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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신기록의 여정: 불가리 옥토 피니씨모 1부

세상에서 가장 얇은 시계를 향한 불가리의 열정

  • 이상우
  • 202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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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locca.com/article/%ec%84%b8%ea%b3%84-%ec%8b%a0%ea%b8%b0%eb%a1%9d%ec%9d%98-%ec%97%ac%ec%a0%95-%eb%b6%88%ea%b0%80%eb%a6%ac-%ec%98%a5%ed%86%a0-%ed%94%bc%eb%8b%88%ec%94%a8%eb%aa%a8-1%eb%b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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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신기록의 여정: 불가리 옥토 피니씨모 1부
Bvlgari Octo Finissimo Saga
시계, 그리고 ‘권태’라는 불청객

시계는 매일 손목에 올리는 물건이다. 그래서인지 쉽게 질리는 경향이 있다. 매일 보는 얼굴에 설렘이 오래 남기 어려운 것과 같다. 시계를 오래 즐긴 사람일수록 이 ‘권태’라는 불청객을 두려워한다. 그는 평생 함께할 것만 같았던 시계들을 하루아침에 중고장터로 돌려보낸다. 익숙함과 권태를 조금이라도 지연시키기 위해 시계 애호가들은 어떻게든 회피 전략을 사용한다. 처음에는 정석적인 원형 다이얼에 만족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각이나 쿠션처럼 변형된 형태로 눈을 돌리게 된다. 권태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본능의 발현이다. 

문제는 디자인을 아무리 변주해도 결국 ‘익숙함의 함정’을 완전히 피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형태를 비틀고 비례를 바꿔도, 사람의 눈은 결국 빠르게 적응한다. 볼 때마다 새로운 디자인을 만든다는 것은 그래서 어려운 과제다. 게다가 변형이 과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시계는 손목 위에서 시간을 읽고 일상을 견뎌야 하는 도구다. 그렇기 때문에 형태가 지나치게 앞서나가면 착용감, 기능성, 그리고 디자인의 완성도 역시 함께 무너진다. 그렇게 새로움과 완결성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양립하기가 어렵다. 

옥토 피니씨모 37mm 디자인 스케치

불가리의 옥토(Octo) 컬렉션은 이 까다로운 균형 위에 지어진 작품이다. 옥토는 원형도 사각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형태를 지니고 있다. 원형 베젤과 팔각형,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는 면들이 겹겹이 쌓이며 110개가 넘는 면을 이룬다. 시계업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디자인이다. 흔히 이렇게 입체적으로 제작한 시계에 대해 ‘건축학적 디자인(Architectural Design)’이라고 묘사하는데, 불가리의 옥토 컬렉션은 그 의미에 정확히 부합하는 시계라고 할 수 있다. 시계 위로 하나씩 쌓아올려진 모서리와 곡선, 그리고 입체적인 볼륨이 빚어내는 조화는 마치 고대의 신전을 연상시킨다. 고대 로마 건축물 막센티우스 바실리카에서 영감을 얻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만들어진 건축물은 손목 위에서 멋진 마천루를 만들어낸다. 형태는 분명 복잡한데, 손목에 올렸을 때의 인상은 오히려 단정하고 절제되어 있다. 다각적인 형태 변주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완벽한 디자인 균형을 잡아낸 것이다. 그래서 옥토는 볼 때마다 새롭다. 빛이 닿는 각도에 따라 각각의 면들이 다른 표정을 짓고, 그 변화 속에서 좀처럼 지루해지거나 익숙해지지 않는다. 위대한 건축물은 결국 오랜 시간을 이겨낸 것들이다. 시계가 마주하는 ‘권태’의 문제에 대해 불가리는 건축학적 답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 형태가 극단의 영역으로 밀어붙여진 지점에 바로 ‘옥토 피니씨모(Octo Finissimo)’가 있다. 이 타임피스는 옥토의 조형 언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여기에 ‘얇음’이라는 또 하나의 차원을 더한 시계다. 

고대 로마 건축물 막센티우스 바실리카 ⓒarchilovers.com

옥토 컬렉션의 계보를 찾아서

옥토 컬렉션은 다층적인 디자인 DNA를 지니고 있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전설적인 디자이너 제랄드 젠타와 만나게 되는데, 둘의 관계는 흔히 알려진 것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 사실 옥토 컬렉션의 계보는 시기적으로 두 파트로 나뉜다. 하나는 제랄드 젠타가 자신의 브랜드를 세운 이후 만든 팔각형 계열의 시계들이고, 다른 하나는 2012년 불가리가 자사의 이름으로 선보인 현재의 옥토다. 

로열 오크와 노틸러스로 팔각형 스포츠 워치의 문법을 확립한 젠타는 자신의 매뉴팩처에서도 팔각형 케이스를 즐겨 사용했다. 다만 오늘날 우리가 아는 옥토의 복잡하고 조각적인 케이스가 젠타 본인의 손끝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젠타가 남긴 것은 다만 ‘팔각형’이라는 조형적 유산과 그의 매뉴팩처가 축적한 기술적 역량이었고, 현재의 옥토 컬렉션은 불가리 안에서 완전히 새롭게 창조되었다. 

  • 제랄드 젠타가 1990년대 선보인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 Ref. G.2539.4 ⓒwatchbrotherslondon.com

흥미로운 건 젠타의 유산이 불가리로 넘어오는 과도기 단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젠타는 1990년대 후반 자신의 브랜드 권리를 싱가포르의 아워글래스 그룹에 넘겼고, 불가리는 2000년 이 권리를 다시 인수하면서 제랄드 젠타를 손에 넣었다. 같은 시기 다니엘 로스까지 인수한 불가리는 두 브랜드의 기술력을 내재화하며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나갔다. 2005년부터 다이얼, 브레이슬릿, 케이스 제조 회사를 차례로 인수해 2010년경 매뉴팩처 수직 통합을 완성했고, 제랄드 젠타의 워치메이킹 노하우를 조용히 자사 브랜드로 흡수했다. 젠타의 이름은 무대에서 서서히 사라졌지만, 그 기술과 조형 언어는 불가리 안에서 새로운 형태로 살아남았다.

젠타 시절의 팔각형 워치와 현재의 옥토 컬렉션을 잇는 가교는 인수 직후에 놓였다. 2004년, 통합된 두 메종은 제랄드 젠타 옥토 바이-레트로(Octo Bi-Retro)를 개발했다. 점핑 아워 무브먼트와 클루아조네 에나멜 다이얼을 갖춘 이 시계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조각적이고 다면적인 케이스였다. 팔각 계단식 구조는 다분히 건축적 디자인이었는데, 사실 이는 젠타가 1994년 선보인 그랑 소네리(고대 마야의 피라미드를 닮은 차이밍 투르비용이었다)의 조형을 계승한 것이었다. 옥토 특유의 ‘쌓아 올린 신전’ 같은 입체감이 어디서 왔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 제랄드 젠타 옥토 바이-레트로 ⓒTouch Of Modern

  • 제랄드 젠타가 1994년 선보인 그랑 소네리 모델 ⓒPhillips Auction

더욱 얇아진 팔각 디자인: 옥토 피니씨모

불가리 워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파브리지오 부오나마싸 스틸리아니

이러한 2000년대 초반의 작업을 기반으로 2012년 마침내 불가리의 이름을 단 옥토가 탄생했다. 팔각형 모티프는 젠타의 유산에서 가져왔으나, 디자인은 불가리의 이탈리아 감성을 토대로 완전히 새롭게 창조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디자이너 파브리지오 부오나마싸 스틸리아니(Fabrizio Buonamassa Stigliani)가 있었다. 그는 2001년 불가리 합류 초기부터 원형 베젤과 팔각형을 결합한 새로운 시계를 제안했고, 그의 2004년 스케치는 오늘날 옥토의 토대가 되었다.

직접적인 디자인 모티프는 고대 로마 건축물 막센티우스 바실리카다. 정확히는 그 거대한 볼트 천장을 지탱하는 아치와, 무게를 덜기 위해 천장에 새긴 팔각형 격자 구조에서 비롯되었다. 로마 공학의 경이를 손목 위로 옮겨온 셈이다. 2012년 출시된 첫 작품 옥토 솔로 템포는 팔각 케이스, 원형 베젤, 다이얼 위의 팔각 플랜지가 겹겹이 맞물리며 무려 110개의 단면을 이뤘다. 당연히 케이스 제작이 다른 원형 시계보다 훨씬 까다로웠다. 여기에 2개의 배럴을 갖춘 인하우스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더해 고급 시계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리고 2년 뒤 2014년, 불가리는 옥토 피니씨모(Octo Finissimo)를 론칭하며 기계식 시계의 각 장르별 울트라-씬 영역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 2012년 출시된 옥토 솔로 템포

옥토 피니씨모는 불가리가 추구하는 ‘얇음의 미학’을 완벽하게 구현한 시계다. 날카로운 각을 지닌 케이스에 대담한 디자인과 혁신적인 메커니즘을 결합하여 현대적 감각을 극대화했다. 파브리치오는 옥토 피니씨모를 구상하면서 분명한 목표를 세웠다. 바로 시계 역사상 가장 얇고 우아한 시계를 만들어 현대 워치메이킹의 한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 로마 건축물의 정교함과 현대 디자인의 미니멀리즘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목표를 결국 현실로 만들었다. 

2014년 론칭한 첫 번째 옥토 피니씨모 컬렉션. 두 모델 모두 플래티넘 소재로 제작되었다.

2014년 바젤 월드에서 불가리는 두 개의 옥토 피니씨모를 선보였다. 하나는 칼리버 BVL128을 탑재한 매뉴얼 와인딩 3핸즈 워치였고, 또 하나는 칼리버 BVL268을 탑재한 투르비용 워치였다. 특히 두께 5mm의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은 세계에서 가장 얇은 투르비용 워치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시계는 울트라-씬 세계 신기록을 경신한 것은 물론, 세련된 기하학적 라인과 정교한 미학으로 전 세계를 매료시켰다. 그리고 불가리는 주얼리 브랜드를 넘어 워치메이킹 기술을 선도하는 브랜드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 2015년 선보인 옥토 피니씨모 매뉴얼 와인딩 로즈 골드 모델

  •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를 갖춘 칼리버 BVL128

울트라-씬 세계 신기록의 궤적

불가리는 옥토 피니씨모 컬렉션을 통해 기계식 시계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울트라-씬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2014년 세계에서 가장 얇은 투르비용 워치로 시작해 2025년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투르비용에 이르기까지 울트라-씬의 기준을 끊임없이 써내려왔다.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 (2014년)

울트라-씬 세계 신기록을 향한 여정의 첫 이정표를 세운 기념비적인 모델이다. 투르비용 워치는 회전하는 케이지를 담을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얇게 만들기 어려운 장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리버 BVL268의 두께는 같은 해 출시된 3핸즈 버전보다도 얇은 1.95mm다. 이 정도면 500원 동전(2mm)보다도 얇은 수준이다. BVL268의 가장 큰 특징은 단층구조다. 대부분의 무브먼트는 배럴과 휠을 플레이트와 브리지를 활용해 아래위로 잡아준다. 하지만 BVL268은 모든 휠을 중앙 나사로 고정시키고 위로 덮는 구조물이 생략되어 있다. 휠 중심축을 고정하는 주얼조차 사용하지 않아 보석의 숫자도 극단적으로 적다(총 11개). 투르비용 케이지를 연결하는 방법도 조금 독특하다. 한 층이 더 필요한 피니언을 생략하고 케이지 자체를 기어처럼 톱니를 만들어 연결했다. 2014년 첫 번째 버전은 두께 5mm의 플래티넘 케이스에 블랙 앨리게이터 스트랩을 조합해 선보였으며, 이후 2018년에 티타늄 브레이슬릿 버전을 50개 한정판으로 출시했다. (세계 신기록을 한꺼번에 보여줄 때 등장하는 모델이 바로 이것이다)

  • 플래티넘 소재로 만든 최초의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 (2014)

  • 티타늄 버전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 (2018)

  • 모든 휠을 중앙 나사로 고정시키고 위로 덮는 구조물을 생략해 두께를 줄였다.

옥토 피니씨모 미닛 리피터 (2016년)

2014년 세계에서 가장 얇은 투르비용 모델을 선보인 데 이어, 2016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미닛 리피터 워치를 공개했다. 미닛 리피터는 기계식 시계 메커니즘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컴플리케이션으로 꼽힌다. 불가리는 3.12mm의 두께 안에 이 정교한 메커니즘을 모두 담아냈다. 칼리버 BVL362는 제랄드 젠타의 유산으로 그가 1981년 발표한 미닛 리피터의 설계를 이용했다. 당시에는 내구성을 유지하기 어려웠으나 불가리는 소재와 가공 기술의 발전을 기반으로 울트라-씬 미닛 리피터 칼리버를 부활시켰다. 글라스 백으로 보이는 고전적인 분할 브리지에서 옛 무브먼트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리피터 구동 메커니즘은 일반적인 슬라이딩 방식 대신 푸셔 방식을 채택해 내부 공간을 확보하고 방수 성능도 확보했다. 시계 케이스는 티타늄으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가벼운 무게와 최상의 음향 확산을 고려한 선택이다. 다이얼 역시 아워 마커와 스몰 세컨즈 외곽 라인을 투각하여 케이스 내부의 공명을 증폭시키도록 했다. 케이스 지름은 40mm이고, 전체 두께는 6.85mm다.

  • 최초의 옥토 피니씨모 미닛 리피터 (2016)

  • 두께 3.12mm의 미닛 리피터 칼리버 BVL362

옥토 피니씨모 오토매틱 (2017년)

출시 당시 세계에서 가장 얇은 울트라-씬 셀프 와인딩 시계였다. 기존 매뉴얼 와인딩 3핸즈 무브먼트를 셀프 와인딩 무브먼트로 변경하는 한편, 티타늄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은 전체를 모두 샌드 블래스트 마감했다. 옥토 피니씨모 컬렉션 전체를 관통하는 디자인 코드가 이 모델을 통해 확립된 것. 출시 당시 옥토 피니씨모 오토매틱은 독특한 질감, 무채색 컬러, 비현실적인 얇은 두께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마치 손목 위의 그래픽 아트 같은 느낌을 줬다. 셀프 와인딩 칼리버 BVL138은 기존 매뉴얼 와인딩 칼리버 BVL128의 파워리저브 인디게이터가 있던 곳에 마이크로 로터를 탑재함으로써 두께를 2.23mm로 유지할 수 있었다.

옥토 피니씨모 오토매틱은 2017년 출시 당시 세계에서 가장 얇은 울트라-씬 셀프 와인딩 시계였다.

BVL138은 직경 40mm 케이스를 거의 꽉 채울 만큼 큼직한 무브먼트다. 넓은 공간에 펼쳐진 다양한 구성 요소는 시계에 보는 맛을 더하는 요소다. 불가리는 기어트레인을 최대한 얇고 넓게 배치하고 로터와 배럴을 위한 공간도 확보했다. 또한 얇은 무브먼트의 약점인 내구성을 보완하기 위해 최대한 넓은 플레이트와 브리지를 사용했으며, 밸런스 휠도 안정적인 양방향 브리지로 고정했다. 또한 기어 트레인의 각 부분을 다른 브리지로 고정해 유지보수 편의성도 높였다. 컬렉션 내에서는 엔트리 모델에 속하지만 마감도 뛰어나다. 브리지의 표면에는 섬세한 제네바 스트라이프 패턴을 넣었고, 모서리에는 꽤 어려운 각도까지 모두 앙글라주로 마감했다. 밸런스 휠이나 로터 너머로 숨겨진 플레이트까지 촘촘히 새긴 페를라주를 볼 수 있으며, 나사 장식이나 보석 테두리까지 빠짐없이 마감했다. 플래티넘으로 제작한 마이크로 로터에 양방향 와인딩 시스템까지 갖췄고, 60시간 파워리저브를 제공한다. 이 엔진을 탑재한 옥토 피니씨모 오토매틱의 전체 두께는 5.15mm에 불과하다.

 

BVL138은 직경 40mm 케이스를 거의 꽉 채울 만큼 큼직한 무브먼트다.

옥토 피니씨모 오토매틱은 앞의 두 작품에 비해 낮은 가격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리의 세계 신기록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올해 신제품 옥토 피니씨모 37mm의 탄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작품이기도 하다.  

  • 옥토 피니씨모 컬렉션 전체를 관통하는 디자인 코드가 이 모델을 통해 확립되었다.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 오토매틱 (2018년)

2014년 첫 작품이 세계에서 가장 얇은 수동 투르비용 워치라면, 2018년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얇은 자동 투르비용 워치다. 특히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모델 중에서 처음으로 오픈워크 디자인을 적용한 모델이기도 하다. 앞서 옥토 피니씨모 오토매틱과 마찬가지로 견고함과 가벼움을 보장하기 위해 티타늄 케이스를 선택했다. 셀프 와인딩 무브먼트인데도 수동 무브먼트와 동일한 1.95mm 두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페리페럴(peripheral) 방식의 로터를 장착했기 때문. 다만 무브먼트 주위에 로터를 추가하면서 무브먼트 크기가 커졌고, 그로 인해 케이스 전체 직경 또한 42mm로 다소 커졌다. 그렇지만 전체 두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다이얼 없이 무브먼트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오픈워크의 미학도 살리고 전체 두께도 3.95mm로 줄일 수 있었다. 결국 이 시계는 와인딩 방식과 상관없이 세계에서 가장 얇은 투르비용 시계가 되었으며, 동시에 자사의 옥토 피니씨모 오토매틱을 넘어선 세계에서 가장 얇은 셀프 와인딩 시계 타이틀까지 얻었다. 

  • 세계 신기록 모델 중 처음으로 오픈워크 디자인을 적용했다.

  • 다이얼을 없애면서 두께를 3.95mm로 줄였다.

  • 페리페럴 방식의 로터를 장착한 BVL288

옥토 피니씨모 크로노그래프 GMT (2019년)

옥토 피니씨모의 다섯 번째 신기록 제품은 세계에서 가장 얇은 크로노그래프 워치였다. 옥토 피니씨모 오토매틱 모델과 함께 현실적으로 구입 가능한 가격대의 울트라-씬 컴플리케이션 워치가 등장한 것. 기존 옥토 벨로치씨모(Octo Velocissimo)에 사용하던 엘 프리메로 무브먼트는 울트라-씬 워치에 사용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불가리는 새로운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인 칼리버 BVL318을 개발했다. BVL318은 무브먼트 외곽에 페리페럴 로터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얇은 두께를 확보했다. 아마도 크로노그래프의 복잡한 구조 때문에 마이크로 로터 공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덕분에 무브먼트 지름은 웬만한 시계보다 큰 37.2mm이며, 무브먼트 두께는 3.3mm다. 케이스 직경은 42mm로 오토매틱 모델보다는 살짝 커졌고, 케이스 전체 두께는 6.9mm로 어지간한 매뉴얼 와인딩 드레스 워치보다 얇다. 또한 크로노그래프를 평가하는 요소 중 하나는 조작감인데, 울트라-씬 워치임에도 불구하고 칼럼휠을 탑재해 버튼을 누르는 감각이 꽤 고급스럽다. 다만 두께 문제로 크로노그래프 연결 방식은 전통적인 수평 클러치 방식을 적용했다. 한편 옥토 피니씨모 크로노그래프 GMT에는 크로노그래프 기능뿐만 아니라 GMT 기능까지 통합되어 있다. 9시 방향 버튼으로 로컬 타임을 설정할 수 있으며, 24시간 홈 타임을 3시 방향 서브 다이얼에 표시한다. 

  • 어지간한 드레스 워치보다 얇은 6.9mm의 두께

  • 칼럼휠을 탑재해 버튼을 누르는 감각이 꽤 고급스럽다.

  • BVL318의 페리페럴 로터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 크로노그래프 스켈레톤 (2020년)

투르비용과 크로노그래프를 결합한 오토매틱 울트라-씬 컴플리케이션 워치다. 모든 기능을 결합하고도 전체 두께는 7.4mm 수준으로, 2020년 세계에서 가장 얇은 셀프 와인딩 투르비용 크로노그래프 워치에 등극했다. 크로노그래프, 투르비용, 페리페럴 로터를 조합한 칼리버 BVL388의 두께는 3.5mm에 불과하다. 무브먼트에는 스켈레톤 디자인을 적용하여 기계식 시계 고유의 미학적인 부분까지 충분히 고려했다. 

2020년 세계에서 가장 얇은 셀프 와인딩 투르비용 크로노그래프 워치에 등극했다.

사실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의 스켈레톤 버전은 다이얼 전체가 휠로 가득 차 있어서 컬렉션의 직선적인 디자인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았다. 반면 이 시계는 직선적인 브리지로 디자인하여 옥토 피니씨모의 디자인 코드와 잘 어우러진다. 앞면은 좌우로 두 개의 서브 다이얼, 상하로 배럴과 투르비용이 대칭을 이루며, 뒷면에는 다양한 기능들이 얽히면서 기계적인 미학을 보여준다. BVL388은 BVL 288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크로노그래프 모듈을 얹어 제작했다. 특히 완벽한 스켈레톤 가공 덕분에 테두리의 페리페럴 로터와 크로노그래프 칼럼 휠, 수평 클러치 등 무브먼트의 모든 동작을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다. 모노푸셔 크로노그래프가 적용되어서 크로노그래프 기능은 크라운 위에 있는 버튼 하나로 조작할 수 있고, 크라운 아래에 있는 버튼은 크라운의 와인딩과 시간 조정 기능을 변경하는 데 사용된다.

  • 좌우로 두 개의 서브 다이얼, 상하로 배럴과 투르비용이 대칭을 이룬다.

  • 완벽한 스켈레톤 가공이 돋보인다.

  • 푸셔는 2개이지만 모노푸셔 크로노그래프 워치다.

옥토 피니씨모 퍼페추얼 캘린더 (2021년)

불가리의 신기록 행진은 매년 쉬지 않고 이어졌다. 2021년에는 완전히 새로운 무브먼트를 개발해 세계에서 가장 얇은 퍼페추얼 캘린더 워치를 선보였다. 월말 30일과 31일을 자동으로 수정해주고, 2월과 윤년까지 보정하는 퍼페추얼 캘린더는 워치메이킹을 대표하는 컴플리케이션 중 하나다. 부품이 비약적으로 많아지는 만큼 얇게 만드는 것 또한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옥토 피니씨모 퍼페추얼 캘린더는 두께 5.8mm 케이스 안에 무려 408개의 부품을 영리하게 배치했다. 칼리버 BVL305의 두께는 2.75mm다. 불가리 엔지니어들은 마이크로 로터를 사용한 것은 물론, 부품의 치수를 줄이지 않으면서 부품 사이 공간을 최적으로 활용하는 등 혁신적인 해법을 고안했다. 

  • 옥토 피니씨모 퍼페추얼 캘린더 (2021)

  • 다이얼에 캘린더 기능이 개성 있게 배치되었다.

대부분의 퍼페추얼 캘린더가 베이스 무브먼트 위에 퍼페추얼 모듈을 올리는 방식인데, BVL305는 울트라-씬을 위해 기어 트레인의 위치를 재조정하고 퍼페추얼 캘린더를 구동하는 대부분의 부속을 한 층에 정렬한 통합형 무브먼트다. 덕분에 수많은 정보를 내보내야 하는 다이얼 안쪽으로 복잡한 구조가 숨어 있다. 캘린더 기능도 개성 있게 배치되었다. 날짜는 상단에 레트로그레이드 방식으로 큼직하게 표시하고, 하단 공간을 좌우로 나누어 요일과 월을 배치했다. 그리고 가장 아래 6시 방향에 부채꼴 형태로 작은 윤년 표시를 넣었다. 많은 핸즈와 정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노톤 덕분에 오히려 심플한 인상이다. 레트로그레이드 날짜창에서는 과거 제랄드 젠타의 흔적도 느껴볼 수 있다.

  • 많은 핸즈와 정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플한 인상이다.

  • 레트로그레이드 날짜창에서는 과거 제랄드 젠타의 흔적도 느껴볼 수 있다.

  • 통합형 퍼페추얼 캘린더 무브먼트 칼리버 BVL305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2022년)

2022년은 옥토 피니씨모 사가(Saga)의 궤적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영역이 아닌 전체 기계식 시계 중에서 가장 얇은 시계에 도전했기 때문. 당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의 두께는 1.80mm였다. 2014년 처음 출시된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의 무브먼트 두께가 1.95mm인데, 케이스와 글라스를 포함한 전체 두께가 이보다 얇은 셈이다. 불가리의 여덟 번째 신기록이자 세계에서 가장 얇은 기계식 시계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두께 1.8mm의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2022)

사실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는 물리 법칙에 대한 도전에 가까웠다. 이 정도로 비현실적인 두께를 만들어내려면 기존의 방법이 아닌, 완전히 새롭고 혁신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불가리는 얇은 부품을 최대한 평면적으로 배치하는 한편, 케이스 자체를 무브먼트의 플레이트로 직접 사용하는 방식으로 극한의 얇은 두께를 구현해냈다. 또한 시와 분을 별도로 표시하는 레귤레이터 방식으로 디자인하여 다이얼의 높이를 낮췄고, 별도의 초침 없이 4번 휠 자체를 스몰 세컨즈로 활용했다. 크라운 없이 좌우에 배치된 두 개의 휠로 시간 세팅과 와인딩을 수행하는 것도 두께를 줄일 수 있었던 비결이다. 베젤과 미들 케이스는 티타늄으로 제작했고, 케이스백은 내구성을 위해 텅스텐 카바이드 소재로 제작했다. 제작 과정에서는 총 여덟 건의 특허가 출원되었다. 비록 출시 이후 리차드 밀의 RM UP-01에게 세계 신기록을 빼앗기긴 했으나 이 시계는 혁신적인 설계 방식을 통해 옥토 피니씨모 사가에서 중요한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 케이스 자체를 무브먼트의 플레이트로 사용했다.

  • 베젤과 미들 케이스는 티타늄으로, 케이스백은 텅스텐 카바이드 소재로 제작했다.

  • 크라운 없이 좌우에 배치된 두 개의 휠로 시간 세팅과 와인딩을 수행한다.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COSC (2024년)

2024년, 불가리는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COSC를 통해 다시 한 번 워치메이킹의 세계를 혁신하며, 1.7mm의 두께로 세계에서 가장 얇은 기계식 시계 브랜드의 타이틀을 되찾았다. 리차드 밀의 RM UP-01이 보유하던 이전 기록을 뛰어넘은 것이다.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COSC는 단순한 콘셉트 모델이 아니라 COSC 인증까지 받으면서 실사용까지 완벽한 시계로 거듭났다. 무브먼트와 케이스를 통합한 구조, 시침과 분침을 분리한 레이아웃 등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2022년 출시한 전작과 동일하다. 하지만 불가리는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최적화해 케이스를 재작업함으로써 0.1mm 더 얇은 두께를 만들어냈다. 사실 이 정도의 울트라-씬 영역에서 0.1mm를 줄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COSC를 통해 불가리는 울트라-씬을 향한 자신들의 도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COSC (2024)

  • 사파이어 크리스탈을 최적화해 케이스를 재작업함으로써 0.1mm 더 얇은 두께를 만들어냈다.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투르비용 (2025년)

2014년 세계에서 가장 얇은 투르비용 워치를 선보였던 불가리는 2025년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투르비용으로 자신의 한계를 또 한 번 넘어섰다. 이번에는 투르비용 컴플리케이션을 추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두께가 1.85mm에 불과하다. 시계 전체 두께가 2014년 제작한 옥토 피니씨모 투르비용의 무브먼트 두께(1.95mm)보다도 얇은 수치다. 이 시계 역시 2022년 시작된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시리즈의 설계 철학을 계승한다. 특히 투르비용 케이지를 모듈식 휠 형태로 제작한 다음 기어트레인과 직접 맞물리게 함으로써 얇은 두께를 실현했다. 

투르비용 컴플리케이션을 추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두께가 1.85mm에 불과하다.

미지의 두께를 향한 도전

지난 10여 년 동안 세계 신기록에 도전해온 불가리의 옥토 피니씨모 사가(saga)는 투르비용으로 시작해 그보다 더 얇은 투르비용으로 일단 마무리되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수미쌍관(首尾雙關)이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불가리가 걸어온 길은 단순한 두께 경쟁이 아니었다. 1mm를 다투는 이 미시 세계에서 0.1mm를 줄이는 일은 기존 부품을 얇게 깎는 것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 기존 시계의 구조를 뛰어넘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얇은 두께를 유지하면서도 내구성과 안정성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옥토 피니씨모의 여정은 울트라-씬을 향한 도전인 동시에 기계식 시계의 기술과 미학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기도 했다. 각각의 신기록 뒤에 놓인 수십 건의 특허가 그 질문의 깊이를 보여준다. 

불가리의 세계 신기록 여정은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되돌아온다. 서두에서 시계는 매일 손목에 올리기에 쉽게 질리는 물건이라고 했다. 옥토 피니씨모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 권태에 맞선다. 하나는 형태다. 원형도 사각도 아닌, 빛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수많은 면이 매일 낯선 얼굴을 만든다. 다른 하나는 두께다. 시계를 착용했다는 감각 자체를 지워버리는 비현실적인 두께는 일반적인 시계와는 완전히 차별화된 경험을 매일 선사한다. 즉 옥토 피니씨모는 매우 특별한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얇은 두께로 손목 위에 그 형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잊게 만든다. 오랜 시간 함께하기에는 더없이 훌륭한 미덕이다. 

물론 여기서 끝은 아닐 것이다. 워치메이킹의 미시 세계에는 아직도 더 탐구할 공간이 남아 있고, 경쟁자들의 도전도 거세다. 다양한 세계 기록을 통해 울트라-씬 영역을 개척해온 불가리는 앞으로도 미지의 두께를 향해 나아갈 것이 분명하다.

세계 신기록을 세운 10개의 옥토 피니씨모 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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