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다섯 개만 더!](https://www.klocca.com/wp-content/uploads/2025/05/batch_sc01_25_MoonSwatch-1965_ambiance_High-scaled.webp)
오메가에서 새로운 문스와치 1965(Moonswatch 1965)를 선보였다. 1965년 오메가는 NASA의 테스트를 통과하고 비행자격을 획득했는데, 그 60주년을 기념하는 모델이다. 화이트 다이얼과 블랙 핸즈의 조합은 지난 해 오메가에서 선보인 화이트 문워치를 떠올리게 한다. 그걸 구입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인가 싶었는데, 이미지만 슬쩍 보고 그냥 색깔놀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재밌는 기능이 들어 있다.
다이얼 자세히 보면 일반적인 크로노그래프 워치와 서브 다이얼 인덱스가 다르다. 보통의 크로노그래프 워치에는 12시간 계측 카운터와 30분 계측 카운터가 있지만, 문스와치 1965에는 12시간 위치에 19시간 카운터(10시 방향), 30분 위치에 65분 카운터(2시 방향)를 배치했다. 카운터의 숫자 ‘19’와 ‘65’는 자외선을 받으면 푸른빛을 뿜어내면서 ‘1965년’을 드러낸다. 6시 방향 스몰 세컨즈의 숫자 ‘60’ 역시 동일하게 처리해 60주년의 의미를 더했다.
처음에는 이걸로 어떻게 시간을 재는 건가 했는데, 영상을 보니 바로 이해가 되었다. 카운터가 64분 59초(1시간 4분 59초)에서 65분(1시간 5분 00초)으로 넘어가는 순간, 시침과 분침이 동시에 1회전하면서 1시간 5분을 읽을 수 있도록 핸즈가 다시 정렬된다. 이런 방식으로 이 시계는 최대 19시간 65초까지 측정할 수 있다. 기존 무브먼트에 약간의 수정을 가해서 새로운 방법으로 시간을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크로노그래프 워치에 항상 30분 카운터만 있는 건 아니다. 별도의 시간 카운터가 없는 바이컴팩스 디자인의 경우, 필요에 따라 15분 카운터(태그호이어 까레라 스키퍼)나 45분 카운터(튜더 블랙 베이 크로노)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도 60분을 넘기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60분에서 끊어줘야 1시간 단위로 지속적인 측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시간 체계에서 분침은 절대 60분의 원형 감옥을 벗어날 수 없다. 마치 신화 속 시지프스처럼 끝에 도달하는 순간 시작 지점으로 돌아가고, 영원히 반복된다.
내가 문스와치 1965의 크로노그래프 측정 방법을 알 수 없었던 건, 이 시계가 기존의 시간 표시 규칙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이 독특한 65분의 카운터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것은 60분의 폐쇄된 구조 바깥에 존재하는 5분을 현실로 소환한다. 그리고 1시간 단위로 끊어져 있는 세계의 규칙에 질문을 던진다. 원래 시간에는 그 어떤 단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을 초, 분, 시간, 일, 월, 연 단위로 분절했고, 덕분에 우리는 모두 같은 시간을 공유하게 되었다. 편리하지만 이 획일적인 구분은 개개인의 시간이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기도 한다.
물론 60분 인덱스가 65분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없던 시간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의 총량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단위가 변하는 것만으로도 견고했던 세계에 균열이 생기고, 닫혀 있던 생각은 열릴 수 있다. 없던 5분, 계속 존재했으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60분 너머의 5분은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도 있을 거다. 나는 그 ‘5분’을 ‘더한’ 메커니즘에서 ‘5초만 더’, ‘다섯 개만 더’를 외치는 요즘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시계 말고 그 얘기를 조금 해보려 한다.
언젠가부터 내가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침에! 몸짱이 되고 싶다거나 살을 빼야겠다는 건 아니었다. 직업 특성상 생존을 위해서는 머리가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몸이 무거우니 뇌도 같이 느려졌다. 당연히 업무 효율은 떨어지고, 스트레스는 늘었다. 글은커녕 책도 읽기 어려워졌다. 사실 젊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운동 따위 없어도 머리는 스스로 잘 굴러갔다. 하지만 이제는 몸이 지치면 곧바로 정신에 타격이 온다. 그러니까 시계로 치면 오버홀 시기가 도래한 거다. 뇌를 하나하나 분해해서 세척해 줘야 하는데, <매트릭스>에 나오는 것처럼 뒤통수에 뭔가를 꼽아서 플러싱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결국 유일한 방법은 뇌와 연결된 몸을 움직이는 것뿐이다. 뇌는 내 의지로 제어할 수 없지만, 몸은 가능하니까. 너튜브의 모든 전문가들도 같은 얘기만 했다. 닥치고 운동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근육도 고통 속에서 자라난다. 힘들어서 더는 못하겠다 싶을 때, 다 관두고 도망치고 싶을 때, 그때부터 근육은 본격적으로 만들어진다. 어쩌면 그 고통의 구간으로 진입하기 위해 오랜 시간 움직여야 하는 것일지도. 그때마다 뇌는 신호를 보낸다. “어서 그만 둬!” “너는 더 이상 할 수 없어” 이즈음의 나는 몹시 지친 상태라 녀석의 입을 틀어막기가 쉽지 않다. 허나 여기서 그만두면 이 고통의 구간으로 진입하기 위해 쌓아온 시간도 사라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이럴 때 내가 외치는 주문이 있다. ‘다섯 개만 더’ 스쿼트든 팔굽혀펴기든 진짜 못할 것 같은 한계가 왔을 때 딱 다섯 개만 더하자는 주문이다. 버티기 운동이면 ‘5초만 더’, 반복하는 운동이면 ‘다섯 개만 더’. 왜 하필 5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10개는 아예 포기할 것 같고, 2~3개는 별 효과가 없을 것 같아서?
아무튼 이 ‘다섯 개만 더’ 주문은 생각보다 효과가 있어서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문을 읊어야 할 타이밍도 늦게 찾아온다. 신기한 건 5개를 더 했을 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거다. 대체로 5개를 더 하고 나면 그 뒤에도 5개 정도를 더 하게 된다. 5개를 더 하는 동안 몸이 고통에 적응을 하고, ‘해냈다’는 성취감이 다음 도전을 자극하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5개를 더하면 10개가 되는데, 그러면 또 5개를 더할 힘이 생긴다. 하나의 행동이 다음 행동을 부르는 것처럼 5개가 다음 5개를 부르며 계속 연결되는 셈이다.
버티기 운동에서 5초를 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보탠 5초는 그 전의 나라면 가지 못했을 새로운 5초의 시간을 만들어낸다. 시간 자체는 그대로지만 5초가 더해지면서 새로운 시간의 분절과 단위가 만들어지고, 결국 그것이 누적되면서 삶의 방향과 기울기를 바꿔 놓는다. 문스와치 1965의 65분이 내게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다. 어쩌면 이 시계가 누군가의 5초, 5분, 5일, 5년을 바꿔놓을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건 한 인간에게 인류 따위가 달에 도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위대한 도약일 수 있다.
스와치는 1965년을 기념하기 위해 65분 카운터라는 괴상한 메커니즘을 시계에 담았다. 나는 거기서 경계 바깥으로 튀어나온 5분을 보았고, 나의 삶과 시계 사이에 새로운 기어 트레인을 놓을 수 있었다. 시계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연결시켜 나가는 것만큼 재밌는 일이 또 있을까. 우리가 소위 ‘탄생시계’라며 자신이 태어난 해에 제작된 빈티지 시계를 수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나와 시계(물건)를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시계를 같은 이야기 축에 놓고 가만히 포개어 두는 것. 그것이 시계를 즐기는 가장 멋진 방법이라고 믿는다.
스와치가 이 시계에 부여한 의미와 내가 이 시계에 부여한 의미는 서로 다르다. 하지만 다르게 읽힐 여지가 열려 있기에 시계는 공산품에서 예술의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예술은 독자의 기대 지평을 열어둔다. 시계 또한 하나의 텍스트다. 우리는 시간을 읽듯이 시계를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보는 것을 넘어 읽어냈을 때 시계의 의미는 더 깊은 곳으로 흐를 수 있다. 그나저나 에세이를 핑계로 문스와치에 너무 많은 의미부여를 해버렸다. 여태껏 잘 참았는데, 아마도 이번 문스와치 1965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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