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건 하우절, <돈의 방정식> 중에서
당신은 우연한 기회(결혼예물, 광고 낚임, 지름신 강림 등등)에 시계라는 물건을 처음으로 손에 넣게 되었다. 이제 당신에게 펼쳐질 미래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 시계 하나로 평생 백년해로한다. 둘째, 하나 둘 개체수를 늘려가며 컬렉터가 된다. 물론 이걸 결정짓는 가장 큰 변수는 당신의 경제력이다. 명심하라. 시계를 구입할 여력이 없다면 당신은 결코 컬렉터가 될 수 없다. 설령 어떻게든 된다고 해도 머지않아 박살 난 통장과 마주하게 될 확률이 높다.
온라인에 워낙 많은 컬렉터들이 넘쳐나서 첫 번째 사례를 희귀종 취급하곤 하는데, 사실 단 하나의 시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내 고등학교 단짝친구 역시 20년 전에 예물로 받은, 스크래치가 거의 ‘랜덤 브러싱’ 수준으로 가득한 태그호이어 링크 하나만 매일 착용하고 다닌다. 물론 그 친구가 세컨드 시계를 구입하지 못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저 시계라는 물건에 관심이 없거나 큰 가치를 두지 않을 뿐이다.
시계에 눈을 돌리지 않은 덕분에 내 친구는 다른 유용한 물건을 구입하거나 가족과 함께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러 시계가 전시된 보관함은, 어쩌면 당신이 얻었을지도 모를 어떤 물건 혹은 경험과 교환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 시계가 럭셔리 워치라면, 꽤 비싼 물건(자동차라든지)이나 경험(고급시계 몇 개면 세계일주도 가능하다)일 가능성이 높다. 당신이 시계 컬렉팅에 좀 더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수많은 브랜드에서 해마다 수많은 매력적인 시계들을 쏟아낸다. 그 중에 당신의 취향과 소유욕을 자극하는 녀석이 적어도 하나는 등장한다. (과연 하나뿐일까?) 현란한 마케팅에 현혹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취향과 맞지 않는 시계를 충동적으로 추가하게 되는 경우도 흔하다. 인생의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시계 수집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혹은 싫어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수많은 상품이 전시된 시장에는 온갖 신호와 소음이 가득하다. 광고에서는 너는 이걸 좋아할 거라고, 이걸 좋아해야 다른 사람들이 너를 좋아할 거라고, 심지어 이걸 좋아하지 않으면 뒤쳐진 사람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런 노이즈를 걷어내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과 닿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당신이 왜 이 시계에 호감을 느끼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걸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냥 좋았어!’, ‘느낌이 딱 왔어!’ (물론 이런 직감의 영역이 매우 중요한 순간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언급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구매의 출발점일 뿐 도착점이 될 수는 없다. 좋다고 느꼈다면 그것이 왜 좋았는지 한 번 더 살펴봐야 한다. 시계의 비율, 크기, 무게 같은 시계의 형태 때문인가? 무브먼트, 컴플리케이션 같은 기계적인 특성 때문인가? 다이얼의 마감, 컬러 같은 미적인 요소 때문인가? 시계 안에 담긴 특별한 서사 때문인가? 브랜드, 주변의 평판 같은 사회적인 가치 때문인가? 이런 여러 이유들을 글로 정리하면 그 시계를 왜 좋아하는지는 물론, 자신이 어떤 것에 더 호감을 느끼는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꼭 그 시계를 구입하지 않더라도 이런 기록들은 훗날 잘못된 선택을 할 확률을 크게 줄여준다.
나는 미적인 요소에 많은 점수를 주는 편이다. 아무리 좋은 시계라도 내가 선호하는 마감과 색감이 아니라면 버킷 리스트에 올리지 않는다. 반대로 다이얼의 컬러와 마감이 마음에 든다면 나머지 요소들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구매할 확률이 올라간다. 취향을 깨닫기까지 나 또한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초보 시절에 구입했던 시계들 중 일부는 현재의 내 취향과 맞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리고 그런 시계들은 당연히 손목에 거의 올라오지 않는다.
아침에 시계를 선택할 때는 취향 이외에도 다양한 것들이 영향을 미친다. 시계는 그저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착용하는 물건이다. 따라서 내가 현재 살고 있는 라이프스타일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주로 입는 옷, 주로 머무는 공간, 주로 만나는 사람, 주로 하는 활동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내가 살아가는 패턴과 맞지 않는 시계는 손목에 올라오기 어렵다. 특히 고려해야 할 것은 평소 복장이다. 주로 입는 옷 스타일과 컬러 등을 고려해 시계를 선택하자. (시계가 식상해졌다면 시계나 스트랩을 바꾸는 것보다 옷을 바꿔보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지나친 보색을 피하고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컬러라면 무난하다. 어떤 옷에든 소화 가능한 블랙이나 실버 다이얼이 기본 아이템으로 선호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의 과거 행동이 결국 자신을 말해준다. 컬렉팅을 오래 했던 사람이라면 내가 그동안 구입했던 시계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방법이다. 크로노그래프가 많다든지, 다이버 워치가 많다든지, 특정 컬러가 많다든지, 분명 눈에 띄는 요소들이 보일 것이다. 그건 당신이 그 요소들을 본능적으로 선호한다는 증거다. 보통은 중복을 피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어떻게든 기존에 소유한 시계와 다른 것을 컬렉션에 추가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한때 그랬었다)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수집에서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다양성에 매몰되어 버리면 정작 그 속에서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놓치게 될 수 있다. ‘내 컬렉션에 없으니까 구입한다’는 함정에 빠지지 말자. 그때까지 내 컬렉션에 없었다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고 빈 구멍을 채워 넣는 식으로 컬렉팅을 하는 건 위험하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시계가 있다. 자신의 좁은 취향 범위 안에서도 얼마든지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그리고 하나만 더. 때로 취향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것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그동안 경험했던 시계들 중에서 빨리 지겨워졌거나 정이 들지 못했던 시계들을 분석해보는 것도 내 취향을 알아차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왜 그 시계가 나와 맞지 않았는지 이유를 하나씩 찾다보면, 그 과정에서 내 취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취향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른 것처럼 취향도 끝없이 변해 간다. 작년에 좋았던 시계가 올해는 좋지 않을 수 있다. 그건 그 시계가 변한 게 아니라 그 시계를 소유한 나와 주변의 맥락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시계를 잘못 샀다고 탓할 필요는 없다. 당신은 과거의 시점에서, 그리고 그때까지의 경험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 시계 또한 자신의 최선을 다했다. 취향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컬렉팅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신의 취향을 파악한다는 건 반복되는 선택을 유심히 관찰하고,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치환하면서 오랜 시간을 자신과 함께한 물건들을 남기는 일이다. 긴 시간이 흘러 보관함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시계가 바로 당신이 좋아하는 시계다. 어쩌면 컬렉팅이란 그들과 만나기 위한 오랜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몇 개의 시계를 수집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까? 사실 정답은 없다. 취향도 경제력도, 시계(+상자)를 보관할 공간도 모두 다르니 말이다. 경제력이 충분하다는 가정 아래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영국의 작가이자 설교자 윌리엄 도슨은 이런 말을 했다. “돈을 아낄 필요가 없어지면 돈이 가져다주는 모든 즐거움이 사라진다.” 원하는 걸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가 사들인 어떤 물건도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 법이다. 요컨대 제약 속에서 노력을 통해 보상을 얻어낼 때 사람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시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이상적인 시계 개수는 3~4개 정도인 것 같다. 1~2개로는 모든 상황을 대처하기에 부족하고, 5개 이상으로 개체수가 증가하면 착용하지 않고 버려지는 녀석들이 하나씩 등장하게 된다. 게다가 기계식 시계라면 착용할 때마다 태엽을 감아줘야 하는 번거로움도 감수해야 한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골디락스 존이 3~4개라는 것. 시계 커뮤니티를 살펴 보면 ‘완벽한 3인방’에 대한 글이나 영상을 자주 볼 수 있다. 완벽한 시계 3개를 어떻게 조합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인데, 시계 컬렉팅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간략하게 정리해 봤다. 꼭 3개가 아니더라도 향후의 컬렉팅에 참고가 될 것이다.
‘땅’, ‘바다’, ‘하늘’이라는 서사에 집중한 컬렉션으로, 시계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컬렉션 방법 중 하나다. 흔히 다이버 워치(바다), 파일럿 워치(하늘)를 하나씩 선택하고 여기에 땅을 상징하는 레이싱 크로노그래프 워치나 필드 워치를 추가하는 식이다. ‘육해공’이라는 수사에 집중함으로써 컬렉션에 의미부여를 할 수 있으며, 장르 분류를 통해 컬렉션의 다양성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이 방법은 ‘육해공’이라는 단일 개념에 의존하기 때문에 자칫 컬렉션이 평범해질 수 있다. 그리고 지나치게 툴 워치 중심의 컬렉션이 될 수밖에 없는 것도 한계점이다. ‘육해공’이라는 개념 자체가 예외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취향이 아닌 시계를 억지로 끼워넣을 확률도 높다. 가장 대중적이지만 어쩌면 가장 위험할 수 있는 컬렉션 방법.
일부 애호가들은 가급적 비슷한 가격대에서 시계를 수집하라고 조언한다. 가격 차이는 일반적으로 품질의 차이로 이어지고, 품질이 떨어지는 시계는 상대적으로 방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가격에 차이를 두는 수집 방법도 있다. 이 조합은 서로 다른 가격대의 시계를 하나씩 구성하는 방식으로, 보다 열린 자세로 시계를 컬렉팅하는 방법이다. 각 가격대에서 제조사들이 제한된 자원으로 어떻게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 살펴보고, 그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컬렉팅을 하면 가격과 무관하게 좋은 시계를 구분하는 안목을 자연스럽게 기를 수 있다. 또한 예산이 한정된 상황에서 하나 정도는 고가 시계에 투입함으로써 전반적인 구매 만족도를 높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가 시계만 집중적으로 착용하게 될 위험 역시 늘 도사리고 있다. 시계의 절대적 품질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각 시계의 미학적인 일관성도 다소 떨어질 수 있다. 예산이 제한적인 사람들은 고가 시계에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클로카 칼럼에서 2025년 기자들의 최애 시계를 선정할 때 구분했던 방법이다. ‘육해공’으로 한정 짓지 않고 시계의 범위를 넓혀서 보다 다양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구성이다. 일체형 브레이슬릿 스포츠 워치나 다이버 워치로 기본 일상적인 상황을 두루 커버하고, 여기에 클래식한 드레스 워치를 더해 포멀한 정장은 물론 캐주얼 정장까지 소화한다. 그리고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을 추가하면서 극단적인 캐주얼 상황까지 대응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가장 균형잡힌 구성이며, 여러 시계 유형을 골고루 경험할 수 있는 조합이기도 하다. 다만 현실적으로 실제 착용 빈도는 스포츠 워치에 과도하게 쏠릴 가능성이 높다. 드레스 워치와 아방가르드 워치는 이론상 이상적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제약으로 인해 잘 안차게 될 수도 있다. 아방가르드 시계는 선택의 폭이 좁고, 대체로 가격이 높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 조합을 원한다면 독립시계 쪽으로 눈을 돌려보는 것도 좋다.
시계를 사용하는 환경이나 상황에 집중한 컬렉션이다. 지샥처럼 험지에서 마구 사용해도 괜찮은 시계 하나, 일상에서 매일 착용하기 좋은 무난한 시계 하나, 그리고 기념일, 외부 행사, 파티 같은 특별한 이벤트에 착용할 수 있는 시계 하나, 이렇게 3개로 구성하는 것. 사용 환경이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라이프스타일(예를 들어 평일에는 사무직이지만 주말에는 거의 대부분 아웃도어 활동을 한다든지)을 갖고 있다면 고려해볼 만하다. 평소 특별한 이벤트가 자주 있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특별한 날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자주 없으니 특별한 날이 아닌가?) 결국 이 방법도 특별한 날에 착용하는 시계는 버려지고, 두 개만 돌려차게 될 수 있다.
장르나 스타일이 같은 3개의 시계를 서로 다른 브랜드로 구성하는 전략이다. 이를 테면 브랜드별로 다이버 워치만 3개, 크로노그래프 워치만 3개, 드레스 워치만 3개로 구성하는 것. 이 방법은 본인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효율을 뽑아낼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만 채웠으니 방치되는 시계도 거의 없을 것이다. 자기 취향만 확고하다면 사실상 가장 만족도가 높은 조합. 다만 시계를 모아놓고 보면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아쉬울 수 있다. 또한 제한된 예산으로 여러 가지 시계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은 실천하기 어려운 조합이기도 하다. 당연하지만 입문자에게는 추천하기 어렵다.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이고 자기 취향이 확고해졌다면 도전해보자.
단일 브랜드에서만 3개 시계를 구성하는 방법이다. 롤렉스에서 ‘서브 마리너 + 데이트저스트 + GMT마스터2’, 오메가에서 ‘문워치 + 다이버300 + 아쿠아테라’, 태그호이어에서 ‘모나코 + 까레라 + 아쿠아레이서’, 브라이틀링에서 ‘내비타이버 + 프리미에르 + 슈퍼오션’, 파네라이에서 ‘라디오미르 + 루미노르 + 섭머저블’을 조합하는 식이다. 누가 이렇게 살까 싶지만 의외로 시계 커뮤니티에서 종종 단일 브랜드 성애자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하나의 브랜드에서 시계를 선택하는 만큼 디자인 언어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고, 일정한 품질을 보장받을 수 있다. 또한 단일 브랜드에서 실적을 쌓으면 브랜드의 행사에 초청되거나 희소한 모델을 손에 넣을 수도 있다. 다만 컬렉션이 지나치게 좁아진다는 건 단점이다. 외부에 시계 애호가가 아닌 특정 브랜드만 소비하는 사람으로 보여질 위험도 크다. 특히 롤렉스라면 더욱 그러하다.
기능이나 외관이 아니라 계절에 따른 사용 환경에 맞춰 컬렉션을 구성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여름에 주로 사용할 강력한 방수 성능의 다이버 워치, 겨울철 소매 안에서도 불편하지 않는 슬림한 필드 워치, 그리고 봄과 가을 시즌에 의상에 맞춰 포인트를 활용할 수 있는 컬러풀한 시계를 갖추는 것이다. 계절에 맞춰서 구분하면 해당 기간 동안 만족도를 크게 높일 수 있고, 예산도 그에 맞게 배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겨울철에는 시계를 바깥에 드러낼 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슬림한 쿼츠 워치를 고르고, 전체 패션에서 시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여름철 시계에 보다 높은 비용을 쓰는 것. 다만 현실적으로 특정 시즌에 하나의 시계만 계속 착용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이 조합을 의미 있게 구현하려면 봄/가을 시즌 시계를 4계절 모두 활용할 수 있는 전천후 시계로 골라야 할 것 같다.
컴플리케이션에 집중한 수집 방법이다. 데이-데이트 혹은 컴플리트 캘린더처럼 캘린더 기능에 특화된 시계, 듀얼 타임 존이나 월드 타이머처럼 GMT 기능에 특화된 시계, 그리고 크로노그래프 워치를 조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산이 넉넉하다면 퍼페추얼 캘린더, 투르비용, 미닛 리피터 같은 컴플리케이션을 추가할 수도 있겠다. 각 기능별로 장르나 디자인을 다르게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각 기능 안에서 여러 조합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 무브먼트의 기계적인 메커니즘에 관심이 많다면 추천할 만한 조합이다. 다만 오늘날 기계식 시계의 컴플리케이션은 대부분 상징적인 것이고 실제로 사용할 일은 많지 않다. 자신의 취향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컴플리케이션에만 집착하면 쓸 데 없이 추가 비용만 지출할 수도 있다. 컴플리케이션 워치는 일반적인 시계에 비해 가격이 꽤 비싸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최근 크리스 나이바우어의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를 재밌게 읽었다. 이 책에서는 인간의 좌뇌와 우뇌가 완전히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우리의 모든 정신적 문제들이 좌뇌가 만들어내는 끊임없는 언어화, 구조화, 스토리텔링 등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책에서는 1960년대 분리뇌 환자(간질 치료를 위해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신경다발을 제거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 등장한다.
분리뇌 환자는 좌뇌와 우뇌가 완전히 분리되어 서로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며, 각각의 뇌는 반대쪽 신체 부위를 담당한다. (좌뇌는 오른눈과 오른손, 우뇌는 왼눈과 왼손을 담당한다) 이 상황에서 환자의 좌뇌(오른쪽 눈)와 우뇌(왼쪽 눈)에 각각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당시 실험에서는 좌뇌에 ‘닭발 사진’, 우뇌에 ‘눈 쌓인 풍경’을 보여주었다. (좌뇌와 우뇌는 서로가 뭘 봤는지 알 수 없다) 이후 몇 장의 그림을 보여준 뒤, 처음 그림과 가장 유사한 것을 고르도록 했다. 좌뇌와 우뇌는 각각 정확하게 정답을 골랐다. 눈쌓인 풍경을 봤던 우뇌는 왼손으로 ‘눈치우는 삽’을 골랐고, 닭발을 본 좌뇌는 오른손으로 ‘닭’을 고른 것이다.
분리뇌 환자의 좌뇌(오른쪽 눈)와 우뇌(왼쪽 눈)에 각각 다른 그림을 보여준 뒤, 연관된 그림을 고르게 했다. 좌뇌와 우뇌는 각각 정확하게 정답을 골랐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왜 왼손으로 눈치우는 삽을 선택했죠?”
재밌는 건 그 다음이다. 실험자가 분리뇌 환자에게 물었다.
“왜 왼손으로 눈치우는 삽을 선택했죠”
참고로 대화는 오직 좌뇌만 가능하다. 우뇌에게는 언어 기능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우뇌는 눈 쌓인 풍경을 보았고 눈 치우는 삽을 골랐지만 그에 대해서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뇌가 뭘 봤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좌뇌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당연히 잘 모르겠다고 얘기해야 맞다. 하지만 실험에서 분리뇌 환자는 이렇게 말했다.
“닭발은 닭과 연결되어 있고, 그럼 당연히 청소할 삽이 있어야죠.”
좌뇌가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그럴싸하게 말을 만들어낸 것이다. 또 다른 실험도 있다. 우뇌(왼쪽 눈)에게 ‘웃으세요’라고 적힌 카드를 보여주었다. (다시 말하지만 우뇌와는 대화를 할 수 없다). 환자는 바로 반응해서 웃기 시작했다. 환자(좌뇌)에게 왜 웃느냐고 묻자. 또 엉뚱한 소리를 했다.
“당신들이 실험 때문에 매달 우리 집에 오잖아. 별별 직업도 다 있겠다 싶어서 웃었소.”
사실 이 질문의 정답은 이것이다.
“당신들이 웃으라고 했잖아!”
그밖에도 책에서는 우리의 좌뇌가 어떻게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상황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지, 그리고 이미 일어난 일을 정당화하는지 다양한 사례를 보여준다. 우리가 좌뇌를 갖고 살아가는 한, 세상을 그 자체로 있는 그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는 언제나 세상이나 현상을 해석하고, 분류하고, 구조화한다. 좌뇌가 담당하는 ‘언어’라는 것이 바로 그런 활동의 대표적인 사례이며, 우리가 ‘자아’라고 찰떡같이 믿는 것 역시 어쩌면 좌뇌가 만들어낸 신기루일 수 있는 것이다.
갑자기 뇌과학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시계를 컬렉팅하는 과정에서도 우리의 좌뇌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분류하고, 범주화하며,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시키기 때문이다. (지금 이 칼럼을 쓰는 행위 자체도 이런 프로세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범주화를 통해서만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시계는 그저 시계일 뿐이다. 손목에 찰 수 있는 금속이고, 만지면 차갑고 딱딱하며, 안쪽에는 아름다운 장식 같은 것이 있는데, 뒷면에는 움직이는 뭔가가 있다. 사실 물질이나 존재로서의 시계는 그게 전부다. 크기, 두께, 소재, 기능, 가격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보들은 좌뇌가 범주화한 결과물이다. 시계의 역사적 맥락과 브랜드의 가치, 그리고 심지어 시간이라는 개념조차 말이다.
이 좌뇌가 범주화한 정보에 매몰되어버리면 정작 시계 자체를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마치 우리가 좌뇌의 끊임없는 스토리텔링 능력에 사로잡혀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 속 불안은 대부분 눈앞의 현실을 좌뇌가 마음대로 해석해버리는 데서 온다) 시계를 수집한다는 건 뭘까? 결국 시계의 모든 요소를 범주화하고, 그 각각의 차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판단기준(이 또한 좌뇌의 거짓말일 수 있다)에 맞게 재배치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생각해보라. 어떤 시계를 추가할 때마다 우리는 늘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어내지 않는가? ‘여름휴가 때 편하게 찰 시계가 필요하다’, ‘아직 나는 보라색 시계가 없다’ (그런 건 당신뿐만 아니라 대부분 없는 것이다!), ‘세라믹 시계가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식이다. 이 모든 이유는 다른 시계들과의 관계 속에서 좌뇌가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스토리텔링과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진짜 자신이 좋아하는 시계와 멀어지게 될 수 있다. 실제로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당시 내 보관함에는 특정 컬러가 없었다. 나는 다른 시계들 사이에 그 컬러가 있을 때 매우 멋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과감하게 구입했다. 하지만 막상 그 시계는 내 손목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보관함에 다른 시계와 함께 있을 때는 멋져 보였지만, 정작 내 손목에 올라왔을 때는 나와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컬러 혹은 그 디자인이 없었다면, 자신이 그걸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범주화의 함정에 빠져 계산하기 시작하면 그걸 ‘결핍’으로 이해하게 되고, 채워 넣어야 할 무언가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주로 여윳돈이 생길 때)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좌뇌가 주도하는 편향적 컬렉팅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당신은 그 해결책을 좌뇌 바로 옆에 갖추고 있다. 바로 우뇌를 깨워서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일상에서 우리는 우뇌에 직접 접근할 수 없다. 분명 존재하고 있고 기능하고 있지만 의식하거나 말을 할 수 없다. 언어를 갖지 못한 우뇌는 주로 무의식의 차원에서 활동한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저절로 하는 것들, 두 발로 걷거나 멀리 떨어진 물건을 잡는 활동들은 사실 우뇌의 복잡한 처리 프로세스를 거쳐 ‘단번에’ 수행하는 것들이다. 또한 우뇌가 하는 역할은 주로 직관의 영역이다. 공간을 지각하고, 전체를 단번에 파악한다. 감정이나 느낌 역시 우뇌가 담당한다. 우리가 흔히 ‘직감’이라고 부르는 것, 무언가를 알아냈지만 그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 또한 우뇌의 활동 결과다. 물론 좌뇌가 의식과 언어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뇌는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앞서 분리뇌 환자의 사례에서 봤듯이 우뇌는 아무런 선입견 없이 대상을 관찰하고 있으며, 그것은 좌뇌의 스토리텔링이 제거된,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일 확률이 높다.
이제 이해가 되는가? 시계 컬렉팅에 우뇌를 활용한다는 건, 시계 하나하나를 범주화하고 구조화하지 않고, 각각의 시계를 개별적인 존재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좌뇌는 우리가 깨어있는 한 계속해서 구조화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요소들을 쪼개고 범주화해서 각각의 카테고리에 이유를 붙여 넣고 라벨링을 한다. 일단 좌뇌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있다. 그건 무의식 안에 숨어 있던 우뇌를 깨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판단을 멈추면 시계의 물리적인 구조가 (심지어 다이얼과 글라스 사이의 빈 공간까지도) 눈에 들어올 것이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것은 분명 당신의 우뇌가 본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다면 그 또한 우뇌가 당신에게 보낸 신호다. “의미를 찾아내고 전체를 이해하는 영역만큼은 ‘의식적인’ 좌뇌가 ‘무의식적인’ 우뇌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때 당신(좌뇌)이 해야 할 일은 그저 우뇌의 신호를 언어로 번역해서 잘 적어두는 것뿐이다.
이 방법을 제대로 사용한다면 아마도 지금까지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서 마음에 들었던 시계도 다시 보이게 될 것이다. 범주화의 오류에서 벗어나 시계를 그 자체로 오롯이 바라보았음에도 어떤 좋은 감정이 남아 있다면, 그 시계야말로 당신의 보관함에 들어가야 할 시계일지 모른다. 당신이 이미 갖고 있던 기존 시계와 완전히 분리된 상태에서 말이다. 이런 태도는 시계의 물리적 특성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와 시계의 역사 속에 담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와 헤리티지 역시 언어로 쌓아올린 것들이다. 좌뇌는 그 이야기를 손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당신의 우뇌는 그 너머의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큰 지출을 결정할 때(예를 들어 자동차를 사는 경우) 직감적인 이끌림 또는 육감을 따른 사람들이, 오랫동안 면밀히 따져 보고 결정한 사람들보다 만족도가 높았다고 한다. 우뇌는 당신(당신의 좌뇌 해석 장치)가 알지 못하는 더 큰 차원의 정보를 이미 알고 있을 수 있다. 물론 사람의 역량은 제각각이기 때문에 직감이 누구에게나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예민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뛰어난 직감을 발휘한다. 모두가 패션 감각이 좋은 건 아니니까.
당신이 진심으로 시계를 좋아한다면 이미 훌륭한 직감의 눈을 갖고 있는 셈이다. 가끔은 당신의 좌뇌 스위치를 잠시 꺼두고, 잠들어 있는 우뇌의 신호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진짜 당신만의 컬렉팅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당신의 현재 컬렉션은 과거에 했던 수많은 선택의 합이다. 한꺼번에 여러 개의 시계를 구입하지 않는 이상, 대체로 시계 구입은 시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그 모든 선택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당신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시계 혹은 경험에 기반하여 새로운 시계를 선택한다. 즉, 당신이 지금 구입하는 시계는 그 다음에 구입할 시계의 마중물이 된다.
어떤 분야든 첫 단추를 잘 채워야 한다. 당신이 만약 시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면 주어진 예산 안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첫 번째 시계를 선택하라. 그리고 적어도 1년 이상 착용하면서 그 시계를 면밀히 관찰하라. 언제 이 시계를 차지 않게 되는지, 어떤 상황에서 불편했는지, 시계의 디자인과 사용 환경 등을 고려해서 부족했던 점을 정리한다. 아마도 그 결핍이 두 번째 시계의 가이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시계와 두 번째 시계의 관계 속에서 세 번째 시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후의 시계들 역시 마찬가지다.
앞 단계에서 충분히 고민하고 좋은 선택을 할수록 뒤쪽의 선택도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혹시 당신의 컬렉션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컬렉션이 자신도 모르게 꼬여 있다면, 과거의 선택을 돌이켜보자. 오래 전 잘못 선택했거나 혹은 지금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여전히 현재 컬렉션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수 있다. 이를 테면 지금 어떤 시계가 너무 마음에 들어도 ‘나는 이미 블루 다이얼이 있어’ 혹은 ‘사각 시계는 이미 하나 있는데’ 이런 마음 때문에 그 시계를 고르지 못하고 엉뚱한 시계를 고르게 되는 식이다. 좋은 선택을 잘 연결해 가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혹시나 너무 많이 뒤틀려 있다면 모든 것을 리셋하고 처음부터 다시 그림을 그려가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연결된 수집 과정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속도’와 ‘템포’다. 모건 하우저는 <돈의 방정식>에서 “당신에게 실제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당신이 과거에 겪은 경험과 현재 소유한 것 사이에 가로놓은 ‘차이’뿐”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양’이 아니라 ‘차이’라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시계 컬렉팅을 할 때 중요한 것은 의미 있는 차이(행복)를 최대한 느끼는 것이다. 가격이 되었든 브랜드가 되었든 새로운 만남에서 차이를 느낄 수 있도록 완급조절을 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눈은 이미 높아져서 어지간해서는 차이를 느낄 수 없는데, 정작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시계 생활도 없을 것이다.
이건 비단 시계 컬렉팅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한때 모터사이클에 심취했던 적이 있다. 당시 내가 모터사이클을 타면서 가장 짜릿하고 즐거웠던 순간은 내 인생 첫 바이크였던 125cc 국산 스쿠터를 타고 제주도 여행을 떠났을 때다. 1997년에 생산된 250cc 화석 바이크(스즈키 벤디트)를 2년 동안 고생하며 타다가 800cc 미들급 최신 바이크(BMW F800R)을 탔을 때는 그야말로 하늘을 달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또한 첫 스쿠터를 탔을 때만큼은 아니었다. 또 몇 년이 지나 1200cc 두카티 멀티스트라다의 L트윈 엔진 위에 앉았을 때도 기분이 좋긴 했지만 앞서 첫 미들급 바이크를 탔을 때의 느낌에는 미치지 못했다. 바이크에 대한 경험이 축적되면서 ‘차이’가 점점 줄어든 것이다.
내가 처음 입문할 때부터 값비싼 바이크를 구입했다면 (물론 당시엔 그럴 형편도 아니었지만) 조금씩 업그레이드를 할 때마다 느꼈던 차이의 즐거움을 결코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번에 그냥 롤렉스로 가라”라는 말에는 선뜻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가성비와 비용 절감 측면에서는 가장 효율적인데도 말이다.
시계는 워낙 가격이 높기 때문에 무한정 수집하기 어렵다. 누구나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자신의 취향을 두루 만족시켜줄 효율적인 컬렉팅을 꿈꾼다. 나 역시 한때 파워 포인트와 엑셀을 열어두고 나에게 최적화된 컬렉션을 오래 고민한 적이 있다. 이를 테면 장르별, 컬러별, 기능별로 두루 하나씩 갖춘, 무엇하나 중복되지 않고 어떤 상황에도 대응 가능한 그런 완벽한 컬렉션 말이다. 예를 들어 블랙 다이얼의 세라믹 GMT 파일럿 워치, 그린 다이얼의 티타늄 크로노그래프 레이싱 워치, 블루 다이얼의 스틸 센터 세컨즈 다이버 워치, 그린 다이얼의 골드 스몰 세컨즈 드레스 워치. 뭐, 이런 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고심 끝에 컬렉션을 완성하더라도 거기에 만족하기란 쉽지 않다. 10구 내외의 보관함으로(심지어 100구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 모든 시계의 요소들을 모두 조합할 수는 없다. 마음의 빈칸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심지어 완벽하게 채워졌다고 생각하는 순간(구입하는 바로 그 순간), 새로운 빈칸이 만들어진다. 생존을 위해 우리의 뇌가 원래부터 그렇게 설계되어 있는 까닭이다. 우리는 빈 칸을 보면 채우고 싶고, 채워지는 순간 또 다른 여백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빈 칸이야말로 시계 컬렉션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 아닐까 싶다. 어릴 적 슬라이딩 퍼즐을 해본 적이 있는가? 작은 사각 조각판을 움직여 숫자나 그림을 맞춰나가는 퍼즐 말이다. 이 퍼즐은 하나의 빈 공간이 있어야 성립한다. 게임판 안에 모든 조각이 다 채워져 있다면 어떤 조각도 움직일 수 없다. 하나가 비어 있을 때 비로소 다른 모든 조각들이 순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당신의 컬렉션도 마찬가지다. 결핍처럼 느껴지는 빈칸. 그것으로 인해 욕망이 생겨나고, 변화가 만들어진다. 어떤 시계는 사라지고 또 어떤 시계는 채워진다. 그 변화는 다른 시계의 변화로 이어지고, 어느새 컬렉션의 풍경을 바꿔놓는다.
완벽한 시계 컬렉션이란 과연 존재할까? 설령 존재한다 해도, 그것은 움직일 수 없는 슬라이딩 퍼즐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완벽한 그림으로 맞춰져 있겠지만 정작 어떤 재미나 흥미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컬렉팅을 고정된 슬라이딩 퍼즐처럼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컬렉팅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특정한 정답을 정해두거나 그것을 어떤 도달해야 할 목표나 결과물로 바라보는 것이다. 당신의 컬렉팅은 언제나 붕괴될 위험에 놓여 있고, 그때마다 마음에 스크래치가 생길 것이다. ‘아 괜히 샀어.’ ‘그걸 사지 말았어야 했는데.’ 당신은 끊임없이 과거의 구매를 후회하고, 미래의 구매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현재 당신이 소유한 시계들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 것이다. 컬렉팅을 끝없이 변화하는 과정으로 볼 때 당신은 비로소 슬라이딩 퍼즐의 진짜 재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완성된 그림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까지도 말이다.
모건 하우절은 <돈의 방정식>에서 “가장 훌륭한 의사결정은 ‘머리’와 ‘가슴’이 교차하는 곳에서 이루어진다”고 적었다. 앞으로 당신이 시계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그 모든 교차로를 즐겁고 현명하게 통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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