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이 오래 기억에 남는 시계가 있다. 내게는 쇼파드 알파인 이글이 그런 시계였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 2000만 원 이하의 예산으로 스포츠 워치를 구입하기 위해 폭풍 검색을 했고, 그 최종 후보 중 하나가 알파인 이글이었다. 이미지로만 보던 알파인 이글을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한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보통은 디자인이나 컬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기 마련인데, 알파인 이글의 경우에는 루센트 스틸 자체가 다른 모든 판단력을 마비시켰다. 처음에는 직원 분이 실수로 화이트 골드 모델을 보여준 줄 알았다. 그만큼 일반적인 스틸 소재와는 확실히 다른 광택과 색감을 뿜어냈다. 루센트 스틸의 화사한 색감에 쇼파드의 피니싱이 더해진 결과물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마치 미니어처 금괴를 정교하게 이어붙인 듯한 브레이슬릿에는 다른 시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개성이 있었다. (화이트 골드로 착각했던 게 무리도 아니다.)
알파인 이글의 독창성은 브레이슬릿에만 머물지 않았다. 전체적으로는 일체형 브레이슬릿 스포츠 워치의 대전제를 따르고 있지만 세부적인 디테일은 경쟁자들과 완전히 다를 길을 걸었다. 알프스 독수리의 홍채에서 영감을 얻은 다이얼은 세상의 모든 빛을 전부 빨아들일 기세였다. 여기에 독수리 깃털 형태의 중앙 초침은 시계의 스토리텔링 마지막 페이지에 작가의 사인을 적기 위한 펜촉과도 같았다. 베젤에 위치한 8개의 나사 또한 일반적인 젠타 디자인에서 보던 패턴이 아니었다. 동서남북 각 방향으로 2개씩 배열한 나사는 뭔가 이질감이 들면서도 다시 시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요소였다. 스포츠 워치에 로만 인덱스를 사용한 것도 소소하지만 꽤 파격적이었다. 당시 몇몇 하이엔드 브랜드의 스포츠 워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상황에서 알파인 이글은 빌드 퀄리티, 디자인, 가격까지 모두 만족시키는 강력한 지름 후보였다.
당시에는 메탈 브레이슬릿보다 러버 스트랩을 선호했기 때문에 결국 최종 구매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만약 전용 러버 스트랩으로 교체할 수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제했을 거다) 시간은 꽤 흘렀지만 요즘도 알파인 이글은 꼭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은 스포츠 워치다. 지금은 L.U.C 무브먼트를 탑재한 상위 모델을 비롯해 그때보다 훨씬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심지어 러버 스트랩 모델이나 가죽 스트랩 모델도 선택 가능하니 이제 진짜 알프스 독수리 한 마리를 키울 때가 되었나 싶다.
알파인 이글이 품은 이야기는 거의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 당시 22세의 청년 칼-프리드리히 슈펠레(현 쇼파드 회장)는 쇼파드에 갓 합류한 신참으로서 아버지 칼 슈펠레 3세에게 새로운 스틸 스포츠 워치 개발을 제안했다. 당시 쇼파드는 금과 다이아몬드 세공 시계만 생산하던 브랜드였고, 스틸 스포츠 워치라는 장르 자체가 낯선 도전이었다. 칼-프리드리히 슈펠레는 바우하우스 원칙인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미학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계 디자인에 착수했다.
아버지는 처음에 반대했다. 금 시계만 만들던 메종에 스틸 시계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아들은 설득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1980년 바젤월드에서 쇼파드 최초의 스포츠 워치 ‘생 모리츠(St. Moritz)’를 선보였다. 시계 이름은 스위스 알프스의 고급 스키 휴양지 ‘생 모리츠’에서 따왔다. 럭셔리 휴양지에 어울리는 고급 스포츠 워치를 지향한 이 시계는 단숨에 1,000건의 주문을 받아내면서 성공을 거뒀다. 생 모리츠는 이후 15년의 판매 기간 동안 총 50,000개가 출고되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고, 쇼파드를 시계 제조사로 각인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1990년대 말 조용히 단종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스토리가 다시 되살아난 것은 약 40년이 지나서다. 시대 배경과 인물이 살짝 바뀌었을 뿐, 이야기의 플롯은 거의 비슷하다. 13~14세 무렵부터 쇼파드에 인턴으로 드나들던 칼-프리츠 슈펠레(칼-프리드리히 슈펠레 회장의 아들)는 어느 날 아버지의 서랍 속에서 박물관으로 보내질 생 모리츠 몇 점을 발견했다. 처음 보는 일체형 스틸 브레이슬릿에 매료된 그는 이 디자인을 다시 되살리기로 마음먹었다. 박물관에 머물러 있기엔 너무나 아까운 시계였던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 칼 슈펠레 3세가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 칼-프리드리히 슈펠레 역시 처음에는 미온적이었다. 생 모리츠는 쇼파드의 아이콘이고, 아이콘은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칼-프리츠는 할아버지와 의기투합해 프로토타입을 개발했고, 두 사람의 새로운 디자인에 흥미를 느낀 아버지는 결국 마음을 바꿨다. 40년 전,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설득해 생 모리츠를 탄생시켰듯, 이번에는 아들이 아버지를 설득하며 알파인 이글의 씨앗을 심은 것이다.
알파인 이글이 공개되던 날, 공교롭게도 칼-프리츠의 나이는 정확히 22세였다. 40년 전 아버지가 생 모리츠를 만들던 바로 그 나이였다. 세대를 가로질러, 역사의 시계바늘이 완벽하게 한 바퀴를 회전해 새로운 미래를 열었다.
알파인 이글은 단순히 과거의 생 모리츠를 복각한 시계가 아니다. 원작의 핵심 요소들, 즉 노출된 스크루, 입체적인 베젤, 일체형 브레이슬릿 등은 계승하되, 다른 어떤 시계와도 구분되는 알파인 이글만의 정체성을 구축하고자 했다.
경쟁 스포츠 워치와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은 알프스 독수리의 홍채에서 영감을 받은 다이얼이다. 방사형 선버스트 문양이 새겨진 갈바닉 다이얼은 독수리의 눈을 직접적으로 상기시키며, 로듐 도금된 초침의 카운터 웨이트는 독수리 깃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중심을 향해 소용돌이치는 곡선형 패턴이 완전히 새로운 질감과 빛반응을 이끌어낸다. 크라운에는 나침반 문양을 새겼는데, 이는 장엄한 자연을 탐험하라는 일종의 초대장이기도 하다.
아워 마커는 바 인덱스와 로마 숫자 인덱스를 조합했다. 스포츠 워치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로마 숫자를, 그것도 3시와 9시 인덱스는 기울여서 배치한 부분이 꽤 독특하다. 4개의 로마 숫자 인덱스는 베젤에 배치된 4쌍의 나사와 자연스럽게 호응한다. 끝을 살짝 다듬은 배턴 형태의 시분침은 다소 짧고 도톰한 설정으로, 시계의 다부진 인상에 기여한다. 아플리케 방식이라 고급스럽고, 어둠 속에서 블루 컬러로 빛나는 슈퍼 루미노바의 광량도 충분하다. 플랜지에는 미닛 트랙을 분 인덱스를 프린팅했고, 5분 단위로 야광 물질을 도포했다.
생 모리츠의 시그너처인 8개의 나사 디자인을 계승했지만, 전체적인 실루엣은 보다 원형에 가깝게 다듬어졌다. 베젤의 8개 스크루, 폴리싱 처리된 중앙 파츠가 있는 직사각 형태의 브레이슬릿 링크, 케이스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체형 구조 등은 모두 생 모리츠에서 이어받은 요소들이다. 특히 케이스 측면의 돌출부는 생 모리츠의 베젤이 양 옆으로 살짝 튀어나온 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원형 시계라서 평범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각 요소를 하나씩 뜯어보면 디테일이 상당한 수준이다. 여러모로 많은 공정을 거쳤다는 것이 느껴진다. 특히 케이스 측면에서 브레이슬릿으로 이어지는 넓은 면적의 베벨링 작업이 전체 디자인 완성도를 크게 높여준다.
알파인 이글에는 쇼파드가 4년에 걸쳐 개발한 독자적 소재가 처음으로 적용되었다. 바로 루센트 스틸 A223이다. 이 소재는 쇼파드가 오스트리아의 소재 전문 기업 ‘voestalpine High Performance Metals Suisse’ 및 ‘voestalpine Böhler Edelstahl’과 협력하여 개발한 합금으로, 최대 70%의 재활용 스틸로 구성되어 있다. 이름의 ‘223’이라는 숫자는 이 소재의 경도 기준인 223 비커스(Vickers)에서 비롯되었는데, 일반 스틸보다 50% 높은 내마모성을 지녔다. 또한 두 번의 재용해 과정을 통해 순도를 높여 수술용 스틸에 비견될 만한 저자극성을 확보하였다. 물론 럭셔리 시계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주목할 만한 특성은 빛을 반사하는 방식이다. 루센트 스틸의 균질한 결정 구조는 불순물이 극히 적어 화이트 골드에 필적하는 독특한 광채를 발한다. 이 빛은 쇼파드가 ‘에테리얼 인캔데선스(ethereal incandescence)’라 부르는 것으로, 일반적인 스틸 시계들과는 확연히 다른 인상을 만들어낸다.
루센트 스틸 개발은 쇼파드의 ‘지속 가능한 럭셔리를 향한 여정(Journey to Sustainable Luxury)’의 연장선상에 있다. 쇼파드는 2018년부터 모든 귀금속 제품에 100% 윤리적 금만 사용하기 시작했고, 2019년에는 알파인 이글 론칭과 함께 루센트 스틸 A223을 선보였다. 2023년 말부터는 알파인 이글뿐만 아니라 쇼파드의 모든 스틸 시계에 루센트 스틸을 적용하고 있으며, 재활용 스틸 비율을 90%까지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편 알파인 이글의 지속 가능성은 시계 바깥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2019년 알파인 이글 출시와 함께 칼-프리드리히 슈펠레 회장은 알파인 이글의 이름을 딴 ‘이글 윙스 파운데이션(Eagle Wings Foundation)’을 설립해 알프스 생태계 보전 활동을 시작했다. 이 재단의 목표는 야생 동물부터 동식물, 빙하에 이르기까지 알프스의 모든 측면을 보존하는 것이다.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는 레만 호수 지역에 2030년까지 약 80마리의 흰꼬리독수리를 다시 도입하는 것이며, 검독수리 보호를 위한 과학 연구에도 매진하고 있다. 독수리의 시선에서 알프스 주요 봉우리를 촬영하는 ‘알파인 이글 레이스’는 생태보호 캠페인인 동시에 강렬한 브랜드 스토리텔링 수단이기도 하다.
2019년, 알파인 이글은 41mm와 36mm 두 가지 사이즈에, 루센트 스틸·골드·바이메탈·다이아몬드 세팅 등 총 10가지 레퍼런스로 데뷔했다. 무브먼트는 두 가지 사이즈 모두 COSC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은 쇼파드 인하우스 칼리버를 탑재했다. 41mm 모델의 칼리버 01.01-C는 날짜 기능과 함께 60시간의 파워리저브를 제공하며, 36mm 모델에 탑재되는 칼리버 09.01-C는 타임 온리 무브먼트로 42시간의 파워리저브를 갖췄다. 다양한 모델을 선보였지만 역시 대표 모델은 41mm 사이즈의 블루 다이얼과 그레이 다이얼 모델이었다. 두 시계는 차별화된 소재와 디자인으로 쇼파드가 럭셔리 스포츠 워치 시장에 진입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듬해 2020년에는 알파인 이글 XL 크로노가 추가되었다. 데이트 모델에서 크로노그래프 모델로 이어지는 자연스런 컬렉션 확장이다. 크로노그래프 모델은 직경 44mm, 두께 13.15mm의 케이스로 알파인 이글 특유의 디자인에 볼드한 매력을 더했다. 내부에는 COSC 인증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인 칼리버 03.05-C를 탑재했으며, 컬럼 휠과 수직 클러치의 현대적 구성으로 크로노그래프 작동 시 마찰을 최소화했다. 2020년 출시 첫해에는 루센트 스틸 버전과 루센트 스틸·로즈골드 투 톤 버전으로 각각 출시되었다.
2021년에는 250점 한정판으로 알파인 이글 케이던스 8HF(Cadence 8HF)가 공개되었다. 이 시계는 41mm 티타늄 케이스에 시간당 57,600진동(8Hz)의 고주파 무브먼트를 탑재해 뛰어난 정확성을 구현했다.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에도 5등급 티타늄 소재를 사용해 기존 루센트 스틸 모델과 차별화했다. 같은 해 온리워치 자선 경매를 위해 제작한 알파인 이글 XL 크로노는 스위스 화강암 다이얼을 사용한 유니크 피스로, 독수리 눈 다이얼 대신 독수리가 내려다보는 알프스의 풍경을 담았다.
2022년에는 처음으로 풀 옐로 골드 41mm 모델이 추가되었고, 루센트 스틸과 로즈 골드 모델에는 섬세한 파인 그린 다이얼이 도입되었다. 그린 컬러의 트렌드가 알파인 이글의 눈에도 이식된 것. 각막 이식 수술을 마친 알파인 이글 그린 모델은 블루 다이얼 모델 만큼이나 애호가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편 같은 해에는 플라잉 투르비용 모델도 처음 선보였는데, 두께 3.3mm의 LUC 무브먼트를 탑재했으며, 루센트 스틸 케이스에 블루 다이얼을 조합했다. 여성용 33mm 모델도 새롭게 추가되었는데, 특히 베젤과 브레이슬릿에 다이아몬드가 적용된 33mm 로즈 골드 모델이 GPHG 여성시계 부문 후보에 오르며 주얼리 스포츠 워치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밖에도 러버 스트랩 버전의 크로노그래프 모델이 추가되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2023년은 컬렉션의 변화가 큰 시기였다. 기존 모델보다 더욱 얇아진 XPS 모델이 새먼 다이얼로 출시된 것. XPS는 ‘Extra Plat(초슬림)’과 ‘Seconds(스몰세컨즈)’를 조합한 것으로, 쇼파드의 초슬림 스몰세컨즈 무브먼트를 탑재한 모델에 사용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알파인 이글 XPS는 인하우스 LUC 무브먼트를 탑재한 엑스트라 플랫 모델이다. 이 시계에 탑재된 LUC 96.40-L은 제네바 씰을 획득한 두께 3.3mm의 무브먼트로, 22K 골드 마이크로 로터와 트윈 배럴 시스템을 통해 65시간의 파워리저브를 제공한다. 알파인 이글 XPS는 기존의 알파인 이글보다 고급 모델로 자리하면서 알파인 이글의 하이엔드 포지셔닝을 공고히 했다.
한편 2023년 두바이 워치 위크에서는 쇼파드의 주얼리 노하우를 워치메이킹과 결합한 ‘서밋 컬렉션’이 공개되었다. 옐로·화이트·로즈 골드 케이스에 베젤을 젬스톤으로 장식한 네 가지 모델로, 골든 피크, 지날 블루, 발스 그레이 핑크 던 등 알프스의 지명과 풍경에서 이름을 딴 독특한 다이얼 컬러가 그라데이션 젬세팅 베젤과 조화를 이룬다.
컬렉션의 첫 스켈레톤 모델인 알파인 이글 41 XP TT는 2024년 등장했다. L.U.C 96.17-S 무브먼트의 메커니즘을 감상할 수 있는 울트라-씬 스켈레톤 워치로, 티타늄 소재를 사용해 가벼운 무게와 뛰어난 착용감을 실현했다. 또한 티타늄 케이스에 ‘론 블루(Rhône blue)’ 컬러와 블랙 러버 스트랩을 조합한 알파인 이글 XL 크로노 모델도 추가되었다.
알파인 이글 41 XP 프로즌 서밋 모델은 케이스, 다이얼, 베젤, 크라운, 브레이슬릿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성 요소를 화이트 골드로 제작한 뒤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모델로, 그야말로 알파인 이글을 하이 주얼리 워치의 경지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2025년에는 컬렉션 최초로 플래티넘 모델을 선보였다. 알파인 이글 41 XP CS 플래티늄 모델은 ‘쉐이드 오브 아이스’ 블루 그러데이션 다이얼을 적용했고, 중앙 초침을 갖춘 L.UC. 96.42-L 무브먼트로 구동된다.
아울러 쇼파드는 알파인 이글 컬렉션의 세 번째 고진동 시계인 알파인 이글 41 SL 케이던스 8HF도 함께 공개했다. 무게가 75g으로 알파인 이글 컬렉션에서 가장 가벼운 이 시계는 세라마이즈드 티타늄으로 케이스를 제작했다. 뿐만 아니라 무브먼트의 플레이트와 브리지 역시 세라마이즈드 티타늄으로 만들어 경량성을 극대화했다. COSC 인증을 받은 셀프와인딩 칼리버 01.41C는 시간당 진동수가 57,600vph(8HF)임에도 파워리저브가 60시간이나 된다. 이 시계는 스타일, 소재, 무브먼트 등에서 독창성을 보여주며 2025년 GPHG에서 스포츠 워치 부문을 수상했다.
2026년 워치스 & 원더스에서 쇼파드는 세 가지 버전의 새로운 알파인 이글을 선보였다. 세 가지 모두 화사한 파스텔 톤 다이얼이 눈길을 끄는데, 가장 돋보이는 모델은 마운틴 글로우(Mountain Glow) 컬러를 적용한 알파인 이글 41 XPS 모델이다. 다이얼 컬러는 해질녘 알프스 산맥의 봉우리가 마지막 햇살을 받아들이며 따뜻하게 빛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최근 시계 시장의 컬러 트렌드는 블루 계열에서 조금씩 채도를 바꾸며 움직이는 추세다. (올해 박람회에서도 꽤 많은 블루 톤 워치를 만나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쇼파드는 ‘샴페인 골드’에 가까운 파격적인 컬러로 변화를 주었다. 이 다이얼은 황동 판에 전기 도금 처리하여 구현한 것인데, 소용돌이치는 선버스트 다이얼 패턴과 어우러져 마치 금으로 만든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보면 마치 금실로 엮어낸 것처럼 빛 반사가 돋보인다. 지금까지 출시된 알파인 이글 중에서 다이얼의 결이 가장 돋보이는 모델이다. 선버스트 피니싱 특성상 각도에 따라 어두운 영역이 만들어지는데, 블랙과 옐로의 명도 대비 때문에 결이 보다 부각되는 느낌이다.
케이스는 전작 몬테 로사 핑크 버전과 마찬가지로 직경 41mm에 두께 8mm다. 일반적인 알파인 이글 41보다 얇은 두께로 더욱 편안한 착용감을 느낄 수 있으며, 다양하게 스타일링하기에도 좋다. 물론 그럼에도 방수 성능은 100m를 유지했다. 케이스는 동일하지만 브레이슬릿은 달라졌다. 새로운 알파인 이글 41 XPS의 브레이슬릿은 버클에 가까워질수록 좁아지는 형태다. 특히 첫 5개의 링크는 극적으로 폭이 줄어들도록 설계해 기존 모델과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진다. 보다 날렵한 인상을 줄 뿐만 아니라 링크가 작아져 무게도 다소 줄어들었다. 당연히 착용감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또한 이번 브레이슬릿에는 가볍게 당기거나 미는 동작만으로 5mm까지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미세 조정 시스템을 추가했다.
이 시계에 탑재된 칼리버 L.U.C 96.40-L은 쇼파드가 1996년에 자체 개발한 최초의 무브먼트 L.U.C 1.96을 계승하는 무브먼트다. 쇼파드는 1996년 플러리에 매뉴팩처를 완성하고, 이곳에서 첫 인하우스 무브먼트인 L.U.C 1.96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무브먼트의 이름은 창립자의 이니셜과 매뉴팩처 설립 연도를 조합한 것. 개발에는 약 3년의 시간이 걸렸는데, 디자인 과정에는 저명한 워치메이커이자 복원가인 미셸 파르미지아니가 참여하기도 했다. 물론 최종 설계와 제작은 오롯이 L.U.C 매뉴팩처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했다.
L.U.C 1.96(L.U.C 96.40-L)은 파텍 필립의 명기 칼리버 240 이후 처음 등장한 마이크로로터 무브먼트다. 풀 로터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와인딩 효율을 높이고자 양방향 와인딩이 가능하도록 설계했으며, 더 높은 회전 효율을 위해 세라믹 볼베어링을 사용한 최초의 무브먼트이기도 하다. 27.4mm의 작은 사이즈임에도 트윈 배럴로 안정적인 65시간의 파워 리저브를 확보했고, 등시성이 좋은 글루시듀어 밸런스에 브레게 오버코일 타입 헤어스프링을 장착하면서 COSC 인증도 받았다. 이 정도 성능을 갖춘 셀프와인딩 무브먼트임에도 불구하고 두께는 3.3mm에 불과하다. 덕분에 드레스 워치부터 스포츠 워치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활약할 수 있다. 알파인 이글 41 XPS가 8mm의 두께를 갖출 수 있는 것 역시 L.U.C 96.40-L 덕분이다. 마감도 하이엔드에 걸맞은 최고 수준이다. 절묘하게 분할한 브리지 사이에 자리한 22K 골드 로터, 바로 아래 자리한 스완넥 레귤레이터는 시계에 관심 없는 사람들조차 눈길을 줄 만큼 탁월하다. 게다가 뛰어난 전통 방식의 피니싱으로 제네바 실 인증까지 받았다. 발표 당시 칼리버 1.96은 스위스 최고의 셀프와인딩 무브먼트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지금도 기계식 시계의 역사적인 칼리버를 언급할 때 항상 소개되는 명품 엔진이다.
또 다른 신모델은 알파인 이글 41 AM이다. 쇼파드 최초로 안티 마그네틱 밸런스 스프링을 적용한 모델로, 다이얼 6시 방향에 작은 마그네틱 차단 아이콘과 이 기술이 적용된 무브먼트 이름 ‘CAL 01.01-C’를 프린팅했다. 이 무브먼트는 새롭게 개발된 항자성 합금 헤어스프링을 탑재하여 최대 2,000가우스의 자기장에도 견딜 수 있다. 이 정도면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자기장을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다. CAL 01.01-C 무브먼트는 28,800vph(4Hz)의 진동수로 구동되며, 60시간의 파워 리저브와 정확한 시간 설정을 위한 스톱 세컨즈 기능을 갖췄다.
알파인 이글 41 AM에도 새로운 다이얼 컬러가 적용되었다. 알프스에서 영감을 받은 ‘모스 그린’ 컬러는 숲길을 따라 펼쳐진 부드러운 이끼의 자연스러운 광채를 떠올리게 한다. 색감은 최근 유행하는 민트 그린 혹은 피스타치오 그린에 가까우며, 독수리의 홍채에서 영감을 받은 방사형 패턴과 만나 뛰어난 깊이감과 입체감을 만들어낸다. 독수리 깃털 모양의 초침은 블랙 컬러로 적용해 화사한 모스 그린 컬러와 대비를 이룬다. 브랜드 로고, 미닛 인덱스 등 다이얼의 나머지 요소에도 블랙 컬러를 적용해 기술적 특성을 강조하며, 다른 알파인 이글과는 또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다.
알파인 이글 41mm 모델과 36mm 모델에는 루센트 스틸에 론 블루 다이얼을 조합한 새로운 버전이 추가되었다. 2024년 알파인 이글 XL 크로노 모델에서 처음 적용된 컬러인데, 2025년 플라잉 투르비용 모델에도 사용되었고, 올해는 일반 3핸즈 모델까지 확장되었다. 이 컬러는 알프스 산맥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강, 론 강에서 영감을 받았다. 론 강은 발레 주 중심부에 위치한 동명의 스위스 빙하에서 맑은 블루 톤으로 시작되어, 독수리들이 서식하는 자연환경을 지나 레만 호수를 거쳐 지중해로 이어진다. 타 브랜드에서 주로 ‘아이스 블루’로 명명하는 컬러인데, 알파인 이글 고유의 방사형 패턴이 더해져 다이얼에 진짜로 ‘얼어붙은’ 것 같은 감각을 전한다. 론 블루의 화사한 색감이 루센트 스틸의 광채와도 잘 어울린다. 내부에는 COSC 인증을 받은 쇼파드 01.01-C 칼리버를 탑재했으며, 약 60시간의 파워 리저브를 제공한다. 케이스 백의 사파이어 크리스털에는 알파인 이글 재단의 로고가 장식되어 있으며, 판매 수익 일부가 재단 활동 지원에 사용된다.
알파인 이글은 럭셔리 스포츠 워치 시장에서 비교적 후발 주자였다. 오데마 피게 로얄오크(1972), 파텍 필립 노틸러스(1976)가 신화의 반열에 오른 이후 쇼파드는 2019년에야 이 시장에 진입했다. 하지만 추격 속도는 놀라웠다. 불과 7년 만에 알파인 이글은 브랜드의 대표 컬렉션으로 발돋움했다. 알파인 이글이 단기간에 컬렉터와 애호가 양쪽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제품 자체의 디자인 때문만은 아니다. 3대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 4년간의 소재 개발, 생태 보전 철학과의 연결, 그리고 인하우스 COSC 인증 무브먼트 등 여러 가치가 함께 맞물렸기에 가능했던 성과다. 칼-프리츠 슈펠레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와 연결되어 있으면서 열정과 경의를 담아 일하는 것, 그리고 동시에 끊임없는 혁신의 필요성과 균형을 맞추는 것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고. 알파인 이글은 그 균형을 시도하는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다. 탄생 10주년이 멀지 않았다. 쇼파드가 키워낸 알프스의 독수리는 보다 먼 곳을 응시하며 더욱 높은 곳을 향해 날아갈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코로나 19 시절에 내가 고심해서 구입했던 모 브랜드의 럭셔리 스포츠 워치는 결국 내 곁을 떠났다. 내 손목과 미묘하게 맞지 않았고, 착용할수록 다른 사람 시계를 빌려 차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계 자체는 나무랄 데 없었으나, 나와는 맞지 않는 시계였다. 직업상 여러 행사장에서 알파인 이글을 시착해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알파인 이글을 선택했다면 좀 더 오래 함께했겠구나’라는 생각. (아니, 왜 그때는 러버 스트랩 옵션이 없었냐고요!) 그 후로 몇 년의 시간이 흘렀으나 여전히 독수리의 눈빛은 살아 있었고, 루센트 스틸의 광채는 눈부셨으며, 유연한 메탈 브레이슬릿은 내 납작한 손목을 편안하게 감싸주었다. 특히 XPS 모델은 무브먼트의 마감은 물론, 두께나 무게 측면에서도 훌륭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장르를 다시 들이게 된다면 쇼파드의 알파인 이글을 다시 위시리스트에 올려 둘 것이다. 다만 그동안 독수리가 번식에 성공하면서 다이얼 컬러가 꽤 늘어난지라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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