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틴 샤이킨 파트너 일리야 겔프만 인터뷰
러시아 시계 산업의 든든한 후원자 일리야 겔프만을 만나다
- 이재섭
- 2025.05.19

언제부턴가 콘스탄틴 샤이킨(Konstantin Chaykin)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2017년 조커(Joker)라는 시계가 등장한 뒤부터로 기억한다. 솔직히 나는 그전까지 콘스탄틴 샤이킨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저 독립 시계 제작자 협회(AHCI)가 발행한 책자와 공식 웹사이트에서 수염이 덥수룩한 어느 러시아인의 얼굴과 짤막한 소개 글을 몇 번 봤을 뿐이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콘스탄틴 샤이킨이 첫 번째 시계를 공개한 것은 2003년이었다. 내가 시계에 관심을 두기 한참 전부터 그는 방망이 깎는 노인 마냥 시계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시계 제작의 변방인 러시아에서 독학으로 시계를 터득한 콘스탄틴 샤이킨은 어느덧 이 바닥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나는 워치스앤원더스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난 4월 어느날 콘스탄틴 샤이킨의 파트너인 일리야 겔프만(Ilya Gelfman)을 만났다. 일리야 겔프만과의 대화를 통해 브랜드에 대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인터뷰는 분량과 명확성을 위해 편집 및 요약됐다.
콘스탄틴 샤이킨의 파트너인 일리야 겔프만이다. 겔프만(Gelfman)이라는 시계 브랜드를 설립했으며, 스위스 취리히에서 이네이첸(Ineichen)이라는 경매 회사도 운영하고 있다. 콘스탄틴 샤이킨의 파트너가 되기 전부터 이미 시계 사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 물론 나 역시 컬렉터이기도 하다. 손목시계보다는 회중시계를 좋아한다. 손목시계도 몇 점 있지만 대부분은 회중시계다.

2007년 모스코바 시계 살롱에서 소개한 부활절 콤퓨투스 탁상 시계(Ressurection Computus clock). 정교회 부활절 날짜를 비롯해 퍼페추얼 캘린더, 문페이즈,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기능을 담고 있다.

2016년에 완성한 모스크바 콤퓨투스 탁상 시계(Moscow Computus Clock). 콘스탄틴 샤이킨의 네 번째 콤퓨투스 탁상 시계이자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가장 복잡한 탁상 시계다.
콘스탄틴 샤이킨과 알고 지낸 지는 18년 정도 됐다. 콘스탄틴 샤이킨을 처음 만난 건 2007년 모스코바 시계 살롱(Moscow Watch Salon)에서였다. 당시 콘스탄틴 샤이킨은 콤퓨투스 클록(Computus Clock)의 프로토타입을 선보였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고, 그 이후로 조금씩 가까운 사이로 발전했다. 그에게 매료된 나는 시계를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파트너가 되기 전에는 니카(Nika)라고 하는 러시아의 시계 회사가 콘스탄틴 샤이킨의 지분 절반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2022년 니카가 소유한 콘스탄틴 샤이킨의 지분을 전부 인수했다. 그 이후 브랜드 전략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고, 나와 콘스탄틴 샤이킨은 더욱 긴밀한 관계가 됐다(주 : 현재 워치메이커 콘스탄틴 샤이킨이 51%, 일리야 겔프만이 49%의 지분을 갖고 있다).
나는 브랜드의 모든 전략을 담당한다. 앞으로 어떤 모델을 제작할지, 마케팅은 어떻게 전개할지, 리미티드 에디션은 얼마나 생산할지를 결정한다. 딜러나 고객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일도 나의 몫이다. 제품 개발의 경우 콘스탄틴 샤이킨과 함께 전반적인 방향과 디자인에 관해 논의한다. 디자인이 결정되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제품이 양산되기 적어도 3년 전부터 개발에 착수한다.
색깔이나 다이얼만 바꾼 시계를 출시하는 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완전히 새로운 시계와 무브먼트 그리고 독특한 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것이다. 콘스탄틴 샤이킨의 사전에 바늘이 2개 달린 심플 워치는 없다. 씽킹(ThinKing)을 보라. 브랜드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고자 했던 우리는 스스로를 채찍질한 끝에 세계에서 가장 얇은 시계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불가리나 리차드 밀 같은 위대한 브랜드를 뛰어넘은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제 우리가 경쟁자들의 도전을 받아들일 차례라는 것이다.
고객 중 한 명이 콘스탄틴 샤이킨에게 세계에서 가장 얇은 시계를 만들 수 있는지 물었다. 이에 콘스탄틴 샤이킨은 “가능하다. 다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 라고 답했다. 우리는 곧장 내부적으로 논의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리차드 밀이 세계에서 가장 얇은 시계를 만든 브랜드였는데 얼마 뒤 불가리가 왕좌를 재탈환했다. 상대가 바뀌었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얇은 시계를 만들겠다는 목표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콘스탄틴 샤이킨은 결국 두께가 1.65mm에 불과한 씽킹을 개발해냈다. 불가리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시계라는 타이틀을 잃었지만 옥토 피니씨모 울트라 투르비용으로 세계에서 가장 얇은 투르비용 시계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획득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경쟁은 불가리와 콘스탄틴 샤이킨 모두에게 동기 부여가 됐다.
천재다. 다른 천재들처럼 비범하다. 종일 시계와 무브먼트에 관해서만 생각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새벽에도 일어나 스케치를 하고 다시 잠에 들 정도다. 우리 같은 범인들은 이해할 수 없지만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온종일 시계, 무브먼트, 컴플리케이션에 빠져 산다. 콘스탄틴 샤이킨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시계 시장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한쪽에는 리치몬트나 스와치 같은 거대한 그룹과 롤렉스처럼 엄청난 규모를 가진 단일 브랜드가 속해 있다. 이들은 전체 시계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관계된 사람의 수도 많고, 투자와 마케팅에 쏟아붓는 금액도 상당하다. 다른 한쪽에는 소규모 브랜드와 독립 브랜드가 있다. 이들은 전혀 다른 마케팅 전략을 세운다. 마케팅에 투자하기 보다는 커뮤니티를 조직하고, 작지만 알찬 행사를 기획한다. 롤렉스를 예로 들어보자. 롤렉스는 로저 페더러 같은 슈퍼스타를 내세운다. 이건 독립 브랜드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마케팅이다. 제조 공정도 천지차이다. 롤렉스는 1년에 100만개가 넘는 시계와 무브먼트를 만든다. 이를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기계와 복잡한 제조 과정이 필요하다. 이에 반해 콘스탄틴 샤이킨처럼 1년 생산량이 500개인 브랜드는 완전히 다른 전략을 취해야 한다. 당연히 고객들도 다르다. 고객들은 시작부터 독립 브랜드의 시계를 구입하지 않는다. 그들의 컬렉션에서 3번째 혹은 4번째, 어쩌면 10번째로 구입한 시계가 독립 브랜드의 시계일 것이다. 대부분은 롤렉스, 파텍 필립, 오데마 피게 같은 유명 브랜드로 시작한다. 하지만 언젠가 흥미를 잃어버리는 시기가 찾아온다. 더 이상 매력적이지도, 새롭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그들은 독립 브랜드로 눈길을 돌린다.
현재는 그렇다. 하지만 변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리스트몬 컬렉션을 브랜드의 DNA 가운데 하나로 유지할 것이다. 다만, 앞으로는 시네마(Cinema)처럼 독특한 컴플리케이션을 추가한 클래식 워치 컬렉션에 더욱 집중할 것이다. 성공을 거둔 기존 제품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가다듬어 출시할 것이다. 앞으로 출시할 신제품에는 새로운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탑재할 것이다. 리스트몬 컬렉션은 분명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리스트몬 컬렉션만 강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리스트몬 컬렉션에만 집중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시계를 팔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브랜드에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우리는 언제나 중고 시장, 컬렉터, 고객, 새로운 시장을 고려해야 한다. 다이얼만 바꿔가며 시계를 만드는 것보다는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 리스트몬 컬렉션은 콘스탄틴 샤이킨의 전부가 아니다. 리스트몬 컬렉션으로 대변되는 콘스탄틴 샤이킨은 내가 꿈꾸는 미래가 아니다. 우리에겐 마스(Mars)나 루노호트(Lunokhod) 같은 독특한 컴플리케이션을 장착한 매력적인 시계가 많다.
70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다. 몇 달 내로 새로운 공장이 문을 열 예정이며, 직원을 10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매뉴팩처 내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폴리싱 같은 업무는 직접 교육을 진행하지만 시계 제작 교육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첫 번째는 리스트몬 컬렉션이다. 조커를 위시한 리스트몬 컬렉션은 브랜드의 DNA가 됐다. 멀리서 보더라도 단숨에 콘스탄틴 샤이킨의 시계임을 알 수 있다. 콘스탄틴 샤이킨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콘스탄틴 샤이킨만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는 우리가 남들과 같은 시계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콘스탄틴 샤이킨 스스로가 이미 존재하는 시계를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완전히 다른 것을 추구한다. 그가 제작한 컴플리케이션을 보면 알 수 있다. 시네마, 마스, 루노호트 등 이런 시계를 도대체 어디에서 볼 수 있단 말인가! 누구도 이런 시계를 만든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또한, 콘스탄틴 샤이킨은 100개가 넘는 특허를 가지고 있다. 이만큼 많은 특허를 취득한 시계 제작자는 없다. 내 생각에 콘스탄틴 샤이킨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워치메이커 중 한 명이다.
더 많은 컴플리케이션 시계를 선보이는 것이다. 아울러 브랜드의 질적 성장을 위해 수익의 상당 부분을 연구 개발과 새로운 기계 구입 및 설비 구축에 재투자할 것이다. 이것은 나와 콘스탄틴 샤이킨의 공동 목표이기도 하다. 마케팅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은 우리가 갈 길이 아니다. 진정 멋진 시계를 내놓는다면 고객들은 구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마케팅에 큰 돈을 투입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현재 유리와 주얼을 제외한 나머지 부품은 직접 제작할 수 있다. 여기에는 메인스프링과 밸런스 스프링도 포함된다. 새로운 인하우스 무브먼트에는 자체 개발한 밸런스 스프링을 사용할 것이다. 조만간 보게 될 것이다. 지켜봐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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