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치스 & 원더스 2025 프레스 데이 마지막 날, 나는 팔레스포가 아닌 발레드주(Valle de Joux)로 향하는 승합차에 올랐다. 발레드주에 있는 예거 르쿨트르 매뉴팩처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스위스에서 방문한 대부분의 매뉴팩처는 제네바 인근에 있었다. 모두 멋진 곳이었지만 아쉽게도 내가 오랫동안 머릿속에 그렸던 풍경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알프스의 눈 내린 숲속 오두막에서 워치메이커가 조용히 시계를 만드는 그런 풍경 말이다. 물론 이건 내 멋대로 만들어낸 고정관념이다. 하지만 아직도 스위스 어딘가에는 그 스테레오타입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발레드주가 바로 그런 곳이다. 그래서 이번 매뉴팩처 투어는 다른 어떤 브랜드보다도 기대가 되었다. 마치 동화책을 보며 상상하던 장소를 직접 방문하는 느낌이랄까.
승합차에 한국인은 나를 포함해 두 사람뿐이었다. 아마도 시계 매거진 기자만 초대된 듯했다. 옆에 있던 모 매거진의 젊은 기자는 자신이 빈티지 시계를 구입해 수리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수업료를 지불했는지 무용담을 들려주었다. 사설 업체에 빈티지 블랑팡 시계를 맡겼다가 무브먼트가 ‘아작’났다는 얘기는 발레드주로 향하는 고갯길의 절벽만큼이나 아찔했다. 우리의 대화는 온갖 시계 이야기로 무르익었고, 숲의 커브길도 두 시덕들의 대화만큼이나 좀처럼 끝날 줄 몰랐다. 첩첩산중이라더니 과연. 겨울에는 여기에 끝없는 눈이 추가되는 정도겠지. 발레드주의 여러 시계 브랜드가 왜 그렇게 ‘숲’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나무뿐이었다.
그렇게 숲속 도로를 달리며 몇 개의 작은 마을을 지나자 제법 큰 도시(?)가 나타났다. 발데르주를 대표하는 거점 ‘르 상티에’였다. 그리고 그곳에 예거 르쿨트르 매뉴팩처가 있었다. 설립자 앙투안 르쿨트르가 1833년 가족 농장 맨 위층에 자신의 작업장을 만든 이래로 메종은 이곳에서 계속 시계를 만들어왔다. 물론 현재 매뉴팩처의 규모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졌다. 이곳을 방문하면 예거 르쿨트르가 자신들을 왜 ‘그랑 메종(Grand Maison, 큰 집)’이라고 부르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 무렵, 발레드주의 워치메이커들은 각자 전문 분야가 있었고, 자신의 집에서 개별적으로 시계나 부품을 만들었다. 앙투안 르쿨트르는 흩어져 있던 워치메이킹의 모든 분야를 한 지붕 아래 모았고, 발레드주 최초의 매뉴팩처 시스템을 완성했다. 당시 회사 이름은 르쿨트르 앤 씨(LeCoultre & Cie)였는데, 지금도 옛 건물의 외벽에서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입구에서 로비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자 ‘리베르소 1931 카페’가 방문객들을 반겨주었다. 올해 워치스 & 원더스의 테마인 ‘1931 폴로 클럽’의 테마를 반영한 카페였다. 커피와 마들렌으로 간단하게 당 충전을 하고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먼저 오전에는 ‘앙투안 워크숍’이라는 곳에서 리베르소의 케이스와 무브먼트를 조립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브먼트를 분해·조립하는 클래스는 다른 브랜드에서도 몇 번 경험해봤지만, 시계 케이스를 조립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리베르소의 특별한 케이스 디자인 덕분에 가능한 수업이다. 본격적인 체험에 앞서 리베르소 컬렉션에 대한 간단한 이론 강의가 진행되었다. 워치메이커가 직접 리베르소 컬렉션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왜 시대를 초월하는 아이코닉 워치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역사·디자인·기술 등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해주었다. 강의 자료가 생각보다 깊이 있게 구성되어 적잖이 놀랐다. 과장 좀 보태면 거의 대학교 교양수업 수준. 당연히 강의 시간도 꽤나 길었다.
마침내 기다리던 케이스 조립이다. 테이블 위에는 체험을 위한 간단한 도구가 놓여 있었고, 몇 가지 리베르소 대표 제품도 시착해 볼 수 있었다. 리베르소의 케이스는 약 50여 개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날 체험은 사각 케이스를 크래들 부품에 끼워 넣고 두 개의 러그 부품으로 고정시키는 비교적 ‘간단한’ 작업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간단하지 않았다. 케이스에는 스프링 구조의 경첩 부품이 있어서 이걸 정확한 방향으로 끼워 넣어야 제대로 작동했다. 짧은 체험이었지만 케이스를 슬라이딩해서 회전시키는 메커니즘이 내부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무브먼트 분해·조립 체험. 이 또한 리베르소의 전용 인하우스 무브먼트로 진행되었다. 모든 부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립하는 게 아니라 일부만 조립하는 것이었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특히 리베르소의 무브먼트는 크기가 워낙 작아서 나사도 작은 편이다. 나사를 핀셋으로 집어 올려서 홀에 올려두는 것만으로도 손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루페가 노안을 보완해줬지만 손 떨림까지 해결해주는 건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워치메이커의 도움을 받으며 무사히 케이스와 무브먼트 조립을 마치고 수료증까지 받았다. 사실 공짜 수업은 아니었다. 수업을 마치고 리베르소를 갖고 싶다는 내면의 욕망이 다이얼 앞면으로 드러나 버렸으니 말이다. 만약 내 컬렉션에 리베르소를 추가한다면 케이스를 뒤집을 때마다 이날의 수업이 떠오를 것 같다. 설레는 마음의 지속 시간을 계측해야 하니 가급적이면 리베르소 트리뷰트 크로노그래프 모델로…
점심식사는 리베르소 1931 카페에서 핑거 푸드로 간단하게(?) 해결하고, 오후에는 매뉴팩처 투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일단 매뉴팩처의 엄청난 규모에 압도되었다. 투어를 안내하는 분이 좀 많이 걸어야 하니 미리 각오를 해두라고 했는데, 절대 농담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 없이 매뉴팩처 곳곳을 오르락내리락 다니면서 발바닥이 꽤 뜨끈해졌다. 투어를 시작하기 전에 옥상에서 잠깐 바깥 풍경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는데,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하늘과 숲과 호수가 만들어내는 가장 평범하지만,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시계는 거들 뿐, 실은 이걸 보기 위해 올해 스위스에 왔구나 싶을 만큼. 매뉴팩처 구조는 독특했다. 하나의 단일 건물이 아니라 여러 건물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형태인데, 각 건물의 형태와 규모, 건축양식이 제각각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씩 증축하고 리모델링한 결과물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곳은 1833년 최초의 작업장, 1866년 첫 매뉴팩처 건물 등 그동안 시계가 만들어졌던 모든 건물을 품고 있다. 시간이 한 공간에 오래 쌓이면 멋진 풍경이 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첫 번째 방문한 공간은 헤리티지 갤러리. 그랑 메종의 모든 역사가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입구에는 1833년부터 2020년까지 매뉴팩처의 전경 사진이 아이의 성장 일기처럼 정리되어 있었다. 아빠, 앙투안 르쿨트르가 본다면 흐뭇하겠다. 매뉴팩처 내부에 있는 갤러리지만 다른 독립 갤러리 못지않게 규모가 상당했다. 두툼한 고객 명부에는 일반 고객뿐만 아니라 당시 유명 시계 브랜드에 무브먼트를 공급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예거 르쿨트르가 ‘워치메이커의 워치메이커’라고 불리는 이유다. 또 앙투안 르쿨트르가 1844년 제작한 정밀 측정 장비 ‘밀리오노미터(Millionomètre)’의 실물도 만나볼 수 있었다. 이 장비를 사용해 메종은 시계 부품을 더 정밀하게 측정하고, 일정한 크기를 유지할 수 있었으며, 이는 시계의 대량생산 가능성을 열었다.
갤러리 한쪽에는 무브먼트와 주요 헤리티지 피스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원형 계단 주변을 장식한 수많은 무브먼트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회중시계 무브먼트부터 손목시계 무브먼트까지 메종의 수많은 칼리버들이 소우주를 이루고 있었다. 예거 르쿨트르는 창립 이후 약 200년 동안 1,400개가 넘는 칼리버를 제작해 왔고, 지금도 매년 4~5개의 새로운 칼리버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다른 경쟁사보다 3~4배 많은 숫자로, 메종의 탁월한 기술력과 끊임없는 혁신을 엿볼 수 있다.
헤리티지 갤러리 출구 쪽 공간에서는 몇몇 워치메이커가 작업 중이었다. 헤리티지 갤러리와 바로 붙어 있는 이곳은 과거의 시계를 복원하는 부서라고 했다. 작업장에는 아홉 명의 워치메이커가 있는데, 이들은 작업 중 필요할 때마다 갤러리 아래층으로 내려가 부품이나 기술 도면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복원 부서가 왜 하필 이곳에 있는지 알겠다. 이곳에서는 시계를 단순히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시계가 갖고 있던 본래 모습을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부품이 없을 경우 기술 도면을 참고해 당시 방식대로 다시 제작한다. 아무리 기계식 시계라 해도 언젠가는 수명이 다하게 된다. 그때쯤이면 그것을 만들었던 워치메이커도 이 세상에 없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좋은 브랜드는 시간을 초월한다. 갤러리에 남겨진 기록과 후배 워치메이커들 덕분에 수백 년이 지나도 예거 르쿨트르의 시계는 본래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케이스를 만드는 작업장이다. 기름 냄새가 풍기는 공간에서 거대한 기계들이 굉음을 내고 있었다. 리베르소 케이스에 필요한 50여 개의 부품들이 바로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리베르소의 회전식 케이스는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는데, 한편으로 ‘짝퉁’ 리베르소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만큼 공정이 복잡하고 만들기가 까다롭다. 각 머신들은 세팅된 값을 기준으로 정확하게 케이스를 만들어낸다. 기계가 뿜어내는 오일 사이로 리베르소 케이스 부품이 살짝 엿보였다. 내부 오일의 뜨거운 열기가 기계 바깥까지 전해졌다. ‘차가운 기계’라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적어도 내가 매뉴팩처에서 만난 기계의 손길은 사람의 손길보다 훨씬 뜨거웠다. 다만 그걸 ‘온기’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뜨거움은 기계로 충분하겠지만 따뜻함은 결국 사람의 손끝에서 가능하니까. 완성된 부품은 품질 검사를 거쳐 가공하는 장소로 옮겨진다. 피니싱 역시 대부분 기계로 진행하지만 온기가 필요한 하이엔드 피스는 다른 공간에서 사람의 손으로 직접 피니싱이 이뤄진다.
무브먼트에 사용되는 작은 부품들은 또 다른 공간에서 제작된다. 오래 전 발레드주의 워치메이커들은 손으로 직접 금속을 깎았지만 오늘날에는 최신 기계 설비로 작고 정교한 부품을 대량으로 만들어낸다. 덕분에 우리는 더 뛰어난 성능의 고품질 기계식 시계를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무브먼트 부품을 만드는 과정은 케이스를 만드는 과정과 사뭇 다르다. 초록색 오일 탱크 안에 여러 개 겹쳐 놓은 금형이 있는데, 여기에 머리카락처럼 가는 금속 와이어를 통과시키고 전류를 흘려보내 정밀하게 절단한다. 말하자면 금형에 금속을 녹여서 부어주는 건데, 초정밀 마이크로 스틸 붕어빵을 굽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생산된 무브먼트 부품은 수작업으로 제네바 스트라이프, 패를라주, 베벨링, 해머링 등 다양한 피니싱을 거친다. 베벨링은 절단면을 45도 각도로 깎아낸 뒤에 단계적으로 연마해서 빛나게 만드는 마감 기법이다. 작업 과정에 사용되는 다양한 도구들을 보여주었는데, 그 중에는 나무로 만든 특별한 도구도 있었다. 이 도구는 발레드주에서 자라는 식물로 만들며, 금속 도구로 할 수 없는 윤기 나는 연마 작업이 가능하다. 고급 무브먼트에서 금속인데도 불구하고 촉촉한 질감이 느껴지는 비결이다.
이번 목적지는 주얼 세팅 워크숍. 보통 네 명의 장인들이 다양한 기법으로 작업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건 스노(snow) 세팅 기법이다. 금속 표면 전체를 다이아몬드로 덮는 것으로 4개의 다이아몬드를 세팅하는 데 약 1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관건은 각 다이아몬드 사이로 보이는 금속면을 최소화하는 것. ‘스노’ 세팅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기법은 겨울의 눈 내린 풍경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또 예거 르쿨트르는 다이아몬드의 방향을 바꾸는 카오틱(chaotic) 스노 세팅이라는 기법도 사용한다. 빛이 적어도 하나 이상의 보석에 반사되기 때문에 모든 방향에서 다이아몬드의 반짝임을 경험할 수 있다고.
메티에 다르 워크숍은 크게 인그레이빙과 에나멜로 나뉜다. 인그레이빙 작업장에서는 두 명의 장인이 주로 고객 맞춤 주문에 따라 리베르소 뒷면에 각인 작업을 수행한다. 고객이 요청한 그림의 핵심을 파악해서 이를 조각처럼 재현해야 하는데, 거의 창작에 가까운 예술 작업이다. 물론 최종 디자인은 고객의 승인 아래 이뤄진다. 디자인이 완료되면 금속 위에 바니시를 칠하고, 인그레이빙 작업을 시작한다. 한 번 끌이 지나가면 마치 시간처럼 되돌릴 수 없기에 다른 어떤 작업보다도 신중해야 한다. 단순한 선을 넘어 볼륨감과 형태까지 살려야하는 ‘모델 인그레이빙’은 더욱 고도의 실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비록 비용은 들지만 최고의 장인에게 원하는 그림을 직접 의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리베르소를 구입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특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옆에는 에나멜 작업장이 있다. 먼저 유리의 일종인 에나멜을 미세한 가루로 만들어 금속산화물과 혼합해 다양한 컬러를 만들어낸다. 이것을 고온에서 구우면 금속과 함께 유리화되어 아름다운 컬러와 매끄러운 표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 리베르소 케이스 뒷면에 그려진 명화들도 바로 이곳에서 탄생한다. 총 일곱 명의 에나멜 장인이 있는데 각자 자신만의 개성이 있기 때문에 똑같은 그림이라도 누구의 작품인지 알아볼 수 있다고. 그랑 푀 에나멜은 최대 15겹의 에나멜을 바르고 800도에서 굽는 작업을 반복하는데, 굽는 시간과 온도에 따라 컬러가 달라지기 때문에 아주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작품이 완성되면 반투명 에나멜을 발라서 광택을 내고, 리베르소의 케이스에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있도록 후반 작업을 진행한다. 물론 에나멜 역시 주문 제작이 가능하다. 다만 고객이 요청한 그림이 예거 르쿨트르의 미적 가치와 부합하는지 확인한 뒤 제작에 들어간다. 과거에는 초상화 작업도 했으나 사진을 에나멜로 재현하는 과정에서 고객 클레임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는 작업하지 않는다고 한다.
같은 공간에서는 기요셰 장비도 볼 수 있었다. 이 장비는 선을 작업하는 것과 원을 작업하는 것으로 나뉘는데, 두 가지 장비를 조합해서 리베르소의 앞면의 다양한 기요셰 패턴을 만들어낸다. 올해 신제품 리베르소 트리뷰트 샤나메와 리베르소 트리뷰트 미닛 리피터 모델에서도 이 기요셰 머신을 활용한 다이얼을 확인할 수 있다. 기요셰 작업 역시 마지막에 반투명 에나멜을 입히는데, 이 반투명 에나멜은 기포, 털, 먼지 같은 불순물이 전혀 없어야 하기에 제작이 매우 까다롭다고 한다. 게다가 작업 시간도 오래 걸린다. 신제품 리베르소 트리뷰트 미닛 리피터의 경우 기요셰 작업에 약 4시간이 소요된다. 한 번 작업을 시작하면 도중에 멈출 수가 없기 때문에 4시간 내내 일정한 힘으로 깎아내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기요셰 작업장에는 기름 냄새 대신 파스 냄새가 난다고 한다. 우리가 만나는 멋진 기요셰 패턴은 장인들의 근육통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이다.
모든 제작 과정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그랑 메종 워치메이킹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크숍’이었다. 이곳에서는 30여 명의 워치메이커가 퍼페추얼 캘린더, 미닛 리피터, 투르비용 등의 컴플리케이션 워치를 제작한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무려 2021년 선보인 히브리스 메카니카 칼리버 185 콰드립티크의 실물을 ‘만져볼’ 수 있었다. 리베르소의 케이스는 물론 크래들까지 4개의 면에 11개의 컴플리케이션을 담아낸 메종의 역작이다. 시계는 꽤 낡아 보였고, 워크숍에서는 이 엄청난 시계를 마치 예비군 훈련장 교보재처럼 다루고 있었다. 2021년 공개된 첫 번째 프로토타입이 전 세계를 순회하다가 고향에서 노후를 보내는 느낌이었다. 이 타임피스는 총 10개가 생산되며, 한 달 전 드디어 첫 번째 고객에게 시계가 전달되었다고 귀띔해주었다. 무려 4년 만의 첫 출고다.
종아리에 통증이 느껴질 때쯤 모든 투어가 종료되었다. 역시 그랑 메종은 매뉴팩처 투어의 볼륨도 그란데 사이즈였다. 덕분에 체력은 모두 소진되었고, 시계 지식과 경험은 풍성해졌다. 이번 투어 하나로 워치메이킹의 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고, 특히 리베르소의 숨겨진 뒷면까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왜 메종이 워치메이커의 워치메이커인지 알 수 있었고, 진정한 ‘인하우스’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건물을 나와서 제네바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건넜다. 도로 건너편에는 메종의 설립자 앙투안 르쿨트르의 초상화 부조가 있었다. 처음에는 왜 건물과 붙어 있지 않고 길 건너편에 있을까 싶었는데, 사진을 다시 정리하면서 나는 앙투안 르쿨트르가 자신의 만든 매뉴팩처를 바라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아닐까 멋대로 상상해버렸다. 아마도 그는 도로 건너편에서 자신이 세운 매뉴팩처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르 상티에를 다시 방문한다면 부조가 있던 자리에 서서 예거 르쿨트르의 매뉴팩처를 바라보고 싶다. 그때는 또 어떤 시간이 이 공간에 쌓여 있을지 궁금해진다.
로그인하거나 가입하여 댓글을 남겨주세요.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