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티지란 한 세대에게는 친숙한 과거지만, 다른 세대에게는 신선한 첫 경험이다. 복각 시계가 특별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과거의 디자인을 현대 기술로 복원해 원작이 지닌 시간과 감성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영화 산업에서는 흔히 ‘리메이크’라는 말로 복각의 정신을 즐긴다. 리메이크 영화는 과거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세대의 관객에게 선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만큼은 리메이크라는 말 대신 ‘복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다. 마치 시간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원작을 충실히 오마주한 영화, 바로 <탑건: 매버릭>(2022)이다.
<탑건: 매버릭>은 1986년 개봉한 <탑건>의 속편이다. 36년의 시차가 있지만 원작의 상징적 요소는 그대로 남아 있다. 파일럿 워치의 빈티지 자동차, 비행 재킷, 클래식 모터사이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담아내는 원작의 카메라 각도까지 2022년으로 소화했다. 그야말로 잘 만든 복각시계 같다. 영화의 크라운을 천천히 와인딩하면 아마도 그 시절의 향수와 감성을 팽팽하게 되감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뛰어넘은 문화 아이콘 <탑건>
파일럿 사관학교 ‘탑건’을 배경으로 한 <탑건>은 매버릭(톰 크루즈)과 그의 파트너 구스 중위(앤서니 에드워즈)의 우정과 그들이 펼치는 공중전을 그린 블록버스터다. 36년 후 개봉한 속편 <탑건: 매버릭>에서는 과거의 열정을 그대로 간직한 매버릭(톰 크루즈)이 탑건의 교관으로 돌아온다. 그는 구스의 아들 루스터(마일스 텔러)와 만나 공중전을 펼치며 최고의 파일럿 세대교체를 보여준다.
시계로 치면 오리지널 피스인 <탑건>은 그해 최고 흥행작이었고 신드롬을 일으켰다. 당시 스물 넷의 톰 크루즈는 최고의 액션스타이자 패션 아이콘으로 떠올랐으며, 그가 착용한 모든 아이템은 시대적 상징이 되었다. 레이밴의 보잉 에비에이터 클래식, 가와사키 바이크, 배우와 감독의 개인 소장품으로 알려진 항공 점퍼와 카우보이 부츠 등 말 그대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주목받았다. 그렇다면 <탑건: 매버릭>은 과거의 성공과 향수를 어떻게 복각했을까?
복각 시계 같은 영화 <탑건: 매버릭>
“미 해군은 1969년 3월 3일 상위 1% 파일럿을 위한 학교를 창설한다. 사라져 가는 공중 전투 기술을 가르쳐 세계 최고 수준의 전투기 조종사를 배출하겠다는 것이 설립 목표였고, 이는 성공했다. 이 학교의 공식 명칭은 전투기 무기 학교지만 조종사들은 탑건이라 부른다.” (<탑건> 시리즈의 영화 오프닝 중)
<탑건: 매버릭>은 오프닝부터 원작을 완벽히 재현했다. <탑건> 시리즈는 톰 크루즈뿐 아니라 영화 오프닝마저 동일하다. 먼저 ‘탑건’에 대한 설명이 블랙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 다음에 뜨는 영화 타이틀. 서서히 화면이 밝아지면 황토빛 노을이 지는 하늘이 보이고 케니 로긴스의 곡 ‘Danger Zone’이 흘러 나온다. 해군 모함 위에서 출격 준비를 하거나 활강하는 F-14 전투기와 군인들의 움직임이 묘한 긴장감과 기대감을 준다. 음악 리듬은 꼭 미국인이 아니더라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미 해군 최정예 파일럿 사관학교 탑건의 스펙터클한 액션에 대한 예고이자, 원작을 기억하는 관객에게 반가움과 카타르시스를 선물하는 오마주의 서막이다.
매버릭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전투기와 나란히 고속 질주하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원작 <탑건>에서는 가와사키 GPZ900R을 타고 F-14 전투기와 함께 달렸다. 속편에서는 가와사키 닌자 H2와 F-18 슈퍼 호넷으로 업그레이드 되었지만, 둘이 한 방향으로 질주하는 장면은 똑같이 재현되었다. 참고로 1984년 출시된 가와사키 GPZ900R는 현대 스포츠 바이크의 기반이 되었으며, H2는 현대적인 디자인과 카본 섬유 외장을 갖춰 초고속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모델이다. 시간도 흐르고 장비는 발전했지만, 늘 한계에 도전하는 매버릭의 자유로운 영혼은 변함 없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때부터 관객들은 영화 속 원작의 오마주와 이스터에그를 발견하며 영화를 감상하게 된다. 이는 복각 시계를 감상할 때 오리지널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피거나, 브랜드 정체성과 현대화된 기능을 평가하는 시계 애호가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매버릭의 시계, 포르쉐 디자인 크로노그래프 1 오리지널
톰 크루즈가 착용한 시계는 바로 포르쉐 디자인 크로노그래프 1 오리지널이다. 이 시계는 원작에서도 매버릭이 착용했던 동일 모델이다.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의 개인 소장품으로, 톰 크루즈가 직접 그에게서 빌려왔다고 한다. 브룩하이머는 시계를 빌려주면서 “촬영 끝나자마자 돌려달라”고 당부했는데, 실제로도 촬영이 끝난 날 즉시 시계를 챙겨갔다고 한다.
크로노그래프 1은 1972년 창립한 포르쉐 디자인의 첫 시계였다. 디자이너 출신 창립자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가 포르쉐 911의 계기판에 영감 받아 디자인했고, 시계 제조사 오르피나와 합작해 완성했다. 외관과 다이얼이 모두 검정색인 ‘올 블랙’ 시계로 유명했다. 첨단 기술이었던 PVD 코팅을 적용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에는 색상을 고르게 구현하기가 어려워 꽤 도전적인 시도였다. 무브먼트는 자동 크로노그래프의 표준으로 쓰였던 밸쥬 7750으로 추청된다. 3개의 서브 다이얼, 3시 방향에 날짜와 요일 표시 창을 갖췄다.
극 중 대사처럼 ‘세상에서 제일 빠른 인간’인 매버릭에게, 이 크로노그래프 1은 단순한 액세서리 이상이다. 상징적 오브제라 할 수 있다. 영화 34분 지점, 매버릭은 탑건 교관으로서 처음 강의실에 들어서는 장면이 나온다. 카메라는 그의 얼굴이 아닌 시계를 착용한 손을 먼저 비춘다. 그는 교단에서 첫 인사를 나눈 뒤 시계를 착용한 손으로 전투기 F-18 교본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반항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그 여전한 성격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순간. 조금 늙긴 했지만 여전히 매버릭이다.
이 시계는 매버릭과 연인 페니 벤자민(제니퍼 코넬리)을 연결하는 감성적 고리이기도 하다. 페니의 차가 바로 1973년식 포르쉐 911 S이기 때문이다. 두 빈티지 아이템은 둘의 로맨스를 상징적으로 연결한다. 1편에서 매버릭의 연인이었던 샬럿(켈리 맥길리스)의 차는 포르쉐 356 스피드서터였는데, 그는 매버릭이 실의에 빠지자 그를 떠났다. 크로노그래프 1과 포르쉐 911의 페어링이라면, 매버릭과 페니의 사랑이 더 견고하리라.
영화가 개봉한 2022년에 포르쉐 디자인 50주년을 기념해 크로노그래프1 – 올 블랙 넘버드 에디션(Chronograph 1 – All Black Numbered Edition)이 한정판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1972년 오리지널을 충실하게 계승한 이 모델은 양면 7중 반사 방지 코팅한 사파이어 크리스털과 하드 코팅을 적용해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무브먼트 역시 COSC 검정을 통과한 포르쉐 디자인 칼리버 WERK 01.140로 진화했다.
파일럿을 위한 특별한 협업, IWC
<탑건: 매버릭>에서는 탑건의 모든 훈련생에게 IWC 시계가 일괄 보급되었다. 그들이 착용한 모델은 파일럿 워치인 크로노그래프 탑건 “SFTI” 에디션(CHRONOGRAPH TOP GUN EDITION “SFTI”)이다. IWC는 실제 미 해군 전투기 무기학교와 협업해 탑건 시리즈의 상징성을 현실로 구현했는데, <탑건> 속편 제작에 맞춰 발빠르게 탑건 컬렉션을 영화에 제공했다. 덕분에 현실과 영화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한층 더 풍성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 모델은 영화 개봉 전인 2020년에 출시되었다. 미 해군의 타격 전투기 기술 강사 프로그램(Strike Fighter Tactics Instructor)에서 영감 받아 1,500개 한정판으로 생산됐다. 2018년에 캘리포니아주 리모어 해군 항공 기지의 강사들이 브랜드와 함께 개발한 시계다. 영화 속 F-18 슈퍼 호넷과 같은 전투기의 조종석에서도 엄청난 중력을 견딜 수 있게 설계된 진정한 파일럿 워치다. 티타늄과 세라믹의 장점을 결합한 세라타늄 케이스 덕분에 가볍고 단단하며, 극한의 온도와 거친 환경도 견딜 수 있다. 지르코늄 산화 세라믹은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비커스 경도 등급이 높은 소재다. 중앙 초침 끝에 단 빨간색 전투기 장식과 솔리드 케이스백에 새겨진 탑건 로고가 파일럿 워치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디테일이다. 지름 44.5mm의 대형 케이스와 매트한 블랙 다이얼, 화이트 인덱스가 유난히 늠름해보인다. 탑건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무드가 틀림없다.
IWC는 영화용 회중시계도 특별 제작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촌각을 다투는 적과의 전투 장면에서 관제탑에 있는 매버릭의 지원군 혼도(바쉬르 살라후딘)는 IWC 스톱워치를 초조하게 꺼내본다. 빈티지 스톱워치가 클로즈업 되면, 매버릭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게 되어 버린다. 재깍거리는 스톱워치의 소리는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다양한 캐릭터, 다양한 시계
IWC가 합류하기 전 원작에서는 캐릭터의 개성만큼 시계도 다양했다. 구스는 실용적인 카시오 전자시계를 착용했고, 아이스맨(발 킬머)은 은 ‘펩시’ 롤렉스 GMT 마스터 II와 데이저스트 콤비를 차고 파일럿의 품격을 드러냈다. 롤렉스의 GMT 카스터 컬렉션은 1955년 항공 기술의 발달과 함께 등장한 파일럿 모델이다. 1982년에 등장한 GMT 마스터 II는 주빌리 브레이슬릿을 채택했고, 베젤 조정으로 3개 시간대를 표시할 수 있게 발전했다. 날짜 조작과 시간을 동시에 설정할 수 있고 시침을 단독 조작해 시각을 빠르게 설정하는 장점도 갖췄다.
페니 벤자민이 착용한 시계도 주목할 만하다. 그녀의 시계는 메르세데스 밴츠 핸즈가 특징인 롤렉스 익스플로러다. 그 중에서도 흠집에 강한 스틸 모델일 것이다. 높고 거센 파도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당당히 세일링을 즐기는 그녀의 독립적인 성격을 완벽히 반영한 선택이다.
영화도 시계처럼 복각할 수 있다. <탑건: 매버릭>은 심지어 흥행까지 재현했다. 이 성공적인 귀환에는 ‘그때 그 사람들’이 바친 열정이 녹아 있었다. 제작자는 자신의 소중한 타임피스를 내어주며 복각에 완성도를 높였고, 이미 최고인 스타 배우는 스스로 영화의 DNA를 자처해 정통성을 이어갔다. 또한 영화에 영감 받았던 브랜드는 반대로 자사 컬렉션을 영화 소품으로 제공하며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세대 교류의 시너지는 엄청났고, 관객은 추억의 힘을 거부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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