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 유명 패션지의 기자로부터 워치스 & 원더스 2025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계를 선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롤렉스(Rolex)의 랜드-드웰러(Land-Dweller)를 선택했다. 시계를 다루는 매체의 필진이라면 고상한 척을 했어야 했나? 나는 연간 판매량이 100만개를 훌쩍 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시계 회사가 발표한 제품을 지명했다. 내 눈에는 랜드-드웰러가 롤렉스의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시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롤렉스가 또 한 번의 놀라운 혁신을 이룩했다는 점에서 랜드-드웰러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랜드-드웰러를 단순히 디자인을 변형한 기존 제품의 파생형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랜드-드웰러는 전통과 보수로 대변되는 롤렉스의 정체성을 해체하고 재구축한 결과물로 봐야 한다. 오랫동안 고급 시계 시장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유지해온 롤렉스는 랜드-드웰러를 통해 그 지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이스터 케이스와 퍼페추얼 로터로 기계식 손목시계의 대전환을 이끌어낸 이들은 랜드-드웰러를 매개로 시계 제조의 신기원을 열 심산인 듯하다. 랜드-드웰러를 개발하며 출원한 18건의 특허(이 중 16건이 칼리버 7135에 집중되어 있다)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추상적 관점에서 바라본 랜드-드웰러는 어떤 시계일까? 첫째, 랜드-드웰러는 롤렉스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 유려한 선을 그리며 케이스와 한 몸을 이루는 일체형 브레이슬릿은 1970년대에 발원한 럭셔리 스포츠 워치를 상징하는 요소다. 롤렉스도 1970년대에 일체형 브레이슬릿 시계를 만들어 거대한 물줄기에 합류한 바 있다. 고로 랜드-드웰러에는 지난 역사에 대한 헌사의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 둘째, 랜드-드웰러는 오늘날 롤렉스 시계를 정의하는 일곱개의 가치(정확성, 셀프와인딩, 파워리저브, 방수, 항자성, 신뢰성, 내구성)를 함축하고 있다. 대부분이 현대 손목시계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이러한 기술적 특성은 롤렉스가 실현한 완벽에 가까운 수직적 통합 그리고 최고 수준의 산업화라는 토대 위에 서 있다. 다시 말해, 랜드-드웰러는 롤렉스의 현재를 알려주는 지표이자 현대 시계 제조의 표상이다. 셋째, 랜드-드웰러는 시계 제조의 미래를 향해 내뻗은 발걸음이다. 다이나펄스 이스케이프먼트(Dynapulse escapement)와 실리콘처럼 워치메이킹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도 있는, 어쩌면 이미 되고 있는 기술이 랜드-드웰러에 담겨 있다. 랜드-드웰러는 언제나 시계 제조의 표준을 재정립하고, 지속적으로 혁신을 추구해온 롤렉스의 미래지향적 가치관을 여실히 보여준다. 과거를 돌아보되 매몰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며, 미래를 응시하는 롤렉스의 철학이 투영된 시계. 내가 생각하는 랜드-드웰러란 그런 시계다.
내가 랜드-드웰러를 주목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롤렉스가 과거로부터 영감을 받았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이다. 지난 2017년의 첼리니 문페이즈(Ref. 50535)와 씨-드웰러(Ref. 126600), 2023년의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 “르 망”(Ref. 126529LN)은 모두 예전 시계의 디자인을 일부 차용했다. 첼리니 문페이즈는 Ref. 6062와 Ref. 8171을, 씨-드웰러는 오리지널 씨-드웰러를,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 “르 망”은 경매 시장에서 엄청난 몸값을 자랑하는 속칭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 “폴 뉴먼”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간 롤렉스는 세부적인 디테일을 활용해 제품의 기원을 들춰내고 관심을 이끌어내는 전략을 종종 구사했다. 단, 보물찾기 마냥 숨은 비밀을 파헤치고 탐구하는 것은 오롯이 애호가의 몫이었다. 허나 이번에는 친절하게도 랜드-드웰러의 뿌리가 1969년 롤렉스 최초의 일체형 브레이슬릿 시계인 쿼츠(Ref. 5100)와 1974년의 데이트저스트(Ref. 1630)임을 명확하게 밝혔다.
둘째, 롤렉스가 종래의 규범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랜드-드웰러에는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백을 적용했다. 물론 롤렉스가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백을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첼리니 프린스,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 “르 망”이나 플래티넘 모델 그리고 최근의 퍼페츄얼 1908 같은 전례가 있다. 그렇지만 이 시계들은 롤렉스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컬렉션이 아니거나 컬렉션 내 특정 모델에 불과하다. 랜드-드웰러처럼 브랜드의 중핵으로 자리잡을 컬렉션에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백을 일괄 투입한 것은 앞으로 얼마든지 기존의 노선을 수정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처음으로 고진동 무브먼트를 사용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수십 년간 롤렉스는 무브먼트의 시간당 진동수를 28,800vph(4Hz)으로 고정했다. 손목시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시간당 진동수가 28,800vph(4Hz)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이보다 느리면 뛰어난 성능을 보장하지 못하고, 반대로 빠르면 안정성, 파워리저브, 내구성, 서비스 주기 측면에서 부정적일 거라고 판단했다. 그랬던 롤렉스는 랜드-드웰러에서 돌연 시간당 진동수를 36,000vph(5Hz)로 끌어올렸다. 이 변화의 근거는 후술할 세 번째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마지막은 롤렉스가 마침내 실리콘 기술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이다. 롤렉스는 2000년대 초반부터 율리스 나르당, 스와치 그룹, 파텍 필립과 함께 실리콘 연구를 이끌어온 선구자다. 율리스 나르당이 실리콘 이스케이프먼트를 도입한 최초의 손목시계 프릭을 선보이고, 스와치 그룹이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을 자사의 고급 브랜드에 적극 활용하고, 파텍 필립이 어드밴스드 리서치를 통해 실리콘 기술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때 롤렉스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움직임을 보여줬다. 여성용 모델을 위한 칼리버 2236에 실록시 헤어스프링을 제한적으로 사용했고, 2023년에 들어서야 겨우 퍼페츄얼 1908로 확대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랜드-드웰러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롤렉스는 오랜 기간 조용히 갈고 닦아 온 실리콘에 대한 노하우를 랜드-드웰러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다이나펄스 이스케이프먼트를 비롯해 실록시 헤어스프링까지, 오실레이팅 기관의 주요 부품을 모조리 실리콘으로 제작했다. 새로운 이스케이프먼트의 완벽한 구동과 고진동에 기댄 정확성을 구현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 바로 실리콘인 것이다.
랜드-드웰러는 롤렉스의 유산에서 얻은 영감에만 의존하지 않고 현대적인 감각을 반영하는데 공을 들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의 조화다. 시계 시장에서 하나의 표준으로 부상한 일체형 브레이슬릿. 롤렉스는 이 메가 트렌드와 거리를 둔 것처럼 보였지만 정제된 디자인은 물론이고 공학적으로 완벽한 시계를 만들기 위해 남몰래 정중동의 행보를 이어왔다. 주빌리 브레이슬릿을 재해석한 새로운 플랫 주빌리 브레이슬릿은 케이스로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모든 링크는 평평하지만 폭이 좁은 중앙의 링크 3개는 폴리시드 가공해 광을 내고, 폭이 약간 넓은 바깥쪽 링크 2개는 새틴 브러시드 가공으로 결을 살렸다. 중앙 링크는 바깥쪽 링크에 비해 약간 돌출되어 있는데 덕분에 입체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바깥쪽 링크는 모서리를 모따기(Beveling)했는데 케이스를 따라 이어지며 고급스러운 광택을 발산한다.
일반적인 일체형 브레이슬릿은 케이스와 통합되는 구조적 특성상 링크의 수를 늘리는데 다소 제약이 있다. 러그에 해당하는 부분이 대체로 넓기 때문이다. 게다가 링크의 수를 늘리면 조잡해 보일 수도 있다. 플랫 주빌리 브레이슬릿은 1945년에 소개한 주빌리 브레이슬릿의 유산을 계승하고 있는 만큼 링크 수를 5개로 유지했다. 이 경우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의 이음매에 과도한 힘이 전해지고, 이로 인해 마모가 빠르게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롤렉스는 독특한 부착 시스템을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다. 1cm가 채 되지 않는 짧은 스프링 바는 사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회전하는데, 마모를 막기 위해 세라믹 인서트에 집어넣고 나사로 양쪽에서 단단하게 고정한다. 단순한 기술적 성취를 넘어 부드러운 착용감과 견고함이라는 가치를 제공하는 이런 세밀한 디테일은 롤렉스의 방향성에 정확히 부합한다. 크라운클라스프(Crownclasp)는 브레이슬릿을 열고 닫는 버튼 없이 왕관 장식을 이용해 클라스프를 열고 닫을 수 있다. 우아한 외관과 디자인의 일관성을 다잡은 이 방식은 데이-데이트의 프레지던트 브레이슬릿에 적용한 것과 동일하다. 기존에는 브레이슬릿을 조립하고 한꺼번에 마감했다면 플랫 주빌리 브레이슬릿은 링크를 따로 마감한 뒤에 조립한다. 이러한 제조 방식의 변화는 브레이슬릿의 모서리를 균일하게 마감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했다.

랜드-드웰러의 다이얼. 초침이 1초에 10번 움직이는 시간당 진동수에 맞춰 플린지에 인덱스를 인쇄했다. 다이얼 컬러에 따라 마감이 다른 것도 특징이다. 인텐스 화이트 다이얼은 새틴, 아이스 블루 다이얼은 선레이 마감 처리했다.
롤렉스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플루티드 베젤은 랜드-드웰러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랜드-드웰러 40의 경우 베젤의 홈이 60개로 줄어들었다. 지름이 같은 데이-데이트(72개)나 퍼페츄얼 1908(180개)과 확연하게 비교된다. 플루티드 베젤의 폭을 늘리면서 특유의 화려한 빛 반사를 그대로 유지한 채 현대적인 인상을 제공한다. 다이얼을 채운 벌집 모양의 모티프는 플루티드 베젤을 2차원의 평면에서 풀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육각형 모티프 사이사이로 보이는 미세한 선은 헤어스프링에서 착안했다. 기능적 장치에서 조형적 요소로 둔갑한 실험적인 헤어스프링 모티프는 롤렉스가 랜드-드웰러를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육각형의 셀과 셀 사이를 채운 섬세한 선은 펨토초 레이저(Femtosecond Lasers)로 가공했다. 의료, 미용,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다양한 산업에 활용되는 펨토초 레이저는 미세한 부품을 가공하거나 다이얼에 세밀한 문양을 새기는데 쓰일 만큼 시계 업계에서도 사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눈금을 새긴 플랜지는 랜드-드웰러만의 고유한 디자인 요소다. 초침 끝도 육각형으로 가공하며 랜드-드웰러의 시그니처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아워 마커의 형태 역시 남다르다. 보통은 특정 형태로 틀을 완성하고 그 속에 액체 상태의 야광 도료를 채워 넣는다. 이에 반해 랜드-드웰러의 아워 마커는 속이 비어 있고, 그 안에 고체 상태의 크로마라이트(Chromalight)를 삽입했다. 발광 세라믹 파우더를 열경화성 폴리머와 혼합한 뒤 고온에서 구워 완성한 야광 블록은 정교하게 재단한 뒤 아워 마커와 결합한다. 익스플로러와 에어-킹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아라비아 숫자 6과 9는 열려 있는 형태로 제작했다. 완벽한 직선을 가진 시침과 분침도 랜드-드웰러만의 특징이다.
랜드-드웰러가 이룩한 모든 진보의 중심에는 칼리버 7135가 자리한다. 칼리버 7140에서 갈라져 나온 칼리버 7135는 육안으로는 칼리버 7140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다이나펄스 이스케이프먼트라는 신기술을 접목했다. 시계 제작의 혁명이자 롤렉스 워치메이킹의 새로운 상징이 될 다이나펄스 이스케이프먼트는 롤렉스가 지난 2015년 크로너지 이스케이프먼트(Chronergy escapement)를 선보인 지 10년 만에 내놓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메커니즘으로, 기계식 시계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이스케이프먼트의 효율과 신뢰성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기존의 스위스 레버 이스케이프먼트는 밸런스 휠이 왕복 운동을 하며 발생하는 팰릿 포크와 이스케이프 휠 간의 미끄럼 마찰(Sliding friction)로 인해 상당한 에너지 손실이 발생한다. 크로너지 이스케이프먼트는 팰릿 포크의 기하학적 구조를 변경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스케이프 휠의 이빨을 수정하고 무게를 줄여 효율을 약 15% 개선했다. 하지만 크로너지 이스케이프먼트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는 여전히 스위스 레버 이스케이프먼트의 틀 안에 있다. 다이나펄스 이스케이프먼트는 스위스 레버 이스케이프먼트로 대변되는 간접 충격 방식과 내추럴 이스케이프먼트의 직접 충격 방식을 혼합한 하이브리드형에 가깝다.
다이나펄스 이스케이프먼트는 6개의 이빨과 알파벳 C자 형태의 블레이드를 가진 두 개의 이스케이프 휠(디스트리뷰션 휠)을 비롯해 이스케이프 휠과 밸런스 휠 사이에 위치하는 임펄스 로커(Impulse rocker) 그리고 배럴에서 생성된 동력을 이스케이프 휠로 전달하는 톱니바퀴(4번 휠 또는 트랜스미션 휠)로 구성된다. 배럴에서 생성된 동력은 기어트레인을 따라 4번 휠로 전달되고, 4번 휠은 하나의 이스케이프 휠을 움직인다. 동력을 받은 이스케이프 휠은 다른 이스케이프 휠의 움직임을 제어한다. 임펄스 로커는 이스케이프 휠의 잠금과 해제를 관장하며, 이스케이프 휠에서 전달된 에너지를 받아 밸런스 휠에 충격을 준다. 다이나펄스 이스케이프먼트는 이스케이프 휠을 2개 사용하는 내추럴 이스케이프먼트의 방식과 유사하지만 밸런스 휠에 직접 충격을 전달하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다.
롤렉스는 다이나펄스 이스케이프먼트가 스위스 레버 이스케이프먼트보다 약 30%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가벼운 소재를 사용한 데다가 부품의 크기도 작고 결정적으로 속이 빈 형태로 가공해 관성을 줄여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을 방지했음을 알 수 있다. 부품 간의 마찰이 거의 없다는 것도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들 수 있다. 다이나펄스 이스케이프먼트의 작동 원리가 미끄럼 마찰이 아닌 회전 운동(Rolling motion)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주 : 접촉 면이 미끄러지는 게 아니라 부품끼리 서로 눌리듯 맞닿는 것을 의미한다). 심층 반응성 이온 에칭(DRIE, Deep Reactive Ion Etching) 기술을 통해 정교하게 가공되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이 모든 노력의 결과로 롤렉스는 칼리버 7135의 시간당 진동수를 36,000vph(5Hz)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더 높은 진동수는 오실레이팅 기관이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해주며, 이는 곧 사용자의 손목 위에서 완벽한 성능을 발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간당 진동수가 높아졌음에도 효율이 뛰어나기 때문에 칼리버 7140과 동일한 66시간 파워리저브를 유지할 수 있었다. 보통 시간당 진동수가 높으면 더 강한 메인스프링을 사용하는데 이는 토크를 증가시키고 에너지 소모를 가속화하여 파워리저브의 감소를 초래한다.
다이나펄스 이스케이프먼트의 독특한 제조 및 작동 방식으로 인해 롤렉스는 접근 방식을 달리해야 했다. 다이나펄스 이스케이프먼트는 전용 조립 공정을 통해 완성되며, 무브먼트에 장착하기 전 별도의 키트를 이용해 조립된다. 소재가 실리콘이지만 충분한 성능을 보장하기 위해 윤활유를 도포한다. 얇고 가는 전용 주유기를 이용해 윤활유를 나노리터 단위로 부품 표면에 분사한다. 윤활 작업이 끝나면 다이나펄스 이스케이프먼트를 무브먼트에 장착한다. 롤렉스는 다이나펄스 이스케이프먼트의 채택과 시간당 진동수의 증가로 인해 시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검증할 수 있는 진단 시스템 및 측정 장비를 새롭게 개발했다. 뿐만 아니라 제조 공정 전반을 새롭게 설계했다.
다이나펄스 이스케이프먼트는 마치 나비효과처럼 수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우선, 파라크롬 밸런스 스프링이 아닌 실록시 헤어스프링(Syloxi hairspring)을 기용했다(주 : 칼리버 7140에도 실록시 헤어스프링이 들어간다). 온도 변화나 자성에 강한 실록시 헤어스프링은 뛰어난 정확성을 보장한다. 롤렉스는 칼리버 7135만을 위한 실록시 헤어스프링을 새롭게 개발했다. 견고함과 우수한 성능을 위해 전보다 두껍게 성형한 새로운 실록시 헤어스프링은 시간당 진동수에 맞춰 수정했다.

실리콘으로 제작한 실록시 헤어스프링. 자성과 온도 변화에 강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양쪽에서 고정하는 방식과 독특한 기하학적 구조는 실록시 헤어스프링의 작동 안정성과 등시성을 높인다.
밸런스 휠의 소재도 베릴륨 합금인 글루시듀르(Glucydur) 대신 최적화된 황동(Optimized brass)으로 바뀌었다. 롤렉스가 최적화된 황동으로 밸런스 휠을 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적화된 황동은 실리콘처럼 뛰어난 항자성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글루시듀르에서 최적화된 황동으로의 전환은 니바록스에서 블루 파라크롬 헤어스프링으로의 전환과 묘하게 맞물린다. 이는 기술적 진전의 의미도 있겠으나 모든 것을 직접 통제하길 원하는 롤렉스의 전략적 방침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밸런스 휠을 지탱하는 밸런스 스태프(Balance staff)는 단단하고 내구성이 뛰어난 세라믹으로 제작했다. 다이얼 제작에 쓰인 펨토초 레이저를 동원해 순백의 세라믹을 나노미터 단위까지 정교하게 절삭했다. 밸런스 스태프 제작에 이렇게 많은 공을 들이는 이유는 외부 충격으로 인한 균열과 손상을 방지하고, 매끄러운 표면을 형성하기 위해서다. 표면이 매끄러우면 주얼과의 마찰이 줄어들어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아울러 밸런스 스태프 피벗(Pivot)의 형태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성형해 충격에 대한 저항성도 높였다. 롤렉스는 세라믹 밸런스 스태프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전용 검사 장비까지 개발했다.
세라믹 밸런스 스태프는 파라플렉스(Paraflex)의 개선이라는 연쇄작용을 일으켰다. 이 최적화된 파라플렉스는 구조를 변경해 뛰어난 유연성을 갖추게 됐다. 롤렉스가 개발한 충격 흡수 장치인 파라플렉스는 캡 주얼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어떤 위치에서도 밸런스 스태프가 규칙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새로운 파라플렉스는 캡 주얼을 누르는 중앙의 스프링은 그대로지만 양 옆으로 튀어나온 돌기를 추가해 성능을 개선했다.
랜드-드웰러의 소속은 클래식이다. 기능으로 봤을 때 클래식 라인에서 비교할 수 있는 시계는 데이트저스트와 데이-데이트다. 랜드-드웰러는 에버로즈 골드와 플래티넘 같은 귀금속 모델이 있다는 점에서 데이트저스트보다 체급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고귀함의 관점에서 봤을 때 랜드-드웰러는 데이-데이트를 넘어설 수 없다. 스테인리스 스틸 모델이 있기 때문이다. 크기와 소재가 같을 경우 가격은 데이트저스트보다 확실히 높고, 데이-데이트와는 큰 차이가 없다. 랜드-드웰러는 클래식 라인을 더욱 촘촘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며, 기존의 제품에서 만날 수 없었던 독특한 디자인과 최신 기술을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다.
단순한 신제품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랜드-드웰러는 롤렉스의 근간을 이루는 탐험과 도전 정신을 재해석하고, 워치메이킹의 한계를 넘어선 시계로 기록될 것이다. 특히, 다이나펄스 이스케이프먼트를 위시한 여러 신기술은 롤렉스가 나아갈 기술적 방향성을 명확히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대량 생산을 하는 롤렉스에게 랜드-드웰러는 그야말로 크나큰 도전이나 마찬가지다. 롤렉스의 혁신이 랜드-드웰러에 국한될지, 아니면 다른 시계로 확산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롤렉스가 실리콘 부품의 사용 범위를 늘릴지도 여전히 미지수다. 다이나펄스 이스케이프먼트의 안정성도 검증할 시간이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롤렉스가 랜드-드웰러를 통해 워치메이킹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것과 이들의 탐험이 여기서 멈추지 않으리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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