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직경 38mm의 손목시계가 있다. 이것은 큰 시계인가, 아니면 작은 시계인가? 아마 당신이 현재 어떤 시계를 착용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대답은 달라질 것이다. 심리학자 해리 헬슨은 사람이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자극의 평균값을 기준점으로 삼아 모든 것을 판단한다고 했다. 바로 ‘적응 수준 이론(Adaptation Level Theory)’이다. 예컨대 2000년대 내내 45mm 전후의 시계를 손목에 올렸던 사람들이라면 기준점이 그만큼 높게 설정되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파네라이 같은 44~45mm의 시계를 주로 착용할 때는 40mm 사이즈가 꽤 작게 느껴졌다. 하지만 최근 2~3년 동안 39mm의 크로노그래프 워치나 38mm의 다이버 워치를 자주 착용했더니 이제 40mm도 제법 큰 사이즈로 다가온다. 새로운 경험이 반복되면서 기준점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시장과 취향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움직인다. 시장의 트렌드는 그것을 반영한 제품으로 이어지고, 새로운 제품이 사람들의 경험을 바꾸면서 사이즈에 대한 기준점도 바뀐다. 그리고 달라진 기준점은 다시 시장의 트렌드가 된다. 그렇게 지난 수년 동안 시계 시장은 사이즈가 작아지는 방향으로 가속도가 붙었고, 오늘날에는 38mm가 거의 시장의 기준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직경 38mm가 시계 시장의 이른바 ‘골디락스 사이즈’로 부상한 것이다. 이 사이즈를 중심에 두고 조금 작게 착용하고 싶은 사람들은 36~37mm, 조금 크게 착용하고 싶은 사람들은 39~40mm를 선택하는 추세다. 시장에 쏟아지는 신제품들의 사이즈만 봐도 이런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크로노그래프 같은 컴플리케이션이 아닌 이상 앞자리에 ‘4’가 들어가는 시계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티쏘가 최근 젠틀맨 38mm 모델을 새롭게 출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젠틀맨 38mm를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그동안 시계 시장의 사이즈 트렌드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복기해보자.
손목시계가 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였다. 패션 브랜드 디젤의 오버사이즈 케이스, 파네라이의 44~47mm 루미노르, 브라이틀링의 두툼한 크로노그래프 워치들이 ‘남성적인 시계’의 이미지를 선점했고, 티쏘 역시 2000년대부터 MotoGP 공식 타임키퍼 이미지를 앞세워 43~45mm의 T-레이스 컬렉션을 전개했다. 그러면서 2000년대 중반에 이르면 40mm 이하 시계가 오히려 ‘소심한’ 선택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시장은 소비자의 기준점을 끌어올렸고, 소비자는 더 큰 시계를 원했다. 그야말로 팽창의 시대였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무렵부터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수집가들이 온라인 포럼과 경매를 통해 빈티지 시계를 재발견하면서 ‘좋은 비례’라는 개념이 ‘큰 사이즈’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특히 수집가들이 1950~60년대 빈티지 롤렉스에 열광하는 가운데, 당시의 34~36mm 케이스가 재조명받았다. 작은 사이즈가 곧 ‘레트로의 정통성’을 증명하는 문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각 브랜드에서도 복각 제품을 적극적으로 재발매하면서 이런 흐름을 가속화시켰다. 시장에 오리지널 비례를 그대로 재현한 빈티지 복각 모델들이 쏟아지면서 소형 케이스에 대한 인식의 스펙트럼이 보다 넓어졌다. 덕분에 젠더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38mm 이하 시계는 여성용이라는 편견도 빠르게 사라졌다. 이후 2020년대에 접어들면서 다운사이징은 대세가 되었는데, 대형 시계의 대명사인 파네라이가 2021년 40mm의 루미노르 쿼란타를 출시하고, 같은 해 IWC의 빅 파일럿이 46.2mm에서 43mm로 줄어든 것은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하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하겠다.
한편 다운사이징 트렌드에는 빈티지의 유행 못지않게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라는 개념도 영향을 미쳤다. 과시보다 절제, 볼드함보다 정교함을 선호하는 감수성이 패션을 넘어 시계 시장까지 흘러들었다. 크고 무거운 시계가 자신감의 표현이던 시대가 지나고, 손목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시계가 세련됨의 기준이 되기 시작했다.
업계의 반응은 빨랐다. 롤렉스는 익스플로러를 한때 39mm로 키웠다가 역사적 기원인 36mm로 되돌렸고, 오메가는 아쿠아 테라 38mm 라인업을 강화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브랜드에서 40mm 미만의 시계들을 경쟁적으로 출시했으며, 그 흐름은 2026년에도 계속 이어졌다. 워치스 & 원더스 2026에서 불가리는 옥토 피니씨모의 케이스를 기존 40mm에서 37mm로 줄였고, 그랜드 세이코는 43mm였던 다이버 모델을 40.8mm로 축소하며 브랜드 역사상 가장 작은 다이버라고 소개했다. 드레스 워치뿐 아니라 스포츠 워치와 다이버 워치까지 다운사이징의 물결이 계속 번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한국 시장에서 이 흐름은 유독 강하게 공명했다. 평균 손목 둘레가 16~17.5cm 수준인 한국 남성에게 39mm 이하의 다운사이징 케이스는 착용감과 스타일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선택지다. 이러한 맥락에서 티쏘 PRX의 사례는 다운사이징 트렌드가 실제 시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2021년 출시된 PRX 40mm 모델은 일체형 브레이슬릿을 갖춘 복각 디자인으로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다소 긴 러그로 인해 손목에서 살짝 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물론 이후 PRX 35mm 모델이 새롭게 등장했으나 유니섹스 모델로 기획되었기에 남성들에게는 생각보다 작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 공백을 메운 것이 2025년 출시된 PRX 38mm 모델이었다. 티타늄과 다마스쿠스 스틸 소재로 선보인 이 모델은 이미 40mm나 35mm를 보유한 사람들도 충분히 탐낼 만한 신제품이었다. 출시 직후 국내 시계 커뮤니티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고, 한국인의 평균 손목에 최적화된 ‘완성형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 티쏘는 PRX뿐만 아니라 씨스타, T-레이스,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젠틀맨까지, 브랜드 전체에 걸쳐 39mm 이하 라인업을 강화하는 중이다.
티쏘의 라인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39mm 이하 모델이 생각보다 훨씬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단순히 트렌드에 반응해서 사이즈를 줄인 것이 아니라, 이미 다양한 컬렉션에 걸쳐 소형 케이스의 존재 이유를 각각의 맥락으로 구축해왔다는 점이 흥미롭다.
PRX는 티쏘를 대표하는 메가히트 컬렉션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40mm와 35mm 모델이 순차적으로 출시되었고, 이후 그 간극을 채워주는 존재로서 38mm 모델이 등장해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38mm 모델은 다마스쿠스 스틸과 티타늄 소재를 도입해 소재적인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PRX 38mm 티타늄 모델의 경우, 작아진 사이즈에 가벼운 무게까지 더해져 최상의 착용감을 제공한다. 블루 다이얼 모델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와플 패턴의 실버 다이얼과 로즈 골드 핸즈·인덱스의 진중한 조합이 마음에 든다. 사용자의 목소리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는 티쏘이기에, 앞으로 보다 다양한 소재와 컬러로 라인업을 확장해 갈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발라드 컬렉션은 플루티드 베젤이라는 독특한 장치로 39mm 케이스에 드레시한 무게감을 부여한다. 다이얼에도 같은 패턴이 새겨져 있는데, 39mm의 사이즈는 두 가지 기교가 적당한 밸런스로 어우러지도록 돕는 역할은 한다. 바 인덱스가 아닌 로마 숫자 인덱스가 적용된 점도 40mm 모델과 다른 점이다.
드레스 워치 계열인 르로끌 컬렉션에는 기요셰 다이얼이 적용되었다. 드레스 워치라고 해서 다이얼을 너무 작게 만들면 이 특별한 피니싱을 충분히 보여주기 어렵다. 그렇다고 40mm 이상으로 제작하면 드레스 워치의 특성이 무뎌질 수 있다. 르로끌의 39.3mm라는 사이즈는 이 정교한 장식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존재감을 확보하는 절충점이다. 촘촘한 7연 브레이슬릿이 클래식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며, 악어가죽 패턴의 소가죽 스트랩으로 본격적인 드레스 워치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다.
스포츠 워치나 툴 워치 장르에서 소형화는 더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다. 특히 PRC 100 솔라의 39mm 사이즈는 12각 베젤이라는 강렬한 디자인 요소를 유지하면서도 일상 착용의 부담을 덜어낸다. 태양광 충전 방식의 이 시계는 배터리 걱정 없이 일상에서 정확한 시간을 함께할 수 있다. 티쏘는 39mm라는 사이즈로 충분한 충전 효율을 확보하면서도 휴대성과 착용감을 극대화했다. 베젤 영역을 최소화하고, 다이얼 영역을 최대한 넓게 가져가면서 가독성을 확보한 점도 눈에 띈다. 솔라 무브먼트와 결합된 39mm 케이스는 기능적 완결성과 착용 편의성을 동시에 잡는 선택이라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티쏘는 여성 사용자를 위해 34mm 사이즈의 PRC 100 솔라 모델도 출시했다.
씨스타는 티쏘의 다이버 라인업인데, 그 중에서도 크로노그래프 38mm 모델은 꽤 흥미로운 모델이다. 사실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갖춘 다이버 워치 중에서 38mm 사이즈를 찾기란 쉽지 않다. 큼직한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탑재하면서 충분한 방수 성능까지 갖추려면 두께와 사이즈가 늘어나기 마련. 씨스타 1000 쿼츠 크로노그래프 38mm는 쿼츠 무브먼트를 사용함으로써 이 난해한 과제를 해결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유니크한 다이버 워치를 찾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만한 모델이다. 직경 36mm의 씨스타 1000 역시 남녀 모두 일상에서 작고 가볍게 착용할 수 있는 다이버 워치다.
T-레이스 쿼츠 크로노그래프 38mm는 씨스타 1000 쿼츠 크로노그래프 38mm와 같은 무브먼트를 공유하는 모델이다. 모터사이클에서 영감을 받은 T-레이스는 전통적으로 큼직하고 볼드한 모델이 주를 이뤘고, 그만큼 구매층도 제한적이었다. 38mm 모델은 레이싱 크로노그래프의 역동성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모델이다. 베젤에 6개의 나사를 더한 T-레이스는 사실 PRX보다도 젠타 디자인에 더 가까운 모델이다. (디자인은 모터사이클의 브레이크 디스크에서 가져온 것) 이 정도 가격대에서 젠타 스타일 디자인에 2개의 푸셔, 그리고 크로노그래프 레이아웃을 가져갈 수 있는 모델도 흔치 않다.
비소데이트와 PR516은 티쏘의 헤리티지 컬렉션에 속한다. 두 시계 모두 과거 오리지널 모델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39mm와 38mm라는 사이즈 역시 그 시대의 비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과거를 그대로 복각하려면 사이즈가 더 작아져야 하겠지만 너무 과하면 대중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비소데이트는 39mm 사이즈로 과거와 현재의 절충점을 찾았다. 대신 핸즈는 다이얼에 비해 작게 디자인하고, 빈티지한 비즈 오브 라이스 브레이슬릿으로 옛 스타일을 세련되게 재현했다.
PR516은 티쏘의 숨겨진 명작 중 하나다. 마니아들에게는 직경 41mm의 기계식 수동 크로노그래프 모델의 인기가 높지만, 개인적으로는 38mm 오토매틱 모델이 이 컬렉션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짧은 러그를 갖춘 케이스에 짧은 바 인덱스와 직사각형 핸즈가 시계에 개성을 더한다. 또한 고정식 세라믹 베젤에는 미네랄 베젤 인서트를 적용하여 스크래치에 강하면서도 빈티지 워치의 분위기를 살렸다. 직경 38mm임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으로 짧은 러그 때문에 자칫 시계가 커보일 수 있었는데, 고정식 베젤로 절묘하게 디자인 균형을 잡았다. 티쏘가 제공하는 다양한 정품 스트랩과의 궁합도 좋다.
음식점 메뉴판에는 ‘베스트’라고 적힌 메뉴가 있다. 물론 베스트 메뉴가 인기도 많고 맛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 집의 진짜 음식 실력을 보려면 메뉴판 가장 상단에 있는 기본 메뉴부터 먹어봐야 한다. 티쏘에서 PRX가 베스트 메뉴라면, 젠틀맨은 기본 메뉴다. 올해는 이 기본 메뉴에도 새로운 옵션이 생겼는데, 머지않아 베스트 메뉴로 등극할 것 같다. 새로운 젠틀맨 38mm 얘기다. 젠틀맨은 티쏘를 대표하는 올라운드 워치로서 PRX보다 어쩌면 더 많은 활용성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새로운 젠틀맨 38mm는 강점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는 모델이자, 티쏘 다운사이징 전략의 정점에 있는 모델이다.
일단 ‘젠틀맨’이라는 이름에서 이 시계의 성격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젠틀맨(Gentleman)이라는 단어는 드레시하되 경직되지 않고, 품격 있되 과시하지 않는 인간형을 가리킨다. 기본적으로 단정하고 드레시한 디자인인데, 메탈 브레이슬릿과 100m 방수 성능을 갖춰서 캐주얼한 분위기도 얼마든지 연출할 수 있다. 정장, 캐주얼 등 거의 대부분의 복장과 상황을 소화할 수 있는 올라운드 모던 워치인 것. PRX의 ‘스포티한 인티그레이티드 브레이슬릿’, 발라드의 ‘플루티드 베젤’, 르로클의 ‘기요셰 다이얼’처럼 젠틀맨에는 눈에 띄는 단 하나의 필살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이 시계의 약점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런 이유로 가장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시계이기도 하다.
젠틀맨 컬렉션은 2019년 40mm 케이스로 처음 등장했다. 파워매틱 80 무브먼트에 실리시움 헤어스프링을 탑재해서 스펙 면에서도 아주 강력했다. 이후 쿼츠 모델, 오픈하트 모델 등으로 확장되었지만, 케이스 사이즈는 계속 40mm에 머물렀다. 그러다 약 8년 만인 2026년, 38mm 모델이 등장한 것이다. 단순히 케이스 숫자만 변한 것은 아니다. 40mm 모델은 러그 폭이 21mm였는데, 이는 대부분의 교체용 스트랩이 20mm 단위로 제작된다는 점에서 다소 애매한 수치였다. 이번 38mm 모델은 러그 폭을 짝수인 18mm로 설정하면서 스트랩 호환성과 착용감을 동시에 개선했다.
이번 젠틀맨 38mm의 가장 인상적인 변화는 다이얼이다. 기본적으로 선버스트 피니싱이 들어가 있는데, 각도를 이리저리 돌려보면 다이얼에서 미세한 라인을 발견할 수 있다. 십자 형태로 섹터를 구분한 40mm 모델의 디자인을 눈에 띄지 않게 구현한 것. 티쏘에서 ‘피라미드 다이얼’이라 부르는 이 디자인은 일종의 ‘히든 섹터 다이얼’처럼 기능한다. 평범하게 보이지만 손목을 움직일 때마다 섬세한 구획이 드러나며, 마치 다이얼 중심이 솟아오른 것 같은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선버스트 피니싱은 각도에 따라서 어두운 영역과 밝은 영역으로 나뉘는데, 미세한 섹터 라인이 들어가서 두 영역이 좀 더 명확하게 구분되기도 한다. 가독성에 미세하게 도움이 되는 건 덤이다.
기존 40mm 모델에는 실리시움 밸런스 스프링이 탑재되어 있었다. 38mm 모델은 이를 니바크론 밸런스 스프링으로 교체했는데, 그 결과 가격이 20만 원 가량 낮아졌다. 물론 니바크론 스프링도 충분한 항자성을 보유하고 있어 일반적인 실사용 환경에서는 체감 차이가 거의 없다. 오히려 이 정도의 가격 차이라면 일반적인 사용자에게는 오히려 합리적인 결정으로 읽힌다. 물론 파워매틱 80 무브먼트의 강력한 80시간 파워 리저브는 여전하다.
시계를 오래 모으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여러 개성 있는 시계를 거쳐, 결국 가장 기본으로 돌아온다는 것.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취미 생활의 오랜 격언은 시계 수집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리고 젠틀맨 38mm는 무엇하나 더하거나 뺄 필요 없는, ‘순정’에 가장 근접한 시계다.
한때 크기를 중요시하던 시대가 있었다. 큰 시계가 남자답고 멋있다고 여기던 시절도 있었다. 오늘날 시계 애호가들은 시계 자체의 사이즈보다 자기 몸과의 ‘조화’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맹인에게 지팡이는 더 이상 지팡이가 아니다”고 했다. 지팡이가 도구를 넘어 신체 자체가 된다는 것이다. 좋은 시계란 마치 맹인의 지팡이처럼 내 신체의 일부가 되는 시계다. 손목에 올려놓았을 때 케이스가 자연스럽게 녹아드는지, 셔츠 소매 안으로 부드럽게 들어가는지, 하루 종일 차고 있어도 거슬리지 않는지. 이런 것들을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체로 38mm 전후로 수렴한다. 티쏘는 다양한 컬렉션을 통해 사용자가 원하는 최적의 사이즈를 고민해 왔으며, 이번 젠틀맨 38mm 모델은 그 고민이 응축된 모범 답안이다. 어쩌면 당신은 정답을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 이제 그것을 자신의 답안지에 조용히 옮겨 적는 일만 남았다. 누구보다 신사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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