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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너로 정했다! – WWG 2026 리뷰

사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닌데?

  • 이상우
  • 2026.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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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locca.com/article/%ec%98%ac%ed%95%b4%eb%8a%94-%eb%84%88%eb%a1%9c-%ec%a0%95%ed%96%88%eb%8b%a4-wwg-2026-%eb%a6%ac%eb%b7%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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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너로 정했다! – WWG 2026 리뷰

스위스를 다녀오면 이번 워치스 앤 원더스 어땠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박람회 경력이 많은 건 아니지만 요즘 이런 질문을 받으면 올해 박람회가 가장 좋았다고 말해준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사고 싶고, 또 살 만한 모델이 많았기 때문. 업계에서 이슈가 되는 시계(예를 들면 롤렉스의 새로운 스포츠 워치라든지), 브랜드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플래그십 모델(엄청난 무브먼트를 장착한 수십 억대 시계), 참여 브랜드의 수, 화려한 부스 디자인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시계 애호가들의 관심을 끄는 건 역시 구입 가능한 현실적인 가격대에서 매력적인 시계들이 많이 나와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워치스 & 워더스는 내게 최고의 박람회였다. 각 브랜드마다 사고 싶은 모델이 거의 하나씩 포진하고 있었는데, 이런 시계 박람회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올해는 트렌드 분석 같은 끼워 맞추기 칼럼 말고, 그냥 내가 사고 싶은 시계, 한번쯤 손목에 올리고 싶은 시계들을 정리해봤다.

PAM372의 완벽한 다운사이징: 파네라이 루미노르 데스트로

정말 사고 싶은 모델이 넘쳤던 W&W 2026년. 그럼에도 진짜 내 통장을 털어서 시계를 사야 한다면 1순위는 파네라이의 루미노르 데스트로 PAM01732다. 다운사이징의 시대에 무슨 44mm 신제품이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큼직한 파네라이 시계가 손목에서 주는 만족감은 작은 시계를 차면 찰수록 더 극대화된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나는 작은 시계가 유행할수록 파네라이의 가치는 더 커진다고 생각한다.

파네라이의 모든 시계들이 그렇지만 일반인들이 볼 때는 똑같은 파네라이 시계다. 크라운 방향이 바뀌었네 정도. 하지만 마니아들에게 이번 신제품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시계다. 그동안 팬들이 원했던 거의 모든 요소들이 다 들어가 있다. 일단 케이스는 1960년대 6152/1 빈티지 루미노르 케이스를 재현했고, 돔 글라스의 곡률도 과거 모델과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했다. (라디오미르의 글라스와 같은 것인지는 직접 비교를 해봐야 할 듯) 당연히 샌드위치 다이얼이 적용되었고, 브랜드 로고 부분도 프린팅이 아닌 음각으로 새겼다. 비록 블랙 다이얼은 아니지만 전체 디자인으로는 복각의 정석이라고 여겨지는 PAM372, 혹은 PAM422의 완벽한 44mm 버전이다. (시기의 문제일 뿐 블랙 다이얼도 분명 나올 것이다) 칼리버 P.6000은 47mm에 사용되는 P.3000보다 포스가 조금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44mm라는 사이즈가 구현되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데스트로 버전을 선택한 건 순전히 컬러 때문이다. 그동안 여러 파네라이를 착용하면서 블루 매트 다이얼과 베이지 인덱스의 조합이 나와 잘 맞는다는 걸 확인했다. 이번 모델은 다이얼 표면에 오돌도돌한 에그쉘 질감을 넣었는데, 거친 바다의 이미지가 연상되어서 좋다. 그러데이션을 넣을 수도 있었겠지만 폴리싱 처리한 케이스에는 전체 블루가 더 좋은 선택인 것 같다. 나처럼 파네리스티 25주년 모델을 아쉽게 놓쳤던 사람들에게는 보너스 선물 같은 느낌일 듯. (오히려 더 좋을지도?)

복각 모나코의 세대 교체: 태그호이어 모나코 크로노그래프

블루 다이얼의 복각 모나코 칼리버 11을 꽤 오랫동안 소장했었다. 팔고 나서도 계속 생각이 났던 시계라 중고로 다시 들일까 고민도 했지만 신형 모델이 나올 때가 되었다면서 나 자신에게 계속 최면을 걸었다. 그러면서 계속 상상했던 것 같다. 다음 풀 체인지 모델은 과연 어떻게 바뀔까? 올해 제네바에서 정답지를 받아들고 사실 조금 당황했었다. 대체로 다운사이징 추세라 내심 모나코가 예전의 38mm 사이즈로 돌아가지 않을까 기대한 부분도 있었기 때문. 그런데 웬걸. 여전히 39mm라고 하지만 체감 사이즈는 더 커진 느낌이다. 케이스가 완전한 사각에 더 가까워졌고, 푸셔나 크라운도 꽤 커졌다. 대신 두께는 13.9mm로 줄어들었다. 사파이어 크리스털도 기존과 비교하면 꽤 낮아진 게 체감된다. 덕분에 시계 자체가 기존에 비해 넓적해진 느낌. 요즘 다운사이징 트렌드는 크게 의식하지 않은 것 같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아이코닉 워치로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전체적인 느낌은 복각 모나코 그대로지만 디테일을 뜯어보면 달라진 점이 상당히 많다. 케이스는 모나코의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완전히 새롭게 제작했는데, 앞서 출시했던 플래그십 모델인 모나코 스플릿 세컨드와 1969년 오리지널 모델의 디자인을 상당 부분 반영했다. 다만 그런 기조에 비해 크라운이 너무 멋을 부렸다는 생각은 든다. 강렬한 푸셔 디자인은 마음에 든다. 이번에는 프레임 없이 케이스와 담백하게 이어져 있다.

클래스프는 구조적으로 근사해지긴 했지만 실사용 측면에서는 오히려 기존 모델보다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양쪽을 두 번 체결해야 하고, 미세하게 조절하기도 어렵기 때문. 가죽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긴 하지만 태그호이어의 클래스프는 길이 조절이 자유롭기 때문에 실착용 시 굉장히 편리하다.

무브먼트는 드디어 인하우스 칼리버 TH20-11로 변경되어 80시간의 파워 리저브를 확보했다. 모나코의 가장 불편한 점이었던 짧은 지속력이 마침내 해결된 것. 하지만 구매를 자극하는 결정적 포인트는 새로운 티타늄 소재다. 모나코를 착용하면서 데일리 워치로는 무겁다는 게 늘 불만이었다. 티타늄 소재는 무게를 극적으로 줄여줄 뿐만 아니라 특유의 색감으로 오리지널의 감성도 더 잘 살아난다. 피니싱 또한 구형과 달리 모든 면을 새틴 브러싱 처리했다.

더 작아진 울트라씬 워치 - 불가리 옥토 피니씨모 37mm

원형 시계보다는 형태를 좀 더 변주한 시계가 좋다. 불가리 옥토 피니씨모는 얇은 두께와 개성 있는 형태,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흔치 않은 시계다. 40mm 새먼 컬러가 나왔을 때는 정말 눈이 돌아가서 지를 뻔하기도 했다. 그때 지갑을 지켜준 건 내 부실한 손목이었다. 40mm 옥토 피니씨모의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은 아무리 뇌이징을 해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좀 더 기다렸다. 워낙 제품 완성도가 높아서 확신 같은 게 있었다. 기다리면 분명히 작은 사이즈가 나올 거라고. 이렇게 괜찮은 디자인을 그냥 썩힐 리가 없다고… 그리고 올해 옥토 피니씨모 37mm 모델이 등장했다. 예상하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트렌드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새로운 옥토 피니씨모 37mm 모델은 40mm 모델의 완벽한 축소판이다. 두 개를 같이 놓고 보지 않으면 어떤 게 37이고, 어떤 게 40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 기계식 시계의 구조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렇게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것이다. 특히 옥토 피니씨모처럼 무브먼트 자체가 크고, 스몰 세컨즈가 7시 방향에 있다면 말이다. 불가리는 새로운 사이즈의 옥토 피니씨모를 위해 완전히 새로운 무브먼트를 개발했다. 칼리버 BVF100은 지름 31mm, 두께 2.35mm의 초박형 무브먼트다. 두께가 살짝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얇다. 오히려 파워리저브는 72시간으로 더 늘어났다. 밸런스 휠에서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제네바 스트라이프로 멋도 부렸다. 이 무브먼트를 탑재한 최종 제품의 두께는 6.35mm다. 역시 40mm 모델보다는 두껍지만 6mm대의 훌륭한 울트라-씬 워치다. 비록 월드 레코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괜찮다. 실생활에서 세계 기록보다 중요한 건 착용감이니까. 작은 사이즈와 균형 잡힌 두께로 만족스런 착용감을 제공한다.

정작 문제는 티타늄 소재의 버전이 두 종류라는 것. 옥토 피니씨모의 근본은 샌드블라스트 버전이긴 한데, 새로운 폴리싱 버전도 만만치 않게 예쁘다. 새틴 브러싱과 폴리싱이 고급스럽게 교차되어 언뜻 보면 스틸 버전 같다. 티타늄이 가공하기 어려운 금속이라는 걸 고려하면 이번에 이걸 사야하나 싶다. 일체형 브레이슬릿 워치인 만큼 일단은 이쪽 장르 근본 컬러 청판을 기다려보는 것도 방법이고…

 

개성 넘치는 메탈 브레이슬릿: 예거 르쿨트르 마스터 컨트롤 크로노미터

약간 삐뚤어진 취향을 가진 탓에 아직까지 일체형 메탈 브레이슬릿 시계를 구입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브랜드가 참전하면서 가격대별로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데, 2000만 원대에서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다. 바로 예거 르쿨트르의 마스터 컨트롤 크로노미터 모델이다. 유튜브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럭셔리 스포츠 워치의 조건 중 하나는 ‘두께’다. 아무리 디자인이 좋아도 두껍고 투박하면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사실 폴라리스가 예거 르쿨트르에서 사실상 일체형 브레이슬릿 스포츠 워치의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을 했었는데, 혈통이 다이버 워치라서 두께 면에서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올해 드디어 예거에서 마스터 컨트롤 크로노미터라는 아주 멋진 일체형 브레이슬릿 스포츠 워치를 출시해서 너무 반가웠다.

퍼페추얼 캘린더, 데이트 파워 리저브, 데이트 3가지 모델로 출시되었는데, 역시나 가장 관심이 가는 건 지름 38mm의 데이트 모델이다. 현장에서 제품 리뷰를 촬영하면서 한참을 만져보고 착용해봤는데, 사이즈, 착용감, 디자인, 다이얼 컬러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특히 브레이슬릿의 완성도가 높았다.

일체형 브레이슬릿 스포츠 워치가 워낙 많이 출시되다보니 이제 브레이슬릿에서 ‘개성’이라는 걸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 마스터 컨트롤 크로노미터는 브레이슬릿 디자인에서 100점을 주고 싶은 시계다. 3열 브레이슬릿 디자인인데, 중앙 파츠는 새틴 브러싱 처리한 평면 링크와 폴리싱 처리한 삼각 프리즘 링크를 교차 배치했다. 그리고 바깥쪽 2개 파츠에는 V자형 베벨링을 추가했다. 이 삼각 프리즘과 베벨링 처리된 경사면이 다이얼의 핸즈와 인덱스와 호응하면서 시계 전체의 일관된 디자인 언어를 완성한다. 8각형이나 12각형 케이스가 아닌 원형 시계에 일체형 브레이슬릿 디자인을 적용하면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이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있는데, 이 시계는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이 물리적으로 통합되었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적으로도 완벽하게 통합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마스터 컨트롤 특유의 6시, 9시, 12시 방향 아라비아 인덱스가 이 디자인 콘셉트와는 조금 안맞는 거 아닌가 싶은 정도? 마스터 컨트롤 울트라씬처럼 전체를 바 인덱스로 디자인했다면 조금 더 통일감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틸 모델에 적용된 블루 그레이 컬러는 이제 예거 르쿨트르의 시그니처 컬러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모양새다. 리베르소 크로노그래프에 처음 적용될 때부터 계속 유심히 지켜보던 컬러인데, 마스터 울트라씬 데이트 모델에도 적용된 데 이어 (폴라리스에도 적용되었으나 느낌이 좀 다르다) 이번에 마스터 컨트롤 크로노미터에도 적용되었다. 참고로 최근 새롭게 공개된 새로운 미디엄 사이즈의 리베르소 듀오페이스에도 뒷면에 이 컬러가 적용되었다.

올해 최고의 가성비?: IWC 파일럿 워치 오토매틱 36 어린 왕자 에디션

시계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서 이제 박람회에 출품되는 시계 중에 1000만 원 아래의 예산으로 살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IWC의 파일럿 워치 오토매틱 36 어린왕자 에디션은 그 흔치 않은 가격대의 시계 중 하나다. 파일럿 워치 오토매틱 36은 다운사이징 트렌드가 불어닥치기 훨씬 전부터 꾸준히 판매된 스테디셀러다. 기본적으로는 여성을 타깃으로 개발된 모델이지만 마크 시리즈를 착용하기 부담스러운 남성들도 즐겨 찾던 모델. 최근 단종 수순을 밟아서 매장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아니나 다를까 빠르게 시장으로 복귀했다. 어린 왕자 에디션을 시작으로 아마 일반 모델도 발매되지 않을까 예측해본다.

일단 무브먼트가 달라졌다. 칼리버 32102를 탑재하면서 파워리저브가 120시간으로 대폭 늘어났다. 엔진 측면에서 마크 시리즈와 대등해진 것. 논 데이트라서 다이얼의 균형감도 완벽하다. 마크 시리즈는 이미 XX로 업그레이드가 이뤄진 상태에서 어린 왕자 버전이 추가된 것이라 감흥이 크지 않지만 파일럿 워치 오토매틱 36은 모든 것이 달라져서 감동이 두 배다. 멋진 블루 다이얼, 골드 핸즈, 어린 왕자라는 스토리텔링, 업그레이드된 무브먼트, IWC에서는 그래도 여전히 합리적인 가격까지. 파일럿 워치 오토매틱 36을 사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은 구매 버튼을 누르지 않을 수 없는 구성이다.

모나코 아니라 모나크: 튜더 모나크

이번 박람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블랙 베이 54에 블루 다이얼이 추가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블랙 베이 54 블랙을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터라 올해 신제품 라인업을 보고 고민해보자고 내심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정말로 블랙 베이 54 블루 다이얼 모델이 공개되어서 놀라긴 했는데, 맞춘 건 거기까지였다. 컬러 톤은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온 것. 살짝 비비드한 선버스트 블루 다이얼은 누군가에게 맞을 수 있겠으나 내가 튜더에서 기대하던 블루는 아니었다. 아쉽게도 이게 전부인가 싶었는데, 100주년 튜더에는 의외의 한 방이 있었다. 바로 100년의 유산을 품었다는 모나크 워치.

직경 39mm라는 부분에서 일단 사이즈는 합격. 과거 여러 튜더 모델의 특징들을 한 시계에 모아놓은 혼종 내지는 종합선물세트인데, 이게 은근 빈티지하면서도 새로운 요소가 가득해 볼수록 눈이 간다. 3개의 직선이 교차하는 러그 디자인, 아라비아 숫자와 로마 숫자를 섞은 캘리포니아 다이얼,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가 연상되는 다크 샴페인 컬러, 분침까지 확장된 새로운 스노 플레이크 핸즈 등 기존에 튜더에서 볼 수 없었던 디자인 언어가 잔뜩 들어갔다. 꽤 실험적인 모델인 셈인데, 마치 오래 전부터 있었던 모델인 것처럼 자연스럽다. 이런 부분에서 튜더의 역량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

색깔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 바쉐론 콘스탄틴 히스토릭 아메리칸 1921

5000만 원이 넘는 시계가 무슨 구입할 만한 시계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10억이 넘는 한정판 모델은 아니지 않은가? 당장 손목에 올리지는 못하더라도 이 정도의 시계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성인으로서 한 번쯤 가져볼 만한 아메리칸 드림이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내 욕망을 자극하는 드레스 워치를 자주 선보인다. 2년 전에는 샴페인 다이얼의 패트리모니로 홀리더니, 올해는 블루 인덱스의 히스토릭 아메리칸 1921을 들고 왔다. 그냥 눈대중으로 보기에는 인덱스 컬러와 스트랩 컬러가 바뀐 게 전부인데, 완전히 다른 시계가 되어 버렸다. (다이얼의 질감도 기존 모델보다는 꽤 거칠어졌다)

히스토릭 아메리칸 1921은 쿠션형 케이스를 좋아하는 애호가로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시계다. 2시 방향으로 살짝 기울어 있는 다이얼, 쿠션형 케이스 모서리에 위치한 크라운, 4시 방향의 스몰 세컨즈까지 볼 때마다 대칭과 비대칭의 절묘한 줄타기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드레스 워치라는 게 원래 정형적인 틀 안에 있어야하는 물건인데, 이 정도로 변칙 플레이를 하는 데도 그 안에서 균형이 맞는 게 신기할 따름. 아무튼 역사성과 디자인은 이미 검증된 물건인데, 이번 컬러 조합은 그야말로 취향저격이다. 핑크 골드의 품격을 살리면서 기존 화이트 골드 모델의 캐주얼한 감각을 적절하게 잘 버무렸다. 블루 카프스킨 레더 스트랩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시계가 또 있을까 싶다.

빙 속성 독수리: 쇼파드 알파인 이글 론 블루

최근 칼럼에도 썼지만 알파인 이글은 코로나 시절 구입 직전까지 갔던 모델이다. 화이트 골드 금괴를 이어붙인 듯한 루센트 스틸 브레이슬릿의 광채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그래서 매년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닭, 아니 독수리 쫓던 개처럼 살펴보게 된다. 올해 알파인 이글에는 기본 41mm와 36mm 모델에 루센트 스틸에 론 블루 다이얼을 조합한 버전이 추가되었다. 2024년 알파인 이글 XL 크로노 모델에서 처음 적용된 아이스 블루 컬러인데, 2025년 플라잉 투르비용 모델에도 사용되었고, 올해는 일반 3핸즈 모델까지 확장되었다. 보통 투르비용 정도의 상위 모델에 사용된 컬러는 일반 엔트리 모델에 잘 내주지 않는데 의외다. 엔트리 모델을 구매하는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 

아무튼 쇼파드에서는 꽤 특별한 컬러이고, 실제로 봐도 예쁜 색감이다. 알파인 이글 고유의 방사형 패턴이 더해져 다이얼에 진짜로 ‘얼어붙은’ 것 같은 감각을 전한다. 아이스 블루 인기가 예전에 비해서는 한 풀 꺾인 것 같지만 그래도 컬러 자체로 보면 여전히 유니크하고 아름다운 컬러다. 개인적으로는 루센트 스틸의 광채와 가장 잘 어울리는 컬러라고 생각한다. 케이스 백의 사파이어 크리스털에는 알파인 이글 재단의 로고가 장식되어 있으며, 판매 수익 일부가 재단 활동 지원에 사용된다.

첫만남은 아니지만...: 오데마 피게 로열 오크 오프쇼어 다이버

올해는 워치스 & 원더스에 오데마 피게가 새롭게 합류했다. 팔렉스포 2층 공간에 별도의 부스를 마련했는데 그 규모가 압도적이었다. 전시장 안에 별도의 미니 박물관을 만들어 놓은 느낌이랄까. 새로운 시계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브랜드가 보유하고 있는 여러 헤리티지 피스들을 전시했다. 홍보를 위해 박람회에 왔다기보다는 시계 문화 저변 확대를 위해 공익 차원에서 참여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워치스 & 원더스 참가 브랜드이니 오데마 피게에서도 마음에 드는 모델 한 가지를 골랐다. 새로운 컬러의 로열 오크 오프 쇼어 다이버다.

사실 오프 쇼어 컬렉션을 좋아하긴 하지만 다이버 모델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비스트에게는 역시 크로노그래프가 있어야지!’ 그런 선입견 때문인데, 이번에 신제품을 실물로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두툼한 8각 베젤과 러버 스트랩이 주는 박력은 크로노그래프 기능이 없어도 충분히 압도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여기가 다이버 워치의 종착역이구나!’ 아마도 새로운 컬러 조합이 마음을 흔들어 놓았나 보다. 이번 신제품은 3가지 컬러로 나왔는데, 매트 블루 컬러에 골드 핸즈·인덱스 조합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올해 신제품은 확실히 내 취향의 블루 제품들이 많다) 게다가 블랙 세라믹 크라운에도 골드 포인트가 들어가서 더 고급스럽다. 최상급 럭셔리 다이버 워치 콘셉트에 가장 잘 맞는 컬러 조합이다.

40mm 엑스칼리버!: 로저 드뷔 엑스칼리버 바이-레트로그레이드 퍼페추얼 캘린더

행사장에서 여러 브랜드의 시계를 시착해볼 수 있었는데, 스펙이나 소재 이런 걸 떠나서 손에 착용하는 순간 ‘이거다’ 싶은 모델들이 몇몇 있었다. 가격이나 성능 같은 이성적인 판단 요소를 마비시키고 몸 전체의 감각과 욕망이 무의식의 뽐뿌 회로로 자동 연결되는 그런 시계들 말이다. 로저 드뷔의 엑스칼리버 바이-레트로그레이드 퍼페추얼 캘린더도 그런 시계 중 하나였다. 개인적으로 원래부터 로저 드뷔의 엑스칼리버의 디자인을 좋아했다. 엑스칼리버 검으로 파낸 듯한 베젤의 음각, 그리고 독수리 발톱 같은 트리플 러그에서 두툼한 소가죽 스트랩으로 이어지는 그 남성적인 라인이 덕심을 자극한다. 그 고유의 디자인을 40mm 사이즈로 구현했다는 것부터 극호.

다이얼 내부의 밸런스도 환상적이다. 상하로 2개의 서브카운터, 좌우로 레트로그레이드 디스플레이가 균형을 잡아주고 그 사이로 살짝 보이는 오픈워크 무브먼트가 기계식 시계의 미학을 적절하게 보여준다. 사진으로 보면 블루 톤의 마더 오브 펄 소재가 어색할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어두운 컬러라서 마치 운석 다이얼처럼 멋지다. 신비로운 질감의 블루 마더 오브 펄과 골드 컬러, 그리고 오픈 워크 무브먼트의 실버 컬러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소가죽 스트랩의 블루 톤 역시 다이얼과 잘 어울린다.

캘린더 워치는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랑에 운트 죄네 삭소니아 애뉴얼 캘린더

랑에 운트 죄네가 작은 사이즈의 엔트리(?) 모델을 부쩍 자주 출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직경 34mm의 1815를 선보이더니 올해는 직경 36mm의 삭소니아 애뉴얼 캘린더 모델을 공개했다. 작은 사이즈에 빅 데이트를 탑재한 애뉴얼 캘린더와 문페이즈까지 모두 넣었는데, 두께는 9.8mm로 10mm 이내다. 가격대가 높고 사용하기 불편해서 캘린더 워치를 그리 선호하지 않지만 이 시계라면 기쁘게 착용할 수 있을 것 같다. 12시 방향의 빅 데이트 창과 3개의 서브 다이얼의 균형 감각이 탁월하고, 다이얼 각 요소들의 마감 품질에서 확실한 하이엔드 퀄리티를 느낄 수 있다. 컴플리케이션이 추가된 골드 워치라서 가격 장벽이 높지만 비용 대비 효과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시계 같다.

캘린더 워치는 착용하지 않고 날짜가 틀어지면 다시 세팅하기가 불편한데, 이 시계는 10시 방향 푸셔로 모든 날짜와 문페이즈를 한번에 조정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 랑에 운트 죄네는 새로운 36mm 케이스에 맞춰 새로운 애뉴얼 캘린더 무브먼트를 개발했다. 칼리버 L207.1은 플래티넘 소재 로터를 갖췄고, 약 60시간의 파워 리저브를 제공한다. 저먼 실버 플레이트와 블루 스크루로 고정된 골드 샤통, 장인의 인그레이빙이 새겨진 스완넥 레귤레이터 밸런스 콕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무브먼트 피니싱도 감상할 수 있다.

고성능 스텔스 크로노그래프: 파르미지아니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테리외

자신이 크로노그래프 워치라는 것을 애써 숨기는 시계들이 있다. 미닛 카운터를 센터에 배치하거나, 스몰 세컨즈인 척 하거나, 푸셔를 교묘하게 숨기는 방식으로 말이다. 내가 ‘스텔스 크로노그래프’라고 부르는 시계들인데, 파르미지아니가 이 계열의 끝판왕 같은 시계를 선보였다.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테리외 워치다. 브랜드는 그동안 톤다 PF GMT 라트라팡테, 톤다 PF 미닛 라트라팡테 같은 시계를 통해 핸즈를 ‘숨기는’ 메커니즘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다. 이번 신제품은 그 노력의 결정체라 하겠다.

평소에는 평범한 3핸즈 워치처럼 보이지만 푸셔를 누르면 숨어 있던 핸즈가 드러나면서 곧바로 크로노그래프 계측을 시작한다. 다이얼 중앙에 5개의 동축 핸즈를 포개놓고, 필요에 따라 일부 핸즈를 컨트롤할 수 있도록 제작한 것. 버티컬 클러치 1개와 수평 클러치 2개로 구성된 트리플 클러치 구조를 채택했는데, 기존의 크로노그래프 메커니즘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설계다. 브랜드의 철학과 미학을 위해 기술을 혁신했다는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미네랄 블루 다이얼과 로듐 도금 핸즈, 로즈 골드 핸즈의 조화도 아름답다. 보통 이런 플래그십 시계들은 감탄만 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테리외는 예외다. 사실 객관적으로는 매우 높은 가격(약 3억 원)인데, 외관이 비교적 평범하다보니 마치 구입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여러모로 미스테리한 시계.

이런 볼드함을 원했다!: 까르띠에 산토스 드 까르띠에 크로노그래프

내게 산토스 컬렉션의 구매 1순위는 크로노그래프 모델이었다. 산토스의 아이코닉한 디자인에 독특한 크로노그래프 메커니즘을 더해 우아하면서도 볼드한 양면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시계다. 개인적으로 예전 산토스100의 볼드한 느낌을 좋아하는데, 요즘 산토스 드 까르띠에서는 그 느낌이 많이 희석되었다. 하지만 크로노그래프 모델만은 예외다. 특히 크로노그래프 작동 푸셔를 왼쪽에 배치하고, 리셋 버튼을 크라운에 통합한 디자인도 매력적이다. 다만 가로 43.4mm의 엑스트라 라지 사이즈는 내 손목이 소화하기에 너무나 컸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인지 올해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 까르띠에가 드디어 작은 사이즈의 크로노그래프 모델을 공개했다. 새 모델은 까르띠에의 분류 체계상 라지 사이즈다. 가로 39.8mm로 기존보다 꽤 컴팩트해졌다. 이제는 크기 때문에 못 사겠다는 말은 못할 것 같다. 두께도 11.6mm로 기존보다 얇아졌고, 푸셔가 추가된 크로노그래프 시계임에도 여전히 100m 방수 성능을 보장한다. 케이스와 다이얼의 비율이 조정되면서 서브 다이얼이 중앙에 몰려 있는 듯한 느낌도 줄어 들었다. 기존 모델의 경우 스몰 세컨즈가 가장 작았는데, 이번 모델은 반대로 스몰 세컨즈가 가장 크다. (스몰 세컨즈 크기를 키워서 날짜 창을 안쪽으로 넣었다) 여러모로 시계의 밸런스가 꽤 좋아졌다. 사이즈나 무게가 줄어들면서 러버 스트랩 대신 메탈 브레이슬릿을 체결했는데, 이것도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꽤 가점 요소다. 다만 크로노그래프 조작 방식은 일반적인 2푸셔 형태로 회귀했다. 크로노그래프인 걸 애써 숨기는 모습이 까르띠에스러운 포인트였는데, 이제는 그런 의외성을 뽐내긴 쉽지 않겠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은 건 분명하다.

딱, 내 취향의 블루: 샤넬 J12 블루 세라믹

이 칼럼을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필자가 매우 ‘블루 친화적인’ 인간이라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컬러 측면에서 보자면 올해는 샤넬의 J12도 위시 리스트에 들어간다. 지난해 한정판으로 냈던 블루 세라믹을 올해는 정규 컬렉션에 합류시켰다. 물론 완전히 같지는 않고 부분적으로 수정이 이뤄졌는데, 개인적으로는 세라믹과 스틸의 컬러 조합이 오히려 한정판보다 나아 보인다. 레이싱 요트의 라인에서 영감을 받은 J12는 무려 200m 방수 성능을 갖춘 만능 스포츠 워치다. 케이스는 물론 브레이슬릿까지 전체를 매트하게 처리해서 아주 매끄러운 촉감을 자랑한다. 매트 블루의 컬러 톤을 정말 잘 뽑았고, 스틸 베젤과 실버 인덱스와도 조화롭다. 근래에 본 샤넬 워치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

샤넬은 세라믹 워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브랜드다. 최초로 세라믹 시계를 개발한 브랜드는 아니지만 J12가 세라믹 시계의 대중화에 큰 몫을 담당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아이코닉한 디자인과 세라믹 소재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J12는 하나쯤 소장할 만한 시계다. 최근에는 무브먼트까지 개선하면서 더욱 완성도가 높아졌다. J12를 위해 2019년 개발한 매뉴팩처 칼리버 12.1은 텅스텐 소재의 로터로 효율적인 와인딩을 구현하며, 70시간 파워 리저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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