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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기술의 변곡점: 기계식 시계에서 스마트워치까지

인간의 시간 인식을 바꾼 시계 기술의 결정적 순간들

  • 이상우
  • 202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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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locca.com/article/%ec%8b%9c%ea%b3%84-%ea%b8%b0%ec%88%a0%ec%9d%98-%eb%b3%80%ea%b3%a1%ec%a0%90-%ea%b8%b0%ea%b3%84%ec%8b%9d-%ec%8b%9c%ea%b3%84%ec%97%90%ec%84%9c-%ec%8a%a4%eb%a7%88%ed%8a%b8%ec%9b%8c%ec%b9%98%ea%b9%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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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기술의 변곡점: 기계식 시계에서 스마트워치까지

시계라는 물건은 본질적으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한 장치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정확한 시간’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시간 측정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해시계, 물시계, 모래시계 같은 원시적 시계들은 모두 자연 현상의 주기적 변화를 활용해 시간을 읽어내는 방식이었다. 이 장치들은 지금 시점에서 매우 단순하게 보이지만, 당시에는 농경 주기와 종교 의례, 천문 계산과 항해 등 사회 조직 전체를 움직이는 핵심적인 도구였다. 문제는 이런 장치들이 자연환경에 지나치게 종속돼 있다는 것이었다. 그림자의 길이를 기반으로 하는 해시계는 구름과 비에 취약했고, 물시계는 온도에 따라 점도가 변했으며, 모래시계는 균일한 모래 입자와 습도를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즉, 시간 측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고대의 시간은 자연에 종속되어 있었고 불안정했다. 이러한 자연적인 변수는 기계식 시계가 발명되면서 비로소 통제되기 시작했다.

  • 고대 그리스의 물시계 클랩시드라 ⓒ commons.wikimedia.org

기계식 시계의 탄생: 자연의 리듬에서 인공의 리듬으로

14세기 중엽 유럽의 수도원에서 등장한 초기 기계식 시계는, 인간이 자연의 리듬을 모방하는 단계에서 새로운 리듬을 창조하는 단계로 나아간 첫 사건이었다. 당시 시계 장인들은 ‘폴리엇(foliot)’과 ‘버지 이스케이프먼트(verge escapement)’를 활용해 자연의 변덕스러운 리듬이 아닌 인위적인 규칙성을 만들어냈다. 폴리엇은 지금의 밸런스 휠에 해당하는 장치로, 마치 시소처럼 움직이면서 오실레이터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이 움직임을 톱니 형태의 버지 이스케이프먼트가 제어하면서 일정한 진동을 만들어냈다.

그리 정확하지 않았지만 그 ‘부정확한 정확성’조차도 인간의 시간 인식 구조를 바꿔놓기엔 충분했다. 변화하는 자연 환경에 관계없이 항상 시간을 표시할 수 있다는 일종의 ‘믿음’을 선사한 것이다. (초기 기계식 시계는 마찰, 온도, 습도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완벽하게 자연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 거대한 기계 장치는 대부분 교회 종탑 내부에 설치되어 마을 전체의 일상 리듬을 규정했다. 당시의 시계는 (어쩌면 시간까지도) 일종의 ‘공공재’였고, 개인의 소유물이 되기 어려웠다.

  • 폴리엇과 버지 이스케이프먼트의 구조 ⓒ universalis.fr

17세기에 이르러 크리스티안 하위언스(Christiaan Huygens)가 진자시계를 발명하면서 기계식 시계의 정확도는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하위언스의 진자시계는 오차를 하루 수십 분에서 하루 수십 초 수준으로 줄여주었고, 이 기술은 곧 유럽 전역의 시계 제작자들에게 확산되었다. 특히 천문대와 항해 분야에서 새로운 표준 기술로 인정받으면서 진자시계는 빠르게 유럽 사회 전반에 퍼져 나갔다.

  • 크리스티안 하위언스 ⓒ wikipedia.org

  • 크리스티안 하위언스가 만든 진자시계 ⓒ historiasdematematicas

또한 영국의 시계 제작자 존 해리슨(John Harrison)이 발명한 마린 크로노미터는 정확한 경도 측정을 가능하게 만들며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공간 자체를 확장시켰다. 그는 ‘바이메탈릭 스트립(bimetallic strip)’과 ‘그래스호퍼 이스케이프먼트(Grasshopper escapement)’와 같은 혁신적 구조를 개발하며 온도 변화에 강한 항해용 시계를 만들어냈다. 그가 만든 H4는 1773년 영국 의회가 제정한 ‘경도법(Longitude Act)’의 기준을 충족시킨 최초의 시계였고, 이 성취는 유럽의 해상 지배력과 직접 연결되었다. 이 무렵 기계식 시계의 발전은 근대 항해·무역·과학·제국주의의 기반이 되었고, 정확한 시계를 갖는다는 것은 시간을 지배하는 동시에 공간을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항해용 크로노미터의 탄생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기계식 시계의 진화는 정확성을 향한 오랜 여정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일정한 똑딱임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러니까 오차 없는 시계를 만든다는 건 당시 기술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금속 부품이 맞물려 작동하는 물리법칙의 세계에는 다양한 변수들이 숨어 있는 까닭이다. 당대의 워치메이커들은 온도, 습도, 포지션, 외부 충격 등으로 발생하는 오차를 줄이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동원했다. (이때 만들어진 일부 기술들은 지금도 시계 업계에 유물처럼 남아서 끝없이 변주되고 있다.) ‘정확성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 기계식 시계의 중요한 가치이자, 시계를 공산품이 아닌 예술품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존 해리슨의 H1 마린 크로노미터 ⓒ hs-ny.org

기계식 시계의 진화는 정확성을 향한 오랜 여정이었다.
포켓 워치의 발명: 시간의 개인화

근대 이전까지 시간은 개인이 소유하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중세 유럽의 도시는 교회 종탑의 종소리에 따라 움직였고, 시간이란 공동체가 함께 듣고 함께 따르는 공공의 질서에 가까웠다. 당시 정확한 시계를 가진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고, 심지어 정확한 시간이라는 개념조차 공동체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16세기 후반이 되면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시계가 점차 작아져서 사람이 휴대할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이 변화를 상징하는 최초의 사례가 바로 1570년대 독일 뉘른베르크 지역에서 제작된 길쭉한 달걀 모양의 시계다. 일명 ‘뉘른베르크의 달걀(Nürnberger Ei)’이라는 물건이다. 비록 오늘날 기준으로는 매우 부정확했지만, 이 작은 시계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간을 지니고 다니는 감각을 처음으로 선사했다.

  • 16세기 무렵 독일에서 제작된 휴대용 시계 ⓒ uhrinstinkt.de

물론 시계의 크기를 줄이고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서 여러 기술적인 혁신이 있었다. 진자는 기계식 시계의 정확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지만 오직 고정된 지면에서만 정확하게 작동했다. 배가 흔들리거나, 시계가 충격을 받으면 진자의 주기는 즉시 흐트러진다. 게다가 크기를 작게 만들기도 어려웠다. 정확성 측면에서는 분명 혁명이었지만, 여전히 고정된 탑과 벽에 얽매여 있는 기술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한계는 1675년 밸런스 휠과 헤어스프링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해결되었다. 조그만 금속 바퀴와 얇은 스프링은 진자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했다. 밸런스 스프링이 결합된 시계는 작고 정확하면서도 충격에 강했으며, 무엇보다 휴대가 가능했다. 기계식 시계가 마침내 고정된 장소를 벗어나서 인간과 함께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시간은 종탑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개인의 주머니 속에서 조용히 똑딱거리는 기계적 리듬이 되었다. 아울러 시간이란 개념 역시 ‘누군가가 알려주는 시간’에서 ‘내가 직접 관리하고 확인하는 시간’으로 변했다. 시간의 개인화가 이뤄진 것이다.

크리스티안 하위언스가 고안한 헤어스프링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포켓 워치의 보급은 인간의 시간 감각과 사회적 행동 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17~18세기 유럽에서는 상업 활동이 확대되고 도시 인구가 증가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약속된 시각에 만나고자 했으며,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를 테면 예전에는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정도면 충분했던 약속이 이제는 ‘세 시 정각’이라는 보다 정밀한 단위로 바뀌어 갔다. 포켓 워치는 이런 새로운 세계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기계였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고, 그 시간을 기준으로 자신의 하루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근대 철학과 사회학에서는 이때를 ‘내면화된 시간 규율’이 태동한 시기로 평가한다. 

막스 베버(Max Weber)가 말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근대 노동윤리 역시 시계의 규칙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칼뱅주의적 세계관에서 시간은 신이 준 자원이었고 이를 낭비하지 않는 것이 신앙인의 의무였다. 이 관념은 인간의 하루를 균일한 단위로 쪼개고, 각 단위를 ‘생산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새로운 시간 규율을 만들어냈다. 시계가 제공하는 기계적 리듬은 이러한 규율을 일상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편 개인화된 시계는 소유자의 부와 취향을 드러내는 물건이기도 했다. 초기의 포켓 워치는 아주 비싼 물건이었다. 17~18세기 유럽에서 시계를 주문한다는 것은 예술 작품을 의뢰하는 행위에 가까웠다. 시계는 대개 금·은 케이스로 제작되었고, 여기에 당시 최고 수준의 세공 기술이 총동원되었다. 에나멜 장식, 기요셰 패턴, 인그레이빙, 보석 세팅, 미니어처 회화에 이르기까지 포켓 워치는 그 시대 공예 예술을 집대성한 오브제였다. 자연스럽게 포켓 워치는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에 더하여 부의 상징, 취향의 표식, 사회적 계급을 드러내는 기호가 되었다. 오늘날 초고가 손목시계는 결국 시계라는 물건이 개인화된 순간부터 만들어진 셈이다. 사실 소형화되었을 뿐 시간 측정의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개인화되었다는 것, 그리고 사치품의 영역으로 진입했다는 측면에서 포켓 워치는 시계의 역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다.

1810년 제작된 바쉐론 콘스탄틴의 에나멜 케이스 포켓 워치 ⓒ swisswatches-magazine.com

사람들은 처음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고, 그 시간을 기준으로 자신의 하루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대량생산 시스템: 시간의 규격화와 시계의 대중화

포켓 워치의 탄생과 함께 시간은 개인화되었으나 여전히 시계를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만들어내는 포켓 워치는 필수품보다는 사치품에 가까웠다. 18~19세기 산업혁명은 이러한 포켓 워치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산업혁명 이후 공장에는 증기기관을 이용한 생산 설비가 도입되었다. 이 기계들은 작동을 시작하면 좀처럼 멈추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기계의 작동 시간에 맞춰서 자신의 시간을 재구성해야만 했다. 공장에서 근대적 시간 규율이 완성된 것이다. 출근 시간, 퇴근 시간, 쉬는 시간처럼 사람들에게는 꼭 지켜야 할 시간이 생겼고, 점차 시계는 필수품이 되어갔다.

철도 교통 역시 시계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철도는 도시 간 이동 속도를 비약적으로 올렸고, 분리되어 있던 시간을 하나로 연결했다. 그리고 철길 위에서 국제표준시가 탄생했다. 기차는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움직였고, 지각한 승객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철도 운행 시간을 맞추려면 개인에게 정확한 시계가 필요했다. 결국 산업혁명과 철도 교통의 발전으로 인해 포켓 워치는 점점 더 정밀해졌으며, 더 많은 사람이 시계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 1930년대 미국에서 기관사와 지휘자가 서로 시간을 비교하는 모습 ⓒ railswest.com

이렇게 수요가 증가하자 시계를 만드는 것도 예술적 맞춤 제작에서 산업적 대량생산 체계로 빠르게 바뀌었다. 기술적 배경은 크게 세 가지였다. 먼저 스위스에서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에타블리사쥬(Établissage)라는 시계 공정의 분업 체계가 구축되었다. 여러 마을에서 제작한 부품을 공급받아 조립하는 방식으로, 이를 통해 고품질의 시계를 비교적 낮은 가격에 생산할 수 있었다. (오늘날 스위스 시계 산업 역시 이러한 생산 방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스위스 시계 제작 과정을 묘사한 1941년 루시앙 그로나우어(Lucien Grounauer)의 그림 ⓒ imagesdupatrimoine.ch

프랑스에서는 장 앙트완 레핀(Jean-Antoine Lépine)이라는 워치메이커가 포켓 워치의 구조를 혁신했다. 기존 포켓 워치는 각종 기어와 부품을 층층이 쌓아 올린 형태라서 두껍고 무거웠다. 따라서 대량 생산이 어려웠고 휴대하기에도 불편했다. 레핀은 부품을 수평으로 배치해 보다 얇게 만드는 구조를 고안했다. 기어 트레인을 평면으로 배열하고 불필요한 브리지를 제거하여 시계 메커니즘을 보다 단순화한 것이다. 그 결과 생산이나 부품 교체가 용이해졌고, 시계가 더욱 얇고 가벼워졌다. 

  • 기어가 수평 배치된 레핀 스타일 칼리버 ⓒ thenakedwatchmaker.com

한편 19세기 중엽 미국에서는 시계 산업이 또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다. 월섬(Waltham), 엘진(Elgin) 같은 회사들은 기계의 힘으로 부품을 대량 생산하고, 각 부품들이 서로 완벽히 호환되도록 했다. 정밀한 기계와 측정 도구를 사용해 규격화된 부품을 대량 생산한 뒤 조립하는 방식으로, 진정한 의미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시계 가격이 크게 낮아졌다.

대량생산과 함께 포켓 워치는 귀족의 소유물이 아니라 근대 산업사회의 필수 도구가 되어갔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마침내 근대적 인간이 탄생했다. 이제 인간은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계획하고, 분배하고, 관리하는 근대적 시간 주체가 되었다. 포켓 워치는 근대의 규율, 합리성, 자기 관리의 철학을 가장 먼저 개인에게 전달한 물건이었던 셈이다.

미국식 시계 제조 시스템을 구축한 월섬 매뉴팩처 ⓒ waltham.ch

대량생산과 함께 포켓 워치는 귀족의 소유물이 아니라 근대 산업사회의 필수 도구가 되어갔다.
손목시계로 진화: 속도의 시대, 신체화된 시간

계속해서 작고 얇아지던 포켓 워치는 20세기, 주머니에서 손목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간은 개인화(individualization)를 넘어 신체화(embodiment)되었고, 이를 통해 인간은 시간과 완전히 결합된 존재가 되었다. 기계식 시계가 등장하고 대략 500년 만의 일이었다.

원래 손목시계의 기원은 여성용 장신구였다. 19세기 말까지 대부분의 남성은 포켓 워치를 사용했고, 손목에 시계를 매다는 행위는 실용적이라기보다는 장식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1810년 나폴레옹의 여동생 카롤린 뮈라(Caroline Murat)가 브레게에 주문했다는 손목시계(현재 브레게 레인 드 네이플의 기원), 1868년 파텍 필립이 제작한 헝가리 공녀 코시에비츠의 손목시계 등 초기 손목시계는 거의 모두 보석이 달린 팔찌형 시계였다. 그러나 이런 사용 맥락은 20세기 초에 완전히 다른 의미로 뒤집힌다. 전쟁이 손목시계를 의미를 바꿔버린 것이다. 

1868년 파텍 필립이 제작한 헝가리 공녀 코시에비츠의 손목시계 ⓒ thehourmarkers.com

전쟁터에서는 포켓 워치를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수시로 두 손을 써야 했고, 생사를 넘나드는 와중에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는 행위는 치명적일 수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병사들은 직접 가죽 스트랩을 만들어 포켓 워치를 손목에 고정했다. 당시 시계는 필수적인 전쟁 장비였다. 작전 계획과 협공, 포격 시간을 맞추기 위해 장교들은 정확한 시간을 서로 공유하고 있어야 했다. 따라서 군에서는 시계를 군용 장비로 채택했고, 론진이나 오메가 같은 시계 회사들이 군대에 시계를 납품했다. 전쟁에서 복귀한 병사들은 손목시계를 이미 효율적이고 남성적인 도구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여성용 장신구에 불과했던 손목시계는 전장에서 살아 돌아와 근대적 남성의 도구가 되었다.

1918년 엘진 제너럴 펀스턴 트렌치 워치 ⓒ LRF Antique Watches

한편 20세기는 이동과 속도의 시대이기도 했다. 땅에는 열차와 자동차가 달리고 하늘에는 비행기가 날아다녔다. 교통이 발전하면서 도시는 빠르게 확장되었다. 노동자들은 주중에 자동차를 타고 일터로 향했으며, 주말에는 멀리 외곽으로 떠나서 탐험과 레저를 즐겼다. 올림픽 같은 스포츠 산업도 크게 성장했다. 손목시계는 이러한 이동과 속도의 시대에 움직이는 인간의 시간 감각을 확장했다. 단순히 현재 시간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이 이동하는 시간을 측정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1932년 LA올림픽에서 사용된 오메가의 스톱 워치 ⓒ Omega

이렇게 손목시계가 대중화되자 기술적 요구사항도 크게 바뀌었다. 작고 가볍게 만드는 기술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신체의 끊임없는 움직임과 거친 외부 환경에 견디는 능력이 중요했다. 시계가 손목 위에서 계속 움직이게 되자 이를 활용해 태엽을 감는 자동 와인딩 기술이 개발되었다. 또 잉카블록 같은 충격 보호장치가 등장했고, 물속에서도 시계를 보호하는 방수 기술 역시 발전했다. 정확한 경과 시간을 계측할 수 있는 크로노그래프 기능, 다른 지역의 시간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GMT 기능 역시 이동성에 기반을 둔 기술적 혁신이었다. 결과적으로 시계는 더 작고 튼튼해졌으며, 다양한 부가 기능들이 추가되었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도 정확성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 이어졌다. 

  • 방수 성능을 높인 롤렉스의 오이스터 모델 광고 ⓒ Rolex

  • 1963년 탄생한 태그호이어 까레라 크로노그래프 워치 ⓒ Tag Heuer

한편 여러 기술적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새로운 디자인이 만들어졌고 손목시계는 스타일의 언어가 되기도 했다. 가독성을 중시한 군용 시계나 항공 시계는 현대적인 손목시계의 표준을 제시했고, 회전 베젤이 있는 다이버 워치나 레이싱을 위한 크로노그래프 워치가 새로운 아이콘이 되었다. 과거 포켓 워치가 부와 귀족적 취향을 드러내는 기호였던 것처럼, 손목 위의 시계 역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성향을 드러내는 기호가 된 것이다.

여성용 장신구에 불과했던 손목시계는 전장에서 살아 돌아와 근대적 남성의 도구가 되었다.
쿼츠 혁명: 절대적 정확성과 극단적 저비용

1969년 출시된 세이코 아스트론 ⓒ Seiko

20세기 중반이 되면 기계식 손목시계는 사실상 완성 단계에 도달한다. 내진성, 방수, 정확도, 생산 효율성에 이르기까지 기계식 시계 기술은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기술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물리적 구조의 특성상 기계식 시계는 더 이상 극단적으로 정확해지기 어려웠고, 대량생산 산업에서 가격 경쟁력도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공백을 파고든 것이 바로 쿼츠 기술이다. 1969년 12월 25일, 세이코는 세계 최초의 쿼츠 손목시계 ‘세이코 아스트론(Seiko Astron)’을 발표하며 시간 측정 기술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집었다. ‘쿼츠 혁명’ 또는 ‘쿼츠 위기’라 불리는 이 사건은 시계 기술의 역사를 기계식 시대와 전자식 시대로 나누는 분기점이었다. 

기계식 시계가 금속 스프링의 탄성과 기계적 진동수에 의존한다면, 쿼츠 시계는 전자 회로와 수정 결정(crystal)의 진동을 이용한다. 일반적인 기계식 시계가 1초당 5회 정도 진동하는 데 반해, 쿼츠 시계는 1초당 32,768회 진동한다. 이 극단적 진동수의 차이는 정확도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만들어낸다. 쿼츠 기술은 기계식 시계가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그야말로 ‘넘사벽’의 정확성을 실현했다. 

세이코 오토클레이브에서 생산된 석영 결정 ⓒ Seiko

정확성만큼이나 위협적인 것은 대량생산과 그로 인한 낮은 가격이었다. 기계식 시계는 많은 장시간의 숙련 노동과 정밀한 조정이 필요했던 반면, 쿼츠 시계는 자동화 설비로 대량 생산이 가능했다. 구조가 단순했고, 숙련된 장인이 정교하게 조정할 필요도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쿼츠 시계의 생산 비용은 기계식 시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아졌다. 산업혁명 이후 시계의 가격이 낮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일반 노동자들이 선뜻 구입하기에는 비싼 물건이었다. 하지만 쿼츠 혁명 이후 인간은 비로소 매우 정확한 시계를 누구나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이소에서 몇 천 원만 지불하면 인류 역사상 가장 정확한 시계를 누구나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정확성과 실용성이라는 측면에서 쿼츠 시계는 이전의 그 어떤 시계도 달성하지 못한 위업을 달성했다. 이제는 공기처럼 흔한 물건이 되어 버렸지만, 사실 쿼츠 워치에는 정확성을 향해 도전했던 인류의 오랜 노력이 응집되어 있는 셈이다.

  • 알리바바에서 판매되고 있는 저가형 쿼츠 무브먼트. 1개당 가격은 350원 정도다. ⓒ alibaba.com

스위스 시계 산업을 재건한 니콜라스 G. 하이에크 전 스와치 그룹 회장 ⓒ Omega

이러한 쿼츠 시계의 정확성과 저비용은 기계식 시계 산업의 기반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쿼츠 위기 시기에 1,600여 개에 달하던 스위스 시계 회사 중 절반 가까이가 파산했다. 시계 제조 브랜드는 물론 부품을 만들던 공급업체까지 한꺼번에 붕괴했고, ETA나 ASUAG 같은 메이저 부품 공급업체도 구조조정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기계식 시계는 사라지지 않았다. 1980년대 스와치 그룹의 활약으로 재기한 스위스 시계 업계는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난’ 경험 속에서 ‘럭셔리’라는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시계 산업의 구도는 새롭게 재편되었고, 이후 기계식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에서 벗어나 신분과 취향을 드러내는 사치품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한편 쿼츠 기술은 시간의 정확성을 새롭게 규정했다. 기존의 기계식 시계는 약간의 오차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쿼츠 혁명 이후, 사람들은 시간이 정확하게 표시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 변화는 일상뿐 아니라 금융, 교통, 통신,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정확한 시간’에 대한 의존도를 비약적으로 높였고, 여러 기술 발전에 기여했다. 동시에 쿼츠 기술은 시계를 기계 장치에서 전자기기로 변화시킨 전환점이기도 했다.

쿼츠 시계의 정확성과 저비용은 기계식 시계 산업의 기반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스마트워치 시대: 손목 위의 정보 플랫폼

쿼츠 혁명이 시간을 전자 신호로 치환했다면, 스마트워치의 등장은 아예 시계의 역할 자체를 재정의하는 변곡점이었다. 사실 손목에 착용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시계와 스마트워치는 전혀 다른 물건이다. 스마트워치는 인간의 신체, 일상, 데이터, 네트워크가 손목 위에서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형태의 정보 플랫폼이다. 시계라기보다는 손목 위에 놓인 또 하나의 휴대폰인 셈이다. 

‘워치’라고 표기하지만, 스마트워치는 시계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굳이 역사적 뿌리를 찾자면, 카시오 데이터뱅크 같은 1980~1990년대 웨어러블 컴퓨팅 기기들이 조상일 거다. 이런 제품들은 전화번호부나 계산기 같은 데이터 처리 기능이 중심이었고, 시계는 부가 기능에 불과했다. 즉 스마트워치는 엄밀히 말해 시계의 후손이 아니라 컴퓨터의 후손이다. 과거 손목 위의 기기들은 여러 기술적 제약 때문에 시장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스마트폰, 센서, 블루투스·인터넷 기술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손목 위에서 정보를 처리하려는 시도는 자연스럽게 ‘스마트워치’라는 형태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2015년 등장한 애플 워치가 크게 성공하면서 손목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정의하고 점유하기 시작했다. 

  • 1991년 발매된 카시오 데이터뱅크 DKW-100 모델 ⓒ Casio Vintage UK

  • 2015년 출시된 애플 워치 1세대 ⓒ Apple

기계식 시계나 쿼츠 시계는 ‘시간’을 측정한다. 반면 스마트워치는 ‘사용자’를 측정한다. 단순히 몇 시 몇 분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운동량·심박수·수면시간 등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인간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즉 스마트워치는 인간의 시간 감각을 생체 데이터 기반의 시간으로 재구성했으며, 시계 역사에서 최초로 등장한 비(非)시간적 진화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스마트워치의 등장을 기계식·쿼츠 시계의 위협으로 보지만, 실제로 스마트워치는 전통적 시계들이 제공하던 가치와 경쟁하지 않는다. 스마트워치는 전혀 다른 범주의 도구이며, 쿼츠가 기계식 시계를 몰아내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직은 전통 시계 산업과 공존하고 있다. 물론 인간의 손목은 무한하지 않다. 하나의 손목을 두고 경쟁한다는 측면에서 스마트워치와 가격대가 겹치는 시계 브랜드는 어느 정도 위기를 겪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쿼츠 시계는 더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계식 시계가 장인성과 역사성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반면, 쿼츠 시계는 스마트워치와 기능적 가치가 꽤 겹치기 때문이다.

인간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스마트워치 ⓒ Samsung

스마트워치는 기존의 시계가 제공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은 기능을 흡수할 것이다. 그러나 이 변화가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다. 스마트워치는 인간을 디지털 네트워크에 끊임없이 접속시키는 장치이며, 우리가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가 우리를 관리하는 구조를 만들어갈 수도 있다. 스마트워치는 인간과 기술이 결합하는 과도기적 형태이며, 그 다음 단계는 스마트 글래스나 신체 내부 센서와 같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스마트워치는 시계 기술의 마지막 단계라기보다, 손목이라는 공간이 전통적 의미의 시계를 떠나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작점이라고 하겠다. 이제 시계는 더 이상 시간만을 다루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로운 변곡점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스마트워치는 손목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정의하고 점유하기 시작했다.
미래의 변곡점: 시간 너머, 결국 시계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시계의 역사는 단순히 시간을 측정하는 기술의 발전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내면화해 왔는지 보여주는 과정이자, 인간 자체의 변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도 크게 바뀌었다. 시계의 다음 변곡점은 무엇일까? 언젠가는 몸속에 칩을 넣고 모든 정보를 제어할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시간은 이제 외부에 존재해서 측정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신체와 완전히 동기화될 것이다. 예컨대 알람시계 없이도 설정한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신경을 자극해 저절로 눈이 떠질 수도 있다. 몸이 모든 시간을 인지하고 있으니 더 이상 시계를 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 시대에도 여전히 손목에는 시계가 존재하고 있을까? 분명한 것은 오랜 역사 속에서 시계는 언제나 시간 그 이상의 의미를 담아온 물건이라는 점이다. 완벽하게 정확한 시간이 몸속에 흐르더라도, 내 손목에는 시간이 조금 틀어진 기계식 시계가 여전히 감겨 있을 것 같다. 

  • 몽블랑 1858 지오스피어 브론즈 ⓒ Klocca

완벽하게 정확한 시간이 몸속에 흐르더라도, 내 손목에는 시간이 조금 틀어진 기계식 시계가 여전히 감겨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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