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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마 피게 퍼페추얼 캘린더의 역사 1부

퍼페추얼 캘린더라는 천문 기능을 통해 살펴보는 오데마 피게의 전통과 역사의 발자취

  • 이재섭
  • 202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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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locca.com/article/%ec%98%a4%eb%8d%b0%eb%a7%88-%ed%94%bc%ea%b2%8c-%ed%8d%bc%ed%8e%98%ec%b6%94%ec%96%bc-%ec%ba%98%eb%a6%b0%eb%8d%94-1%eb%b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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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마 피게 퍼페추얼 캘린더의 역사 1부

올해는 유난히도 창립을 기념하는 거물들이 눈에 띈다. 브레게가 있고, 바쉐론 콘스탄틴도 있다.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도 탄생 150주년을 맞이했다. 중요한 해에는 그에 상응하는 시계를 출시하는 것이 관례다. 21세기에 가장 성공한 브랜드 중 하나로 손꼽히는 르 브라쉬(Le Brassus)의 거인은 퍼페추얼 캘린더로 화려한 연회의 시작을 알렸다. 피날레를 장식할 비장의 무기가 하반기에 등장할 예정이지만 그건 그때 다루기로 하고 이 글에서는 퍼페추얼 캘린더만 조명할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왜 하필 시작이 퍼페추얼 캘린더냐는 것이다. 

2025년 신제품 로열 오크 셀프와인딩 퍼페추얼 캘린더 41mm

자타공인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시계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는 로열 오크 ‘덕분에’ 오데마 피게는 지금의 권좌에 올랐다. 하지만 로열 오크로 ‘인해’ 한편으로는 과소평가되는 면도 없지 않다. 본디 오데마 피게는 로열 오크가 탄생하기 훨씬 전부터 명실상부한 스위스 고급 시계의 핵심 구성원 중 하나였다. 오데마 피게가 인정을 받았던 이유는 컴플리케이션을 다루는 솜씨가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퍼페추얼 캘린더는 오데마 피게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물론 퍼페추얼 캘린더는 오데마 피게의 전유물이 아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퍼페추얼 캘린더에 관해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파텍 필립이 있다. 허나 오데마 피게 없이 퍼페추얼 캘린더의 발전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복잡 시계 전문가

줄 루이 오데마가 견습생 시절에 제작한 회중시계. 퍼페추얼 캘린더, 쿼터 리피터, 데드비트 세컨즈, 문페이즈 기능을 갖고 있다.

오데마 피게가 1887년에 제작한 회중시계. 퍼페추얼 캘린더, 미니트 리피터, 크로노그래프를 한데 모은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다.

오데마 피게는 1882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의 끈을 놓은 적이 없다. 과거에도 오데마 피게는 기계식 시계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밀함을 추구하여 고급 시계의 언어를 구축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다양한 컴플리케이션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했지만 유독 각광을 받았던 분야는 미니트 리피터, 울트라씬 그리고 여러 기능을 한데 묶은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이었다. 퍼페추얼 캘린더도 훌륭한 자산이었지만 상대적으로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 오데마 피게 최초의 캘린더 손목시계. 케이스 넘버는 27819. 무브먼트는 칼리버 10HPVM를 탑재했다. 단 하나만 생산된 것으로 파악된다. 무브먼트는 1921년에 생산했으며, 시계는 1924년 스위스 루체른의 규벨린(Gübelin)에 판매했다.

  • 1950년대 오데마 피게의 캘린더 손목시계 가운데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모델 중 하나인 Ref. 5504. 옐로우 골드 케이스의 지름은 37mm로 당시 기준으로는 아주 큰 시계였다.

회중시계와 손목시계의 과도기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920년대에 파텍 필립과 브레게는 퍼페추얼 캘린더 손목시계를 선보였다. 경쟁자들이 퍼페추얼 캘린더를 통해 기술의 한계에 도전하고 손목시계의 시대를 앞당긴 것과 달리 오데마 피게는 퍼페추얼 캘린더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만, 날짜, 요일, 월 기능을 갖춘 컴플리트 캘린더만큼은 사정이 달랐다. 오데마 피게가 생산한 컴플리트 캘린더 손목시계는 고도의 컴플리케이션을 다루며 습득한 실력과 창의적인 시도를 자양분으로 삼았다. 오데마 피게는 1921년부터 컴플리트 캘린더 손목시계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은 유명 리테일러나 고급 시계 제조사에 판매됐다. 1921년부터 1970년까지 188개의 컴플리트 캘린더 손목시계가 오데마 피게의 이름을 달고 출시됐는데 모델별로 수량이 적어 희소성이 높다. 

첫 번째 퍼페추얼 캘린더 손목시계

트리플 캘린더에 집중했던 오데마 피게는 1948년이 되어서야 퍼페추얼 캘린더 손목시계 정복에 나섰다. 5516이라는 번호가 붙은 오데마 피게의 첫 번째 퍼페추얼 캘린더 손목시계는 중대한 의미를 가진 역사적 유산으로 등극했다. 뒤늦게 퍼페추얼 캘린더 손목시계 제작에 뛰어든 오데마 피게가 어떻게 퍼페추얼 캘린더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걸까? 이유는 Ref. 5516이 윤년 표시 기능을 가진 최초의 퍼페추얼 캘린더 손목시계였기 때문이다. Ref. 5516이 등장하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손목시계에서 윤년을 표시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회중시계에서는 존재했지만 손목시계로 넘어오면서 사라졌던 윤년 기능을 오데마 피게가 되살린 것이다. 다시 말해, 퍼페추얼 캘린더 손목시계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한편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 것이 바로 Ref. 5516이었다. 

윤년 기능을 가진 최초의 퍼페추얼 캘린더 손목시계 Ref. 5516의 세 번째 버전으로 칼리버 13VZSSQP를 탑재했다. 옐로우 골드 케이스로 3개만 제작했다.

Ref. 5516은 4가지 버전으로 나뉜다. 첫 번째 버전은 2개만 제작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하나는 1950년에 규벨린이, 나머지 하나는 1962년에 파텍 필립이 가져갔다. 딱 하나만 생산된 것으로 확인된 두 번째 버전은 첫 번째 버전과 비교하면 문페이즈가 다이얼 12시에서 6시 방향으로 내려왔다. 사실 첫 번째와 두 번째 버전에는 윤년 인디케이터가 없었다. Ref. 5516의 진정한 가치는 세 번째와 네 번째 버전의 토대 위에 세워졌다. 

Ref. 5516의 네 번째 버전

Ref. 5516의 네 번째 버전. 같은 버전끼리도 디자인이 조금씩 다르다.

오데마 피게는 Ref. 5516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버전을 6개 만들었다. 문페이즈는 다시 6시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윤년은 12시 방향에 배치해 훨씬 더 쉽게 식별할 수 있었다. 오데마 피게는 1957년에 Ref. 5516의 마지막 버전을 만들기 시작해 1963년부터 1969년 사이에 모두 판매했다. 그 중 두 개는 오데마 피게 헤리티지 부서(Audemars Piguet Heritage Department)가 소장하고 있다. 오데마 피게와 경쟁했던 파텍 필립은 1981년이 되어서야 윤년 기능을 추가한 Ref. 3450(최초의 셀프와인딩 퍼페추얼 캘린더 손목시계)을 출시했다(주 : Ref. 3450의 전신인 Ref. 3448의 최후기형 모델 중 일부에도 윤년 인디케이터가 있다). 

칼리버 13VZSSQP

칼리버 13VZSSQ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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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5516에 들어간 무브먼트는 핸드와인딩 칼리버 13VZSSQP이다. 칼리버 13VZSSQP는 철저하게 에타블리사주(établissage) 방식으로 제작됐다. 발레 드 주(Valle de Joux)에 있는 수많은 공방은 오데마 피게의 요구 사양에 맞는 부품을 공급했다. 베이스 무브먼트는 크로노그래프로 유명한 밸주(Valjoux)가, 캘린더 메커니즘은 르 브라쉬의 알프레드 오베르(Alfred Aubert)라는 장인이 납품했다. 알프레드 오베르는 이전에도 오데마 피게의 캘린더 워치를 위한 모듈을 제작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오데마 피게의 워치메이커들은 한데 모은 부품을 장식하고 조립 및 조정했다. 이렇게 완성한 시계는 자체 유통망이나 티파니 앤 코, 파텍 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같은 유명 브랜드를 거쳐 팔려 나갔다. 

Ref. 5548

1975년 오데마 피게에 입사한 디자이너 자클린 디미에(Jacqueline Dimier)는 수많은 족적을 남겼다. 1976년에 첫 선을 보인 최초의 여성용 로열 오크도, 1978년에 소개한 Ref. 5548도 그녀의 작품이었다. Ref. 5548은 사실상 Ref. 5516의 뒤를 잇는 오데마 피게 퍼페추얼 캘린더 손목시계의 적자였다. 지름 37.2mm, 두께 7.8mm의 케이스는 계단처럼 층이 진 베젤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같은 디자인은 여러 시계에 영향을 끼쳤다. Ref. 5548은 단순한 퍼페추얼 캘린더를 넘어 로열 오크와 함께 쿼츠 위기로부터 브랜드를 구출한 일등공신이자 오데마 피게의 도전 정신과 과감하고 혁신적인 DNA를 미래로 전달한 매개체였다. 

Ref. 5548

Ref. 5548은 칼리버 2120/2800을 탑재했던 첫 번째 시계이기도 했다. 칼리버 2120/2800은 예거 르쿨트르의 칼리버 920에 뒤부아 데프라(Dubois Depraz)의 퍼페추얼 캘린더 모듈을 결합한 무브먼트였다. Ref. 5548은 Ref. 5516의 다소 복잡한 디자인을 간결하게 재구성했다. 불필요한 요소를 다이얼에서 들어내고 시간과 캘린더 기능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만 남겨놓았다. 이러한 기조 속에 Ref. 5548에서는 윤년 인디케이터를 볼 수 없었다. 다이얼에는 오직 시간, 날짜, 요일, 월을 가리키는 5개의 바늘만 남았다. Ref. 5548은 여러 정보를 매우 쉽게 읽을 수 있는 편리하면서도 현대적이지만 우아함을 잃지 않은 고급 시계로 인식됐다. 

승부수

시계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무브먼트 중 하나로 평가받는 칼리버 2120/2800은 1978년에 완성됐다. 때는 바야흐로 쿼츠 시계가 합리적인 가격과 압도적인 정확성으로 시계 시장을 뒤흔든 격동의 시기였다. 기계식 시계를 포기하고 기계를 폐기하던 암울한 시절에 오데마 피게가 가장 얇은 셀프와인딩 퍼페추얼 캘린더 무브먼트를 개발했다는 것은 지독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름 28mm, 두께 3.95mm였던 칼리버 2120/2800은 기계식 시계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강조하며 쿼츠 시계에 대항하고자 했던 기계식 시계의 꺾이지 않는 정신을 대변한다. 

칼리버 2120/2800

칼리버 2120/2800은 무너져가는 시계 산업을 바라보며 주저 앉기 보다는 당당하게 맞서 싸우는 것을 택한 세 장인의 손에서 탄생했다. 오데마 피게에서 34년을 근무한 미셸 “르 믹” 로샤(Michel “le Mic” Rochat)와 기술 부서를 설립한 장-다니엘 골레이(Jean-Daniel Golay)는 비밀리에 퍼페추얼 캘린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들은 골판지로 칼리버 2120/2800의 모형을 만들었고, 발레 드 주의 시계 학교의 도움을 받아 설계도를 완성했다. 1972년 로열 오크에 사용한 칼리버 2120에 퍼페추얼 캘린더 모듈을 통합하자는 애프터 서비스 부서의 설립자 윌프레드 버니(Wilfred Berney)의 의견을 수용한 끝에 칼리버 2120/2800은 마침내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격변의 시기에 오데마 피게를 이끌었던 조르주 골레이. 1945년에 입사해 1962년 창립자 가문 출신이 아닌 최초의 디렉터로 임명된 그는 줄곧 울트라씬과 스켈레톤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세 사람은 곧장 오데마 피게의 매니징 디렉터였던 조르주 골레이(Georges Golay)에게 시제품을 들고 갔다. 로열 오크 탄생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조르주 골레이는 퍼페추얼 캘린더를 보고 감명을 받았지만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했다. 당시에는 퍼페추얼 캘린더 손목시계가 매우 드물었다. 시장에서 퍼페추얼 캘린더 손목시계를 양산했던 건 오데마 피게와 파텍 필립 뿐이었다. 따라서 복잡 시계에 대한 수요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쿼츠 시계는 나날이 기계식 시계의 지분을 잠식하고 있었다. 퍼페추얼 캘린더 손목시계를 생산하는 것은 로열 오크를 만든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퍼페추얼 캘린더를 통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 확신했던 조르주 골레이는 159개의 퍼페추얼 캘린더 손목시계를 생산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이는 1924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오데마 피게가 생산한 모든 캘린더 손목시계와 맞먹는 수량이었다. 독특한 디자인 언어와 전문성 그리고 복잡함에 기계식 시계의 미래가 있다고 내다본 그의 선견지명 덕분에 오데마 피게는 재도약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오데마 피게의 새로운 퍼페추얼 캘린더 Ref. 5548은 출시되자마자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오데마 피게는 15년 동안 7,000개가 넘는 퍼페추얼 캘린더를 생산했는데 Ref. 5548이 2,183개를 차지했다. 1984년은 오데마 피게의 역사에서 기록적인 한 해였다. 1,066개의 퍼페추얼 캘린더를 제작했는데 그 중 Ref. 5548이 675개나 됐다. 참고로 Ref. 5548은 1984~1985년에 모델 번호가 Ref. 25548로 변경됐다.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퍼페추얼 캘린더는 모델 별로 수량이 제한적이었다. 100개 이하로 만들어진 모델이 가장 많고, 58개의 모델은 40개 미만, 14개의 모델은 단 1개씩만 제작됐다. 옐로우 골드가 총 수량의 3/4를 차지할 만큼 많았고, 플래티넘이 약 600개로 뒤를 이었다. 가장 수가 적은 건 화이트 골드였다. 

1987년에 생산된 퍼페추얼 캘린더 Ref. 25548BC. 케이스 소재는 화이트 골드다. 당시에는 화이트 골드의 인기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기에 제조 수량이 매우 적었다.

많은 사람들이 로열 오크를 오데마 피게의 구원자로 인식하지만 퍼페추얼 캘린더의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로열 오크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면 퍼페추얼 캘린더는 오데마 피게가 고급 시계 제조사로 남을 수 있도록 해준 발판이자 전통적인 컴플리케이션 부활의 도화선이었다. 퍼페추얼 캘린더를 시작으로 오데마 피게는 세계 최초의 셀프와인딩 투르비용 손목시계(1986년), 미니트 리피터 손목시계(1992년), 그랜드 스트라이크 시계(1994년),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손목시계(1996년)를 잇달아 선보이며 컴플리케이션 부흥의 선구자로 발돋움했다. 

또 다른 아이콘의 탄생

1984년 오데마 피게는 로열 오크에 칼리버 2120/2800를 이식했다. 이는 오데마 피게의 정수이자 제랄드 젠타의 유산인 로열 오크와 오랫동안 갈고 닦은 퍼페추얼 캘린더를 결속하는 숭고한 작업이었다.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는 기계식 시계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시계로, 디자인의 파격과 기술적 탁월함이 합쳐졌을 때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로열 오크와 퍼페추얼 캘린더의 화학적 결합은 필연적이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Ref. 25554ST의 케이스. 로열 오크 Ref. 5402ST의 케이스를 그대로 가져왔다. D1494는 5402ST의 케이스 번호를, 045는 Ref. 25554ST의 시리얼 번호를 의미한다.

  • Ref. 5548의 다이얼 기술 도면. 이 다이얼은 Ref. 25554에서도 사용됐다.

  •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Ref. 25554의 도면. 커렉터를 케이스에 설치하기 위해 육각형 나사의 크기를 줄였다. 4시와 10시 방향의 육각형 나사는 케이스를 관통하지 않는다.

  •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Ref. 25554의 커렉터

오데마 피게는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Ref. 5554(이후 Ref. 25554로 변경)를 제작하면서 많은 난관에 봉착했다. 우선 칼리버 2120/2800은 로열 오크에 들어간 칼리버 2121보다 0.9mm가 두꺼웠다. 이로 인해 기존의 로열 오크 케이스에 칼리버 2120/2800를 수용하는 것이 어려웠다. 로열 오크의 모노코크 케이스를 유지하면서 두꺼운 무브먼트를 담을 묘수가 절실했다. 오데마 피게는 케이스 구조는 유지한 채 베젤의 두께를 2.5mm에서 3.1mm로 늘리는 방안을 가져왔다. 동시에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의 두께를 0.9mm로 줄였다. 참고로 로열 오크 점보(Ref. 5402)의 유리는 두께가 2mm였다. 아울러 베젤의 형태와 베젤과 케이스를 연결하는 방식도 변경했다. 이로써 오데마 피게는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Ref. 25554의 두께를 7.5mm로 제한하는데 성공했다. Ref. 5402의 두께가 7.1mm임을 감안하면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을 추가하고도 별로 두꺼워지지 않은 것이다. 두께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다이얼에서도 이어졌다. 오데마 피게는 로열 오크의 태피스리 패턴을 포기하고 다이얼 제조 업체 스턴(Stern)이 Ref. 5548 용으로 만든 다이얼과 같은 다이얼을 사용했다. 다이얼의 두께는 0.3mm로 동일하지만 캘린더 정보를 표시하는 바늘을 장착하기 위해 카운터 다이얼이 있는 부분을 0.2mm로 줄였다. 아워 마커의 두께도 얇아졌으며, 로고는 아예 없애 버렸다.  

최초의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Ref. 5554

가장 큰 어려움은 퍼페추얼 캘린더를 조정하기 위한 커렉터를 설치하는 일이었다. 로열 오크는 케이스 구조상 외부와 무브먼트 간의 거리가 긴 편이다. 게다가 케이스를 관통하는 8개의 육각형 나사로 인해 커렉터를 설치하는 것이 매우 까다롭다. 결론적으로 오데마 피게는 로열 오크의 디자인을 훼손하지도, 무브먼트의 구조를 바꾸지도 않았다. 커렉터를 설치하기 위해 Ref. 5402에서 사용한 고무 가스켓을 금속 링으로 교체했다. 커렉터가 통과하면서 고무 가스켓이 손상되거나 찌그러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Ref. 25554의 케이싱 링 기술 도면. 커렉터를 설치하고 방수 성능을 유지하기 위해 Ref. 5402에서 사용하던 고무 개스킷을 금속 링으로 대체했다.

아울러 육각형 나사의 크기를 줄여 커렉터를 설치할 공간을 마련했다. 심지어 4시와 10시 방향의 육각형 나사는 케이스를 뚫고 지나가지 않고 단순히 장식용으로만 사용했다. Ref. 25554는 1984년 4월에 열린 바젤월드에서 처음 공개됐지만 같은 해 12월이 되어서야 간신히 판매됐다. 이는 Ref. 25554의 방수 기능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데마 피게가 Ref. 25554의 스테인리스 스틸 버전을 발표한 것은 다음해인 1985년 2월이었다. 

1986-1987년 카탈로그에 함께 실린 Ref. 25554와 Ref. 25654. Ref. 25554는 1987년에 Ref. 25654로 대체됐다.

Ref. 25554(위)와 Ref. 25654(아래)의 케이스.

1989년에 제작된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Ref. 25654BA. 케이스, 브레이슬릿, 다이얼을 전부 금으로 만들었다. © Phillips

  • 1988년에 제작된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Ref. 25654PT. 태피스리 다이얼을 장착했다. © Phillips

  • 1991년에 제작된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Ref. 25636PT. 오픈워크 처리한 다이얼을 통해 퍼페추얼 캘린더 메커니즘을 들여다볼 수 있다. © Phillips

Ref. 25554의 뒤를 이어 1987년에 등장한 Ref. 25654는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가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음을 알린 시계였다. 오데마 피게는 Ref. 25654의 방수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케이스 구조를 변경했다. 그 결과 두께는 8.3mm로 약간 두꺼워졌다. Ref. 25554는 1984년부터 1992년까지 279개, Ref. 25654는 12년간 851개가 생산됐다. 

1991년에 제작된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Ref. 25636BA. © Phillips

칼리버 2120/2800SQ. 1978년부터 1996년까지 6,508개의 칼리버 2120/2800와 791개의 칼리버 2120/2800SQ(오픈워크 버전)이 생산됐다.

칼리버 2120/2800SQ. 1978년부터 1996년까지 6,508개의 칼리버 2120/2800와 791개의 칼리버 2120/2800SQ(오픈워크 버전)이 생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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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오픈워크 모델은 1986년에 데뷔했다. Ref. 25636은 현대 기계식 시계의 본질이 화려한 마감과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에 있음을 증명한 시계였다. Ref. 25636은 10년간 고작 313개만 만들어지는데 그쳤다. 칼리버 2120/2800을 오픈워크 처리하는 데에만 200시간 이상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장인들은 부품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마감해야 했다. 이렇게 완성한 부품이 돋보이도록 다이얼을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대체했고, 처음으로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백을 적용했다. 이런 이유로 케이스의 두께는 8.3mm에서 8.8mm로 늘어났다. 

창립 1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Ref. 25810.OR.01. 12시 방향에 월과 윤년을 각각 표시하는 2개의 바늘을 설치했다. 다이얼 외곽에 있는 숫자로 52주를 표시한다.

숫자 120을 화려하게 각인한 오픈워크 로터와 다이얼 6시 방향의 문페이즈에 적힌 연도 숫자를 통해 120주년 기념 모델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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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5548를 출시했을 때부터 줄곧 퍼페추얼 캘린더에 윤년 기능을 포함시키지 않았던 오데마 피게는 창립 120주년을 맞아 다시금 전통을 되새기기로 결심했다. 1995년에 선보인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주빌리 Ref. 25810의 12시 방향 월 카운터에 윤년 인디케이터가 다시 등장했다. 단순히 윤년 기능을 추가하는데 그치지 않고 Ref. 5516과 동일한 양식을 입혀 자신들의 업적을 상기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Ref. 25810에는 윤년 기능 외에도 52주 표시 기능을 추가했다. 다이얼 중앙에 설치한 바늘이 1부터 52까지 적은 숫자를 가리키며 몇 번째 주인지를 알려줬다. 오데마 피게는 윤년과 52주 기능을 담기 위해 칼리버 2120/2802를 수정한 칼리버 2120/2802를 개발했다. Ref. 25810은 20년뒤인 2015년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쇄신의 마중물이 됐다. 

  • 1994년에 제작된 로열 오크 퍼페추얼 캘린더 Ref. 25686SP. 스테인리스 스틸과 플래티넘으로 케이스를 제작했다. 여러가지 도구를 이용해 무늬를 새긴 투스카니 블루 다이얼이 특징이다.

  • 1997년작 로열 오크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Ref. 25865. 퍼페추얼 캘린더에 미니트 리피터와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까지 갖췄다. 12시 방향에서 문페이즈와 52주, 6시 방향에서 월과 윤년을 표시한다.

  • 2010년에 출시한 로열 오크 이퀘이션 오브 타임 Ref. 26603. 퍼페추얼 캘린더에 일출 및 일몰과 균시차 기능을 추가했다. 칼리버 2120/2800을 기반으로 한 칼리버 2120/2808을 탑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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