 전만 하더라도 쇼파드의 결단은 무모해 보였다. 쇼파드 공동 회장 칼-프리드리히 슈펠레의 선견지명은 지금 생각해도 놀랍기 그지없다. 쇼파드 매뉴팩처의 첫 번째 결실인 칼리버 1.96은 현대 셀프와인딩 무브먼트의 걸작으로 꼽힌다. 22K 골드로 제작한 마이크로 로터와 2개의 배럴을 장착한 칼리버 1.96은 얇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65시간이라는 긴 파워리저브를 제공하며 유행을 선도했다. 제네바 홀마크와 COSC 인증을 동시에 획득하며 아름다운 외관과 탁월한 성능을 동시에 만족시켰다.
쇼파드 매뉴팩처라는 단어에서는 진중함과 무거움이 느껴진다. 이들에게 매뉴팩처란 허황되고 장황한 마케팅적 수사가 아닌 시계 제작에 대한 진심과 열정 그 자체다. 30년간 쇼파드는 퀄리티 플러리에 같은 가혹한 인증을 자발적으로 수행했다. 윤리적으로 채굴한 페어마인드 골드를 사용해 럭셔리 산업에서의 지속 가능한 경영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윤리 의식을 환기시켰다. 자체 주조 시설에 힘입어 루센트 스틸이라는 새로운 합금을 사용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무브먼트 개발에 관한 능력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스트라이킹 워치다. 특히 지난해 말에 선보인 L.U.C 그랜드 스트라이크는 쇼파드 매뉴팩처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었다. 스트라이킹 워치를 정복한 쇼파드 매뉴팩처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현시대의 사람들에게 아직은 익숙하지 않을 브랜드. 그런데 역사는 200년이나 됐다. 날고 기는 스위스 브랜드 중에서도 200년을 넘긴 브랜드는 많지 않다. 1826년에 스위스 라쇼드퐁에서 탄생한 갈레(Gallet)는 크로노그래프 시계로 유명세를 떨쳤다. 한때는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이 착용했을 만큼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쿼츠 시계의 등장과 기계식 시계 산업의 붕괴로 갈레 역시 큰 타격을 입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리고 2025년 브라이틀링이 갈레를 인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브라이틀링은 유니버설 제네브에 이어 갈레까지 품으며 시계 그룹으로의 확장에 나섰다.
브라이틀링은 보도자료를 통해 부활한 갈레가 2026년에 시계를 출시할 거라고 밝혔다. 2026년은 갈레 창립 200주년인 해이기 때문에 상징성을 생각했을 때 시의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갈레 시계의 가격은 3,000~5,000스위스프랑으로 책정될 예정이다. 그룹 내에서 갈레가 하위 세그먼트를, 브라이틀링이 중위 세그먼트를 담당한다. 참고로 유니버설 제네브는 고가 시계를 담당한다. 1,000만원 미만에서 경쟁력 있는 제품을 내놓는다면 관심을 가질 애호가들이 있을 것이다. 가격과 등급을 생각하면 크로노그래프 모델은 범용 무브먼트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갈레의 성공 여부는 경쟁이 치열한 세그먼트에서 뛰어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인지도를 확장하는 것에 달렸다. 200년의 시간을 넘은 갈레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게 될지 궁금하다.
1976년 디자이너 제랄드 젠타가 디자인한 인제니어 SL(Ingenieur SL)이 세상에 나왔다. 1954년에 등장한 최초의 인제니어는 드레스 워치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인제니어 SL은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이었다. 고급스러운 스포츠 워치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지만 대중들이 이 생소한 개념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오늘날 럭셔리 스포츠 워치의 인기를 생각하면 놀랄만하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인제니어 SL의 여정은 로열 오크나 노틸러스와 비교하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점보라는 별명으로 불린 초대 인제니어 SL은 지름이 40mm로 당시로서는 매우 큰 편이었다. 펠라톤 와인딩 시스템을 갖춘 오토매틱 무브먼트와 항자성을 위한 연철 이너 케이스를 더해 툴 워치의 면모를 갖췄다. 정밀한 시계와 파일럿 워치를 제작하며 실용성에 집중해온 IWC다운 결정이었다 IWC는 인제니어 SL의 성격을 감안해 이 시계를 엔지니어를 대상으로 판매했다. 문제는 인제니어 SL의 디자인이 다소 대담하고 혁신적이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인제니어 SL은 1976년부터 1983년까지 겨우 598개만 생산됐다.
이후 인제니어는 세대를 거듭하며 수정과 변경을 거듭했지만 IWC 컬렉션 내에서 이렇다할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2023년 IWC는 5개의 나사로 고정한 베젤, 독특한 패턴의 다이얼 등 인제니어 SL을 상징하는 요소들을 조합한 새로운 인제니어를 출시했다. 이듬해인 2024년 애플 오리지널 필름 영화 <F1 더 무비>에서 브래드 피트(소니 헤이스 역)가 인제니어를 착용하고 등장하면서 인제니어를 향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IWC는 인제니어의 크기와 소재 그리고 컬러를 다각화하여 컬렉션을 확장했다. 한 가지 부족한 점은 기능의 세분화. 현재 인제니어 컬렉션은 날짜 기능만을 가진 오토매틱 모델과 퍼페추얼 캘린더 모델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둘 사이의 간극을 이어줄 무언가를 기대해보면 어떨까?
만년필에서 시작해 가죽과 시계로도 영역을 확장한 몽블랑(Montblanc). 고급 시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2007년 미네르바(현 빌레레 매뉴팩처)를 인수했던 이들은 리치몬트 그룹의 지원 하에 엄청난 투자를 감행했다. 그렇게 순항하는 듯한 몽블랑의 시계는 부침을 겪고 있다. 신제품 개발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고, 그로 인해 눈길을 끄는 시계는 사라져갔다. 몽블랑 역시 시계에 크게 투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올해 열리는 워치스 앤 원더스 제네바에도 불참을 선언했다. 당분간은 시계 사업에서 힘을 빼려는 듯하다. 이런 기조 속에서 무언가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미네르바라는 작지만 알찬 매뉴팩처와 몽블랑의 시너지가 기대보다 약했던 걸까? 120주년이지만 아마도 만년필에 무게를 두고 움직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시계도 출시하겠지만 기존 제품의 확장에서 그칠 공산이 클 듯하다.
본래 파네라이(Panerai)의 뿌리는 해군을 위한 시계와 장비 제조사다. 라디오미르와 루미노르 모두 이탈리아 왕실 해군의 요구에 맞춰 제작한 시계에 기원을 두고 있다. 파네라이의 명성을 전해들은 이집트 해군은 이탈리아 해군의 동의를 얻어 파네라이에 시계 개발을 의뢰했다. 정확히는 이탈리아 해군 학교를 수료한 이집트 해군 장교 파우지(Fawzi)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GPF-2/56라는 명칭은 프로젝트와 연도를 조합한 코드 네임이다. 파우지는 이탈리아 피렌체를 수차례 방문하여 요구 사항을 조율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시계가 바로 GPF-2/56 이기지아노(L’Egiziano)다.
파네리스티들의 수집욕을 자극하는 이 시계는 60mm나 되는 케이스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파네라이가 제작한 손목시계 중에서 제일 크다. 내부에는 8일 동안 구동하는 안젤루스의 핸드와인딩 무브먼트가 담겨 있다. 이 시계는 파네라이의 상징과도 같은 크라운 가드를 처음으로 도입한 시계로도 알려져 있다. 잠수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회전 베젤은 현대 섭머저블 시계에 영향을 끼쳤다. 파네라이는 2009년 GPF-2/56를 되살린 PAM00341을 출시했다. 원작에 지나치게 충실했던 나머지 케이스 크기를 그대로 60mm로 재현하는 바람에 실제 착용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시계였다. 만약 케이스 크기를 47mm로 줄인 이기지아노가 나온다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현존하는 최고의 시계 복원가이자 마스터 워치메이커 미셸 파르미지아니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세운 파르미지아니(Parmigiani)는 플러리에를 넘어 물론이고 스위스 시계 전체를 대표하는 고급 시계 브랜드로 올라섰다. 독립 시계 제작의 성자처럼 여겨지는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는 인하우스라는 개념에 가장 충실한 브랜드로 손색이 없다. 완벽한 수직통합을 이룩한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는 케이스, 다이얼, 무브먼트부터 기계식 시계의 핵심 부품인 밸런스 스프링과 이스케이프먼트 그리고 작은 나사에 이르기까지 시계 제작에 필요한 거의 모든 부품을 자체 생산하는 능력을 갖췄다.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명망 높은 여러 고급 시계 브랜드도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로부터 부품을 공급받는다.
창립 25주년인 지난 2021년 귀도 테레니가 CEO로 부임하며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는 힘차게 비상했다. 보이지 않는 혹은 조용한 럭셔리라는 성격을 스스로에게 부여한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는 고급 시계의 본질로 돌아갔다. 유행을 따르는 대신 전통에 집중했다. 그 결과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는 고급 시계 중에서도 고급 시계로 평가받고 있다.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는 여전히 마케팅이 아닌 제품 자체에 집중하고 있으며, 시계의 본질에 관해서는 타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동안 톤다 PF와 토릭을 중심으로 브랜드를 이끌어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예상을 뛰어넘는 기능과 컬러 스킴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만큼 어떤 방식으로 30주년을 기념할지 기다려진다.
오데마 피게의 로열 오크와 함께 럭셔리 스포츠 워치 시장을 사실상 양분한 파텍 필립(Patek Philippe)의 노틸러스(Nautilus)가 50주년을 맞았다. 제랄드 젠타가 레스토랑에서 5분만에 그려낸 디자인, 파텍 필립의 과감한 모험 등 흥미로운 서사를 지닌 노틸러스는 투기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애호가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시계 중 하나로 꼽힌다.
파텍 필립은 지난 2016년 노틸러스 40주년을 기념하며 스리 핸즈 플래티넘 모델(Ref. 5711/1P)과 크로노그래프 화이트 골드 모델(Ref. 5976/1G)을 출시했다. 순수함으로 빛나는 1976년의 오리지널 모델(Ref. 3700/1)로 돌아가길 바랬던 애호가들이 제법 있었을 텐데 파텍 필립은 그들의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두 40주년 기념 에디션은 인덱스를 바게트 컷 다이아몬드로 호화롭게 장식해 고급스러움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흥미로운 것은 다이얼에 노틸러스의 40주년을 의미하는 숫자(1976-40-2016)를 각인했다는 것이다. 절제된 노틸러스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과장된 디자인으로 보일 수 있다. 각인된 방식이 달라서 통일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원작에 가장 가까운 점은 시계가 아닌 케이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코르크 상자에 담겨 출시됐기 때문이다.
50주년 모델은 40주년 모델과는 다르지 않을까 싶다. 숫자가 주는 무게도 40보다는 50이 크다. 소란스러운 행사를 열고 시계를 홍보하지는 않겠지만 10년 전보다는 주목을 끌 무언가를 준비하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기념 모델의 다이얼에 숫자 50을 각인할까? 과연 파텍 필립은 40주년 기념 모델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갈지, 아니면 모두의 예측을 엎는 새로운 방식을 꺼내들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언제나 전통과 혁신의 공존을 모색하는 파텍 필립은 1996년에 애뉴얼 캘린더(Annual Calendar)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날짜나 요일 그 이상의 정보를 제공하면서 퍼페추얼 캘린더에 비하면 간소화한 시계였다. 애뉴얼 캘린더는 퍼페추얼 캘린더와는 달리 1년에 단 한 번, 2월에서 3월로 넘어갈 때만 날짜를 조작하면 된다. 나머지는 퍼페추얼 캘린더와 마찬가지로 시계가 스스로 계산한다. 애뉴얼 캘린더가 등장하기 전까지 소비자들은 번거롭게 매번 날짜를 맞춰야 하는 시계와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편리하지만 복잡한 컴플리케이션 사이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받았다.
퍼페추얼 캘린더보다 사용하기 쉽고, 조작도 간편한 애뉴얼 캘린더는 출시와 함께 호평을 받았다. 퍼페추얼 캘린더보다 정돈된 다이얼은 가독성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애뉴얼 캘린더의 메커니즘은 레버와 캠을 이용하는 퍼페추얼 캘린더와 달리 휠과 피니언이 중심이 된다. 이 같은 구조로 인해 기어트레인에 필요한 부품 수가 많아진다. 대신 부품의 마모가 적고, 충격에 강하며, 생산 공정을 최적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통적인 퍼페추얼 캘린더의 구조를 탈피하고 애뉴얼 캘린더를 위한 완전히 새로운 설계를 도입했다는 점은 파텍 필립의 혁신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이후 파텍 필립은 애뉴얼 캘린더와 크로노그래프의 결합을 추구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파텍 필립이 신기술을 개발하는 특별 프로젝트 어드밴스드 리서치(Advanced Research)의 첫 번째 주자로 애뉴얼 캘린더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파텍 필립은 이제까지 총 6개의 어드밴스드 리서치 프로젝트를 발표했는데 그 중 3개가 애뉴얼 캘린더다. 2005년에는 실린바로 제작한 이스케이프 휠, 2006년에는 스파이로맥스 밸런스 스프링, 2008년에는 펄소맥스 이스케이프먼트를 애뉴얼 캘린더에 이식했다. 이처럼 애뉴얼 캘린더는 파텍 필립의 시계 중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제품이다. 퍼페추얼 캘린더가 전통의 수호자라면 애뉴얼 캘린더는 혁신의 선봉장인 셈이다. 애뉴얼 캘린더 30주년을 기리는 새로운 애뉴얼 캘린더가 등장할까? 그렇다면 새로운 애뉴얼 캘린더는 어떤 시계일까? 단순히 디자인이 다를까? 아니면 다른 기능을 추가한 컴플리케이션이 될까? 어쩌면 애뉴얼 캘린더 메커니즘을 최적화할 수도?
리차드 밀(Richard Mille)이 데뷔하며 불러일으킨 충격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지금도 리차드 밀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때의 강렬했던 기억이 여전히 뇌리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리차드 밀은 25년간 시계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부품과 무브먼트까지 직접 제조하는 기술력을 차근차근 쌓으며 견고한 제국을 건설했다. 많은 후발주자들이 등장하고, 시계 업계의 전반적인 수준이 상향 평준화됐지만 여전히 리차드 밀은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있다. 이 바닥에서 제법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는 역사는 핸디캡이 되지 못했다. 미래를 선점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리차드 밀의 전략은 현대 사회에서 기계식 시계가 어떤 방식으로 쓰이는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를 명확하게 증명했다. 지나치게 높은 가격과 탈대중적 성향으로 많은 부정론자들을 몰고 다니지만 현대 워치메이킹의 흐름을 바꾼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25주년인 올해 리차드 밀이 평범하게 예전 시계를 재현하는 일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리차드 밀은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2026년은 롤렉스(Rolex)에게 뜻 깊은 한 해가 될 것이다. 최초의 방수 및 방진 손목시계 오이스터(Oyster)가 탄생한지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자 플래그십 모델인 데이-데이트(Day-Date)와 강력한 자기장 환경에서 근무하는 전문가를 위한 밀가우스(Milgauss)가 데뷔한 지 7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무브먼트를 보호하는 밀폐형 케이스 덕분에 오이스터라는 이름이 붙은 시계는 현대 손목시계의 표준을 제시했다. 이전에도 방수 시계는 존재했지만 롤렉스의 오이스터처럼 완벽하지는 않았다. 롤렉스는 고무 패킹을 넣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스크루 다운 크라운과 스크루 다운 케이스백을 도입해 기계식 시계를 위협하는 물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오이스터 출시 이후 롤렉스는 심해에서 고산 지대에 이르기까지 혹독한 환경을 견뎌낼 수 있도록 오이스터 케이스를 끊임없이 발전시켰다. 그렇게 오이스터 케이스는 롤렉스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롤렉스의 데이-데이트(Day-Date)는 존귀함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18K 골드나 플래티넘 같은 귀금속으로만 제작되는 데이-데이트는 브랜드의 다른 컬렉션의 범접할 수 없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데이-데이트는 다이얼에서 날짜와 요일을 글자 그대로 표시하는 최초의 손목시계였다. 린든 B. 존슨을 비롯한 여러 대통령이 착용하면서 데이-데이트는 프레지던트(President)라는 별명을 얻었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시계 중 하나이기도 한 데이-데이트의 70주년은 어떻게 빛날지 궁금하다.
롤렉스의 공학적 집념을 보여주는 밀가우스도 70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롤렉스의 역사에서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선구적인 면모를 지닌 밀가우스는 CERN(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 엔지니어들을 위해 기획한 시계다. 전기를 형상화한 초침은 밀가우스의 성격을 드러낸다. 밀가우스는 1,000 가우스의 자기장에서도 성능을 유지하기 위해 연철 케이스로 무브먼트를 감쌀 뿐만 아니라 다이얼 아래에도 연철 판을 설치하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밀가우스는 2023년을 끝으로 롤렉스의 포트폴리오에서 사라졌는데 과연 올해 이 컬트 워치가 돌아올지 지켜보자.
그랜드 세이코 이전에 마블(Marvel)이 있었다. 마블은 높은 생산성, 정확성, 아름다움을 겸비한 시계를 만들겠다는 세이코(Seiko)의 일념이 빚어낸 기계식 시계였다. 스위스 시계를 따라잡기 위해 1956년에 개발한 마블은 자국에서 열린 품질 연구 및 대회에서 상위권을 휩쓸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세이코는 시계의 정확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당시로서는 커다란 지름 26mm의 무브먼트를 투입했다. 마블은 그 이름처럼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 시계였다. 세이코는 마블을 제작하며 익힌 기술을 토대로 세이코 크라운, 로드 마블, 세이코 자이로 마블과 같은 후속작을 연이어 출시했다. 결정적으로 마블의 단정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디자인은 그랜드 세이코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세이코 마블의 디자인은 유행을 타지 않기에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다시 출시한다면 많은 애호가들이 관심을 가지리라 생각한다.
지난해 F1 공식 파트너로 복귀한 태그호이어(TAG Heuer). 이제는 F1 트랙을 태그호이어의 로고가 가득 채우고 있다.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트랙 워치도 태그호이어 시계로 바뀌었는데 이 트랙 워치는 포뮬러 1(Formula 1)을 모델로 제작했다. 포뮬러 1은 태그호이어 컬렉션의 구성원으로 꽤나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왔다. 기획 단계에서 감각적인 다이버 워치를 표방했던 포뮬러 1은 F1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1986년부터 태그호이어가 맥라렌 F1 팀의 파트너가 되고, F1과의 결속이 단단해지면서 포뮬러 1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오리지널 모델을 재해석한 포뮬러 1 솔라그래프가 인기를 끌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는 말이 있듯이 태그호이어는 포뮬러 1의 40주년을 가벼이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좁게는 F1에서 넓게는 모터스포츠를 아우르는 포뮬러 1 컬렉션을 통해 어떤 시계가 등장할 지 기대해 봐도 좋을 듯하다.
태그호이어의 F1 복귀와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계로는 몬자(Monza)가 있다. F1에서 세력을 확장해가던 호이어는 1971년 마침내 스쿠데리아 페라리와 손을 잡았다. 호이어는 여러 자동차의 기록을 측정하는 전자 계측 장비 센티그래프를 스쿠데리아 페라리에 제공하는 한편 드라이버에게 25,000스위스프랑과 골드 까레라 크로노그래프 시계를 제공했다. 그 대가로 호이어는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자동차와 드라이빙 수트에 로고를 부착할 권리를 얻었다. 1975년 니키 라우다를 앞세운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드라이버 챔피언십과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을 동시에 석권하며 명문가의 부활을 선언했다. 1964년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을 거머쥔 이후 11년만에 거둔 쾌거였다. 호이어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듬해에 몬자를 출시했다. 이탈리아 그랑프리가 열리는 몬자는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홈구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우승한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드라이버는 팬들로부터 까방권을 얻는다. 레이싱 카의 대시보드와 밀리터리 장비의 스타일을 결합한 몬자는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를 블랙 크로뮴 코팅 처리해 남성적이고 툴 워치 다운 면을 강조했다. 빨간색 크로노그래프 초침 및 카운터,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칼리버 15)의 구조상 케이스 왼쪽에 위치하는 크라운이 특징이다. 50주년을 기념하는 새로운 몬자가 등장한다면 원작에 얼마나 충실한지가 관전 포인트일 것이다.
튜더(Tudor)는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롤렉스의 창업주 한스 빌스도르프는 롤렉스 시계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롤렉스 시계처럼 뛰어난 품질의 시계를 롤렉스의 대리점을 통해 판매한다는 전략을 구상했다. 그렇게 새로운 사업에 뛰어든 그는 새 시계의 이름을 튜더로 낙점했다. 1926년 2월, 시계 판매 업자 겸 제작자 뵈브 드 필립 휘터(Veuve de Philippe Hüther)가 한스 빌스도르프의 이름으로 튜더의 상표 등록을 마쳤고, 한스 빌스도르프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튜더의 상표를 독점 사용할 권리를 얻었다. 10년뒤인 1936년 뵈브 드 필립 휘터 가문은 한스 빌스도르프에게 튜더 브랜드의 권리를 완전히 양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년이 되어서야 한스 빌스도르프는 몽트르 튜더 주식회사를 설립한 뒤 본격적인 시계 제작에 나섰다. 롤렉스는 시계 제조 뿐만 아니라 디자인, 유통,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오늘날 튜더는 자기만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낸 채 롤렉스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진중하고 고고한 분위기의 롤렉스와는 달리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앞세우고 있다. 롤렉스에서 느낄 수 없는 색다른 개성을 채워주는 동시에 고객들이 롤렉스로 가기 전에 거쳐야 할 관문으로서의 역할을 맡고 있다. 활발한 외부 협업, 다양한 소재 활용, 스위스 계측학 연방학회 메타스(METAS)가 주관하는 마스터 크로노미터의 도입, F1을 비롯한 여러 스포츠와의 파트너십은 튜더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아무래도 100주년인만큼 시계 한 두개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물론 튜더도 마찬가지일터다. 튜더를 상징하는 헤리티지 모델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거나 영감을 얻은 시계가 출시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율리스 나르당(Ulysse Nardin)은 실리콘 테크놀로지의 산업화와 아방가르드 워치메이킹으로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초까지 스위스 시계 업계의 중심에 섰다. 마린 크로노미터의 유산을 바탕으로 사업을 이어온 율리스 나르당은 롤프 슈나이더가 지휘봉을 잡은 뒤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로 거듭났다. 루드비히 외슬린 박사가 합류한 율리스 나르당은 천문 3부작, 문스트럭, 프릭 같은 기발한 시계를 연이어 공개하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실리콘으로 제작한 이스케이프먼트와 독자적인 다이아몬실(DIAMonSIL)을 앞세워 기계식 시계의 미래를 제시한 선구자로도 여겨진다. 율리스 나르당은 에나멜 다이얼까지 직접 제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며 전통과 유산을 보존하는 작업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율리스 나르당이 오늘날의 명성을 얻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시계는 두말할 필요 없이 프릭(Freak)이다. 현 태그호이어의 무브먼트 디렉터 캐롤 포레스티에-카사피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제작한 프릭은 바늘, 크라운, 다이얼이 없는, 이름처럼 기괴한 생김새로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프릭은 실리콘 테크놀로지를 적용하고 양산한 최초의 시계이기도 했다. 율리스 나르당은 실리콘 테크놀로지 탄생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스와치 그룹, 파텍 필립, 롤렉스와 함께 실리콘 부품을 사용할 권리를 갖고 있다. 블라스트, 다이버, 마린 크로노미터, 클라시코 컬렉션이 있지만 핵심은 역시 프릭이다. 프릭 원 툴 브랜드가 되어 버린 듯하여 조금은 아쉽지만 프릭이 브랜드의 영웅임은 부정할 수 없다. 프릭의 25주년을 기념하는 모델과 함께 마린 크로노미터와 같은 브랜드의 유산을 조명하는 신제품이 나오길 기대한다.
럭셔리 스포츠 워치의 홀리 트리니티 중 하나인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의 오버시즈(Overseas)가 30주년을 맞았다. 222의 계보를 잇는 오버시즈는 오데마 피게의 로열 오크, 파텍 필립의 노틸러스와는 달리 제랄드 젠타의 손을 거치지 않았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지닌 222와 과도기적 성격을 지닌 피디아스를 대체하기 위해 남성성과 견고함을 강조한 오버시즈를 개발했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영리하게도 메종의 상징인 말테 크로스를 오버시즈의 디자인에 활용했다. 덕분에 오버시즈에는 강력한 정체성이 부여됐으며, 경쟁자들과는 다른 그만의 개성을 두르게 됐다. 오버시즈는 탄생 20주년인 2016년에 3세대로 진화했다. 이후 10년간 소재, 색상, 기능이 세분화되면서 오버시즈는 거대한 일족으로 몸집을 키웠다. 코로나 바이러스 발발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인 오버시즈는 그전까지 단 한 번도 누리지 못했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오버시즈의 몸값은 치솟았으며,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세상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자 오버시즈의 인기도 식어갔다. 그럼에도 시장에는 오버시즈를 원하는 수요가 여전히 존재한다. 과거와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다. 지난해 27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하며 흥미로운 시계를 쏟아낸 바쉐론 콘스탄틴이 올해는 잠시 숨을 고르며 오버시즈에 집중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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