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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 시계, 끝없는 우주를 담다

시간 측정의 근원을 파고들다

  • 이재섭
  •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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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locca.com/article/%ec%b2%9c%eb%ac%b8-%ec%8b%9c%ea%b3%84-%eb%81%9d%ec%97%86%eb%8a%94-%ec%9a%b0%ec%a3%bc%eb%a5%bc-%eb%8b%b4%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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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 시계, 끝없는 우주를 담다

하늘의 운율을 작은 기계로 구현하는 메커니즘으로 환원하는 시계. 우주도, 시계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천문 시계에 어찌 눈이 가지 않으랴. 천문 시계 제작은 천체의 복잡다단한 움직임을 연산하는 알고리즘은 물론이고 천문학, 물리학 등 폭넓은 분야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기계적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우주는 팽창하고, 오차는 좁혀진다. 천문 시계의 매력을 부정할 이는 별로 없겠지만 현실에서 천문 시계와 애호가 사이의 거리는 별과 별 사이의 거리 만큼이나 멀어 보인다. 실제로 천문 시계는 대중성과는 다소 동떨어진 장르다. 때로는 제조사의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한 상징적 도구로써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왜 천문 시계는 우리의 일상과 멀어졌을까? 이는 현대인이 영위하는 삶과 하늘 사이의 간극이 넓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옛 사람들은 태양의 남중, 달의 차고 기움, 별자리의 이동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파악했다. 이는 종교 의식이나 농사와 직결된 중요한 행위였다. 허나 문명의 첨단을 걷는 지금, 누구도 하늘을 읽어 시간을 구하지 않는다. 수 천년간 축적된 천문학적 지식은 만인에게 공개되어 있다. 시계 다이얼 위에서 재현되는 천체의 정보는 신비로운 사유의 대상이 아니다. 팍팍한 현생을 사느라 한가로이 밤하늘을 조망할 여유조차 사라진 탓일지도 모른다. 다른 컴플리케이션과 비교해도 사정은 비슷하다. 천문 시계는 크로노그래프처럼 역동적이지 않고, 캘린더보다 실용적이지도 않다. 게다가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천문학적인 가격표를 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안티키테라 메커니즘. ©National Geographic

1410년에 완성된 프라하 천문 시계. ©Wikipedia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문 시계는 우주를 향한 경외감과 아담한 케이스에 광활한 우주를 축조하려는 지적 열망이 결합되어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기원전 1~2세기 즈음에 발명한 것으로 추정되는 안티키테라 메커니즘(Antikythera Mechanism)이나 기원전 150년경 그리스의 천문학자 히파르코스가 고안한 아스트롤라베(Astrolabe), 중세 유럽의 대형 천문 탑시계 같은 역사적 유물이 천문 시계로 진화했다고 생각하면 놀랍지 않은가? 무엇보다 천문 시계에는 인간과 우주를 이어주는 낭만이 깃들어 있다. 오늘날 기계식 시계는 감성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천문 시계는 현대 시계 제작의 본질을 훌륭하게 변증하는 수단으로도 볼 수 있다. 

주요 기능

천문 시계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능을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균시차(Equation of Time)다. 균시차는 지구의 타원형 공전 궤도와 자전축의 기울기로 인해 발생하는 진태양시와 인류가 편의를 위해 하루를 정확히 24시간으로 나눈 평균 태양시의 차이를 뜻한다. 즉, 균시차는 실제 태양의 위치를 기반으로 하는 진짜 시간과 우리가 편의를 위해 합의한 가상 시간이 얼마나 어긋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인 셈이다. 균시차는 1년 동안 -16분에서 +14분까지 변한다. 균시차 기능을 구현한 천문 시계는 아날렘마 커브 형태로 제작한 캠(1년에 한 바퀴 회전)과 캠을 따라 바늘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레버를 갖는다. 캠과 레버는 대부분 가려져 있지만 일부는 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달이 차고 기우는 삭망 주기를 시각적으로 묘사한 문페이즈(Moonphase)도 천문 시계의 단골 손님이다. 다만 천문 시계의 문페이즈는 보통의 문페이즈와는 차원이 다른 고도의 정밀함을 추구한다. 일반적인 문페이즈는 삭망 주기를 29.5일(실제 삭망주기는 약 29일 12시간 44분 2.8초)로 단순화해 59개의 이빨을 가진 톱니바퀴를 사용한다. 문페이즈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계산을 통해 최적의 기어비를 도출해야 한다. 문페이즈의 정확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천문 시계의 경우 2백만년에 하루라는 믿기 어려운 오차를 자랑하기도 한다. 평범한 문페이즈의 오차가 122.5년에 하루인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정확한 지 감도 안 온다. 

태양이 아닌 항성을 기준으로 삼는 항성시(Sidereal time)는 특정 항성이 같은 자오선으로 돌아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뜻한다. 항성시는 지구의 자전 시간과 같아 하루를 24시간이 아닌 약 23시간 56분 4초로 계산한다. 매일 밤 같은 시각에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별의 위치가 조금씩 이동해 있는 이유는 항성시와 태양시의 간극 때문이다. 기계식 시계로 항성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항성시와 태양시의 미세한 비율(1: 1.00273790935)을 정교하게 프로그래밍한 기어 트레인이 필요하다. 당연하게도 이런 시계를 완성할 수 있는 제조사는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우리 눈에 비치는 하늘의 모습을 그대로 다이얼에 옮겨놓은 기능도 있다. 북반구 또는 남반구의 밤 하늘에 떠 있는 별의 궤적을 보여주는 셀레스티얼 차트(Celestial chart)는 3차원의 천구를 2차원의 평 디스크 위에 구현한다. 셀레스티얼 차트는 대개 투명한 사파이어 디스크에 별을 새기고 항성시와 연동시킨다. 나아가 얇은 사파이어 디스크를 여러 겹 중첩하여 셀레스티얼 차트를 비롯해 문페이즈, 별자리 등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바늘이나 숫자를 이용하는 다른 천문 기능과 달리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우주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펼쳐 보이는 셀레스티얼 차트는 사용자와 우주 사이를 이어주는 기계적 창문과 같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Sunrise & Sunset)을 알려주는 기능도 있다.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태양이 떠오르고 지는 시간을 표시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의 위도와 자전축의 기울기, 공전 궤도를 반영한 특수 캠과 이를 추적하는 랙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로 인해 일출 및 일몰 기능은 균시차 기능과 짝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일출 및 일몰 기능은 서브 다이얼과 바늘을 이용하거나 다이얼 바깥쪽에 설치한 셔터가 늘어나고 줄어들며 낮과 밤의 길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태양과 달을 비롯해 행성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기능은 시계 속에 우주를 압축해 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시계는 플라네타리움(Planetarium)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플라네타리움의 뜻이 천체 투영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을 찾을 수 없을 듯하다. 오러리(Orrery)라는 고풍스러운 이름이 붙기도 하는데 이는 18세기 최고의 시계 제작자 중 한 명이었던 조지 그레이엄이 4대 오러리 백작 찰스 보일을 위해 천문 시계를 제작한 것에서 유래했다. 다이얼을 수놓은 여러 행성이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회전하는 장면은 놀라움을 넘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난제와 맹점

천문 시계는 소비자는 물론 제조사에게도 넘기 힘든 거대한 장벽과 같다. 신묘한 우주의 섭리를 지름 4cm 남짓의 좁은 공간에서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천문 시계 제작을 까다롭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인류는 1분을 60초, 1시간을 60분, 하루를 24시간, 1년을 365일로 딱 맞추기 위해 소수점 이하의 숫자를 생략했다(주: 달의 삭망 주기 = 약 29.530589일, 지구의 자전 주기 = 약 23시간 56분 4.091초, 1년의 길이 약 365.24219일). 이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오차가 누적된다. 천문 시계는 이 오차를 최소화하는데 집중한다. 변화의 주기를 계산하려면 기어비와 특수한 톱니바퀴 및 부품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균시차나 일출 및 일몰 기능의 경우 수학적 함수가 아닌 비대칭의 변화 곡선을 그린다. 이는 지구의 기울어진 자전축과 타원형 공전 궤도 때문이다. 이를 기계식 메커니즘으로 구현하려면 정밀 가공한 캠을 투입해야 한다. 당연히 가공과 제작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천문 시계는 부품이 많은 관계로 에너지 관리가 중요하다. 부품 수가 늘어날수록 마찰은 커지고 동력은 손실된다. 배럴에서 공급되는 한정된 에너지로 디스크를 포함한 여러 부품을 등시성의 저하 없이 원활하게 구동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작은 공간에 많은 부품을 욱여넣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부품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다듬는 것은 물론이고 배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천문 기능의 오차를 줄이려면 톱니 수가 많은 거대한 톱니바퀴가 필요한데 이는 소형화를 지향하는 시계의 가치와 상충한다. 마지막으로 천문 시계가 지닌 결정적인 한계는 특정 지역에서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수의 천문 시계는 특정 위도와 경도를 기반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 오차가 생긴다. 오차를 수정하기 위해서는 제조사가 시계를 분해해 해당 지역에 맞춰 재설정하는 수밖에 없다. 

천문 시계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대표작
크리스티안 반 더 클라우 CVDK 그랜드 플라네타리움 익센트릭 매뉴팩처

네덜란드의 시계 제작자이자 독립 시계 제작자 협회(AHCI) 정회원이었던 크리스티안 반 더 클라우(Christiaan van der Klaauw)는 1970년대부터 천문 시계 하나만을 고집스럽게 파고들며 이 분야의 권위자가 됐다. CVDK 그랜드 플라네타리움 익센트릭 매뉴팩처(CVDK Grand Planetarium Eccentric Manufacture)는 그런 창립자의 공로를 기리는 동시에 브랜드의 창립 50주년을 기념한다.  

CVDK 그랜드 플라네타리움 익센트릭 매뉴팩처.

무브먼트는 우주라는 테마에 어울리는 장식과 부품으로 가득하다.

태양계를 가장 정밀하고 완벽하게 구현해 낸 이 시계는 세계 최초이자 유일하게 태양과 지구를 비롯한 8개 행성의 공전 궤도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주: 크리스티안 반 더 클라우의 이전 플라네타리움에는 천왕성과 해왕성이 없었다). 수성은 87.97일, 금성은 224.70일, 지구는 365.24일, 화성은 686.98일, 목성은 11.86년, 토성은 29.46년, 천왕성은 84.02년, 해왕성은 164.80년에 한 바퀴 회전하는데 이 같은 수치는 실제 공전 궤도와 같다.  

정교한 메커니즘을 관장하는 모듈은 도합 3,338개의 이빨을 가진 기어 시스템으로 이루어졌다.

기존의 플라네타리움 시계가 제작의 편의를 위해 행성의 공전 궤도를 단순한 원형으로 타협한 것과 달리 이 시계는 케플러의 제1법칙을 충실히 따라 이심률을 적용한 타원 궤도로 설계했다. 태양에 가까워지면 가속하고, 멀어지면 느려지는 행성의 실제 물리적 움직임이 다이얼 위에서 생생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칠흑 같은 밤하늘을 옮겨놓은 어벤추린 글라스 외곽에는 황도 12궁과 월 표시가 영롱하게 빛난다.

조지 다니엘스 스페이스 트래블러 I & II

20세기 시계 제작에서 가장 위대한 워치메이커로 추앙받는 조지 다니엘스(George Daniels)의 마스터피스. 그는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내추럴 이스케이프먼트를 발전시켜 더블 휠 이스케이프먼트를 고안했고, 이를 바탕으로 평균 태양시와 항성시를 동시에 구현하는 스페이스 트래블러(Space Traveller)를 탄생시켰다. 독립된 2개의 기어트레인이 각각 평균 태양시와 항성시를 표시하는 것이 주된 원리였다. 평균 태양시와 항성시의 차이를 위해 기어트레인은 서로 다른 기어비를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더블 휠 이스케이프먼트에 사용된 2개의 이스케이프 휠은 이빨 수가 달랐다(주 : 평균 태양시용 이스케이프 휠은 14개, 항성시용 이스케이프 휠은 13개). 항성시의 오차를 연간 1.27초까지 억제했던 조지 다니엘스는 헨리 다니엘스 교수의 자문을 통해 오차를 약 0.28초까지 줄이는데 성공했다. 

스페이스 트래블러 I. ©Sotheby's

체인에 달린 도구를 이용해 시간을 맞추고 태엽을 감을 수 있다. ©Sotheby's

좌우 대칭의 미학이 돋보이는 디자인은 조지 다니엘스가 평생을 연구했던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에 대한 오마주를 담고 있다. 별 모양의 조각이 있는 왼쪽에는 항성시와 문페이즈 그리고 날짜 기능이 있다. 태양이 떠오른 반대편에는 평균 태양시와 애뉴얼 캘린더가 자리한다. 12시 방향의 균시차 인디케이터는 대칭을 무너뜨리지 않은 채 공백을 효과적으로 메운다.  

스페이스 트래블러 II. ©Sotheby's

크로노그래프 작동 시 평균 태양시 또는 항성시 모드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Sotheby's

조지 다니엘스의 시계 제작에 대한 열정과 지치지 않는 도전은 스페이스 트래블러 II로 이어졌다. 스페이스 트래블러 II는 스페이스 트래블러 I에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추가하며 스페이스 트래블러의 완성도를 한 차원 끌어올렸다. 컴퓨터와 CNC 머신의 도움 없이 조지 다니엘스가 혼자서 완성한 스페이스 트래블러 시리즈는 시계 제작의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으로 기록되고 있다. 

제이콥 앤 코 아스트로노미아 솔라 컨스텔레이션

본업은 주얼리이지만 종종 놀라운 시계를 선보이는 제이콥 앤 코(Jacob & Co.)는 시계 전문 제조사 못지 않은 열정과 도전 의식을 아스트로노미아 솔라 컨스텔레이션(Astronomia Solar Constellations)을 통해 증명했다. 그 어떤 시계보다 강렬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하는 이 시계는 출시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브랜드를 대표하는 모델로 꼽힌다. 

아스트로노미아 솔라 컨스텔레이션.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를 측면에도 설치해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케이스는 천문대처럼 설계했다. 회전하는 위성 플랫폼에 고정된 3개의 행성이 태양을 호위하는 형세다. 매혹적인 색상을 지닌 각각의 행성은 288개의 면을 가진 제이콥-컷(Jacob-cut) 보석으로 제작했다. 바닥을 떠받치는 블루 티타늄 링에는 황도 12궁 별자리와 7개의 행성이 늘어서 있다. 수성은 화강암, 금성은 로도나이트, 화성은 레드 재스퍼, 목성은 피에트사이트, 토성은 타이거 아이, 천왕성은 블루 칼사이트, 해왕성은 라피스 라줄리 원석으로 표현했다. 

태양은 제이콥 컷 옐로우 시트린으로 만들었다.

플라잉 투르비용, 지구, 다이얼, 7개의 행성은 저마다의 축에 의해 고정되어 있으며, 무브먼트 중앙의 축을 중심으로 동시에 회전한다. 1분에 한 바퀴 자전하는 투르비용은 무브먼트의 중심 축과 연동되어 회전하기 때문에 2개의 축을 가진다. 다이얼은 차동 기어를 이용해 정방향을 유지할 수 있게 설계했다. 다이얼은 플랫폼과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지만 속도는 같다. 태양과 행성에 해당하는 4개의 보석은 플랫폼과 동일하게 10분에 1회전한다. 7개의 행성이 있는 티타늄 링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10분에 한 바퀴 회전한다. 사용자는 플랫폼이 1회전하는 10분 동안 우주의 행성과 만들어내는 화려한 안무를 감상할 수 있다. 

크래용 에브리웨어

크래용(Krayon)에브리웨어(Everywhere)는 일출 및 일몰 시간에 영향을 끼치는 다섯 가지 변수인 경도, 위도, UTC 시간대, 날짜, 월을 조작할 수 있다. 사용자는 어느 곳이든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날짜와 장소에서 태양이 뜨고 지는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특정한 장소의 일출 및 일몰 시간만을 표시할 수 있는 일반적인 천문 시계와 분명하게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소형 기계식 계산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높은 편의성과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번뜩이는 독창성만큼이나 레이아웃도 독특하다. 

에브리웨어.

유니버셜 선라이즈 선셋(USS) 칼리버는 595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두께가 6.5mm에 불과하다.

파란색 화살표와 다이얼 중앙의 파란색 바늘이 시간과 분을 알려준다. 12시 방향에는 경도(±180°)와 UTC 시간대를 위한 서브 다이얼이 있다. 전 세계 시간대를 30분 단위로 표시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서머타임을 적용할 수도 있다. 분침 왼쪽에는 위도(±60°), 오른쪽에는 날짜, 위도, 경도 UTC 시간대 셀렉터용 바늘이 놓여 있다. 6시 방향에는 날짜와 월을 위한 서브 다이얼이 자리한다. 일출과 일몰 시간은 밝은 색과 어두운 색으로 구분한 셔터를 이용해 알 수 있다. 케이스 왼쪽에 있는 푸시 버튼을 눌러 모드를 설정한 뒤 크라운을 이용해 설정 값을 변경할 수 있다. 복잡한 기능에 비해 조작법이 간단하다는 것이 이 시계의 비범함이라고 할 수 있다. 

파텍 필립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셀레스티얼 선라이즈 & 선셋 6105G-001

파텍 필립(Patek Philippe)은 1933년 헨리 그레이브스 슈퍼컴플리케이션부터 브랜드 창립 150주년을 기념하는 칼리버 89, 스타 칼리버 2000에 이르기까지 천문 시계 제작의 정수를 계승해왔다. 그 위대한 유산의 현대적 정점이 바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셀레스티얼 선라이즈 & 선셋 6105R-001(Grand Complications Celestial Sunrise & Sunset 6105R-001)이다. 이 시계는 전작인 6102나 6104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일출 및 일몰 기능을 추가했다.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셀레스티얼 선라이즈 & 선셋 6105G-001.

일출 및 일몰 기능을 갖춘 기존 천문 시계는 서머타임을 적용할 때 시간을 1시간 변경하면 일출 및 일몰 메커니즘과 틀어지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파텍 필립은 시침을 한 시간 단위로 움직여도 일출 및 일몰과 날짜 기능이 자동으로 연동되는 메커니즘을 개발했다. 특허를 받은 컴플라이언트 메커니즘(compliant mechanism)은 복잡한 형상을 제작하는데 쓰이는 LIGA 공법으로 제작했다. 컴플라이언트 메커니즘에 달린 2개의 필러(feeler)는 비대칭 타원형의 일출 및 일몰 캠을 따라 움직이며 일출 및 일몰 시간의 변화를 추적한다. 필러가 읽어낸 데이터는 중계 휠(intermediate wheel)을 통해 일출 및 일몰 바늘로 전달된다. 컴플라이언트 메커니즘은 여러 개의 톱니바퀴나 랙이 없어서 유격이 없고, 마찰 및 마모로부터 자유롭다. 덕분에 윤활도 필요 없다. 두께도 0.48mm에 불과해 무브먼트 두께를 7.93mm로 제한할 수 있었다. 

  • 제네바의 위도에 맞춰 가공한 일출 및 일몰 캠은 항성시를 기준으로 보정했으며, 계절에 따라 변하는 하루의 길이 차이를 완벽하게 반영한다.

  • 일출 및 일몰 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다이얼 외곽의 날짜 링을 활용한다. 다이얼 양옆에 배치한 스케일과 숫자를 이용해 일출 및 일몰 시간을 확인하는 방식은 매우 영리하고 직관적이다.

다이얼은 투명한 사파이어 크리스털 디스크와 문페이즈 디스크로 구성되어 있다. 별자리와 은하수를 프린트한 셀레스티얼 차트 디스크는 항성시를 기준으로 회전한다. 타원형의 테두리는 현재 관측 가능한 하늘의 범위를 나타낸다. 그 아래에는 구멍이 뚫린 블랙 PVD 코팅 디스크와 문페이즈 디스크가 놓여 있다. 문페이즈는 달의 삭망 주기(약 28.530589일)에 따라 재현되며, 오차는 3,000년에 단 하루에 불과하다. 

유연한 컴플라이언트 메커니즘은 기존의 피벗 레버를 대체하는 일체형 구조로 제작했다.

셀레스티얼 차트는 제네바(북위 46°12′)에서 올려다본 밤 하늘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제네바가 아니더라도 위도가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사용자라면 동일한 하늘의 모습을 시계에서 볼 수 있다. 한 가운데에는 5개의 흰색 바늘이 꽂혀 있다. 스켈레톤 처리한 바늘은 시와 분을, 얇은 바늘은 일출 및 일몰을, 빨간색 포인터는 날짜를 표시한다. 모든 바늘이 축을 공유하기 때문에 기능을 한 눈에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율리스 나르당 트릴로지 오브 타임

트릴로지 오브 타임.

1985년 아스트롤라비움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시작으로 1988년 플라네타리움 코페르니쿠스, 1992년의 텔루리움 요하네스 케플러에 이르기까지 장장 7년에 걸쳐 율리스 나르당(Ulysse Nardin)은 천문 3부작으로 통하는 트릴로지 오브 타임(Trilogy of Time)을 선보였다. 프릭 이전에 율리스 나르당에게 선구자라는 이미지를 안겨준 이 시계는 20세기 후반 기계식 시계 부흥의 상징이자 브랜드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남아 있다. 기계식 시계가 위기에 처했을 무렵 복잡한 천문 기능에 미래를 걸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할 수 있다. 프릭이라는 걸출한 아이콘에 가려져 있지만 마땅히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아스트롤라비움 갈릴레오 갈릴레이.

1편인 아스트롤라비움 갈릴레오 갈릴레이(Astrolabium Galileo Galilei)는 천문 3부작을 제작한 루드비히 외슬린 박사가 1980년대 초에 복원했던 천문 시계에서 영감을 얻었다. 태양과 달 그리고 별의 위치, 일식과 월식(주: 용 모양의 파란색 바늘이 노란색 해 바늘과 회색 달 바늘과 동시에 겹치는 순간), 문페이즈 등 21개의 기능을 담아냈다. 144,000년에 단 하루의 오차만을 허용하는 정신 나간 정확성 덕분에 1988년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손목시계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플라네타리움 코페르니쿠스.

2편인 플라네타리움 코페르니쿠스(Planetarium Copernicus)는 지동설을 통해 태양계의 중심을 바로잡은 코페르니쿠스에 대한 경의를 담고 있다.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6개 행성(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과 달의 움직임을 추적한다. 행성의 실제 공전 주기는 정밀한 기어비를 통해 구현했다. 다이얼은 총 7개의 링으로 이루어졌으며, 지구 링은 고정되어 있다. 지구로부터 뻗어 나오는 선(30°도 간격)을 이용해 각 행성의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다이얼 바깥쪽에는 황도 12궁과 12개월을 표시해 밤하늘의 별자리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느 방향에 위치하는지를 알려준다. 

텔루리움 요하네스 케플러.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한 텔루리움 요하네스 케플러(Tellurium Johannes Kepler)는 황도(ecliptic)를 바탕으로 태양과 달 그리고 지구를 보여준다. 이 시계는 태양 대신 북극에서 바라본 지구를 중심에 둔 채 주위에 설치한 링을 회전시킨다. 베젤에 설치한 태양은 12시 방향에 고정되어 있으며, 달은 지구 주위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황도는 시계 방향으로 회전한다. 에나멜로 예술성을 더한 지구는 24시간에 한 바퀴 회전한다. 

시간이라는 거대한 우주속에서

톱니바퀴의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이룩한 천문 시계는 단순한 컴플리케이션을 넘어 천체 관측의 역사를 압축한 도구로 평가할 수 있다. 천문 시계가 아무리 정교하다 한들 무한한 세계를 100%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이야말로 기계식 시계가 지닌 불완전함의 미학과 일맥상통한다. 불완전함 속에서 완전함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려는 열망은 우리가 천문 시계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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