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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로랑 페리에 스포트 오토 79

빈티지 스포츠 워치의 변신

  • 김도우
  • 2025.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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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locca.com/article/%ec%b2%ab-%eb%a7%8c%eb%82%a8-%eb%a1%9c%eb%9e%91-%ed%8e%98%eb%a6%ac%ec%97%90-%ec%8a%a4%ed%8f%ac%ed%8a%b8-%ec%98%a4%ed%86%a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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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로랑 페리에 스포트 오토 79

로랑 페리에의 스포츠 워치가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저마다의 강렬한 개성을 자랑하는 독립 시계 브랜드 사이에서, 로랑 페리에는 다소 유행을 거슬러 고전미를 추구하는 브랜드다. 한마디로 ‘클래식’하다. 이는 브랜드의 창립자이자 현존하는 워치메이커 로랑 페리에(Laurent Ferrier) 본인의 스타일이다. 현대에 범람하는 독특한 디자인과 기능을 갖춘 제품들 사이에서, 그는 오히려 고전적인 기계식 시계의 미학을 표현하고 있다.

워치메이커 로랑 페리에. 1968년 스위스 시계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로랑 페리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브랜드를 설립한 건 2009년, 그의 나이 63세가 되던 때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워치메이커로 활약한 로랑 페리에는 파텍 필립의 무브먼트 설계와 프로토타입 제작자로 활약했고, 제품 개발 부서의 책임자를 역임하다 2008년 약 37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퇴사했다. 그는 무려 40년에 가까운 세월을 시계에 몰두했는데, 시계학교를 졸업할 무렵 뜻밖에도 모터스포츠에 열정을 불태운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에 르망(Le Mans) 24에 일곱 번이나 참가했고, 1977년에는 르망 24의 프로토타입 2 부문에서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이후 1979년 크레머(Kremer) 레이싱팀 소속으로 모터 레이싱을 이어갔는데, 이 당시 로랑 페리에와 짝을 이뤄 경주에 참가한 프랑수아 세르바냉(François Servanin)이 브랜드의 공동 창립자다! 결국 로랑 페리에의 시계, 그중에서도 스포츠 워치는 아마 이때부터 싹을 틔운 것이 아닐까 싶다.

  • 모터 스포츠에 열정을 쏟던 시절에 만난 로랑 페리에(왼쪽)와
    브랜드 공동 창립자이자 회장인 프랑수아 세르바냉(오른쪽).

  • 1979년 르망에서 질주 중인 페리에팀의 포르쉐 935.

그리고 브랜드 설립 불과 1년 뒤인 2010년 발표한 첫 번째 작품 ‘갈렛 클래식 투르비용 더블 스파이럴(현 클래식 투르비용)’은 같은 해 GPHG(Grand Prix d’Horlogerie de Genève)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새로운 스타 워치메이커의 탄생을 알렸다. 우아한 디자인부터 두 개의 헤어스프링으로 고정한 밸런스 휠 등 기술적인 면까지 언급할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로랑 페리에 시계를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피니싱이다. 최근 대형 브랜드조차 비용 절감, 즉 생산 합리화라는 핑계로 조금씩 부족해지고 있는 무브먼트 피니싱을 로랑 페리에는 오히려 극대화함으로써 전통적인 워치메이킹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을 부활시켰다. 비교적 보수적인 시계 시장도 지금은 굉장히 다양한 장르로 분화되었지만, 결국 기계식 시계의 가치와 아름다움의 본질은 무브먼트 피니싱이며, 이는 ‘하이엔드’라 불리기 위한 결정적인 요소다. 이후 등장한 다양한 컬렉션들은 21세기에 보기 드문 고전적인 디자인에 압도적인 피니싱이 더해지면서 로랑 페리에를 가장 성공적인 독립 시계 브랜드 중 하나로 만들었다. 

  • 클래식 투르비용 클루 드 파리 다이얼.

  • 더블 스파이럴 투르비용 무브먼트 LF619.01.

2019년, 설립 10주년을 맞이한 로랑 페리에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처음으로 컬렉션을 스포츠 워치로 확장한 것이다. 이는 드레스 워치 라인업이 일정 수준 이상 구축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실 당시 시계 시장에 전례 없는 럭셔리 스포츠 워치 광풍이 불어 그 어떤 브랜드라도 케이스와 브레이슬릿 일체형 시계를 무시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드레스 워치로 일관하던 랑에 운트 죄네도 오디세우스를, 쇼파드도 알파인 이글이라는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며 시류에 올라탔고, 브레게조차 마린을 리뉴얼하며 일체형 러그 스타일에 동참했다.

그랜드 스포트 투르비용 퍼슈트. 티타늄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이다.

다행히 로랑 페리에의 첫 스포츠 워치인 그랜드 스포트 투르비용은 쿠션형 케이스, 원형 글라스 대신 케이스의 외곽 라인을 따라간 모서리가 둥근 사각 베젤 등 기존의 관습을 따르지 않은 디자인만으로도 눈길을 끌었고, 또 한 해가 지나 2020년 발표한 브랜드 최초의 브레이슬릿 역시 볼륨감 넘치는 링크를 조합한 3열 스타일로 차별화를 주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탑재한 무브먼트는 브랜드의 시작이자 상징이라 볼 수 있는 투르비용 칼리버. 이를 다이얼에 드러내지 않은 점이 파텍 필립의 스타일과도 닮았다. 

투르비용 무브먼트에 루테늄 코팅을 더해, 스포츠 워치에 걸맞은 은은한 블랙 톤을 구현했다.

스포트 오토 블루. 티타늄 케이스로 제작했으며, 로랑 페리에의 새로운 도약을 상징하는 모델이다.

그리고 2022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무려 3년만에 개최된 대규모 시계박람회 워치스앤원더스 제네바 2022에서는 더욱 고전적인 스포츠 워치가 등장했다. 먼저 선보인 그랜드 스포트 투르비용과 동일한 형태지만, 지름을 44mm에서 41.5mm로 줄이고 마이크로 로터를 지닌 셀프와인딩 무브먼트를 탑재해 가격적인 접근성을 대폭 높인 ‘스포트 오토 블루’의 탄생이다. 특히 이때는 럭셔리 스포츠 워치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라, 로랑 페리에가 다시 한번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계기가 된 모델이기도 하다. 게다가 모두가 화려함을 추구하는 중에 스포트 오토는 짙은 은빛을 띠는 티타늄 케이스와 브레이슬릿 대부분을 새틴 마감했고, 마찬가지로 무광에 가까운 질감의 블루 그러데이션 다이얼을 더해 마치 빈티지 시계 같은 예스러움을 선사했다. 물론 이런 신선한 마감 덕분에 굉장히 개성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비싸 보이지는 않는다’는 단점도 존재했다. 하지만 며칠 전, 이런 아쉬움을 달래 줄 새로운 스포트 오토가 등장했다. 

Sport Auto 79

스포트 오토 79에 대한 소식은 <뉴스 기사>에서 자세히 다뤘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실물에 대한 감상과 분석 위주로 풀어갈 예정이다. 먼저 티타늄 버전이 빈티지 시계의 노스(New Old Stock) 같은 스타일이었다면, 레드골드 케이스에 따뜻한 크림 컬러 다이얼을 조합한 신제품은 더 없이 화려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야하지는 않다. 여전히 고전적인 감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스포트 오토 특유의 디자인도 한몫 하지만, 결정적으로 반사를 가능한 절제한 마감 방식에 그 이유가 있다. 보통 표면 마감은 거울처럼 반짝이는 미러 폴리싱, 금속의 결을 살려 은은한 반사광을 선사하는 새틴 피니시, 무광으로 질감을 표현하거나 소재 특유의 컬러를 강조하는 샌드 블라스트가 있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예를 들면 다이버 워치나 툴 워치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샌드 블라스트는 고급 시계에서 보기 드물고 대부분 새틴과 미러 폴리싱을 적절히 혼용해서 시계를 제작한다. 당연히 미러 폴리싱의 면적이 클수록 시계는 더 화려하게 느껴진다.

반면 스포트 오토 79 같은 경우 베젤, 미들케이스, 브레이슬릿 링크의 모서리 부분만 포인트로 마치 무브먼트의 앙글라주처럼 미러 폴리싱을 했다. 이는 시각적인 포인트가 되는 동시에 시계 어디를 만져도 기분 좋은 촉감을 준다. 게다가 다이얼까지 무반사에 가까운 질감이라 핸즈와 인덱스만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다. 게다가 새틴 피니시는 결의 폭과 깊이에 따라 천차만별의 효과를 내기 때문에 브랜드마다 고유의 특징이 있다. 스포트 오토의 새틴 피니시는 굉장히 세밀한 선을 지녀 일정거리 이상에서는 매끈한 면으로 보이거나, 조도가 낮아질 경우에는 약간의 무늬가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다. 

한때 럭셔리 스포츠 워치 홀리 트리니티라 불린 파텍 필립 노틸러스, 오데마 피게 로열 오크, 바쉐론 콘스탄틴 오버시즈 같은 경우에도 외장의 상당 비율을 새틴 피니시로 반사를 억제했지만, 그 이상으로 눈에 띄는 미러 폴리싱 파트가 존재했고 다이얼 역시 꽤나 반짝이는 반사광을 지녀 이렇게까지 빈티지한 느낌을 주진 않았다. 느낌적으로 현재 스포트 오토 컬렉션과 비교할 만한 모델은 바쉐론 콘스탄틴의 히스토릭 222이 유일하다.  

게다가 이번 신제품의 핵심은 새로운 소재와 컬러 조합에 있다. 아마 공식 사진을 보고 다소 심심하다 생각한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일단 나는 그랬다. 톤온톤 컬러 조합의 장점이자 단점이랄까. 고급스러움과 심심함의 경계는 한 끗 차이라고 생각하는데, 실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스포트 오토 79의 멋진 아우라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예스러우면서도 세련된, 그야말로 완벽한 올드머니 룩이다.

실제로 로랑 페리에 시계의 모든 컬러는 창립자의 까다로운 취향에 맞춰 매우 섬세한 미세 조정을 거쳐 완성된다고 한다. 예전에 한국에 방문한 로랑 페리에의 아들이자 브랜드의 제품 총괄 디렉터인 크리스티안 페리에(Christian Ferrier)의 이야기다. “우리 아버지는 화가 날 정도로 예민하게 컬러를 조정하고 또 조정한다.” 영어 표현을 정확히 옮기기가 어려운데, 이때 설명은 미세한 채도를 맞추기 위해 염료를 극소량씩 반복해서 더해가며 확인을 한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로랑 페리에의 다이얼 컬러는 특유의 질감과 더해져 홈페이지에 기재된 공식 사진과 실제 모습이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 그들의 섬세한 컬러에 실망한 적이 없다. 

실물을 접하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한 스포트 오토 79지만, 뜻밖의 단점도 존재했다. 바로 무게다. 전작인 티타늄 버전은 가볍고 착용감도 상당히 좋아 데일리 워치로 선택하는 분들도 꽤 많다고 들었다. 반면 이번 스포트 오토 79의 무게는 약 265g에 달해, 상당한 중량감이 느껴졌다. 참고로 그랜드 스포트 투르비용 골드 버전의 무게는 무려 310g에 이른다. 물론 티타늄과 디자인은 동일하기 때문에 손목에 닿는 형태와 감촉은 여전히 훌륭하지만, 무게에 민감한 분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

"레드골드로 변신했지만, 스포트 오토만의 예스러운 감성은 여전하다. 완벽한 올드머니 룩이다."
상세 정보
  • 지름 :
    41.5mm
  • 두께 :
    12.7mm
  • 케이스 소재 :
    레드 골드
  • 유리 :
    사파이어 크리스털
  • 방수 :
    120m
  • 스트랩 / 브레이슬릿 :
    레드 골드 브레이슬릿(레드 골드 폴딩 버클)
  • 다이얼 :
    크림
  • 무브먼트 :
    LF270.01
  • 방식 :
    셀프와인딩
  • 기능 :
    시, 분, 초, 날짜
  • 시간당 진동수 :
    28,800vph(4Hz)
  • 파워리저브 :
    72시간
  • 가격 :
    1억 4000만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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