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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파드 매뉴팩처 30주년

매뉴팩처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쇼파드. 메종은 어떻게 스위스 고급 시계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는가?

  • 이재섭
  •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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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locca.com/article/%ec%87%bc%ed%8c%8c%eb%93%9c-%eb%a7%a4%eb%89%b4%ed%8c%a9%ec%b2%98-30%ec%a3%bc%eb%8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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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파드 매뉴팩처 30주년

기계식 시계라는 이름의 대하 소설에서 30년은 겨우 한 장(章)에 불과할 만큼 짧지만 확고한 비전과 신속한 결단력의 소유자에게는 체질을 개선하고 가치를 높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쇼파드(Chopard)의 지난 30년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지치지 않는 도전 그리고 눈부신 성과라는 치밀한 서사로 짜여 있다. 쇼파드는 시간을 압축하는 마법을 통해 단숨에 고급 시계 제작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 

정밀 시계 제작에서 출발하다

루이-율리스 쇼파드가 송빌리에(Sonvilier)에 설립 매뉴팩처.

  • 루이-율리스 쇼파드의 이름과 송빌리에라는 문구가 적힌 회중 시계.

  • 1910년대부터 L.U.C 시계 공방(La fabrique de montre)이라는 이름의 광고를 개재했다.

  • 루이-율리스 쇼파드의 손자 폴-앙드레 쇼파드가 제네바에서 가업을 이어갔다.

때는 1860년, 24살의 루이-율리스 쇼파드(Louis-Ulysse Chopard)는 스위스 송빌리에에 회중시계와 고정밀 크로노미터를 생산하는 공방을 설립했다. 쇼파드의 시계는 스위스 철도 회사 티르 페데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를 고객으로 맞으며 명성을 얻었다. 1937년 쇼파드는 스위스 고급 시계의 메카인 제네바에 입성했다. 수십년을 지켜온 터전을 뒤로 한 채 낯선 곳으로 이주했지만 후손들의 노력 덕분에 창업주의 정신은 새로운 땅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왼쪽부터) 캐롤라인 슈펠레, 칼 슈펠레 3세, 카린 슈펠레, 칼-프리드리히 슈펠레.

쇼파드의 아이코닉 워치 해피 다이아몬드. 투명한 사파이어 크리스털 사이에서 플로팅 다이아몬드가 자유롭게 움직인다.

한 세기가 지나갈 무렵 가족 경영을 이어오던 쇼파드의 주인이 바뀌었다. 독일 포르츠하임을 무대로 시계와 금세공 사업을 영위하던 슈펠레 가문이 1963년에 쇼파드를 품에 안은 것이다. 쇼파드 인수를 지휘한 칼 슈펠레 3세(Karl Scheufele III)는 아내 카린 슈펠레(Karin Scheufele)와 함께 메종의 성장을 이끌었다. 쇼파드는 1960년대 후반부터 화려한 주얼리 워치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고귀한 다이아몬드와 과감한 디자인은 슈펠레 가문이 쌓아온 주얼리에 대한 깊은 노하우에서 비롯했다. 1976년에는 폭포에서 튀는 물방울에서 영감을 바탕으로 한 해피 다이아몬드(Happy Diamonds)를, 1993년 스테인리스 스틸과 다이아몬드를 조합한 해피 스포츠(Happy Sport)를 선보이며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해 나갔다. 이로 인해 쇼파드는 대중의 머릿속에 화려한 보석과 주얼리 워치로 유명한 브랜드로 여겨지곤 했다. 

비전의 현실화

쿼츠 시계의 득세로 전통 시계 산업의 몰락을 지켜봤던 칼 슈펠레 3세의 장남 칼-프리드리히 슈펠레(Karl-Friedrich Scheufele) 현 쇼파드 공동 회장은 고급 기계식 시계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1980년, 22살의 패기 넘치는 청년은 스포츠 시크를 표방하는 생모리츠(St. Moritz)를 기획했다.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은 그가 처음으로 맡은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알프스의 휴양지 생모리츠에서 이름을 따온 이 시계는 우아한 실루엣과 나사로 고정한 베젤을 통해 럭셔리 스포츠에 대한 메종의 창의적인 해석을 제시했다. 

생모리츠의 일체형 브레이슬릿, 나사로 장식한 베젤 같은 요소는 훗날 알파인 이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기계식 시계가 조금씩 예전의 위상을 회복하자 칼-프리드리히 슈펠레 회장은 그토록 염원하던 꿈을 실현하기로 결심한다. 생모리츠는 젊은 사업가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그는 고급 시계 제작을 위해서는 반드시 우수한 무브먼트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매뉴팩처의 설립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꿰뚫어봤다. 쿼츠 파동의 여파가 남아 있었기에 무브먼트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춘 브랜드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범용 무브먼트를 가져다 쓰는데 그쳤다. 고급 시계로 한정하면 선택지는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고급 시계 제조사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 된 쇼파드 플러리에 매뉴팩처.

칼-프리드리히 슈펠레는 스위스 뇌샤텔주의 플러리에에 매뉴팩처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쇼파드의 완전한 기계적 독립을 향한 첫 발걸음이었다. 그의 행보를 바라보는 시선은 기대보다는 의심에 가까웠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쇼파드 매뉴팩처는 단순히 무브먼트를 생산하는 공장을 넘어 스위스 시계 업계에서 가장 엄격한 품질 기준을 수호하는 보루이자 진정한 의미의 인하우스 제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로 거듭났다. 무엇보다 수직통합이라는 의미가 아직은 낯설었던 때에 쇼파드는 고급 시계 브랜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길라잡이가 됐다. 

쇼파드 역사의 이정표가 된 칼리버 L.U.C 1.96.

쇼파드는 매뉴팩처 설립 후 1년 뒤인 1997년 첫 번째 인하우스 무브먼트인 칼리버 L.U.C 1.96을 선보였다. 무브먼트의 이름은 쇼파드의 창립자인 루이-율리스 쇼파드의 이니셜에 쇼파드 매뉴팩처의 첫 번째 무브먼트이자 설립연도인 1996년을 조합해서 지었다(주: 2011년부터 L.U.C 96.01-L로 명칭이 바뀌었다). 많은 이들이 스위스에서 생산된 가장 아름다운 오토매틱 무브먼트로 꼽았을 만큼 칼리버 L.U.C 1.96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칼리버 L.U.C 1.96은 어느 날 난데없이 나타나 현대 고급 시계의 기준을 확립한 다크호스였다. 

1997년에 출시한 L.U.C 1860. 칼리버 L.U.C 1.96을 탑재했다.

칼리버 L.U.C 1.96의 지름은 27.4mm였지만 마이크로 로터를 사용해 두께를 3.3mm로 제한했다. 볼 베어링 방식의 골드 로터는 양방향으로 회전하며 위아래로 쌓듯이 설치한 두 개의 배럴에 동력을 제공했다. 파워리저브는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긴 65시간이었다. 밸런스 콕에는 레귤레이터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우아한 스완넥 레귤레이터를 달았다. 밸런스 스프링은 자세 차에 의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필립스 터미널 커브를 적용했다. 브리지는 제네바 스트라이프로 수려하게 장식하는 동시에 페를라주, 미러 폴리싱, 베벨링 등 다양한 장식 기법을 동원해 부품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치장했다. 

칼리버 L.U.C 1.96는 단순히 보기에만 좋은 것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제네바 씰(Poinçon de Genève)과 COSC 인증을 동시에 획득한 것이다. 무브먼트의 장식에 관한 유일한 공식 인증 제네바 씰(주: 오늘날에는 무브먼트의 성능과 관련된 기준을 추가해 복합 인증 제도로 진화함)과 정밀함의 상징인 크로노미터 인증을 모두 받은 시계는 지금도 그 수가 많지 않다. 칼리버 L.U.C 1.96은 뛰어난 기술적 완성도와 더불어 쇼파드가 추구하는 전통의 현대적 해석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정표가 됐다. 

4기통 엔진

콰트로 테크놀로지로 완성한 칼리버 L.U.C 1.98.

칼리버 L.U.C 1.96으로 충격을 선사한 쇼파드는 밀레니엄의 개막과 함께 L.U.C 콰트로를 공개했다. 콰트로 테크놀로지(Quattro® Technology)로 명명한 기술은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무브먼트에 배럴을 4개나 투입했다. 목표는 일정한 토크를 유지하며 장시간 동력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쇼파드는 칼리버 L.U.C 1.96의 구조와 설계를 기반으로 배럴을 2개 더 추가해 칼리버 L.U.C 1.98(주: 칼리버 L.U.C 1.96처럼 칼리버 L.U.C 1.98도 L.U.C 98.01-L로 개명했다)을 완성했다. 

2개의 배럴을 위 아래로 포개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2개씩 짝 지은 배럴 2세트를 이용한 칼리버 L.U.C 1.98은 9일이라는 압도적인 파워리저브를 실현했다. 칼리버 L.U.C 1.96과 마찬가지로 COSC와 제네바 씰 인증을 한꺼번에 획득할 만큼 뛰어난 정밀도와 미학적 완성도를 유지했다. 무브먼트의 전체 두께는 약 3.7mm로, 전신인 칼리버 L.U.C 1.96보다 겨우 0.4mm 정도 두꺼웠다. 배럴의 수를 늘리면서 무브먼트의 두께를 얇게 유지하고 복잡한 메커니즘을 한정된 공간 안에 밀어 넣는 것은 고도의 엔지니어링 능력을 요구한다. 쇼파드 매뉴팩처의 탁월함이 다시 한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L.U.C 콰트로 마크 IV.

L.U.C 올인원.

L.U.C 콰트로 스피릿 25.

콰트로 테크놀로지가 지닌 중요한 의미는 L.U.C 컬렉션의 스펙트럼을 크게 넓혔다는 것이다. 쇼파드는 콰트로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여러 컴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었다. 콰트로 테크놀로지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컴플리케이션을 안정적으로 구동하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가장 순수한 형태의 L.U.C 콰트로(L.U.C Quattro)부터 투르비용을 장착한 L.U.C 콰트로 투르비용(L.U.C Quattro Tourbillon), 퍼페추얼 캘린더와 투르비용을 결합한 L.U.C 퍼페추얼 T(L.U.C Perpetual T), 투르비용, 14가지 기능을 담아낸 L.U.C 올인원(L.U.C All-in-One), 쇼파드 매뉴팩처 설립 25주년을 기념하는 브랜드 최초의 점핑 아워 워치 L.U.C 콰트로 스피릿 25(L.U.C Quattro, Spirit 25)에 이르기까지 콰트로 테크놀로지는 자유로운 확장성을 보여줬다. 

타협 없는 품질

최고 수준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된 플러리에 퀄리티 파운데이션.

쇼파드의 최상위 모델에는 여지없이 L.U.C라는 이름이 붙는다. 쇼파드 매뉴팩처에서 제작되는 모든 L.U.C 시계는 오랜 전통과 뛰어난 기술을 아우른다.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마감은 쇼파드가 고급 시계 제작에 임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기계 공정과 장인의 손길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제조 방식은 쇼파드의 핵심 원칙이기도 하다. 칼리버 L.U.C 1.96에서 보았듯이 쇼파드는 제네바 씰에서 규정하는 가공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다. 이는 L.U.C 시계의 탁월함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다. 쇼파드의 품질에 대한 집착은 제네바 씰과 COSC를 넘어 플러리에 퀄리티 파운데이션(Fleurier Quality Foundation, FQF)의 창설로 이어졌다. 

퀄리테 플러리에 인증, 제네바 씰, COSC를 모두 획득한 L.U.C 퀄리테 플러리에.

2004년, 보베,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 보셰 매뉴팩처와 공동 설립한 플러리에 퀄리티 파운데이션은 제네바 씰과 COSC를 뛰어넘는 종합적이고 복합적인 인증 제도의 확립을 목표로 삼았다. 플러리에 퀄리티 파운데이션이 주관하는 퀄리테 플러리에(Qualité Fleurier) 인증은 시계 업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기준을 토대로 시계 전체를 평가한다. 퀄리테 플러리에 인증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 번째, 100% 스위스에서 제조해야 한다. 두 번째, COSC 인증을 통과해야 한다. 세 번째, 사용자가 시계를 착용한 상태를 가정한 시뮬레이션 테스트인 플러리테스트(Fleuritest)를 통과해야 한다. 네 번째, 정해진 기준에 따라 수작업으로 마감과 장식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섯 번째, 충격, 자성, 방수, 조작 및 작동, 사용 연한에 따른 성능 저하 등과 관련된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L.U.C 시계 중에서도 퀄리테 플러리에 인증을 받는 제품은 일부에 불과하다. 퀄리테 플러리에 인증은 고급 시계 제작에 대한 쇼파드의 헌신과 최상의 품질을 대변한다. 

손끝에서 탄생하는 예술

플러리잔 인그레이빙. 무브먼트 브리지에 무늬와 모티프를 그린 뒤 날카로운 칼로 정교하게 조각한다.

쇼파드 매뉴팩처에는 예술 공예 기법을 통해 시계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드는 메티에 다르(Métiers d’Art) 부서가 있다. 정교한 무브먼트와 시계에 예술혼을 불어넣는 메티에 다르는 쇼파드가 시계를 단순히 시간을 표시하는 장치가 아닌 작품 혹은 인류의 문화 유산으로 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장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계라는 캔버스 위에서 미적 감각을 뽐낸다. 이들은 19세기에 번성한 플러리에 지역의 전통 기법인 플러리잔(Fleurisanne) 인그레이빙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옻칠을 한 뒤 금가루 등을 뿌리는 마키에 기법으로 제작한 L.U.C XP 우루시 우키요에.

뿐만 아니라 일본의 칠공예 기법인 우루시를 활용한 다이얼로 동양의 미학과 스위스의 기계적 정밀함을 융합하곤 했다. 이 밖에도 에나멜, 페인팅, 기요셰 등 인내와 정밀함을 요구하는 장식 기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쇼파드는 규모 있는 제조사이지만 매뉴팩처의 한 켠에는 대량 생산 체제 하에서는 결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예술의 영역을 비옥하게 가꿔 균형을 도모하고 고급 시계의 빛깔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만든다. 

윤리적 접근

1978년 쇼파드는 주조 시설을 설립하며 일찌감치 수직 통합을 추구했다. 골드의 원산지를 보장하고,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직접 제련하여 사용하지 않은 재료를 재활용할 수 있다.

쇼파드는 2013년부터 시계와 주얼리 산업이 직면한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문제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지속 가능한 럭셔리를 향한 여정(Journey to Sustainable Luxury)을 시작했다. 지속 가능한 럭셔리를 향한 여정의 핵심은 윤리적으로 조달된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다. 쇼파드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소재, 예를 들면, 루센트 스틸, 골드, 다이아몬드, 컬러 스톤은 채굴부터 조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더 나아가 2018년부터는 자사 제품에 윤리적으로 채굴된 금을 100% 사용하는 정책을 고수해왔다. 책임 있는 주얼리 위원회(Responsible Jewellery Council, RJC)가 인증한 정제소와 협력하여 투명하고 추적 가능한 방식으로 금을 공급받는다. 단순한 마케팅 슬로건이 아니라 채굴 과정에서 아동 노동 착취를 배제하고,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는 공급망을 직접 관리하겠다는 쇼파드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쇼파드가 자체 주조 시설을 갖추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주: 칼 슈펠레 3세는 수직 통합을 강화하기 위해 1978년 주조 공장 건립에 투자했다. 그의 선견지명 덕분에 쇼파드는 자체적으로 금 합금을 생산할 수 있는 극소수의 브랜드 중 하나가 됐다). 

쇼파드는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매뉴팩처에 인접한 업체로부터 재활용 스틸을 공급받는다.

재활용 스틸의 비중을 80%까지 늘린 루센트 스틸(Lucent Steel™)은 뛰어난 항알러지성이나 내구성 및 내마모성 같은 소재 특성도 주목할만하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인다는 점에서 친환경적이다. 이 같은 쇼파드의 행보는 시계의 가치가 단순히 복잡한 기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재료가 탄생한 과정의 도덕성과도 결부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혁신과 미학의 앙상블

컴플리케이션이라는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차이밍 워치는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를 거듭해왔지만 기본적인 메커니즘과 작동 방식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차이밍 워치를 다룰 줄 아는 브랜드는 이 신비로운 메커니즘의 시각화와 청각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이 두 가치가 양립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L.U.C 스트라이크(L.U.C Strike) 시리즈는 차이밍 워치의 패러다임을 바꾼 동시에 쇼파드의 탁월한 기술성을 증명한 상징적인 시계라고 평할 수 있다.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와 공을 모노블록으로 제작했다.

기존의 차이밍 워치가 금속으로 만든 공(Gong)을 해머가 때려 소리를 내고 케이스가 이를 증폭시켰다면, 쇼파드의 L.U.C 스트라이크 시리즈는 사파이어 크리스털을 소리의 매개체로 활용했다. 다이얼과 무브먼트를 보호하는 전면 유리와 소리를 내는 공을 단일 부품으로 만든 구조 혁신은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이룩한 소재 혁신을 뒷받침했다. 일체형 사파이어 크리스털은 나사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제작하기 때문에 작동 시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고 음파를 차질 없이 전달할 수 있다. 실제로 L.U.C 스트라이크 시리즈는 보이지 않는 장막을 걷어낸 듯 명징한 소리를 연주한다. 덕분에 음향을 증폭하는 별도의 도구 없이도 맑고 또렷한 소리를 즐길 수 있다. 

(왼쪽부터) L.U.C 풀 스트라이크 투르비용, L.U.C 풀 스트라이크 사파이어, L.U.C 스트라이크 원.

쇼파드 매뉴팩처 창립 20주년인 2016년에 데뷔한 L.U.C 풀 스트라이크(L.U.C Full Strike)는 이듬해에 열린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에서 대상인 에귀유 도르(Aiguille d’Or)를 수상하며 성과를 인정받았다. 쇼파드는 독자적인 기술을 L.U.C 스트라이크 원(L.U.C Strike One), L.U.C 풀 스트라이크 투르비용(L.U.C Full Strike Tourbillon), L.U.C 풀 스트라이크 사파이어(L.U.C Full Strike Sapphire)에도 차례차례 적용해 나갔다. 이로써 차이밍 워치는 메종을 대표하는 컴플리케이션으로 자리매김했다. 

10개의 특허를 지닌 L.U.C 그랜드 스트라이크. 제네바 씰과 COSC 인증을 모두 받았다.

L.U.C 그랜드 스트라이크(L.U.C Grand Strike)는 쇼파드 기술력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메종의 30년 시계 제작 여정을 담은 이 시계는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그랑 소네리와 쁘띠 소네리 그리고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현재 시간을 소리로 치환하는 미닛 리피터를 결합했다. 연구 개발에만 11,000시간 이상이 소요된 L.U.C 그랜드 스트라이크는 쁘띠 소네리 모드에서 COSC 인증을 받았다. 쁘띠 소네리 기능을 활성화하면 15분 단위 시간을 연주한다. 이때 그랑 소네리와 달리 시는 알려주지 않는다. 다시 말해, 차이밍 메커니즘을 일시적으로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무브먼트의 작동을 의도적으로 제어하면서 발생하는 에너지 손실은 정밀함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L.U.C 그랜드 스트라이크는 그런 상황에서도 정확성을 잃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무브먼트는 제네바 씰 인증까지 획득하며 내실을 기했다. L.U.C 스트라이크 원에서 선보인 모노블록 구조의 사파이어 크리스털은 L.U.C 그랜드 스트라이크에서도 등용됐다. 추가로 쇼파드는 5년간의 사용을 가정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L.U.C 그랜드 스트라이크의 내구성과 안정성을 검증했다. 이 기간 동안 소네리는 62,400번, 미닛 리피터는 3,000번이나 작동한다. 사파이어 크리스털 공과 해머는 50만번 넘게 부딪히며 서로의 단단함을 증명해야 한다. 타협 없는 메종의 철학과 정신은 L.U.C 그랜드 스트라이크의 소리와 함께 생생하게 울려 퍼진다. 

알프스의 정기

(왼쪽부터) 칼-드리프리히 슈펠레, 칼 슈펠레 3세, 칼-프리츠 슈펠레.

칼-프리드리히 슈펠레 현 쇼파드 공동 회장은 1980년대에 생모리츠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스테인리스 스틸 시계의 필요성을 직감한 그는 아버지 칼 슈펠레 3세를 설득해야 했다. 2019년 칼-프리츠 슈펠레(Karl-Fritz Scheufele)는 아버지 칼-프리드리히 슈펠레를 설득해 생모리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럭셔리 스포츠 워치를 개발한다. 칼-프리드리히 슈펠레는 다소 회의적이었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아들에게 설득당하고 말았다. 알파인 이글(Alpine Eagle)에는 3대에 걸친 슈펠레 가문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이다. 

알파인 이글을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루센트 스틸이다. 쇼파드는 시계 업계에서 최초로 재활용 강철의 비중을 80% 이상으로 높인 합금을 만들어냈다. 루센트 스틸은 친환경적 메시지만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루센트 스틸의 진면목은 시계 업계의 표준과 같은 316L 스테인리스 스틸보다 우수한 소재 특성에 있다. 루센트 스틸은 316L 스테인리스 스틸보다 약 50% 높은 경도를 지닌 덕분에 스크래치에 강하다. 알러지 반응도 잘 일으키기 않으며 내부식성도 훌륭하다. 특히, 불순물을 최대한 억제하는 제련 과정을 통해 결정 구조가 균일해져 뛰어난 발색과 광택을 갖는다. 정교한 표면 마감을 거친 루센트 스틸은 이름처럼 빛나는 존재로 거듭난다. 

알파인 이글 플라잉 투르비용.

알파인 이글의 또 다른 특징은 다이얼이다. 비정형의 패턴은 험준한 알프스를 누비는 독수리의 홍채에서 영감을 얻었다. 전기 도금 처리로 색을 입힌 다이얼은 특유의 질감이 살아나 생명이 깃든 듯 매 순간 새로운 표정을 짓는다. 알프스 빙하의 푸른 빛을 담은 알레치 블루, 암벽의 질감을 표현한 베르니나 그레이 등 자연에서 착안한 컬러는 알파인 이글의 테마인 ‘자연에 대한 경외’를 시각적으로 완성한다. 

알파인 이글 41 SL 케이던스 8HF.

정교하게 조각한 브레이슬릿은 두껍지 않은 케이스와 함께 안락한 착용감을 제공한다. 브레이슬릿의 링크는 손목의 곡률에 맞춰 치밀하게 설계했으며, 링크와 링크를 잇는 연결 부위는 부드럽게 가동하여 손목에 가해지는 피로감과 불쾌함을 효과적으로 덜어준다. 복잡한 공정을 거쳐 완성되는 브레이슬릿은 케이스와 함께 어우러지며 알프스의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서 느껴지는 자연의 기하학을 표현한다. 

레이싱을 향한 열정의 기록

1988년에 첫 선을 보인 밀레 밀리아(Mille Miglia)는 클래식 스포츠카를 향한 칼-프리드리히 슈펠레의 애착에서 비롯했다. 레이싱과 스포츠카는 그에게 단순한 취미 생활 그 이상이다. 속도와 기계적 메커니즘을 향한 칼-프리드리히 슈펠레의 개인적 열망은 밀레 밀리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1927년부터 1958년까지 열린 밀레 밀리아는 브레시아에서 로마를 지나 다시 브레시아로 돌아오는 코스를 따라 1,000마일(주: 밀레 밀리아는 이탈리아어로 1,000마일을 뜻한다)을 달려 성능을 겨루던 내구 레이스였다. 1977년부터 다시 열린 밀레 밀리아는 1957년 이전에 제조된 차량만 참가할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칼-프리드리히 슈펠레 회장이 밀레 밀리아에서 운전한 메르세데스 300SL 걸윙.

파트너십이라는 개념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현재까지 쇼파드는 밀레 밀리아를 후원하고 있다. 단순히 이름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건 아니었다. 칼-프리드리히 슈펠레는 본인이 직접 레이서로 경기에 참가하며 현장에서 어떤 시계가 필요한지를 파악했다. 그렇게 쌓은 경험은 제품 개발에 철저하게 반영됐다. 장갑을 낀 상태에서도 조작이 가능한 커다란 푸시 버튼은 실제 레이싱에서 착용하는 것을 고려한 기능적 설계의 결과물이었으며, 대시보드에서 영감을 얻은 다이얼은 레이싱의 열기를 고조시키는 요소였다. 

(왼쪽)칼-프리드리히 슈펠레와 (오른쪽)미스터 르망 재키 익스.

1960년대 던롭 타이어의 트레드 패턴을 러버 스트랩에 이식한 것은 밀레 밀리아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고급 시계에 러버 스트랩을 연결하는 것은 이례적이지만 쇼파드는 러버 스트랩을 통해 클래식카에 대한 향수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러버 스트랩으로 시계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부여할 뿐만 아니라 착용감이 뛰어나고 관리하기 쉽다는 이점을 살리겠다는 쇼파드의 전략은 적중했다. 

밀레 밀리아 클래식 크로노그래프.

밀레 밀리아는 로쏘 아마레나 레드, 베르데 키아로 그린 같은 다이얼에서 알 수 있듯이 화려하고 감각적인 디자인을 앞세운다. 허나 그 내면에는 기계식 시계의 본질인 정밀함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자리잡고 있다. 모든 밀레 밀리아 시계에는 COSC 인증을 받은 무브먼트를 사용한다. 진동과 충격이 쉬지 않고 전달되는 주행 상황에서 시계의 정밀함이 경주 결과나 운전자의 안전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쇼파드 박물관.

쇼파드의 지난 30년은 다양한 가치를 확보하고 다듬은 투자의 시간이자 투쟁의 역사였다. 가족 경영을 이어온 쇼파드는 매뉴팩처를 설립하며 독립성에 대한 간절함을 보여줬으며, 고급 시계에 임하는 진정성을 입증했다. 전통과 장인 정신 그리고 예술성을 대하는 진심은 에나멜, 인그레이빙과 같은 다양한 예술 기법을 매개로 분출됐다. 쇼파드는 기술과 예술, 전통과 미래, 기업 윤리와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다음 장에서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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