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미지아니 토릭 크로노그래프 라트라팡테 애니버서리
손목 위의 스프레차투라
- 이재섭
- 2026.07.20
르네상스 작가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Baldassare Castiglione)는 그의 저서 <궁중인>에서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의 개념을 언급했다. 스프레차투라란 극도로 계산된 정교함, 노력을 숨긴 채 모든 것을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해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무심한 우아함을 의미한다. 나는 스프레차투라가 프라이빗 럭셔리와 함께 파르미지아니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올해로 브랜드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파르미지아니(Parmigiani)는 자축의 의미로 다양한 신제품을 선보였다. 그 중에는 토릭 트릴로지 중 하나인 토릭 크로노그래프 라트라팡테 애니버서리(Toric Chronograph Rattrapante Anniversary)도 있다. 토릭 크로노그래프 라트라팡테는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터리외를 제외하면(양산형 모델에 한해) 기술적으로 가장 복잡한 시계다.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와 동의어인 라트라팡테는 서로 다른 두 대상의 속력 따위를 계측하기 위해 고안한 컴플리케이션이다. 일반적인 크로노그래프보다 구조가 더 복잡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브랜드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토릭 트릴로지는 저마다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만 해머링 다이얼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망치로 표면을 두들겨 불규칙한 질감을 입힌 해머링 다이얼은 유럽의 은세공, 일본의 제례 용품, 고대 금속 가공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해머링 다이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약 60단계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 끝이 둥근 쇠망치를 쥔 장인은 적당한 힘과 리듬으로 다이얼을 타격한다. 너무 세게 두드리면 다이얼이 움푹 패이고, 반대로 힘이 약하면 원하는 깊이를 얻을 수 없다. 공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만큼 똑같은 다이얼은 존재하지 않는다. 파르미지아니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무엇인지 궁금한 이들에게 해머링 다이얼은 훌륭한 대답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만든 다이얼은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연출한다. 다이얼에 부딪혀 부서진 빛은 부드럽게 확산된다. 유리나 물처럼 느껴지는 다이얼에서 묘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스펙 시트에는 다이얼 색이 아가베 블루(Agave Blue)로 기재되어 있다. 아가베는 우리 말로 용설란이라고 하는 선인장이다. 채도가 낮거나 파스텔톤 컬러를 즐겨 사용하는 파르미지아니는 색에 대한 나름의 미학을 정립한 듯하다. 부드러운 아가베 블루와 차가운 플래티넘의 광택은 뛰어난 균형을 이룬다. 단차가 있는 3개의 카운터는 다이아몬드 툴을 이용해 미세한 홈을 새겼다. 해머링 다이얼과의 극적인 대비를 노린 연출이라고 볼 수 있다.
극단적으로 정제된 다이얼에는 파르미지아니의 로고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 어떤 문구도 찾을 수 없다. 파르미지아니가 강조하는 프라이빗 럭셔리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이얼 바깥쪽에는 로듐 도금한 골드 아워 마커와 크로노그래프 작동 시 경과 시간을 확인하기 위한 눈금이 있다. 눈금은 시계의 진동수에 맞춰 1초를 5분할했다. 시침과 분침은 로듐 도금한 골드인 반면 나머지 바늘은 무게를 고려해 로듐 또는 로즈 골드 도금한 스틸로 제작했다.
핸드와인딩 칼리버 PF361는 브랜드 창립 20주년이던 2016년에 데뷔했다. 모듈 방식이 아닌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통합한 무브먼트다. 10년이 지났지만 미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흠잡을 데가 없는 고성능 엔진이다. 플레이트와 브리지는 18K 로즈 골드로 제작했다. 금으로 무브먼트를 제작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금은 무르고 끈적거리는 성질이 있어 가공할 때 절삭 도구에 들러붙거나 뭉개질 수 있다. 마감을 할 때도 훨씬 더 섬세한 손길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금으로 무브먼트를 만드는 이유는 차별화다. 고급 브랜드의 정체성을 과시하는데 골드 무브먼트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도금을 하지 않아도 변색이나 부식되지 않는 금의 물리적 특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골드 무브먼트가 전달하는 고급스러움과 시각적 만족감이다. 애호가들은 무브먼트의 소재가 금이라는 것만으로도 시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가공한 브리지는 무브먼트의 은밀한 내면을 조금이라도 더 보여줄 수 있도록 스켈레톤 처리했다. 덕분에 컬럼 휠을 비롯한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메커니즘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움직이는지를 관찰할 수 있다. 새틴과 베벨링 마감한 브리지는 스틸 부품과 대비를 이루며 깊이감을 부여한다. 프리스프렁 밸런스는 미세 조정을 위한 4개의 추가 달려 있다. 배럴에는 창립자 미셸 파르미지아니의 서명이 새겨져 있다.
시간당 진동수는 흔하지 않은 36,000vph(5Hz)를 채택했다. 1/10초까지 정밀하게 계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에너지 소모가 심하다는 단점도 공존한다. 크로노그래프를 작동하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며,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를 활성화하면 클램프와 스플릿 세컨즈 휠의 마찰로 인해 밸런스 휠의 진폭이 떨어진다. 다시 말해, 시계의 정밀함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파르미지아니는 크로노그래프 메커니즘을 정밀하게 조정하는 한편 저항을 최소화하는 수직 클러치와 플렉서블 모놀리식 클램프(Flexible Monolithic Clamp)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로써 작동 안정성은 높아졌고, 고진동임에도 불구하고 65시간이라는 긴 파워리저브를 확보했다.
케이스는 지름이 42.5mm, 두께가 14.4mm로 큰 편이다. 소재도 플래티넘이어서 손목에 착용하면 제법 묵직하다. 무게에서 오는 부담감과 한없이 시계를 즐기고 싶다는 욕망이 충돌한다. 그만큼 시계가 매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케이스는 중심에서 아래로 경사진 형태인 데다가 러그의 길이도 짧은 편이다. 덕분에 시계가 손목에 밀착되어 실제로 착용하면 수치만큼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케이스백도 베젤과 마찬가지로 널링 스타일로 가공했다. 사파이어 케이스백은 전용 공구가 필요한 나사로 고정했다.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시계가 아님을 에둘러 표현하는 듯하다.
크로노그래프 버튼은 2시와 4시에, 라트라팡테 버튼은 크라운에 삽입했다. 라트라팡테 기능이 있는 톤다 PF 모델의 대부분은 버튼이 케이스 왼쪽에 있지만 이 시계는 전통적인 스타일을 따르고 있다. 토릭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밝은 회색 빛의 앨리게이터 악어가죽 스트랩은 푼토 아 마노(Punto a Mano) 스티칭으로 멋을 냈다.
크로노그래프 버튼을 조작하는 감촉은 적당한 저항이 느껴진다. 크로노그래프만큼 조작의 즐거움을 주는 시계는 없을 것이다. 라트라팡테는 크라운에서 솟아오른 버튼으로 조작한다. 라트라팡테 버튼을 누르면 가장 높은 곳에 꽂힌 바늘이 멈추고 골드 톤의 바늘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다시 한번 라트라팡테 버튼을 누르면 멈춰 있던 바늘이 움직이는 바늘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 다시 하나로 합쳐진다.
토릭 크로노그래프 라트라팡테 애니버서리의 가격은 158,000스위스프랑(한화 약 2억9,260만원)이다. 이 모델의 경쟁자로는 파텍 필립의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Ref. 5370R-001(5억9,760만원)를 꼽을 수 있다. 인지도나 재판매 가치는 파텍 필립의 우위지만 가격은 파르미지아니가 더 경쟁력이 있다. 모두 멋진 제품이기에 시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취향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것이다.
복잡한 메커니즘을 품었지만 고요하고 정숙한 태도를 강조하는 토릭 크로노그래프 라트라팡테 애니버서리는 손목 위의 스프레차투라를 대변한다.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디테일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은 파르미지아니가 확고한 방향성을 가진 채 시계를 제작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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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름 :
- 42.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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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께 :
- 14.4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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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 :
- 플래티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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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 :
- 사파이어 크리스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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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수 :
- 3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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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랩 / 브레이슬릿 :
- 그레이 앨리게이터 악어가죽 스트랩, 플래티넘 핀 버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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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얼 :
- 아가베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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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브먼트 :
- PF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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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식 :
- 핸드와인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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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능 :
- 시, 분, 초,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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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당 진동수 :
- 36,000vph(5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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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리저브 :
- 65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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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격 :
- 158,000스위스프랑(한화 약 2억9,26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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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량 :
- 3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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