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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미지아니 CEO 귀도 테레니 인터뷰

현대적인 감각으로 전환점을 마련한 베테랑

  • 이재섭
  • 202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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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locca.com/article/%ed%8c%8c%eb%a5%b4%eb%af%b8%ec%a7%80%ec%95%84%eb%8b%88-ceo-%ea%b7%80%eb%8f%84-%ed%85%8c%eb%a0%88%eb%8b%88-%ec%9d%b8%ed%84%b0%eb%b7%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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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미지아니 CEO 귀도 테레니 인터뷰
Parmigiani Fleurier CEO Guido Terreni

파르미지아니 CEO 귀도 테레니.

지난 4월 워치스 앤 원더스 제네바 2026이 열린 팔렉스포에서 파르미지아니(Parmigiani Fleurier)의 CEO 귀도 테레니(Guido Terreni)와 마주 앉았다. 고급 시계 시장에 대한 탁월한 식견과 풍부한 경험을 소유한 그는 지난 2021년 부임 이후 파르미지아니를 매혹적인 브랜드로 바꿔 놓았다.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터리외를 비롯한 신제품부터 프라이빗 럭셔리까지 오늘날 파르미지아니를 정의하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분량과 명확성을 위해 편집 및 요약됐다. 

파르미지아니 창립 30주년을 축하한다. 당신이 부임한 이후 파르미지아니는 ‘복원’이라는 뿌리에서 '현대적 우아함'으로 성공적인 체질 개선을 이뤘다. 창립 30주년을 기점으로 브랜드가 지향하는 새로운 목표나 비전이 있다면?

브랜드라는 건 사람과도 같다. 언제나 대중에게 흥미로운 존재여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여정을 흔들림 없이 이어가고 있다. 이는 미셸 파르미지아니가 정립한 가치를 온전히 존중하는 길이기도 하다. 지향점은 명확하다. 우아하고, 사적이며, 극도로 절제된 럭셔리. 그와 동시에 시계 제작의 본질에 깊이 뿌리내린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하다. 미셸 파르미지아니는 과거의 시계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터득한 방대한 지식을 새로운 창작으로 나아가기 위한 원천으로 삼았다. 이게 바로 우리가 고수하는 철학이다. 

신제품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터리외는 어떤 시계인가?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며 파르미지아니는 브랜드 철학의 정수를 담은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터리외(Tonda PF Chronograph Mystérieux)를 발표했다. 이 시계는 파르미지아니가 지난 4년간 전개해온 ‘세계 최초(World First)’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혁신적인 작품이다. 3개의 프로젝트 모두 시계 산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컴플리케이션을 다룬다. 첫 번째는 여행자를 위한 GMT 라트라팡테다. 약 200년전에 발명된 라트라팡테 메커니즘을 크로노그래프가 아닌 GMT 기능에 적용한 최초의 시계다. 보수적인 시계 업계에서 이것이 얼마나 파격적인 혁신이었는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다이버 워치에서 볼 수 있는 회전 베젤의 개념을 완전히 뒤엎은 미닛 라트라팡테로, 잠수 시간을 설정하는 기능을 무브먼트에 이식했다. 세 번째는 가장 중요한 기능인 크로노그래프다.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터리외.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테리외는 ‘손목 위에는 우아함만 남겨 놓고, 기능은 오직 필요할 때만 드러나야 한다.’ 라는 파르미지아니의 철학을 대변한다. 이 같은 철학을 크로노그래프에 담아내는 것은 엄청난 과제였다. 아이디어 자체는 명료하다. 크로노그래프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시, 분, 초만 표시하는 완벽한 스리 핸즈 시계의 모습을 유지하지만 8시 방향의 푸시 버튼을 누르는 순간 크로노그래프가 마법처럼 살아난다. 시간을 표시하는 3개의 바늘이 순식간에 하나로 합쳐지며 크로노그래프 핸즈가 되고, 숨어 있던 골드 핸즈가 나타나 현재 시간을 계속해서 표시한다. 이 극적인 순간은 정말이지 아름답다. 리셋을 하면 바늘은 자신들이 어느 시점에서 분리되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해서 본래의 자리로 복귀한다. 이제 크로노그래프 기능은 사라지고 다시 고요한 심플 워치로 돌아간다. 감성적이고, 기술적이면서 동시에 유희적이다. 이 정교한 메커니즘이 손목 위에서 어떻게 구동하는지는 오직 사용자만이 알 수 있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크로노그래프 메커니즘의 재발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신선한 충격이었다.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터리외는 파르미지아니가 워치메이킹을 미래로 이끌어가는 방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미셸 파르미지아니가 브랜드를 창립하며 스스로에게 부여한 사명이기도 하다. 미셸 파르미지아니는 쿼츠 시계가 등장한 직후 기계식 시계의 존립이 위태롭던 시절에 시계 산업에 투신했다. 모두가 쿼츠 시계를 미래의 기술이라고 생각할 때, 25세의 청년은 오래된 시계를 복원하는 고독한 길을 택했다. 당시 기계식 시계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다. 진정한 전통 시계 제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자 했던 미셸 파르미지아니의 비전은 애호가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진짜 애호가들은 시계 제작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셸 파르미지아니는 “우리는 시계 제작이라는 문화유산을 지켜야 한다.” 라고 말했고, 실제로 이를 증명해냈다. 유네스코가 기계식 시계 제작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에게 복원이란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는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지식과 영감을 얻는 원천이다. 그는 시계 제작이 더는 보여줄 게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을 해석하는 새로운 방식과 아이디어가 계속해서 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게 바로 브랜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케이스 두께를 최대한 얇게 만드는 것도 고려했나?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테리외는 크로노그래프의 개념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정립했어야 할 만큼 구조가 복잡하다. 두께를 13mm로 유지한 것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었다. 이 정도 기능을 갖춘 시계 치고는 수긍할만한 크기다. 게다가 착용감도 뛰어나다. 

푸시 버튼 하나로 스타트, 스톱, 리셋을 제어하는 모노푸셔 방식에 플라이백 기능까지 담겨 있다. 크로노그래프를 측정하는 바늘이 시간을 표시하는 금색 바늘이 있는 자리로 즉각 복귀해야 하기에 더블 라트라팡테 구조가 필수적이다. 컬럼 휠이 크로노그래프 전체 기능을, 하나의 수직 클러치가 초침을, 두 개의 수평 클러치가 시침과 분침을 제어한다. 이 모든 메커니즘을 시간당 진동수가 4Hz인 오토매틱 무브먼트 안에 집약했다. 무브먼트의 두께는 6.9mm로, 일반적인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와 비슷한 수준이다. 더군다나 다이얼 중앙에는 무려 5개의 바늘이 겹쳐져 있다. 바늘 사이의 간격은 0.2~0.3mm에 불과하다. 이 같은 구조에도 불구하고 케이스 두께는 톤다 PF 크로노그래프(두께 12.72mm)와 큰 차이가 없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크로노그래프와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케이스 두께를 유지한 것이다. 지름 40mm 케이스에서 가장 이상적이고 우아한 비율을 구현했다고 생각한다.  

토릭(Toric) 신제품에 대해서도 알려달라.
  • 토릭 콴티엠 퍼페추얼.

  • 토릭 프티 세컨드.

브랜드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모델은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터리외 말고도 또 있다. 퍼페추얼 캘린더,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 프티 세컨드로 이어지는 토릭 3부작이다. 이번에는 특별히 무브먼트의 모든 부품을 새롭게 재해석했다. 다이얼 제작에 쓰이는 기요셰를 무브먼트 플레이트에 적용한 것이다. 다이얼은 기존 제품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빛을 다루기 위해 새로운 마감 기법을 적용했다.  

해머드 다이얼(Hammered dial)은 오랜 예술 기법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다.

핵심은 시계 제작의 뿌리를 깊이 탐구하는 것이다. 이는 창립자 미셸 파르미지아니가 수많은 시계를 복원하며 경험한 마감(Finishing)과도 직결된다. 약 500년에 걸친 시계 제작의 역사가 그의 손끝을 거쳐갔다. 우리는 도달하고자 하는 미적 목표에 따라 어떤 마감을 적용할지 결정한다. 이전에 선보인 그레나주(Grenage) 다이얼은 매트하면서 부드럽다. 동시에 빛을 은은하게 머금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분위기를 원했다. 토릭의 새로운 다이얼은 표면을 망치로 두드려 불규칙한 질감을 얻는 마틀라주(Martelage) 기법으로 제작했다. 잔잔한 호수에 닿은 빛이 균일하지 않게 흩뿌려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시적이고 아름다운 빛의 외연을 보여준다. 색도 훨씬 더 생동감 있게 전달된다. 스트랩에도 변화가 필요했다. 기존의 매트한 누벅 가죽 스트랩 대신 약간 광택이 나는 악어가죽 스트랩을 매칭해 다이얼과 균형을 이루고자 했다.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에 적용하는 스트랩처럼 안쪽에도 악어가죽을 덧댔다.  

창립 30주년을 준비하면서 미셸 파르미지아니와 나눈 대화나 특별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 톤다 PF GMT 라트라팡테 플래티넘.

  • 톤다 PF 미닛 라트라팡테 플래티넘.

  • 톤다 PF 크로느그래프 미스테리외 플래티넘.

새로운 크로노그래프에 관한 아이디어를 처음 구상한 건 약 4년 전이다. 정확히는 2021년 9월이었다.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톤다 PF 미닛 라트라팡테와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터리외에 관한 아이디어가 동시에 머릿속을 스쳐갔다. 마침 미셸 파르미지아니가 사무실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매일 출근하지 않기 때문에 기적 같은 타이밍이었다. 나는 “미셸!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당장 들어봐요.” 라고 소리친 뒤 메커니즘에 관해 설명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던 미셸 파르미지아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렇게 답했다. “복잡하군.” 그는 순식간에 무브먼트의 구조와 실현 가능성을 머릿속으로 계산해 본 것이다. 그러고는 “가능할지 모르겠어. 그래도 일단 해보자고.” 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리고 4년 뒤 우리는 창립 30주년이라는 무대 위에 결과물을 올려놓았다. 미셸 파르미지아니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며, 시계 제작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과 철학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있다. 

파르미지아니는 소유자만이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인 ‘프라이빗 럭셔리’를 강조하고 있다. 프라이빗 럭셔리가 일종의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파르미지아니만의 프라이빗 럭셔리를 어떤 방식으로 지켜갈 생각인가?

내가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5년전만 하더라도 콰이어트 럭셔리(Quiet luxury)를 언급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콰이어트 럭셔리 대신 프라이빗 럭셔리(Private luxury)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콰이어트 럭셔리는 패션 업계가 만들어낸 트렌드다. 오늘의 유행은 내일이면 다른 트렌드에 자리를 내주기 마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라이빗 럭셔리를 소비하는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프라이빗 럭셔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동시대의 유행을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진정한 프라이빗 럭셔리란 깊이 있는 지식과 자신만의 취향을 확립한 사람들을 위한 영역이다. 타인이 선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산다. 성숙한 소비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다. 프라이빗 럭셔리는 비단 시계에만 해당되는 개념이 아니다. 자동차, 음식, 여행 등 삶 전체를 대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철학이다. 파르미지아니가 다이얼에서 브랜드 로고를 제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로고라는 것은 결국 타인에게 브랜드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PF 엠블럼만으로도 브랜드의 정체는 충분히 전달된다. 하지만 그것은 브랜드를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닌 소유자를 위한 것이다. 아는 사람만 알아보는 극도로 절제된 미학이다. 이로써 럭셔리를 경험하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는 셈이다. 그 세계에서 돈이란 단지 입장권에 불과하다. 특정 가격대에 접근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될지 언정, 프라이빗 럭셔리를 온전히 누리기 위한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자본이 만든 경계는 그저 바닥(Floor)일 뿐. 그 위로 드높게 열린 천장(Ceiling)을 결정하는 것은 소유자의 안목과 문화적 소양 그리고 고유한 페르소나다.

진정한 프라이빗 럭셔리란 깊이 있는 지식과 자신만의 취향을 확립한 사람들을 위한 영역이다.

프라이빗 럭셔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파르미지아니의 프라이빗 럭셔리는 절제, 우아함, 단순화 같은 가치를 최고 수준의 마감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모든 브랜드는 저마다의 스타일대로 프라이빗 럭셔리를 표현한다. 파르미지아니의 방식은 매우 독창적이며, 흥미로운 존재가 되는 것으로 귀결된다. 프라이빗 럭셔리는 영혼과 감성 그리고 지성을 매료시켜야 한다. 예상치 못한 경이로움을 선사하는 톤다 PF 크로노그래프 미스터리외는 프라이빗 럭셔리에 정확히 부합하는 작품이다. 

토릭 크로노그래프.

30년전까지만 하더라도 럭셔리는 탁월함(Excellence)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많은 브랜드가 과거를 재해석하기 시작하면서 리바이벌이 시작됐다. 아카이브를 뒤져가며 ‘1970년대 모델을 새롭게 선보입니다.’ 라고 말하는 식이다. 결과는 어땠나? 결국 사람들은 빈티지를 구입하러 떠났다. 원작에 담긴 가치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거나 창의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파르미지아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똑같은 제품을 팔아야 하는 대기업이 아니다. 우리는 고객에게 감정, 혁신, 즐거움을 제공한다. 파르미지아니의 고객들은 ‘원하는 시계를 얻기 위해 실적을 얼마나 쌓았는지’,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얼만큼 할인을 받았는지’ 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피니싱은 어떻게 했는지’, ‘다이얼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아이디어를 어떻게 떠올렸는지’ 같은 시계 제작의 본질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그게 바로 프라이빗 럭셔리다. 

나는 파르미지아니가 널리 알려진 거대한 럭셔리 브랜드와 하이엔드 독립 브랜드 사이에 위치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독특한 포지션이 파르미지아니의 경쟁력일까? 파르미지아니는 두 세계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는가?

정확한 지적이다. 파르미지아니는 다수를 상대하는 메인스트림 브랜드가 아니다. 애호가와 컬렉터를 위한 브랜드다. 인위적으로 브랜드를 밀어붙이는 방식은 옳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시장의 수요를 따라가며 유기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창의적이어야 한다. 애호가들은 브랜드에 흥미를 잃는 순간 미련 없이 돌아선다. 올해는 어느 브랜드를 탐닉했다가 내년에는 또 다른 브랜드로 시선을 옮긴다. 우리는 반짝 유행하고 사라지는 어느 한 시즌의 스타가 아닌 지속 가능한 철학을 지닌 브랜드가 되기를 원한다. 

파르미지아니는 가장 고도화된 수직 통합을 이룬 매뉴팩처 가운데 하나다. 향후 제조 역량의 확장이나 기술 혁신에 대한 계획이 궁금하다.

수직 통합을 논할 때 반드시 이해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수직 통합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모든 공정을 내재화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그리 흥미로운 결과를 낳지 못한다. 특정 부품은 전문 업체가 더 잘 만들 수 있다. 시계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100여개의 공급 업체와 협력해야 한다. 모든 것을 혼자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케이스를 직접 제작한다고 해서 다이얼, 크라운, 가스켓까지 다 만드는 것은 아니다. 각 분야마다 전문가가 있다.  

다이얼도 마찬가지다. 마감 기법이 다양하고, 제조 공정이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내재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 기요셰 다이얼의 경우 우리는 최고의 전문가를 찾아 협업하는 방식을 택한다. 외부에 있는 공방에 제작을 맡긴 뒤 내부에서 마무리 작업을 진행한다. 그에 반해 그레나주 다이얼은 만드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제작해야 했다. 미셸 파르미지아니가 온종일 매뉴팩처에 상주하며 기술을 전수했다. 그레나주 다이얼을 만들기 위해서는 은, 주석산, 바다 소금, 증류수를 특정 비율로 혼합한 페이스트가 필요하다. 금으로 만든 판에 페이스트를 바르고 솔로 문질러 독특한 질감을 구현한다. 솔이 두꺼울수록 표면의 입자는 미세해진다. 그레나주는 산업적인 기술이 아니라 미셸 파르미지아니가 되살린 복원의 예술이다. 오늘날 시장에서 볼 수 있는 그레나주 다이얼 10개 중 9개는 레이저를 이용해 만든다. 물론 우리도 레이저를 이용해 손쉽게 만들 수는 있지만 사람의 손으로 빚어내는 전통적인 방식을 기꺼이 고집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고객들에게 궁극적으로 선사하고 싶은 브랜드 경험이기 때문이다. 파르미지아니는 이미 충분히 높은 수준의 수직 통합을 이룩했다. 다이얼 인덱스 제작과 같은 일부 공정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술적 선택일 뿐, 수직 통합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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