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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의 논리, 원형의 시학: 까르띠에 산토스 vs 발롱 블루

다른 언어로 말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 이상우
  • 202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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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locca.com/article/%ec%82%ac%ea%b0%81%ec%9d%98-%eb%85%bc%eb%a6%ac-%ec%9b%90%ed%98%95%ec%9d%98-%ec%8b%9c%ed%95%99-%ea%b9%8c%eb%a5%b4%eb%9d%a0%ec%97%90-%ec%82%b0%ed%86%a0%ec%8a%a4-vs-%eb%b0%9c%eb%a1%b1-%eb%b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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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의 논리, 원형의 시학: 까르띠에 산토스 vs 발롱 블루

이 세상에는 좀처럼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피카소와 달리, 메시와 호날두. 둘 다 자기 영역에서 최고 수준에 도달한 존재들이며, 그 사이에는 단지 스타일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까르띠에의 산토스와 발롱 블루 역시 마찬가지다. 두 시계는 사각과 원형 디자인의 정점에 있다. 서로 다른 두 형태는 그 자체로 미학적이며, 나아가 착용자의 정체성과 세계관까지 드러낸다.

사각과 원형의 상징

미학의 역사에서 형태는 강력한 상징이었다. 여러 형태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형태는 원형이었다. 특히 플라톤에게 원은 완벽한 형상의 이데아였다. 그는 이 세계를 신이 만든 가장 완벽한 형상으로 설명하면서 그 궁극적인 형태를 ‘원’으로 규정했다. 플라톤에 따르면 원은 시작과 끝이 구분되지 않고 모든 점이 중심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대칭과 조화를 갖춘 도형이다. 그 자체로 완결된 존재이자 가장 이상적인 형상인 셈이다. 

반면 사각형은 이데아적 세계의 한 구성요소로 보았다. 플라톤은 정육면체가 흙의 본질을 나타낸다고 주장하며, 사각 형상의 견고함, 안정, 질서에 주목했다. 실제로 중세와 르네상스의 건축 양식에서 사각형은 질서·균형·수학적 비례의 언어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원형 돔과 사각형 기단을 결합한 성당 건축은 하늘과 땅의 결합이라는 은유로 해석된다. 이러한 형태에 대한 인식은 근대를 지나 현대까지 일관되게 이어진다. 

20세기 초 독일에서 등장한 게슈탈트(Gestalt)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형태를 인식할 때 부분의 합이 아닌 하나의 구조로 지각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에 따르면 인간은 원형에서 안정과 조화를 느끼며, 사각에서는 질서와 구조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동 시기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역시 사각은 인간의 합리적 질서, 원은 자연의 질서라는 맥락으로 파악하고 이를 건축에 반영하기도 했다.

이처럼 형태는 디자인과 스타일을 뛰어넘어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형태의 워치메이커’ 까르띠에는 그동안 다양한 형태를 통해 세계와 동시대의 인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건넸다.

 

사각의 산토스와 원형의 발롱 블루 © Klocca

산토스와 발롱 블루. 까르띠에의 두 상징적 모델은 사각과 원형의 대립을 손목 위에 펼쳐낸다. 1904년 탄생한 산토스는 최초의 현대적 손목시계라는 역사성과 함께, 각진 케이스와 노출된 스크루로 구조적 미학을 구현한다. 반면 2007년에 등장한 발롱 블루는 둥글게 부풀린 케이스와 크라운을 감싼 곡선으로, 원형의 우아함을 극대화한다. 즉, 산토스와 발롱 블루의 차이는 단순한 디자인의 대비가 아니라, ‘사각의 논리학’과 ‘원형의 시학’이 충돌하는 토론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산토스 컬렉션은 주로 남성 고객을 중심으로, 발롱 블루는 여성 고객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둘을 직접 비교하기에는 일종의 ‘체급 차이’가 존재했던 것. 하지만 올해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산토스 드 까르띠에 스몰 모델이 새롭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번 신제품은 기존 산토스의 디자인 코드를 유지하면서도 보다 다양한 고객들을 포용할 수 있도록 사이즈를 줄였다. 기존에 사각과 원형의 대결구도가 대체로 ‘탱크 vs 발롱 블루’였다면, 이제는 ‘산토스 vs 발롱 블루’라는 또 하나의 선택지가 생긴 셈이다. 새로운 빅 매치에 앞서 두 시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2025년 새롭게 선보인 산토스 드 까르띠에 스몰 모델 © Cartier © Julien Thomas Hamon

산토스 드 까르띠에 워치
Santos de Cartier Watch

산토스 드 까르띠에 워치 스몰 모델

산토스는 까르띠에 손목시계의 출발점이자 메종의 사각 시계를 대표하는 모델이다. 대부분의 시계 브랜드는 원형이 디폴트 값이지만, 까르띠에만큼은 그 근본이 사각형인 이유다. 때는 1904년 프랑스 파리. 비행사 알베르토 산토스 뒤몽(Alberto Santos-Dumont)은 친구 루이 까르띠에(Louis Cartier)에게 불편함을 토로했다. 비행 중에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는 것이 불편하고 위험했기 때문. 이에 루이 까르띠에는 손목에 착용할 수 있는 시계를 디자인했고, 세계 최초의 현대적 손목시계 산토스가 탄생했다. 이는 인간이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시간 감각을 주머니에서 손목으로 옮긴 역사적 사건이었다. 

  • 비행사 알베르토 산토스 뒤몽 © Cartier

  • 최초의 산토스 뒤몽 워치 ©Vincent Wulveryck © Collection Cartier © Cartier

탄생 스토리뿐만 아니라 디자인도 특별했다. 산토스 워치는 처음부터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을 갖췄다. 직선 위주의 사각 케이스와 전면에 노출된 리벳은 모더니티의 선언이자,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 문명에 대한 오마주였다. 곡선 처리된 모서리 등에서는 아르데코 스타일의 초기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산토스 워치는 1911년부터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판매되기 시작했고,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오늘날 산토스 워치는 크게 ‘산토스 드 까르띠에’ 컬렉션과 ‘산토스 뒤몽’ 컬렉션으로 나뉜다. 산토스 뒤몽이 얇고 드레시한 느낌이라면 산토스 드 까르띠에는 좀 더 볼드하고 활동적인 느낌이다. 이런 시계를 보다 작게, 여성들도 편하게 착용할 수 있도록 만들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 까르띠에는 올해 산토스 드 까르띠에 스몰 모델을 선보이며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했다. 

새로운 스몰 모델은 보다 다양한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다. © Cartier © Julien Thomas Hamon

이번 신제품은 산토스 드 까르띠에 컬렉션의 디자인 코드는 남겨둔 채 사이즈와 비율을 절묘하게 조절하여, 작고 스포티한 사각 브레이슬릿 워치로 완성했다. 기존 까르띠에 컬렉션 안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포지션이다. 까르띠에의 엔트리 사각 시계 중에서 브레이슬릿을 갖춘 모델은 탱크 머스트, 탱크 프랑세즈, 그리고 팬더 드 까르띠에 정도였다. 탱크 머스트와 탱크 프랑세즈는 둘 다 드레스 워치 성향이 강하다. 특히 탱크 머스트는 가죽 스트랩이 메인이고, 메탈 브레이슬릿은 이를 보완하는 옵션 정도의 느낌이다. 팬더 드 까르띠에 역시 시계의 디자인, 두께, 브레이슬릿 디자인 등에서 주얼리 워치의 성향이 강하다. 

  • 탱크 머스트 워치

  • 탱크 프랑세즈 워치

  • 팬더 드 까르띠에 워치

반면 새로운 산토스 드 까르띠에 스몰 모델은 보다 모던한 성향의 시계다. 디자인 자체는 다른 산토스 드 까르띠에 컬렉션의 연장선상에 있다. 먼저 다이얼 중앙의 미닛 트랙에서, 글라스, 베젤, 케이스까지 차례로 확장되는 부드러운 사각 형태가 시계의 건축적인 구조를 강조한다. 사각 형태지만 각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산토스 드 까르띠에 워치의 매력이다. 곡선은 시계의 보이지 않는 부분에도 숨어 있다. 측면에서 보면 러그에서 글라스를 지나 반대편 러그까지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데, 이 곡선 덕분에 케이스와 다이얼에서 다채로운 빛 반사를 즐길 수 있다. 시계를 움직일 때마다 수평선 같은 반사 라인이 수직으로 교차하는 것도 흥미롭다. 크라운은 마치 너트처럼 가공해 블루 합성 스피넬 카보숑으로 포인트를 주었고, 폴리싱 처리한 베젤에는 산토스 워치의 상징적인 요소인 8개의 스크루를 심었다. 

산토스 드 까르띠에 워치 스몰 모델 © Cartier © Valentin Abad

케이스 크기는 가로 27mm, 세로 34.5mm로 미디엄 모델에 비해 꽤 작아졌다. 단순히 일괄적으로 축소한 것이 아니라 밸런스와 비율 자체를 세밀하게 조정했다. 특히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의 너비가 함께 조정되면서 시계가 전반적으로 날렵해졌다. 과거 산토스 갈베 시절의 비율이 살짝 연상되기도 한다. 실제로 이번 스몰 모델은 미디엄 모델이나 라지 모델보다 양 옆으로 튀어나오는 느낌이 적다. 덕분에 손목에서 감기는 라인이 둔탁하지 않고 주얼리 브레이슬릿처럼 슬림한데, 그럼에도 산토스 드 까르띠에 컬렉션 특유의 볼드한 감각은 살아 있다. 쿼츠 무브먼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두께를 이보다 훨씬 줄일 수 있었을 터. 하지만 기존 컬렉션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두께에 다소 여유를 두었다. 이는 다분히 의도된 디자인이라 하겠다.

  • 비교적 슬림한 브레이슬릿

  • 컬렉션 특유의 볼드한 감각은 살아 있다.

이런 특성은 비슷한 디자인의 팬더 드 까르띠에 워치와 비교해보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팬더는 매끄럽고 유연하게 감기는 브레이슬릿이 포인트이고 시계 케이스도 작게 세팅되어 있다. 반면 산토스는 시계 케이스 자체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팬더와 달리 브레이슬릿과 가죽 스트랩을 퀵 체인지로 편리하게 교체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까르띠에가 제공하는 다양한 가죽 스트랩은 일상에서 산토스의 활용성을 극대화한다.

  • 메탈 브레이슬릿

  • 가죽 스트랩

산토스 드 까르띠에 컬렉션의 디자인 코드는 남겨둔 채 사이즈와 비율을 절묘하게 조절하여, 작고 모던한 사각 브레이슬릿 워치로 완성했다.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워치
Ballon Bleu de Cartier Watch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워치 33mm 모델

다음으로 까르띠에의 원형 시계를 대표하는 발롱 블루 워치다. 발롱 블루는 프랑스어로 ‘파란 공’이라는 뜻으로 2007년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공처럼 둥근 케이스는 우주가 탄생했던 순간부터 시작된 공간의 팽창과 시간의 연속을 상징한다. 앞서 플라톤이 이야기했던 원형의 이상적인 형태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완전히 새로운 컬렉션이 시장에 안착하기란 쉽지 않다. 고객들이 새로운 디자인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어떤 시계는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발롱 블루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시계는 2000년대 이후 까르띠에의 신규 컬렉션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다. 대중들은 마치 풍선의 한쪽을 눌러놓은 듯한 새로운 디자인을 즉시 받아들였고, 발롱 블루는 21세기의 새로운 고전이 되었다. 드레스 워치의 전통을 잇되, 곡선과 볼륨감이라는 새로운 감각으로 여성 고객에게 현대적인 우아함을 제안한 것이다.

발롱 블루는 2000년대 이후 까르띠에의 신규 컨렉션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다.

발롱 블루는 까르띠에 특유의 클래식한 분위기 속에서 미래적인 디자인과 실험이 돋보이는 모델이다. 특히 주얼 세팅 없이 그 형태감만으로도 주얼리 워치의 면모를 보여준다. 크라운을 감싸는 곡선 브리지는 직선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모든 요소를 원형의 리듬 안에 끌어들인다. 언뜻 보면 원형의 평범한 디자인 같지만 그 안에는 독창적 요소로 가득하다. 원형 케이스 안에 또 하나의 원형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 속에 다시 원형의 크라운을 배치한 것. 다양한 원형이 중첩되며 만들어내는 형태감은 그 어떤 시계에서도 볼 수 없는 발롱 블루만의 매력이다.

형태감만으로도 주얼리 워치의 면모를 보여준다.

측면에서 보면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의 곡선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곡선은 케이스 측면을 따라서 흘러내리다가 케이스 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마치 스틸로 빚은 작은 조약돌을 보는 듯하다. 둥근 크라운에 세팅된 카보숑 역시 까르띠에의 전통을 계승하는 요소다. 곡선 브리지 아래 파란색 카보숑이 은밀하게 숨어 있다는 것도 발롱 블루만의 특징이다. 

측면에서 보면 케이스가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있다.

오팔린 실버 다이얼에는 까르띠에를 상징하는 로마숫자 인덱스가 원형으로 배열되어 있다. 3시 방향의 인덱스가 크라운 형태에 맞게 휘어진 모습에서 브랜드의 위트가 느껴진다. 이 다이얼 변주 때문에 핸즈가 일반 시계보다 짧아진다는 것도 발롱 블루의 개성이다. 짧은 핸즈는 큼직한 로마숫자 인덱스를 강조하면서 시계에 귀여운 분위기를 더한다. 다이얼은 평면적이면서도 입체적이다. 선버스트 마감과 기요셰 마감이 다이얼의 각 영역마다 교차 편집되어 있는데, 각각의 영역이 물리적으로 끊어져 있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보이지 않는 가상의 라인으로 이어져 있다. 마치 서로 다른 두 개의 다이얼을 중첩시켜 놓은 듯한 느낌이다.

 

크라운과 연결된 다이얼의 변주

발롱 블루의 사이즈는 지름 28mm부터 지름 42mm까지 다양한데, 새로운 산토스 드 까르띠에 스몰 모델과 직접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지름 33mm 모델이다. 33mm 모델은 산토스 스몰 모델과 달리 기계식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탑재하고 있어서 중앙 초침의 움직임을 느껴볼 수 있다. H 링크 브레이슬릿은 산토스 드 까르띠에와 비교하면 다소 무난한 편이다. 러그 없이 케이스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일체형 디자인으로, 최근 모델에는 퀵 체인지 기능도 탑재되어 가죽 스트랩으로 빠르게 교체할 수 있다. 

 

지름 28mm부터 42mm까지 다양한 사이즈가 준비되어 있다.

다양한 원형이 중첩되며 만들어내는 형태감은 그 어떤 시계에서도 볼 수 없는 발롱 블루만의 매력이다.
직선의 카리스마 vs 곡선의 우아함

산토스 스몰 모델과 발롱 블루 33mm 모델 © Klocca

이제 두 시계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자. 먼저 디자인이다. 산토스 드 까르띠에의 가장 큰 특징은 직선이다. 모서리는 곡선으로 처리되었지만 그래도 곳곳에 직선의 언어가 살아 숨쉬고 있다. 특히 브레이슬릿의 수많은 직선 라인이 산토스 워치의 정체성을 손목 전체로 확장시킨다. 사각 베젤, 그리고 브레이슬릿에는 스크루 장식이 노출되어 있다. 이는 초기 산토스의 디자인을 계승하는 것으로, 제품의 구조를 숨기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즉 현대 산업 건축의 리벳처럼 구조적 기능을 장식 요소로 승화시킨 것이다. 덕분에 산토스를 착용한 여성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도시적이고 모던한 인상을 풍기게 된다. 

산토스의 가장 큰 특징은 직선이다. © Klocca

반대로 발롱 블루는 모든 라인을 곡선으로 풀어낸다. 케이스는 둥글게 부풀어 있어 마치 보석처럼 반짝이며, 3시 방향의 원형 공간은 크라운과 사파이어 카보숑을 감싸 안듯 보호한다. 다이얼도 은은한 기요셰 패턴과 로마 숫자가 곡선 속에서 흘러가듯 배치되어 있다. 이는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세련된 흐름을 만들어내며, 착용자에게 여성적인 온화하고 세련된 감각을 부여한다. 또 귀엽고 장난스러운 요소 덕분에 젊고 발랄한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발롱 블루는 모든 라인을 곡선으로 풀어낸다. © Klocca

이러한 디자인의 차이는 형태적인 상징성과 연결되어 착용자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실생활에서 산토스와 발롱 블루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존재감을 발휘한다. 산토스는 회의실이나 비즈니스 미팅에서 보다 자신감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사각 형태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듯 단단한 기운을 내뿜는다. 직선의 시각적 무게감 역시 공식 석상이나 프레젠테이션 자리에서 착용자의 카리스마를 배가시킬 것이다. 

반면 발롱 블루는 산토스에 비해 유연하다. 캐주얼한 셔츠 위에도, 이브닝 드레스 위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둥근 케이스는 주얼리와 조화를 이루며 손목을 부드럽게 감싼다. 친구와의 점심 약속에도, 공식석상에도 무리 없이 녹아든다. 그렇게 발롱 블루는 착용자를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돋보이게 하는 힘이 있다. 

  • 도시적이고 모던한 인상을 드러내는 산토스

  • 온화하고 세련된 감각을 부여하는 발롱 블루

두 개의 자화상: 산토스와 발롱 블루

각각의 형태가 주는 상징성은 여성 고객의 심리에도 반영된다. 사각 시계는 자기주장의 표현이다. 각진 토트백이나 스퀘어 프레임 안경이 지적인 인상을 주듯, 산토스는 착용자가 전문적이고 이지적인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아울러 자기표현이 강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간접적으로 전한다. 이는 완벽한 사각 프레임이 안과 밖을 구분하는 일종의 경계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발롱 블루는 관계와 조화의 기호다. 진주 목걸이나 원형 이어링이 안정감과 우아함을 전달하듯, 발롱 블루는 균형을 추구하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처럼 두 시계는 각각 다른 자화상을 그려낸다. 산토스는 단단한 구조 속에 들어 있는 모습을, 발롱 블루는 자연스런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다. 

  • 산토스는 착용자가 전문적이고 이지적인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 Klocca

  • 발롱 블루는 균형을 추구하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 Klocca

한편 형태의 차이는 착용감의 차이도 만들어낸다. 산토스는 평평한 케이스와 일체형 브레이슬릿 덕분에 손목에 안정적으로 고정된다. 실용성과 기계적 합리성이 디자인 속에 녹아든 사례라 하겠다. 반면 발롱 블루는 착용감에서 정반대의 인상을 남긴다. 케이스 양면이 둥글게 솟아 있어 손목을 감싸듯 자리 잡으며, 시계를 차고 있다는 느낌보다 보석을 두르고 있다는 감각을 전한다.

평평한 케이스와 일체형 브레이슬릿 덕분에 손목에 안정적으로 고정된다. © Klocca

사각과 원형 사이에서

형태는 미학적 기호일 뿐 아니라, 자기표현의 언어다. 산토스와 발롱 블루는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지만, 결국은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건축에서 돔과 기단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성당이 완성되듯, 두 형태는 하나의 완벽한 풍경에 다가가고자 한다. 산토스가 구조와 결단의 얼굴이라면, 발롱 블루는 유연함과 조화의 얼굴이다. 그리고 우리 삶은 언제나 이 두 표정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 왔다.

사람들은 사각과 원형을 오가면서, 자신만의 삶의 형태를 완성한다. 무작위로 완성되는 다각형은 결코 사각이나 원형처럼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다고 믿는다. 까르띠에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그런 다양한 형태를 시계 안에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시계는 결국 하나의 결론에서 만난다. 사각과 원형은 낮과 밤처럼 교차하며, 그 반복 속에서 진정한 시간이 완성된다.

까르띠에는 다양한 형태를 시계 안에 품고 있다. © Cartier © Julien Thomas Hamon

사람들은 사각과 원형을 오가면서, 자신만의 삶의 형태를 완성한다.
Interview - 까르띠에 여성 시계를 말하다
Interviewee: 이윤정 전 <노블레스> 편집장

이윤정 전 <노블레스> 편집장 © Klocca

까르띠에 시계와 처음 인연을 맺으신 계기는 무엇입니까?

제가 기자 생활을 시작한 게 1993년인데, 까르띠에 코리아는 1997년에 설립됐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고급 시계는 결혼 예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죠. 사람들이 결혼할 때 주로 롤렉스나 오메가를 많이 구입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 두 브랜드는 너무 흔했습니다. 그 시점에 까르띠에가 국내에 진출하면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대안으로 각인됐습니다. 예물 시장에서 ‘조금 다르게 보이고 싶다’는 수요가 까르띠에로 향했던 겁니다. 저 역시 결혼하면서 산토스 갈베 모델을 구입했는데, 당시 저뿐만 아니라 제 주변에도 까르띠에를 예물 시계로 선택한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까르띠에가 럭셔리 워치 시장에서 단숨에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죠.

예물 시계로 구입한 산토스 갈베 모델 © Klocca

까르띠에 시계를 착용하면서 느끼신 가장 큰 매력은 무엇입니까?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매력은 ‘세월을 거스르면서도 동시대적인 느낌을 준다’는 겁니다. 흔히 타임리스(Timeless)하다고 표현하는데, 까르띠에 시계는 그 말이 정말 잘 어울립니다. 산토스 같은 경우만 봐도, 100년 전에 등장한 모델인데 지금도 전혀 촌스럽지 않아요. 오히려 최신 시계처럼 세련되게 느껴지죠. 또 하나는 브랜드의 역사에서 오는 신뢰감입니다. 디자인뿐 아니라 서사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까르띠에 시계를 한마디로 “패셔너블한 다큐멘터리”라고 정의합니다. 깊이와 진정성이 있으면서도 언제나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느낌, 그게 바로 까르띠에 워치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산토스와 발롱 블루를 떠올리면 각각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시나요?

산토스는 중성적이고 전문적인 이미지가 있습니다. 베젤과 브레이슬릿에 드러난 나사 장식 덕분에 뭔가 기술적이고 실용적인 분위기가 풍기죠. 반면 발롱 블루는 훨씬 더 여성스럽고 우아합니다. 이름 그대로 ‘파란 공’을 닮은 둥근 형태가 시각적으로도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같은 여성용 시계지만 분위기가 전혀 다르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산토스는 여성적 이미지를 강조하지 않으려는 분들이, 발롱 블루는 세련되고 트렌디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분들이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 Klocca

두 모델은 연령대에도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저도 동의합니다. 까르띠에 시계는 나이에 상관없이 멋스럽게 착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스트랩 선택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메탈 브레이슬릿은 나이 든 분들에게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이럴 때 가죽 스트랩으로 바꾸면 클래식하고 차분한 인상을 줍니다. 제가 산토스 갈베를 구입했을 당시에는 가죽 스트랩 옵션이 없었는데, 요즘 산토스 드 까르띠에는 메탈과 가죽 스트랩을 간단히 교체할 수 있어서 활용도가 훨씬 높아졌습니다. 이런 부분은 나이에 따른 시계 착용의 폭을 넓혀준 좋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소장하시거나 경험해 보신 모델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제가 결혼할 때 산토스를 구입했는데, 당시만 해도 주변에서 10명 중 6~7명은 까르띠에를 예물 시계로 선택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특히 산토스가 주력 모델이었죠. 그런데 2007년 발롱 블루가 출시되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주변에서 산토스를 차던 사람들이 발롱 블루로 많이 넘어갔고, 그만큼 발롱 블루의 파급력이 컸습니다. 커플 시계로 남녀가 함께 구입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사실 그 시기에는 저도 산토스를 예전보다 덜 차게 됐습니다. 최근 산토스가 리뉴얼되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걸 보면서 굉장히 반가웠고, 덕분에 요즘은 예전보다 더 자주 착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까르띠에가 디자인에 치중된 브랜드라는 오해가 있는데 사실 기술력도 상당히 뛰어납니다. 기능적으로도 정통성을 갖춘 시계 브랜드인데, 오히려 디자인이 너무 뛰어나서 겉모습으로만 소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 부분을 브랜드가 더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 출시된 산토스 갈베 모델과 2025년 출시된 산토스 드 까르띠에 스몰 모델 © Klocca

실제 여성 고객들의 선호도 차이를 관찰하신 적이 있나요?

제 주변을 보면 발롱 블루를 예물로 선택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럭셔리 업계, 마케팅, 금융 분야에 계신 분들이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죠. 아무래도 트렌드에 민감하고, 자신의 취향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싶은 분들에게 발롱 블루가 어필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시계라는 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만 사는 건 아니지만,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발롱 블루든 산토스든 좋은 선택지였다고 봅니다. 두 모델 모두 ‘설명이 필요 없는 검증된 시계’라는 공통점이 있으니까요.

발롱 블루가 2000년대 후반 큰 인기를 끈 배경은 무엇일까요?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시계를 구입할 때 선택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수입 모델도 제한적이었고요.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럭셔리 브랜드들이 한국에 본격 진출하면서 다양한 제품이 소개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발롱 블루는 까르띠에 컬렉션 중 보기 드문 원형 시계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조약돌처럼 부드러운 케이스와 곡선적인 크라운 디자인은 사람들에게 ‘이게 뭐지?’라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죠. 저는 발롱 블루가 처음부터 이미 완성형 모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호불호 없이 누구나 좋아할 수 있었고, 신제품임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고전처럼 느껴졌습니다. 산토스가 1910년대, 발롱 블루가 2000년대에 출시됐지만 두 모델 사이에서 100년의 시차를 전혀 느낄 수 없는 것도 까르띠에의 힘이라고 봅니다.

© Klocca

최근 여성 시계의 트렌드를 어떻게 보시나요? 그리고 산토스와 발롱 블루는 그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전에는 남성용, 여성용이 명확히 구분됐는데, 지금은 구분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까르띠에도 ‘스몰·미디엄·라지’ 식으로 사이즈만 제시할 뿐 성별은 따로 구분하지 않죠. 여성들이 작은 사이즈만 고집하지 않고, 큰 사이즈나 하이 컴플리케이션 시계에도 관심을 갖습니다. 남성도 반대로 작은 사이즈를 즐겨 착용하죠. 또 과거보다 주얼리 시계에 대한 거부감이 줄었습니다. 골드나 다이아몬드 세팅 시계를 부담스럽게 느끼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까르띠에 베누아처럼 한때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계도 요즘은 비즈니스 여성들이 즐겨 착용합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도 산토스와 발롱 블루는 여전히 까르띠에 여성 시계의 양대 축이자, 시대를 대표하는 스테디셀러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까르띠에가 다양한 사이즈와 주얼 옵션을 제공하는 것도 큰 강점 같습니다.

맞습니다. 까르띠에는 마치 “거기 가면 다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몇 가지 모델만 있는 게 아니라, 고객의 다양한 취향을 대부분 충족시킬 수 있는 브랜드죠. 사이즈, 소재, 브레이슬릿, 컬러 등 선택지가 촘촘하게 구성돼 있어 누가 와도 만족할 수 있다는 점이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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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까르띠에 여성 시계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기를 기대하시나요?

앞으로는 대담한 주얼리 워치와 독창적 디자인 시계가 더욱 인기를 끌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팬더 브레이슬릿 워치처럼 화려하거나, 동물 모티프를 직접 활용한 시계가 다소 과하다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소비자들의 안목이 성숙해져서 이런 개성 있는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산토스, 탱크, 발롱 블루 같은 아이콘은 계속 사랑받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베누아 같은 모델이 앞으로 크게 주목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동안 관심에서 멀어졌다가 최근 다시 부상하는 걸 보면, 과거의 힘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까르띠에는 매년 다양한 신제품을 꾸준히 선보이는 브랜드입니다. 역사와 전통을 지닌 아이콘을 새로운 컬러, 사이즈, 브레이슬릿으로 변주해 새로운 매력을 불어넣는 것, 그게 앞으로도 브랜드가 나아갈 길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Klocca

저는 까르띠에 시계를 한마디로 “패셔너블한 다큐멘터리”라고 정의합니다. 깊이와 진정성이 있으면서도 언제나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느낌, 그게 바로 까르띠에 워치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Cartier Santos de Cartier
Cartier Ballon Bleu de Car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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