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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성의 증표

스위스 시계의 가치를 대변해온 COSC의 도약

  • 이재섭
  • 202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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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성의 증표

정확성은 시계의 본질이자 존재의 이유다. 수백 개의 부품이 맞물리며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의 세계에서 정확성은 단순한 기능을 넘어선 가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스위스 공식 크로노미터 인증 기관, COSC(Contrôle Officiel Suisse des Chronomètres)는 바로 이 정확성이라는 가치를 지켜온 수호자다. 

COSC 르 로클 관측 사무소

과거 스위스에는 지역 별로 시계를 검사하기 위해 설치한 관측 사무소(Bureaux d’Observation)가 있었다. 이 관측 사무소에서는 브랜드 간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검사와 제각각인 절차를 통합하여 공신력 있는 기준을 마련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 결과 5개 주(베른, 제네바, 뇌샤텔, 졸로투른, 보)와 스위스 시계 산업 연맹(FH, Fédération Horlogère)이 힘을 합쳐 1973년 라쇼드퐁에서 COSC를 설립했다. COSC가 발족한 건 마케팅을 위한 도구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다. COSC의 진짜 목적은 품질을 높이고 국제적인 명성을 공고히 하려는 스위스 시계 산업 전체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COSC의 현재

COSC는 공익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기관이다. 이들은 독립과 중립을 지향한다. 1973년 설립 이래 스위스 시계의 정확성을 공식적으로 인증해온 COSC는 크로노미터 인증을 부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스위스에서 생산된 시계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독일이나 일본 등에서 생산된 시계는 COSC 인증을 받을 수 없다. 이런 시계들은 브랜드가 세운 내부 기준을 통해 자체 검사를 실시하거나 COSC가 아닌 다른 기관을 통해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상징성과 규모 면에서 COSC를 뛰어넘는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COSC 검사를 위한 관측 사무소는 르 로클, 비엘, 상티미에까지 총 세 곳에 있다. 해당 지역은 많은 시계 제조사가 운집한 곳으로, 물류 효율성과 간소화를 고려한 결정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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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명의 인력이 근무하고 있는 관측 사무소는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돌아간다. 1년에 관측 사무소가 문을 닫는 날은 고작 15일에 불과하다. 관측 사무소에는 시간 측정의 기준이 되는 원자 시계를 비롯해 무브먼트를 감지하는 광학 카메라, 분당 400rpm이 넘는 속도로 와인딩을 하는 기계, 바늘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고속 디지털 카메라 등 다양한 장비가 구비되어 있다. 

1973년부터 현재까지 COSC 인증을 획득한 무브먼트는 총 54,920,207개다. 2024년 COSC 인증을 받기 위해 관측 사무소를 찾은 무브먼트의 수는 2,558,337개. 그 중 2,376,987의 무브먼트가 COSC 인증서를 받는데 성공했다(주: 르 로클에서 553,225개, 비엘에서 1,258,963개, 상티미에에서 564,799개의 COSC 인증서를 발행했다). 2024년에 스위스가 수출한 기계식 시계는 약 540만개인데 그 중 43%가 크로노미터로 공인된 것이다. 불합격률은 4.7%에 그쳤는데 이는 스위스 시계의 뛰어난 품질을 보여준다. COSC 인증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은 의뢰하는 브랜드가 지불한다. 지난해에는 59개 브랜드가 인증을 받기 위해 COSC의 문을 두드렸다.

까다로운 과정

COSC는 주로 기계식 손목시계를 대상으로 하지만 회중시계나 계측 장비 그리고 쿼츠 손목시계도 인증한다. 기계식 손목시계는 국제 표준 ISO 3159(주: 밸런스 스프링으로 구성된 오실레이팅 기관을 가진 크로노미터 손목시계에 대한 표준)에 명시된 기준을 충족해야 하며, 그 외 다른 시계는 국제 표준 ISO 3159를 바탕으로 마련한 별도의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기계식 손목시계의 경우 15일 동안 5가지 자세와 3가지 온도(8°C, 23°C, 38°C)에서 무브먼트의 작동을 검사한다. 7가지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무브먼트만이 크로노미터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얻을 수 있다. 지름이 20mm가 넘는 기계식 무브먼트에 적용되는 7가지 기준은 아래와 같다. (주: 지름 20mm 미만의 기계식 무브먼트에는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 일 평균 오차(Average daily rate)

: 첫 10일 동안 일 평균 오차가 -4초~+6초 이내여야 한다. 

– 평균 오차 변화율(Mean rate variation)

: 첫 10일 동안 5가지 자세에서 측정한 오차의 평균이 2초를 넘으면 안된다. 

– 최대 오차 변화율(Greatest variation in rates)

: 첫 10일 동안 5가지 자세에서 측정한 오차의 최대값이 5초를 넘으면 안된다.  

– 수평 수직 자세 오차(Difference between rates in horizontal and vertical positions of the watch)

: 수평 및 수직 자세에서 첫째 날과 둘째 날에 측정한 평균 오차와 아홉째 날과 열째 날에 측정한 평균 오차의 차이가 -6초~+8초 이내여야 한다.  

– 최대 편차(Greatest difference in rates)

: 첫 10일 동안의 오차와 일 평균 오차의 차이가 10초를 넘으면 안된다. 

– 온도 변화에 의한 오차(Rate variation as a function of temperature)

: 온도가 1°C 변할 때 발생하는 오차가 ±0.6초를 넘으면 안된다. 

– 오차 복귀율(Rate resumption)

: 첫째 날과 둘째 날의 평균 오차와 마지막 날의 오차의 차이가 ±5초를 넘으면 안된다. 

달라질 결심

COSC는 오랫동안 스위스 시계의 우수성을 알리는 파수꾼의 역할을 맡아왔다. 하지만 그런 COSC 조차도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시대가 바뀌었다. 더 이상 기계식 시계의 가치는 정확성에만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정확성은 기본이요, 파워리저브, 작동 안정성, 항자성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구매를 결정한다. 제조사도 이를 간파하고 자체 기준을 수립해 품질 검사를 진행한다. 스위스 계측학 연방학회(METAS)가 주관하는 마스터 크로노미터(Master Chronometer)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탄생한 새로운 인증 제도다. 부품의 마감과 제조 방식에 대한 기준만을 제시했던 제네바 홀마크(Poinçon de Genève) 역시 다양한 성능 검사를 아우르는 종합 인증 제도로 새롭게 거듭났다. 반면에 COSC는 제대로 된 대응을 보여주지 못했다. 조립된 시계가 아닌 무브먼트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COSC 인증에 대한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이유다. 그랬던 COSC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올해 3월 COSC는 웹사이트를 개편하고, 소비자들과 직접 소통에 나섰다. ‘스위스의 탁월함, 공인되다(Swiss excellence, certified)’ 라는 그들의 모토를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COSC가 새로운 정체성을 창출하려는 이유는 COSC라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함이다. 보다 투명하고 전문적인 인증 제도로 거듭나기 위해 COSC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지난해 11월에는 시계 유산 비엔날레(The Watchmaking heritage biennial) 행사에 맞춰 일반 대중에게 르 로클과 상티미에의 관측 사무소를 개방했다. 방문 예약은 접수 시작과 동시에 마감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여기에 오는 9월에 열리는 제네바 워치 데이즈(Geneva Watch Days) 같은 시계 행사에도 참석해 기계식 시계 제작의 가치를 설파할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제네바 워치 데이즈가 열리는 기간에 COSC는 크로노메트리 경연대회를 개최한다. 40명의 참가자들은 제네바 시계 학교 학생들의 지도 하에 1시간 동안 셀리타 무브먼트를 조정한다. 조정을 마친 무브먼트는 COSC 인증 절차를 거친다. 이후 가장 뛰어난 성능을 달성한 2개의 무브먼트와 수상자를 선정한다. 이 밖에도 COSC는 고급 시계 재단(Fondation de la Haute Horlogerie), 뉴욕 시계 협회(Horological Society of New York), 제네바 워치 데이즈(Geneva Watch Days), CSEM, 워스텝(WOSTEP) 등 다양한 기관 및 단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긴밀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COSC는 브랜드와 협력해 크로노미터 인증 카드를 추가로 발급하기로 했다. 이로써 최종 소비자는 자신의 시계에 들어간 무브먼트의 정보 및 검사 결과를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차세대 첨단 장비 구축과 공정 자동화를 이룩해 효율성과 일관성을 높이는 작업도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고객들에게 신뢰를 주고, 시계 산업과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COSC 인증 그 자체다. 1976년에 확립한 국제 표준 ISO 3159를 거의 그대로 최근까지 고수해온 COSC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주: 2009년에서야 ISO 3159의 개정안이 채택됐다). 기존의 국제 표준 ISO 3159를 유지하면서 보다 강화된 기준을 갖춘 새로운 인증 제도, 일명 슈퍼 COSC(Super COSC)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슈퍼 COSC는 무브먼트가 아닌 조립된 시계를 평가하며, 정확성 뿐만 아니라 충격, 항자성, 방수, 파워리저브 등 실제 사용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변수를 검사하는 고차원의 인증 제도다. COSC는 연말까지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며,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슈퍼 COSC 인증을 시행할 것임을 밝혔다. 

COSC의 사명은 명확하다. 스위스 시계의 탁월함을 공인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키는 기준이 앞으로도 브랜드와 고객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를 차별화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내는 제품의 품질이다. COSC는 중립성을 지키는 동시에 제공하는 서비스를 발전시켜 더 많은 기여를 해 나갈 것이다.

- COSC CEO 안드레아스 바이스(Andreas Wyss)

특정 브랜드에 국한되지 않고 스위스 시계 산업 전반에 적용되는 보편적이고 공신력 있는 기준인 COSC는 대다수의 소비자와 애호가에게 가장 직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지표로 작용하고 있다. 단순한 품질 보증 이상의 의미를 지닌 COSC는 극한의 정확성을 도모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땀과 노력의 결과물이자 스위스 시계 산업이 오랫동안 지켜온 확고한 철학의 상징이다. 이제 COSC는 변화한 환경과 소비자의 기대를 반영하여 재정의되고 있다. 달라진 COSC는 많은 브랜드가 추구할 이상으로, 소비자가 신뢰할 새로운 기준으로, 스위스 시계 산업의 우수한 기술력을 드러낼 기회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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