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침내 어반 위르겐센(Urban Jürgensen)이 돌아왔다. 지난 2021년 독립 시계 제작자 카리 부틸라이넨을 필두로 한 투자자들은 어반 위르겐센을 인수하고 카리 부틸라이넨을 CEO로 임명하며 덴마크 시계의 복귀를 알렸다. 그리고 4년 뒤인 2025년 어반 위르겐센은 3개의 신제품을 발표하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채비를 갖췄다.
이야기는 어반 위르겐센의 아버지인 요르겐 위르겐센(Jørgen Jürgensen)으로부터 시작한다. 1745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태어난 그는 14세에 견습생이 되어 시계 제작의 길로 들어선다. 1766년 요르겐 위르겐센은 견문을 넓히기 위해 스위스 르로클로 떠났다. 외국에서 수학하는 것은 견습생이 성장을 위해 거쳐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그곳에서 그는 크로노미터 제작자이자 구체형 밸런스 스프링을 개발한 자크-프레데릭 유리에(Jacques-Frédéric Houriet)와 만나 친분을 다졌다(주 : 어반 위르겐센은 자크-프레데릭 유리에의 딸 소피 앙리에트와 혼인했다). 코펜하겐으로 돌아온 지 1년 후인 1773년, 마스터 워치메이커가 되고자 했던 요르겐 위르겐센은 시계 조합에 제작 허가를 신청했다. 그는 조합원이자 마스터 워치메이커인 아이작 라르펜트(Isaac Larpent)의 지도 하에 리피터 회중시계를 제작했다. 요르겐 위르겐센과 아이작 라르펜트는 두터운 친분을 바탕으로 파트너십을 맺고 라르펜트 & 위르겐센(Larpent & Jürgense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이후 코펜하겐에 덴마크 최초의 시계 공장을 설립하고, 덴마크 왕실의 공식 시계 제작자로 임명되는 등 요르겐 위르겐센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졌다.
1799년 요르겐 위르겐센은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났다. 그는 당대 최고의 시계 제작자인 아브라함-루이 브레게(Abraham-Louis Breguet)와 페르디낭 베르투(Ferdinand Berthoud)의 공방에 의탁했다. 두 사람이 요르겐 위르겐센의 친구인 자크-프레데릭 유리에와 가까운 사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 건너간 요르겐 위르겐센은 또 다른 위대한 시계 제작자 존 아놀드(John Arnold)의 환대를 받으며 수련을 이어 나갔다. 1801년 요르겐 위르겐센은 4년간의 여정을 마치고 코펜하겐으로 돌아와 그 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고정밀 회중시계와 마린 크로노미터 제작에 착수했다. 영국, 스페인, 프랑스 등 해양 대국과 경쟁하던 덴마크는 요르겐 위르겐센에게 마린 크로노미터 제작을 의뢰했다. 1811년 요르겐 위르겐센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이자 어반 위르겐센의 남동생인 프레데릭 위르겐센(Fredrik Jürgensen)이 뒤를 이었다. 위르겐센 가문은 왕실과 국가 기관에 시계를 납품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프레데릭 위르겐센은 32년간 가업을 이끌었는데 그 동안 제작된 시계는 500개도 채 되지 않았다. 이는 위르겐센 가문이 제작한 시계가 매우 큰 가치를 지녔음을 의미한다.
프레데릭 위르겐센이 사업을 영위하는 동안 장남인 어반 위르겐센은 시계 서적을 출판하는 등 이론가이자 실무자로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갔다. 어반 위르겐센의 목표는 고정밀 크로노미터를 개발하고 제작하는 것이었다. 어반 위르겐센은 이를 국가에 대한 헌신이자 책무라고 여겼다. 덕분에 덴마크는 경도 측정 기술에 관해 영국과 프랑스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1815년 어반 위르겐센은 그간의 공로와 능력을 인정받아 시계 제작자로서는 드물게 덴마크 왕립 과학 아카데미(Royal Danish Academy of Sciences) 회원으로 선출됐다. 이는 어반 위르겐센이 시간 측정 뿐만 아니라 온도, 기압, 습도 등의 과학 장비 분야에서도 권위자로 자리매김하는 근간이 됐다. 1820년 시계 제작 및 유통 허가를 취득한 어반 위르겐센은 자신의 이름을 건 시계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고객은 훗날 프레데릭 7세가 되어 왕위에 등극한 덴마크의 프레데릭 칼 크리스티안 왕세자였다. 이를 계기로 어반 위르겐센은 ‘왕의 시계(The King’s Watch)’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1830년 어반 위르겐센이 5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장남 루이스 어반 위르겐센(Louis Urban Jürgensen)과 차남 쥘 프레데릭 위르겐센(Jules Frederik Jürgensen)이 가업을 물려받았다. 회사명도 어반 위르겐센과 아들들로 바뀌었다. 어반 위르겐센은 한동안 후손들에 의해 운영됐다. 1912년 자크 알프레드 위르겐센이 사망하고 그의 친구인 데이비드 골레이(David Golay)가 회사를 인수했다. 자크 알프레드 위르겐센에게 회사를 물려줄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급변하는 세상 속에 가족 기업의 미래는 불투명해졌고,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 그 결과 어반 위르겐센의 소유권은 이리저리 넘어갔다. 태그호이어의 뿌리인 에드 호이어 & 컴퍼니(Ed. Heuer & Co)가 미국의 유통업체와 손을 잡고 어반 위르겐센을 인수하여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어반 위르겐센의 이름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1973년 어반 위르겐센 탄생 200주년을 맞아 코펜하겐에서 조촐한 행사가 열렸다. 전직 시계 제작자 크리스티안 군데센(Christian Gundesen)이 운영하던 작은 상점에는 행사를 맞아 어반 위르겐센의 시계와 저서 그리고 기념품이 진열됐다. 크리스티안 군데센은 어반 위르겐센의 이름에 대한 소유권도 가지고 있었다. 우연일지 필연일지 때마침 코펜하겐을 방문한 스위스의 사업가이자 시계 수집가인 피터 바움베르거(Peter Baumberger)가 상점에 들렸다. 어반 위르겐센의 유산에 완전히 매료된 그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리라 마음먹었다. 때는 쿼츠 시계의 등장으로 스위스 시계 업계가 위기에 봉착한 시기였지만 피터 바움베르거는 오히려 부정적인 상황을 기회로 여겼다. 1979년 어반 위르겐센의 판권을 획득한 피터 바움베르거는 자신의 소장품을 팔아 시계 제작에 필요한 장비를 구입하는 한편 영국의 시계 제작자 데릭 프렛(Derek Pratt)을 영입했다. 조지 다니엘스와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시계 제작자였던 데릭 프랫은 조지 다니엘스만큼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조지 다니엘스와 마찬가지로 혼자만의 힘으로 시계를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극소수의 시계 제작자였으며, 조지 다니엘스가 겪고 있던 여러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준 유일한 인물이었다. 어반 위르겐센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험난한 여정은 핀란드에서 활동하고 있던 시계 제작자 카리 부틸라이넨이 1996년에 합류하며 탄력을 받았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어반 위르겐센의 시계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오벌 포켓 워치(Oval Pocket Watch)다. 오벌 포켓 워치는 데릭 프랫의 대표작이자 어반 위르겐센의 유산과 전통의 부활을 상징하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시계는 정교한 디테일과 아름다운 마감 등 미학적으로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어반 위르겐센이 나아가야 할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물론 기술적인 성취도 빼놓을 수 없다. 오벌 포켓 워치는 최초로 투르비용과 레몽투아를 결합한 시계이기도 하다. 거의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벌 포켓 워치가 완성되기까지 무려 20년이 걸렸다. 말년에 병세가 악화되어 더 이상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던 데릭 프랫은 카리 부틸라이넨에게 바통을 넘겼다. 카리 부틸라이넨은 모든 부품을 섬세하게 마감해 시계가 더욱 매혹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마감한 부품을 모두 조립해서 오벌 포켓 워치를 완성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한편, 데릭 프랫은 오벌 포켓 워치 외에도 매력적인 손목시계를 만들어냈다. 1982년부터 2010년 사이에 Ref. 1부터 Ref. 11에 이르기까지 총 11가지의 손목시계를 선보였다.
2005년 어반 위르겐센은 마린 크로노미터에 버금가는 정확성을 갖춘 기계식 손목시계 개발에 착수했다. 수많은 난관을 극복한 끝에 2011년 브랜드 최초의 현대 인하우스 칼리버 P8을 발표하는데 성공한다. 아쉽게도 피터 바움베르거는 데릭 프렛이 사망한 지 1년만인 2010년에 유명을 달리했다. 브랜드 부흥의 핵심이었던 피터 바움베르거와 데릭 프랫이 모두 사라지자 어반 위르겐센은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다행히도 피터 바움베르거의 친구이자 의사 그리고 시계 수집가였던 헬무트 크롯(Helmut Crott) 박사가 후임으로 나섰다. 헬무트 크롯 박사는 어반 위르겐센의 기술적 완성도와 장인 정신을 비롯해 지속적인 혁신으로 대변되는 브랜드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어반 위르겐센의 장기적 성장을 위한 재정적 기반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이에 헬무트 크롯 박사는 덴마크 사모펀드 컨소시엄의 제안을 받아들여 2014년 브랜드를 매각했다.
이후 어반 위르겐센은 장-프랑수아 모종(Jean-François Mojon)의 도움을 받아 무브먼트를 개발하고 새로운 시계를 출시했다. 2017년 어반 위르겐센은 스위스 비엘로 본사를 이전하며 안정을 꾀했지만 불안 요소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결국 2021년 미국의 투자회사 구겐하임 파트너스의 회장이자 시계 수집가인 앤디 로젠필드(Andy Rosenfield)와 그의 아들 알렉스 로젠필드(Alex Rosenfield)가 구원투수로 등판하며 어반 위르겐센을 인수했다. 로젠필드 가문과 투자자 그룹은 어반 위르겐센과 오래 전 인연을 맺은 카리 부틸라이넨을 공동 CEO로 추대한 뒤 시계 제작을 맡겼다. 로젠필드 가문을 대표하는 공동 CEO 알렉스 로젠필드는 전반적인 운영과 브랜딩을 담당하기로 했다. 아울러 카리 부틸라이넨의 딸 벤라 부틸라이넨을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임명해 가족 기업으로 운영된 어반 위르겐센의 역사를 재현했다.
UJ-1은 어반 위르겐센의 뿌리와 현대 어반 위르겐센의 가교 역할을 한 피터 바움베르거와 데릭 프랫을 기리는 의미를 지닌 시계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 시계가 오벌 포켓 워치에서 선보인 투르비용과 레몽투아 데갈리테의 조합을 손목시계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20년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데릭 프랫의 장인 정신과 어반 위르겐센에 새생명을 불어넣은 피터 바움베르거의 헌신을 상기시키는 UJ-1은 75개 한정 생산된다.
플래티넘 또는 로즈 골드로 제작한 케이스의 지름은 39mm로 적당하나 두께는 12.2mm로 제법 두꺼운 편이다. 이 시계의 겉모습만 본다면 의아한 수치인데 이는 후술하겠지만 무브먼트에 특별한 장치를 내장했기 때문이다. 케이스의 형태는 레퍼런스 시리즈에서 선보였던 고전적인 디자인에서 탈피했다. 새틴 브러시드와 폴리시드 마감을 병행한 계단식 러그는 차분해졌고, 폴리시드 마감으로 광택을 낸 물방울 러그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으로 변경했다. 그랑 도르주 기요셰 패턴으로 장식한 케이스백은 아름다운 무브먼트를 감상할 때 예기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무광 로듐 도금(플래티넘 케이스) 또는 로즈 골드 도금(로즈 골드 케이스)한 솔리드 실버 다이얼은 고전미와 기품이 서려 있다. 옛 마린 크로노미터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디자인과 기요셰의 조화가 일품이다. 12시 방향의 로고 하단에는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가 자리한다. 다이얼 중앙은 그랑 도르주(Grain d’orge) 패턴을, 스몰 세컨드 다이얼에는 클루 드 파리(Clous de Paris) 패턴을 핸드 기요셰로 새겼다. 결을 살려 마감한 챕터 링에는 로마 숫자로 인덱스를 표시했는데 12시 방향에 숫자 0을 넣은 것이 독특하다. 오픈 팁 핸즈 역시 과거를 회상하게 만드는 요소다. 파랗게 물든 바늘은 전통 방식대로 열처리했다.
로즈 골드 도금한 핸드와인딩 칼리버 UJ-1은 오벌 포켓 워치의 무브먼트를 손목시계에 맞게 축소하고 현대적으로 재구성했다. 제네바 스톱워크를 장착한 플라잉 배럴, 센터 휠과 높은 기둥 위에 고정된 브리지, 1분에 1회전하는 플라잉 투르비용을 일직선으로 정렬시켰다. 오벌 포켓 워치의 무브먼트와 마찬가지로 투르비용에 레몽투아 데갈리테(remontoir d’égalité)를 결합시킨 것이 칼리버 UJ-1의 핵심이다. 투르비용은 중력의 영향을 최소화해 오차를 보정하지만 커다란 케이지를 가지기 때문에 무겁다. 다시 말해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에너지 전달의 효율이 보장되지 않으면 투르비용의 가치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에 카리 부틸라이넨은 투르비용에 레몽투아 데갈리테를 결합해 문제를 해결한 데릭 프랫의 아이디어를 가다듬었다. 레몽투아 데갈리테를 추가한 투르비용을 손목시계에 맞는 크기로 줄이는 것은 엄청난 난이도를 가진 과제였다. 더욱이 이를 양산하는 것은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뢸로(Reuleaux) 삼각형을 사용한 레몽투아 데갈리테는 이스케이프 휠과 같은 축에 설치되어 있다. 1초에 한 번 일정한 양의 에너지를 밸런스에 전달하여 작동 안정성과 정확성을 향상시킨다. 오벌 포켓 워치나 이전 어반 위르겐센의 손목시계에서 디텐트 이스케이프먼트를 사용한 것과 달리 UJ-1에는 일반적인 스위스 레버 이스케이프먼트를 투입했다. 극도로 민감해 조정이 어렵고 충격에 취약한 디텐트 이스케이프먼트의 단점을 굳이 계승하지 않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UJ-1이 손목시계임을 감안하면 현명한 선택으로 보인다.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를 위한 디퍼런셜 스크루도 눈에 띈다. 원뿔 형태의 부품은 메인스프링이 감기거나 풀리면 위 아래로 이동한다. 주얼이 달린 레버는 디퍼런셜 스크루의 상하 움직임에 따라 작동 반경이 달라지고, 레버에 연결된 바늘이 잔여 동력을 표시하는 원리다. 현대 손목시계에서 이 같은 메커니즘을 제대로 구현하는 브랜드는 페르디낭드 베르투와 어반 위르겐센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다.
데릭 프랫의 오벌 포켓 워치를 완성하여 그의 시계에 완전한 생명을 불어넣고 그의 이름이 영원히 회자되도록 기여한 카리 부틸라이넨은 데릭 프랫이 남긴 유산을 어반 위르겐센의 현대 손목시계에 담아내는 것으로 사명을 완수한 듯하다. 어반 위르겐센의 지난 역사와의 유대를 강조하는 한편 브랜드의 귀환과 250주년을 기념하는 UJ-1은 레퍼런스 별로 25개씩 생산되며, 가격은 368,000스위스프랑으로 책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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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름 :
- 39.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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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께 :
- 12.2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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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 :
- 플래티넘 또는 로즈 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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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 :
- 사파이어 크리스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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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수 :
- 3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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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랩 / 브레이슬릿 :
- 윤리적으로 얻은 악어 가죽과 핸드 스티칭한 스트랩, 소가죽 안감, 플래티넘 또는 로즈 골드 핀 버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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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얼 :
- 실버, 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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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브먼트 :
- 칼리버 UJ-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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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식 :
- 핸드와인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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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능 :
- 시, 분, 초, 투르비용,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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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당 진동수 :
- 18,000vph(2.5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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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리저브 :
- 4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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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격 :
- 368,000스위스프랑(한화 약 6억1,76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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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량 :
- 75개
시, 분, 초 그리고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라는 구성은 UJ-1과 동일하다. 계단식 러그와 물방울 러그를 재해석한 외관도 UJ-1과 차이가 없다. 플래티넘 또는 로즈 골드 케이스로 선보이는 UJ-2의 지름은 39mm, 두께는 10.9mm로 UJ-1보다 조금 작다.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를 부착한 케이스백은 역시 핸드 기요셰로 그랑 도르주 패턴을 한 땀 한 땀 새겼다. 오프센터 다이얼의 가장 바깥쪽에는 그랑 도르주 패턴을 빼곡하게 채웠다. 4시 방향에 치우친 스몰 세컨드 다이얼에는 클루 드 파리 패턴을 정교하게 핸드 기요셰로 각인했다.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가 로고 위에 놓인 것은 UJ-1과 다른 점 중 하나다. 챕터 링에는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동그란 인덱스를 표시했다.
로즈 골드 도금한 핸드와인딩 칼리버 UJ-2는 시간을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간 듯한 인상을 받는다. 리볼버 형태의 커다란 브리지와 기어트레인의 각 톱니바퀴를 고정하는 핑거 브리지는 스위스산 앤티크 회중 시계를 영락없이 빼 닮았다. 그레나주 마감한 브리지와 플레이트를 비롯해 미러 폴리시드 처리한 나사, 페를라주, 앵글라주, 돔형 챔퍼링, 새틴 브러시드 처리한 톱니바퀴 등 모든 마감은 손으로 이루어졌다. 오차를 조정하기 위한 나사와 장식용 나사를 촘촘히 박아 넣은 밸런스 휠과 필립스 및 그로스만 터미널 커브를 적용한 오버코일 밸런스 스프링은 UJ-2가 고품질의 핸드메이드 시계임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무브먼트를 보면 카리 부틸라이넨의 터치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카리 부틸라이넨이 개발한 다이렉트 더블 휠 이스케이프먼트(내추럴 이스케이프먼트)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최초로 고안한 내추럴 이스케이프먼트는 기계식 시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인 이스케이프먼트에서 발생하는 마찰을 줄이고 에너지 전달 효율을 높여 작동 안정성과 내구성을 개선하는 장치다. 데릭 프랫과 조지 다니엘스를 비롯해 카리 부틸라이넨, 프랑수아-폴 주른과 같은 뛰어난 시계 제작자들은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연구에서 영감을 얻어 내추럴 이스케이프먼트를 개량했다. 카리 부틸라이넨은 다이렉트 더블 휠 이스케이프먼트를 어반 위르겐센의 기술적 징표로 삼아 워치메이킹의 탁월함을 강조하고자 했다.
UJ-2는 UJ-1과 다르게 숫자가 정해지진 않았다. 다만, 제작되는 수량은 엄격하게 제한될 예정이다. 가격은 105,000스위스프랑으로 3개 모델 가운데 가장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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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름 :
- 39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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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께 :
- 10.9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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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 :
- 플래티넘 또는 로즈 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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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 :
- 사파이어 크리스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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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수 :
- 3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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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랩 / 브레이슬릿 :
- 윤리적으로 얻은 악어 가죽과 핸드 스티칭한 스트랩, 소가죽 안감, 플래티넘 또는 로즈 골드 핀 버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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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얼 :
- 실버,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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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브먼트 :
- 칼리버 UJ-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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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식 :
- 핸드와인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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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능 :
- 시, 분, 초,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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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당 진동수 :
- 18,000vph(2.5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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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리저브 :
- 5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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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격 :
- 105,000스위스프랑(한화 약 1억 7,600만원)
세 번째 모델인 UJ-3는 퍼페추얼 캘린더와 독창적인 레이아웃이라는 면에서 어반 위르겐센의 Ref. 3를 떠올리게 한다. 비대칭 다이얼에는 다양한 캘린더 정보를 비롯해 문페이즈와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가 자리한다. 독립 시계 브랜드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는 UJ-3는 카리 부틸라이넨과 안드레아 스트렐러(Andreas Strehler)라는 시계 제작의 거장이 모여 만들어낸 시너지를 원천으로 삼는다. 이는 마치 아브라함-루이 브레게, 페르디낭 베르투, 존 아놀드를 만나 시계 제작의 영감을 얻었던 요르그 위르겐센의 모습과 궤를 같이 하는 듯하다.
안드레아 스트렐러는 자신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동시에 다른 브랜드에 솔루션을 제공해온 스위스의 시계 제작자다. 크로노스위스(Chronoswiss)의 크로노스코프(Chronoscope)를 비롯해 H. 모저 앤 씨(H. Moser & Cie)의 퍼페추얼 캘린더, 모리스 라크로와(Maurice Lacroix)의 레 크로노그래프(Le Chronographe) 등 다양한 시계의 개발에 참여한 바 있다. 카리 부틸라이넨과의 인연은 지난 2012년에 발표한 메트르 뒤 탕 챕터 3(Maîtres du Temps Chapter 3)로 거슬러 올라간다. 롤러를 이용해 낮/밤 인디케이터와 세컨드 타임존을 표시했던 챕터 3는 두 시계 제작자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장인 정신이 결합되었을 때 어떤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독립 시계의 거장으로 올라선 두 사람은 이제 어반 위르겐센의 부활이라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다시 뭉쳤다.
플래티넘 또는 로즈 골드로 제작한 케이스의 지름은 39mm, 두께는 13.9mm로 3개의 시계 가운데 가장 두껍다. 케이스의 디자인과 구성은 UJ-1이나 UJ-2와 다르지 않다.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및 스몰 세컨드의 위치나 오프센터 다이얼을 보면 이 시계가 UJ-2를 바탕으로 제작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그랑 도르주 기요셰 패턴이 광범위하게 들어간 다이얼은 다양한 정보와 기능에도 불구하고 가독성이 준수하다. 요일과 월은 3시와 9시의 로마 숫자 인덱스 위에 놓인 창을 통해 표시하는데 Ref. 2나 Ref. 3와 배치가 같다. 스몰 세컨드 다이얼에는 날짜를 확인할 수 있는 바늘 하나를 추가했다. 8시 방향에 있는 문페이즈 인디케이터는 평범해 보이지만 14,000년에 오차가 하루에 불과할 만큼 고도의 정밀성을 갖췄다. 문페이즈나 캘린더 정보의 정확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안드레아 스트렐러의 장기이기도 하다. 윤년 기능이 없는 Ref. 2나 Ref. 3와 다르게 UJ-3는 윤년 기능이 있다. 다만, 윤년은 다이얼이 아닌 무브먼트 사이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차피 윤년은 자주 쓰는 기능이 아니기 때문에 가독성을 높이고 디자인을 간결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 방식이 더 좋아 보인다.
로즈 골드 도금한 핸드와인딩 칼리버 UJ-3는 UJ-2를 기반으로 제작한만큼 윤년 인디케이터를 제외하면 별다른 차이점을 찾아낼 수 없다. 배럴 브리지 위에 놓인 바늘은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며 윤년을 알려준다. 다이렉트 더블 휠 이스케이프먼트을 비롯해 무브먼트를 정의하는 여러 요소들은 UJ-2와 완전히 동일하다. 시간당 진동수(2.5Hz)와 52시간 파워리저브도 같다. 다만, 무브먼트의 두께는 5.5mm인 칼리버 UJ-2에 비해 2.6mm 더 두꺼운 8.1mm다.
UJ-3는 한정 생산되는 것은 아니지만 브랜드의 규모와 시계 제작에 투입한 시간과 노력으로 미루어 봤을 때 수량은 매우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가격은 168,000스위스프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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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름 :
- 39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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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께 :
- 13.9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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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 :
- 플래티넘 또는 로즈 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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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 :
- 사파이어 크리스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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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수 :
- 3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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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랩 / 브레이슬릿 :
- 윤리적으로 얻은 악어 가죽과 핸드 스티칭한 스트랩, 소가죽 안감, 플래티넘 또는 로즈 골드 핀 버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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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얼 :
- 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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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브먼트 :
- 칼리버 UJ-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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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식 :
- 핸드와인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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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능 :
- 시, 분, 초, 퍼페추얼 캘린더, 문페이즈,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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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당 진동수 :
- 18,000vph(2.5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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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리저브 :
- 5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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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격 :
- 168,000스위스프랑(한화 약 2억 8,180만원)
많은 사람들은 250주년인 2023년에 어반 위르겐센의 새로운 시계가 공개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정작 시계가 출시된 것은 2년 뒤인 2025년이다. 브랜드의 재건이라는 미명 하에 역사적 중요성을 간과하고 이름만 앞세워 실패를 겪었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은 경영진은 론칭에 만반을 기했을 것이다. 지난한 기다림 끝에 마침내 3개의 시계는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50년의 역사에 앞으로 더해질 시간과 카리 부틸라이넨의 손길이 어반 위르겐센을 어디로 이끌지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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